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81)화 (81/145)

<81화>

아서 템프턴은 이제 그녀에 대한 적의를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의 오른쪽 손가락 두 개가 벌써부터 떨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지금도 그렇군요.”

“……이제 보니, 말을 나눌 가치도 없는 사기꾼이었군.”

“마음대로 생각해요, 아서 경. 어차피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될 테니까.”

카리나는 등을 돌려 재활 시설을 빠져나왔다.

그녀의 모습을 좇는 아서 템프턴의 시선이 복도를 완전히 돌아설 때까지 느껴졌다.

바로 다음 날.

카리나는 베리티를 찾아가 에이드리안과의 협업을 요청했다.

당연히 베리티의 반응은 예상한 대로였다.

“네? 그 미친놈과의 협업이요?”

“미안하지만, 부탁할게요. 중요한 일이에요.”

“대체 뭔데요?”

“에이드리안 경을 불러서, 같이 설명해도 될까요?”

자신이 지금 설명할 계획은 둘 모두의 반대에 부딪힐 게 뻔했다.

카리나는 두 번이나 진을 빼고 싶지는 않았다.

잠시 후.

에이드리안이 베리티의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들의 사무실은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에이드리안 경, 와줘서 고마워요.”

에이드리안은 그녀를 보자마자 활짝 미소 지었다.

“여신님의 부름인데, 당장 달려오는 게 당연하지요.”

“…….”

베리티는 토하는 듯한 시늉을 했다.

카리나는 속으로는 베리티에게 공감했지만 아무런 티도 내지 않았다.

“제가 두 분을 한데 모은 이유는…… 두 분 모두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부인, 대체 뭡니까?”

아까부터 기다리던 베리티가 답답해하며 물었다.

카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날, 믿어 줄까.’

이들이 자신에게 설명이나 증거, 혹은 근거를 요구해도 자신은 내놓을 게 아무것도 없다.

어설픈 변명을 꾸며내었다간 도리어 의심만 더 살지도 모르기 때문에, 카리나는 설명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러니 자신은 순전히 베리티와 에이드리안의 호의에 의지해야 했다.

“아서 템프턴의 병…… 고칠 방법을 알아낸 것 같아요.”

“네?”

에이드리안은 아무런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베리티는 달랐다.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믿을 수 없다는 시선으로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부인이 아서 템프턴에 대해서 알아낸 건 겨우 어제잖아요.”

“네. 그리고 직접 그를 찾아서 만나보았어요. 알겠더라고요.”

“……!”

“에이드리안 경.”

카리나는 에이드리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신종에 대한 연구는 잘 되어가시나요?”

“물론입니다!”

에이드리안은 드디어 자신이 대답할 수 있는 주제가 나와 기쁜 모양인지 열정적으로 대답했다.

“이제 학회에 보고할 만한 준비도 거의 마쳤습니다. 이름만 정하면 되는데, 부인의 이름을 따서 카리나움으로 할까 생각 중입니다.”

“자, 잘됐네요.”

카리나는 조금 불안해졌지만 그냥 축하만 해 주었다.

‘설마 정말로 내 이름을 따서 짓겠어?’

지금 중요한 건 신종 식물의 이름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가 아니었다.

“그 식물로 약을 만들면, 아서 템프턴의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거예요.”

“……예?”

“부인, 무슨 소리를 하시는 겁니까!”

베리티는 어이없다는 듯한 한마디만 내뱉었지만, 에이드리안은 격렬하게 반응했다.

“약이요? 사계절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모르는 신종을 가지고 약을 만들라고요? 저런 무자비한 인간의 손에 제 사랑스러운 카리나움을 넘겨 주라고요? 차라리 죽으라고 하십시오!”

베리티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에이드리안의 말에 한마디 보탰다.

“……블로에 부인, 저 작자가 반쯤 정신이 나갔기는 하지만 저 말은 맞는 말입니다. 신종 식물을 가지고 약을 만드는 건 너무 위험해요.”

“그럼, 생으로라도 먹이겠어요.”

카리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어차피 지금 그들이 만들 수 있는 약은 전생과 달리, 뭔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약초를 가장 먹기 쉬운 형태로 만드는 게 약제사들의 유일한 과제일 정도였다.

그러니 생으로 먹여도 크게 약효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왜 그렇게까지 하시려는 거죠?”

베리티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카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카리나는 에이드리안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에이드리안 경, 아서 템프턴을 위한 약을 만들어낸다면 그 신종 식물을…….”

