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72)화 (72/145)

<72화>

바로, 온천이었다.

이젠 꿈결처럼만 느껴지는 전생의 삶에서 온천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에 반면…….’

지금, 제국에는 온천은 고사하고 공중목욕탕조차 없었다.

백여 년 전, 한 사업가가 공중목욕탕과 비슷한 시설을 열었다가 위생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전염병의 온상지가 된 이후로 금지되었기 때문이었다.

카리나는 강변으로 다가갔다.

‘아, 강에 온천수가 흐르는 건 아니구나.’

그럼 그렇지.

강에 뜨거운 물이 흐른다면 이미 공작령의 명소가 되어 있을 것이다.

‘이건…….’

강변의 자갈밭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보아하니 반신욕 정도는 할 수 있는 깊이인 듯했다.

카리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집어넣어 보았다.

‘……!’

어른에겐 몸이 잘 풀어질 정도지만, 아이들에겐 좀 많이 뜨거울 수 있을 정도의 온도였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체스를 째려보았다.

“애들에겐 너무 뜨겁잖아.”

“내가 뭐, 이 안에 들어가서 목욕이라도 하라고 애들을 데려왔나. 그냥 신기한 거 구경해보자 이거지.”

“앗, 뜨거!”

롤랜드가 용감하게 손을 담갔다가 소리를 지르며 금세 빼냈다.

멜리사는 신중하게 새끼손가락 하나만 넣었다가, 몸을 부르르 떨며 김이 올라오는 온천에서 후다닥 뒷걸음질을 쳤다.

“이상한 냄새가 나요.”

멜리사가 울상을 지었다.

카리나가 허리를 숙여서 냄새를 맡아 보니, 오래된 달걀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유황 온천이 분명해.’

체스가 카리나를 놀리기 시작했다.

“냄새만 맡다니, 아무것도 모르는구만. 여긴 발을 담구고 있으면 피로가 풀려.”

그는 신발과 양발을 벗고,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아예 몸을 담그지 그래?”

당연히 발만 담그는 것보다야 몸 전체를 담그는 게 낫다.

카리나는 지금 목욕할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체스가 온천을 좋아한다면 기껏 마차를 달려 이곳까지 왔는데 목욕을 하고 돌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카리나는 의아한 얼굴로 체스를 바라보았다.

“너…….”

체스는 할 말을 잇지 못하고 새빨개진 얼굴로 입만 뻐끔거렸다.

‘아.’

카리나는 그제야 체스가 침묵한 이유를 알아차렸다.

목욕을 하려면 옷을 당연히 벗어야 한다.

속옷만 입고 할 수도 있기야 하겠지만 불편할 것이다.

아이들이야 몸을 잔뜩 적셔도 갈아입으면 그만이지만 자신과 체스는 성인이니 얘기가 달라진다.

“미, 미안.”

“됐어.”

체스가 심투룽한 목소리로 대답하는가 싶더니, 아이들을 향해 고개를 기울였다.

“너희들, 수영할 줄 알아?”

“아뇨.”

“몰라요.”

아이들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래? 남부에 살려면 수영 정도는 할 줄 알아야지. 언제 바다에 빠질지 모르니까.”

멜리사의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배울래요!”

“부인, 애들한테 수영 좀 가르쳐 줘도 괜찮지?”

“그럴 생각으로 수건이랑 옷을 가지고 왔는걸.”

카리나는 체스가 무모하게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리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의외로 그는 좋은 수영 선생이었다.

먼저 강변에 앉아 발장구를 치는 법부터 가르쳐 준 것이다.

아이들은 처음에 낯설어했지만, 이내 꺄르르 웃으며 즐거워했다.

롤랜드가 카리나를 불렀다.

“엄마, 엄마도 해 봐요!”

“나는 안 배워도 돼. 다 할 줄 알거든.”

롤랜드가 쿡쿡거렸다.

“거짓말. 수영 못하잖아요.”

“그래도 어떻게 하는지는 알아.”

