<91화>
치체스터는 50년 동안 닫혀 있던 지하 감옥의 문을 억지로 열었다.
끼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육중한 철문이 열렸다.
으스스한 한기가 어둠 속에서 확 올라왔다.
그는 말 한마디 없이 렝케를 어둠 속으로 확 밀쳐 버렸다.
잠시 후.
“으아아아악!”
렝케는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공포 때문에 잔뜩 확장된 동공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고작 어두컴컴한 지하 감옥 속으로 밀쳐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감옥에는 형광빛을 내는 이끼가 가득 끼어 있어서, 횃불 없이도 앞이 잘 보였다.
50년 동안 그 누구도 사용하지 않았다는 지하 감옥은…….
“흐아아악!”
흉악한 마수들로 가득했다.
스치기만 해도 베일 것 같은 철갑을 두르고, 노란 눈을 흉흉 빛내는 마수들은 먹잇감을 발견한 쥐떼처럼 렝케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는 그동안 훈련을 위해 다양한 마수를 다루어왔다.
하지만 이것들처럼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마수들은 처음이었다.
“가! 가라고!”
렝케는 본능적으로 마력을 끌어모았다.
공작저의 감옥이니 마법으로 탈출은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깟 마수들 정도는 물리칠 수 있을 것이다.
‘……!’
렝케의 얼굴이 경악에 질려 일그러졌다.
마력이 모이기는 했다.
모이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서 그렇지.
기겁한 나머지 바닥에 주저앉은 렝케의 몸을 야수들이 타고 올랐다.
그 소름 끼치는 감촉과 무게에 숨이 막힐 것만 같았다.
렝케는 비명을 지르고 또 질렀으나 그 누구도 그를 구해 주지 않았다.
마치, 그의 학대를 받으며 고통스러워하던 아이들처럼.
한편, 렝케의 기척을 살피던 치체스터는 지하에 울려퍼지는 비명소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블로에 부인, 아니지, 브리튼 양을 건드리지만 않았어도…….’
그가 렝케를 지하 감옥으로 보내는 걸 꺼려 한 이유는 단순히 50년 동안 닫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바로 그곳에 둥지를 튼 마수들 때문이었다.
50년 전, 마수들이 돌연히 지하감옥을 중심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당시 공작가는 처음에는 마수들을 제거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마수들이 해로운 부류가 아니라, 오염된 마정석을 정화시키고 본디의 힘을 더욱더 기폭시키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공작가는 그 마수들이 성체로 자라면 겉모습이 고양이로 변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유로이 풀어주었다.
마정석 세공은 높은 확률로 그다지 달갑지 않은 부산물을 만들어낸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공작저를 돌아다니며 군데군데 마력 폭발을 일으키는 부산물들은 오랜 기간 공작가의 골칫거리였다.
별명이 쥐새끼일 정도로.
하지만 마수들은 그 부산물을 마치 맛있는 먹잇감이라도 되는 양 잡아서 삼켜 버렸다.
이제 마수들은 공작저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으며, 진짜 고양이처럼 길러지며 예쁨받았다.
간혹 성체가 아닌 어린 마수가 지하 감옥에서 나와 소란을 일으키곤 했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렝케는 마수가 자신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점을 모른다.
그에게 마수는 목숨을 위협하는 괴물일 뿐이리라.
‘마법사니 더더욱 못 버티겠지.’
역대 공작가의 가신으로 일하던 마법사들은 지하 감옥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마수들 때문이 아니었다.
지하 감옥은 본디 중대한 죄를 저지른 마법사들을 수감하기 위한 장소였다.
당연히 안에서는 마법을 쓸 수 없도록 장치가 되어 있었는데, 이 정도야 마법사를 수감하는 감옥의 기본적인 특징 중 하나였다.
문제는 지하 감옥이 지어졌을 때가 지금으로부터 수백년 전이라는 점이었다.
그 당시의 형벌은 지금과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
감옥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당시의 공작가는 금지된 마법까지 건드려 가며 지하 감옥을 만들었다.
지하 감옥에 갇힌 마법사는 짧으면 한 달, 길어도 1년 만에 다시는 마법을 쓸 수 없는 몸이 되었다.
치체스터는 문을 단단히 잠그고는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
렝케 자체에 대해선 아무런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도리어 저렇게 혐오스러운 자와 함께 있어야 할 새끼 마수들이 불쌍할 지경이군.’
그는 혀를 끌끌 찼다.
어린아이들을 그렇게나 많이 학대한 자다.
렝케 브리튼은 마땅히 받아야 하는 벌을 받는 것에 불과했다.
* * *
카리나는 인파의 중심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렝케 브리튼이 감옥에 갇혔다.
