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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74)화 (74/145)

<74화>

클로드가 황급히 다가와 그녀를 붙들고 샅샅이 살폈다.

“다친 곳은 없나? 화상은? 당장 솔베타인한테 보여야겠군.”

“저는 괜찮아요, 각하.”

그저 적당히 뜨뜻한 온도의 물을 뒤집어썼을 뿐이다.

퀴퀴한 계란 냄새가 나기는 했지만…… 뭐, 피부에는 좋다니까.

클로드가 서둘러 외투를 벗었다.

귀가 달아오른 걸 보니 조금 전의 실수가 많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부인, 별 도움은 안 되겠다만 이거라도…….”

“감사합니다.”

클로드가 그녀의 어깨 위로 육중한 외투를 직접 걸쳐주었다.

늦봄이었기 때문에 클로드는 옷을 많이 껴입고 있지 않았다.

외투를 벗으니, 탄탄한 근육을 가려주는 건 얇은 흰색 셔츠뿐이었다.

“미안하다. 내가 멍청한 짓을 했어.”

“그냥 실수잖아요. 제가 뭐, 다친 것도 아니고…… 그, 각하!”

카리나는 당황하며 소리쳤다.

클로드가 직접 외투의 금장을 잠가 주기 시작한 탓이었다.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여미실 필요는 없어요. 옷에 물기가 배잖아요. 그것도 유황 냄새가 나는 물이요.”

하지만 클로드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 만 체하며 외투를 끝까지 꼼꼼히 여며 주었다.

확실히 따뜻하기는 했지만, 카리나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뭔가 이상해.’

클로드는 그녀의 말을 무시하는 부류가 아니었다.

“춥, 춥지 않으세요?”

카리나는 애써 화제를 돌려보았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아. 그보다는 부인의 옷이 다 젖어서…….”

클로드는 말을 하다 말고 카리나의 시선을 피했다.

“…….”

카리나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제야 상황을 알아차린 탓이었다.

‘최근에 얇은 상복을 샀지.’

검은 옷이긴 하나 얇으니 살갗에 달라붙는 건 피차일반이다.

클로드가 헛기침을 했다.

“마법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다면 물기를 말려 주었을 텐데, 미안하다.”

“괜찮아요.”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 각하의 옷이 따뜻해가지고……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정말이에요.”

카리나는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지나치게 서두른 탓이었을까.

그녀는 물에 잔뜩 젖은 자갈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바로 온천수의 가장자리에서.

‘또 젖겠구나.’

카리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번에는 클로드의 외투마저 젖게 된다.

‘나, 배상은 할 수 있을까……?’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그녀를 세차게 밀치는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풍덩!

들려서는 안 되는 소리가 들렸다.

카리나는 눈을 치켜떴다.

“안 돼!”

목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클로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온천에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뜨거운 물기를 뚝뚝 흘리는 클로드에게서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흠뻑 젖은 흰색 셔츠가 투명한 탄탄한 근육을 여과 없이 보여주었다.

카리나는 안절부절못하며 발만 동동거렸다.

클로드 데비아탄이, 자신을 밀치고 대신 물에 빠지다니.

“죄송해요!”

“죄송하지 않아도 된다.”

클로드가 눈을 가리는 머리카락을 뒤로 쓸어넘겼다.

정말 어이없게도, 그 모습이 너무나 잘생겨 카리나는 숨을 들이켜고 말았다.

“어차피 이 온천도 내가 바보짓을 해서 만든 게 아닌가. 부인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카리나는 그의 가슴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사실상 벗은 몸이나 다름없는 상체를 보자니 얼굴이 저절로 달아올랐다.

“그, 외투…… 벗어 드릴까요?”

“아니, 입고 있어.”

클로드가 눈을 질끈 감으며 명령했다. 아무래도 연거푸 어이없는 실수를 하니 많이 창피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상태로 말을 달리면 감기에 걸리실 거예요.”

이 남자가 공작과 마검사라는 게 초인이라는 뜻은 아니다.

분명 해가 떠 있을 때까지만 해도 따스하게 봄바람이 불어왔지만, 해가 지니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상관없어.”

“불을 피우는 건 어떨까요? 항상 성냥을 가지고 다니거든요.”

왜 그 생각을 진작 못 했을까.

불을 피우고 옷을 말리면 이 외투 역시 돌려줄 수 있다.