“카리나움입니다, 부인.”

“……그래요, 카리나움.”

카리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만약 정말로 카리나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다면, 자신은 평생 가도 그 이름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에이드리안을 구슬리는 게 급선무였다.

“이번 프로젝트가 끝난 이후에도 카리나움을 평생 연구해도 좋아요.”

“……!”

에이드리안의 얼굴이 순식간에 환하게 밝아졌다.

현재 신종 식물의 군락은 훈련장에만 형성이 되어 있었지만, 사실상 카리나가 원한다면 그 어디에나 군락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가 카리나를 거의 숭배시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정말입니까?”

“네. 단, 아서 템프턴의 병을 성공적으로 치료하셔야 해요.”

에이드리안은 즉각 베리티를 향해 외쳤다.

“솔베타인 선생, 갑시다!”

“……에이드리안 경,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만약 솔베타인 선생이 협조하지 않는다면 꽃을 그자의 입에 억지로 쳐넣을 겁니다! 제 평생이 달려 있는 문제거든요!”

“…….”

베리티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시선으로 에이드리안과 카리나를 한 번씩 번갈아 바라보았다.

“……휴우.”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어쩔 수 없군요. 일단은 부인의 말대로 해 보겠습니다.”

그녀는 에이드리안과 함께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일주일이 흘렀다.

약이 만들어지기까지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만약 베리티가 신중한 성격이 아니었다면 사흘 만에 끝났을 것이다.

어쨌든, 일주일 동안의 소란과 고함과 격투 끝에 약은 완성되었다.

“이걸 마시라고?”

아서 템프턴은 그들이 독약이라도 가지고 온 것처럼 잔뜩 경계했다.

“이걸 어떻게 믿나?”

“당신, 여기 치료받으려고 온 거 아닌가?”

에이드리안이 큰 소리로 면박을 주었다.

“그러니 닥치고 먹기나 먹어. 꼬박 일주일 밤낮을 새워서 만든 거니 고마운 척이라도 해 보고.”

“…….”

아서는 그들을 차례로 노려보았다.

그의 시선이 가장 오래 머무른 건 당연히, 카리나였다.

카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이제도 제가 가신을 사칭한다고 생각하시나요?”

“……거짓말이 아니었군.”

그는 베리티의 손에서 약을 반쯤 빼앗듯이 삼켜 버렸다.

“…….”

에이드리안과 베리티, 그리고 카리나는 숨죽여 아서 템프턴을 바라보았다.

둘의 합동 연구에 따르면 약효는 즉각 나타날 가능성이 높았다.

잠시 후.

아서 템프턴은 천천히 칼자루를 향해 오른손을 옮겼다.

칼이 금속성 소리와 함께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찰나의 순간.

기다란 검이 허공에 유려한 궤적을 그렸다.

카리나는 끝까지 그의 움직임을 쫓았다.

길고 억센 손가락은 단 한 번도 떨리지 않았다.

“성공했다……!”

침묵을 깨트린 건 에이드리안이었다. 그는 체통 없이 자리에서 방방 뛰며 카리나를 붙들었다.

“부인, 보셨습니까! 제가 해냈습니다! 이제 약속을 지키실 거죠?”

“그럼요, 그 신종 식물…….”

“블로에 부인, 카리나움이라니까요!”

“네에, 카리나움을 평생 연구하실 수 있도록 해 드릴게요.”

베리티 역시 감격한 얼굴로 기뻐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아서 템프턴은 기묘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할 뿐이었다.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약효, 얼마나 가지?”

베리티가 즉각 대답했다.

“그건 관찰해 봐야 알겠지만…… 한 달 정도로 예상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이 약을 먹어야 된다는 소리군. 그리고 이 약의 재료가 부인과 관계가 있댔지. 즉…….”

그는 카리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나는 평생을 그대에게 매여 있게 되겠군.”

“뭐…… 비슷하긴 하죠.”

카리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이 공작가에 약을 제공하는 동안은, 아서 템프턴은 공작가를 위해 일해야 할 것이다.

황실에서 약을 개발한다면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건 먼 훗날의 이야기였다.

“이름이 정확히 뭐지?”

“카리나 블로에.”

카리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분명 자신의 이름을 일전에 말해 주었는데도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카리나 블로에…….”

아서 템프턴은 그 이름이 마치 적군 명장의 이름이라도 되는 것처럼 입안에서 으스러뜨렸다.

“나와 결혼해 다오.”

“……네?”

카리나의 입에서 새된 반문이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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