자신과 아이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릴 뻔한 남자가.
이제 다시는 그 누구의 인생도 망치지 못할 것이다.
“브리튼 양.”
클로드의 목소리가 들렸다.
카리나는 왜 그가 자신의 새로운 호칭을 강조하는지 알았다.
이 자리에 모인 모든 군중들의 앞에서, 그녀의 새로운 신분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할 이야기가 있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따라나섰다.
자신을 도와준 소중한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인사 한번 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절대 다수가 구경꾼인 상황을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보는 눈이 이렇게 많으니, 자신의 언행 하나하나가 순식간에 소문이 되어 퍼져 나갈 것이다.
빨리 자리를 떠나는 게 옳은 선택이었다.
‘나중에 한 명 한 명 만나서 고맙다고 해야겠어.’
클로드를 따라가는 카리나에게, 체스가 씩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아스트리드는 아직도 뾰로통해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상황을 이해하는 듯했다.
잠시 후.
카리나는 그들이 별채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클로드는 정답을 골랐다.
카리나는 아이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보고 싶었다.
꼭 껴안고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걸,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무사하리라는 걸 확인하고 싶었다.
‘렝케 경에 대해선 그냥, 나쁜 짓을 해서 감옥에 갔다고만 말해야겠지.’
굳이 그가 자신을 협박한 사실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카리나가 이제 블로에 부인이 아닌 브리튼 양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조금 혼란스러워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금방 적응할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별채에 도착한 카리나는 있는 힘껏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롤랜드! 멜리사!”
보통 때라면 아이들이 놀 만한 곳을 찾아다니겠지만 조금이라도 빨리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카리나의 목소리가 닿지 않은 2층에서 놀고 있는 듯했다.
카리나는 미소 지으면서 2층으로 올라갔다.
십여 분 후.
‘어……?’
카리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몇 번이고 둘러보았지만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에두아르조차 보이지 않았다.
“밖에도 없다.”
이미 밖을 둘러보고 온 듯한 클로드가 숨을 몰아내쉬며 말했다.
“…….”
카리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이들은 별채 밖으로 거의 나가지 않았다.
나가더라도 정원에서 놀았고.
만약 공작저의 다른 곳으로 이동해야 할 경우엔 반드시 메모를 남겨놓았다.
하지만 아무리 뒤져 보아도 메모 한 장 남아 있지 않았다.
‘렝케 경은 붙잡혔잖아. 대체 왜……!’
패닉에 빠지기 시작하는 카리나의 앞을 클로드가 가로막았다.
“진정해라, 부인. 에두아르가 아이들을 데리고 나갔을 수도 있으니.”
“메모 한 장 남기지 않고, 사용인 한 명 보내지 않고요?”
클로드는 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종을 여러 번 불러 사용인을 여럿 불렀다.
카리나는 조금은 안도했다.
공작가의 사용인들을 모조리 동원한다면,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금방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찾지 못한다면?’
카리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만약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카리나는 평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바로 그때.
문이 달칵, 하고 열렸다.
카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롤랜드와 멜리사가 침울한 얼굴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롤랜드, 멜리사!”
카리나는 아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어디 갔었어? 걱정했잖니. 메모도 남기지 않고…….”
아이들은 풀이 죽은 얼굴로 바닥만 내려다 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멜리사가 무언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열긴 했지만 이내 닫아 버렸다.
겁이 덜컥 들었다.
카리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아이들을 샅샅히 살폈다.
“어디 아파? 다쳤어?”
“아뇨.”
롤랜드가 고개를 저었다.
“저흰 괜찮아요.”
“그럼…….”
카리나의 말을, 헐레벌떡 뛰어들어온 에두아르가 잘랐다.
“얘들아, 그렇게 말도 없이 가 버리면 어떻게…….”
카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에두아르는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머쓱한 얼굴로 시선을 피했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그녀의 뇌리를 스쳤다.
카리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에두아르 씨, 아이들이 어디에 있었나요?”
“…….”
“어디, 위험한 곳에라도 있었던 건가요?”
“그건 아닙니다.”
에두아르는 잠시 망설이다, 단 한 마디를 덧붙였다.
“브리튼 양.”
아.
카리나는 그 한 마디로 모든 걸 파악할 수 있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은 렝케가 자신을 고발하다가, 결국 끌려가는 모습을 모두 지켜본 것이다.
목이 콱 멨다.
당연히 아이들에게 이미 일어난 일을 숨길 수는 없었다.
하지만, 렝케로부터 비난받는 자신을 인파 속에서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지켜보았을 아이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콱 조여들었다.
다음 순간.
롤랜드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어, 저희 엄마가 이제는 아닌거죠, 카리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