카리나는 서둘러 품속을 뒤졌다.

하지만 성냥은 모두 젖어 버린 상태였다.

‘바보 같기는.’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당연히 물을 뒤집어썼으니, 성냥은 멀쩡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던 클로드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불이라면 피울 수는 있다만.”

“정말인가요?”

카리나는 눈을 빛냈다.

불꽃을 튀기는 정도는 쉬운 마법이라, 마법사가 아닌 클로드도 사용할 수 있는 듯했다.

그럼 문제가 벌써 해결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작을 모으고 불을 붙이면 된다.

카리나는 잘 마른 장작을 서둘러 모아왔다.

“떨어져라. 위험하니까.”

클로드가 품에서 마정석을 한 알 꺼냈다.

‘……!’

카리나는 곧바로 당황하며 소리쳤다. 클로드는 마정석을 무슨 불쏘시개처럼 사용하려고 하고 있었다.

“각하……!”

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따스한 모닥불이 타닥이며 타올랐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옷이나 말리는 수밖에.

“마정석을 쓴다고 미리 알려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요.”

카리나는 풀이 조금 죽어 중얼거렸다. 황실에서 하사한 마정석을, 이런 데 쓰다니.

모닥불에 몸은 나른해지는데도 마음은 영 편치 않았다.

“그럼 말렸을 테니까?”

클로드가 기묘한 어조로 물었다.

“네. 마정석을 겨우 옷 말리는 데 쓰다니…… 아깝잖아요.”

“아까워할 것 없다. 부인이 나한테 여태까지 준 마정석 중 하나를 사용했다고 생각해라.”

“하지만 제가 만든 마정석은 아니었잖아요.”

“당연하지.”

클로드가 진지하게 대답했다.

“부인이 만든 마정석을 겨우 불 피우는 데 사용할 수는 없지.”

“황실 하사품은 괜찮고요?”

클로드가 웃었다.

“그래. 황실에서 내린 것이라면 수십 개라도 불쏘시개로 사용해 버릴 수 있어.”

카리나는 어이가 많이 없어졌다.

클로드의 말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쌓인 게 많구나.’

하지만 아무리 쌓인 게 많아도 그렇지, 누가 들으면 고발당하고도 남을 듯한 발언을 한단 말인가?

“그래도 웬만하면 이런 일들엔 제가 만든 마정석을 사용해 주세요. 품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들부터요.”

“그럴 순 없지.”

클로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것들은 언젠가 부인의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될 거다.”

“네……?”

카리나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클로드가 아닌, 카리나 자신을 위해서 마정석을 만들기 시작한 초기부터 하나씩 보관해 둔 거라니.

“지금은 당연히 봐도 모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1년 뒤, 2년 뒤에는?”

클로드는 그녀를 향해 몸을 천천히 기울였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지금 느껴지는 열기가 대관절 어디에서 발산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클로드인지 모닥불인지 그것도 아니면 그녀 자신의 폭발할 것 같은 심장에서인지…….

“부인은 백 년 만에 나온 천재야. 그러니, 부인 스스로 부인을 연구하는 수밖에 없어. 나는 아주 작은…… 도움을 주는 것이고.”

“작지 않아요.”

카리나는 속삭였다.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간, 심장이 터져 버릴 것만 같았기에.

“정말, 정말 큰 도움이잖아요. 각하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아 주세요.”

“…….”

침묵이 흘렀다.

클로드도, 카리나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카리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쪽에 가까웠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였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머리끝까지 울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클로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만 일어날까.”

“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클로드가 불을 끈 다음, 남은 불씨가 없는지 꼼꼼하게 확인했다.

돌아가는 시간은 제법 길게 느껴졌다. 말이 좀 더 지쳐 있기도 했고, 카리나가 느끼기에 좀 더 불편한 분위기이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카리나가 별채에 도착해 감사 인사를 하려는 순간, 의외의 말이 들려왔다.

“덕분에 즐거웠다.”

클로드는 그 한마디가 할 말의 다라는 듯, 몸을 휙 돌리더니 곧바로 성큼 걸어서 사라져버렸다.

카리나는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즐거웠다니.’

상식적으로 이번 탐사는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녀도 클로드도 퀴퀴한 냄새가 나는 온천물을 뒤집어쓴 다음, 귀중한 마정석을 겨우 불 지피는 데 써 버렸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리나는 인정했다.

‘나도, 즐거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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