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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89)화 (89/145)

<89화>

카리나는 다시 공개 모집 제도를 구현하는 일에 착수했다.

클로드가 믿고 기다리라고 했으니, 그 말에 따르는 수밖에.

카리나는 그 이후로 클로드를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선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그래도 렝케 경이 다시 나타나지 않은 걸 보니 클로드의 장담이 틀리지 않은 듯했다.

하지만 카리나의 마음속에는 항상 불안감이 있었다.

‘클로드는 괜찮을지 몰라도, 다른 사람들은 아닐 거야.’

카리나는 이마를 문질렀다.

클로드 데비아탄은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야 자신의 출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준다고 해도, 남들도 과연 그럴까?

당장 체스는, 아스트리드는, 와일더는, 에두아르는?

카리나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굳이 예지력이 없어도, 마땅한 답을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카리나의 마음엔 불안으로 이루어진 갑옷이 한 겹 한 겹 채워졌다.

* * *

“방이…… 없다고?”

렝케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아 거듭 되물었다.

마지막 남은 현금을 토르스까지 오는 데 탈탈 털어 썼기 때문에, 그들에게 남은 선택지는 토르스에서 가장 더럽고 좁은 여관이었다.

그런데 그 여관이 방이 없다며 자신을 거부한 것이다.

“그래, 없으니까 나가슈.”

싸구려 여관의 주인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절레절레 내저었다.

렝케는 다 쓰러져 가는 여관의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런 여관의 방이 다 찼을 리가 없다.

대체 이유가 무엇인지 몰라도, 만사가 귀찮아 보이는 이 여관 주인은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내가 누구인 줄은 알고 거짓말을 하는 게냐?”

“누구긴.”

여관 주인은 카운터에서 몸을 날렵하게 빼냈다.

그의 손에는 날이 번뜩이는 식칼이 들려 있었다.

“그쪽같은 거지에게 줄 방이 없는 거니, 이만 나가 보슈!”

렝케는 여관 주인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차가운 분노가 일기 시작했다.

‘감히, 이런 쥐와 바퀴가 들끓는 더러운 여관에서 나를 거부해?’

여관 주인이 마법에 비하면 애들 장난감 수준의 무기를 들고 있다는 점도 그를 자극했다.

그때, 여관 주인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는 올리버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한 번 시험 삼아 공격해 보라고 할까…… 아니, 이건 위험해.’

아무리 엉망이라곤 하나 여관 주인이다. 이런 자를 죽인다면 후일이 귀찮아진다.

물론, 귀족이 평민을 죽였으니 큰 벌은 받지 않겠지만 지금 렝케의 형편으로는 일반적인 수준의 벌금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올리버가 순진하게 그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공격할까요?”

바로 그 순간.

여관 주인이 기다렸다는 듯이 소리치며 밖으로 헐레벌떡 도망치기 시작했다.

“북부 놈이 사람 잡네! 사람 잡아!”

그 소리와 거의 동시에 한 무리의 무장한 남자들이 골목으로 우르르 몰려나왔다.

바로 경비대였다.

렝케는 도망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제자리에 서 있었다.

자신은 여관 주인에게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

경비대가 조금 오해를 할 수는 있어도, 그의 신분패를 보면 바로 오해를 풀고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렝케는 몰랐다.

연기에 능한 음유시인이 여관 주인으로 가장하고 있었으며, 경비대 역시 클로드의 명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이제 토르스의 경비대는 한때 악명 높았던 뇌물수수집단이 아니었다.

기사단이 재정비되면서, 기사단에 있던 기존 인력들은 모두 경비대로 가게 되었다.

그들은 하급 기사들이긴 했으나 도박과 뇌물에 빠져 있던 경비대의 수준은 훨씬 뛰어넘었다.

“아이는? 각하께서 아이도 반드시 데려오라고 하셨다.”

경비대는 열심히 골목을 뒤졌지만 어디에도 열 살 남짓한 소년은 보이지 않았고, 결국 렝케 브리튼을 구속하는 데 만족하는 수밖에 없었다.

* * *

일주일 후.

간신히 풀려난 렝케는 비틀거리며 공작저로 향했다.

엄중한 조사 끝에 그는 그 어떠한 혐의도 없다는 점이 입증되었다.

경비대는 정중히 사과한 이후 그를 풀어 주었지만, 보상은 땡전 한 푼 주려 하지 않았다.

‘그년이 공작저에 있는 것만 아니었어도 진작 나올 수 있었는데.’

만약 카리나가 공작가의 가신이 아니었다면 렝케는 진작 구치소를 반쯤 박살 내고 뛰쳐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카리나는 기가 막히게도 공작가의 가신이었고, 공작저로 들어가기 위해선 요주의 인물이 되어서는 안 되었다.

심지어 올리버조차 그 틈을 타 어디론가 도망친 듯했다.

‘표식을 그놈에게도 심어 놓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렝케는 마음을 다잡았다.

어차피 롤랜드와 멜리사 남매만 손에 넣으면 올리버 같은 보잘것없는 어린애야 기억도 나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카리나는 주제를 알고 도망치지 않은 듯했다.

여비가 완전히 떨어졌기 때문에 카리나가 다른 지역으로 도망갔다면 위치를 알더라도 당장 쫓아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 누리는 것들을 포기하기 싫었겠지.’

렝케는 속으로 카리나를 비웃었다.

카리나는 척 보기에도 웬만한 귀족 이상 가는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 모든 건, 당연히 거짓말 덕분일 것이고.

‘도망치지 않은 걸 보니 지금 찾아가도 롤랜드를 순순히 내어주겠군.’

렝케는 카리나에게 북부로 돌아갈 여비도 요구할 생각이었다.

모두 앞에서 실체를 폭로하지 않은 대가로 치면 싼 편 아닌가.

렝케는 뛰어난 마법사였기에 마음만 먹으면 강도짓도 얼마든지 할 수 있었지만 그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에게 강도와 구걸, 도둑질은 오직 비천한 밑바닥 인생들이나 할 법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침내 공작저에 도착한 렝케는 곧바로 카리나 블로에와의 독대를 요청했다.

“만나지 않으시겠답니다.”

“뭐……?”

렝케는 기가 막혀 소식을 전해 준 사용인을 쏘아보았다.

“그럴 리가 없다. 네가 착각한 게 아니냐?”

“만나지 않으시겠다 해서, 그대로 전해드린 것뿐입니다.”

“지금 블로에 부인은 어디에 있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바쁘신 듯하니, 다음에 찾아오시는 게 좋을 듯합니다.”

카리나에게 심어둔 표식은 그녀가 이 드넓은 공작저 어느 한 곳에서 가만히 멈춰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들어가겠다.”

“죄송하지만, 여긴 공작저입니다. 그 어떤 분도 허가 없이는 들어오실 수 없습니다.”

렝케는 자신을 가로막은 사용인을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군사 훈련 하나 받지 않았어. 도망조차 못 치겠군.’

더 이상 참을 이유가 없었다.

다음 순간.

점멸하는 빛과 함께 조금 전까지만 해도 꼿꼿이 서 있던 건강한 사용인은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렝케는 주위를 살폈다.

워낙 조용하게 처리했기 때문에 아무도 여기서 벌어진 일을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소리는 실력 없는 녀석들이나 내는 거지.’

렝케는 사용인의 머리에 크게 한 번 발길질한 다음, 표식이 알려 주는 위치를 향해 바삐 발걸음을 옮겼다.

이 사용인이 깨어나 자신에 대해 증언한다면 큰 소란이 일어나겠지만 상관없었다.

과거가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는 카리나가 그에게 롤랜드를 안겨 주고 탈출까지 시켜 줄 테니까.

잠시 후.

그는 카리나의 표식이 느껴지는 방문 앞에 도착했다.

‘……?’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안에는 제법 많은 사람이 있는 듯했다.

‘대여섯 정도 되려나.’

그는 간단한 손동작으로 정해진 상대에게만 보이는 작은 편지를 만들어, 허공에 날렸다.

편지는 허공으로 녹아들어 갔다.

그는 여유를 가지고 카리나의 반응을 기다렸다.

‘역시.’

문이 열리고, 카리나가 걸어 나왔다.

그녀는 예상보다 훨씬 평온해 보이는 얼굴로 렝케를 올려다보았다.

“작별 인사는 원 없이 했겠지.”

“…….”

인사는커녕 대답조차 없는 게 제법 괘씸했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롤랜드였다.

“애들을 데리고 나오너라. 지금 당장 돌아가야겠다.”

침묵이 흘렀다.

렝케는 참을성을 가지고 카리나의 대답을 기다려주었다.

카리나는 항상 멍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혼자 돌아가세요.”

“뭐……?”

렝케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혼자 가시라고요.”

카리나가 담담하게 말을 되풀이했다. 겁에 질리지도, 화가 나지도 않은 목소리였다.

“……카리나, 제정신이냐?”

카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복도를 향해 큰소리로 소리를 질렀다.

“침입자다! 여기 침입자가 있다!”

문이 벌컥 열리며 사방에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렝케는 입꼬리가 비틀렸다.

‘제 무덤을 파는군.’

카리나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방법을 선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고의 무대를 만들어 준 셈이었다.

전 주인의 조카를 납치하고, 감히 공작을 속인 사생아를 고발하기에 최적의 무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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