전생의 카리나는 수영을 배웠다.

비록 20년이 넘게 물속에서 팔다리를 움직여 본 적은 없었지만, 그래도 아예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까지야. 재밌지?”

“네!”

롤랜드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멜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버텼다.

“조금만 더 놀다 가면 안 돼요?”

“곧 있으면 해가 질 거야. 감기 걸릴 텐데?”

“멜리사, 이만 일어나자. 감기 걸리면 많이 아파.”

“감기는 싫어요.”

멜리사는 감기가 싫다고 말하면서도 입술을 내밀며 두 다리와 손을 바닥에 찰싹 붙였다.

“멜리사, 늦으면 저녁도 못 먹잖아. 오늘 저녁 안 먹을 거야? 에두아르 씨가 오늘 저녁은 베이컨 감자 스튜라고 하셨는데……. 롤랜드랑 나만 먹어야겠다.”

“그럼 멜리사 몫은 내가 먹을게, 부인.”

“좋은 생각인데? 음식을 남길 수는 없으니까.”

“저…… 제가 먹을 거예요.”

카리나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멜리사가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그릇 먹어도 돼요?”

“세 그릇 먹어도 돼. 많이 부탁드려야겠네.”

“와아……!”

멜리사가 두 손을 부여잡았다.

“그렇게 좋아?”

“네!”

체스는 아이들의 옷을 뽀송뽀송하게 말려주었다.

돌아가는 내내 아이들은 온천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워했다.

반면, 카리나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온천이라…….’

공중목욕탕은 법적으로 금지되었다. 그러니 전생의 세계처럼 온천으로 무언가 장사를 할 수는 없었다.

‘차라리 그게 나아.’

남부의 문제는, 돈이 아닌 군사력이었으니까.

하지만 카리나는 온천이 그 문제를 해결할 열쇠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 * *

“온천이 있더라고요.”

“온천?”

클로드가 눈살을 찌푸렸다.

카리나는 서재에서 찾아서 정리한 자료를 뒤적였다.

아무리 전생의 기억이 있다 한들 어렴풋할 뿐이다.

정확히 무엇인지는 그녀도 책으로 찾아보아야만 했다.

“각하, 조금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온천은 지하로부터 솟아나는 뜨거운 샘으로…….”

“나도 온천이 뭔지는 안다.”

카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작 체스는 온천이라는 단어 자체를 태어나서 처음으로 듣는다는 반응이었기 때문이었다.

자료를 조사해 보니 제국에 발견되고, 심지어 개발된 온천이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중목욕탕이 금지였기 때문에 황족과 고위 귀족들의 개인 목욕탕 정도로 사용되었다.

당연히 그 이외 인원의 출입은 충분히 금지되었고.

체스가 모르는 것이 당연했다.

“공작령에 온천이 있었다니, 금시초문이군.”

“체스가 발견했대요. 돌아다니는 걸 워낙 좋아하잖아요.”

클로드는 체스에 대한 언급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좀 더 말해 보라는 듯 고개를 카리나를 향해 기울였다.

“썩은 달걀 냄새가 나더라고요. 이 근처에 화산이 있나요?”

“옛날에 하나 있었다고 들었다.”

카리나는 자료를 빠르게 살폈다.

“그럼 유황 온천이 확실하네요. 효능이 제법 많던데, 여기 보면 피부염과 근육통, 그리고…….”

“공중목욕탕은 제국법상 금지야.”

“알아요.”

카리나는 생긋 웃었다.

“하지만 아무리 엄격하게 법을 해석하더라도 부상에 시달리거나 노쇠한 기사들을 위한 치료 시설은 금지가 아니겠죠.”

“…….”

클로드는 대답 대신 카리나를 지그시 응시했다.

카리나는 자신만만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녀는 클로드를 돕겠다고 약속했고, 이제 입증해 보일 때였다.

“물론 온천만으로 기사들이 모이지는 않겠죠. 하지만 솔베타인 선생님이 있으니까요. 그분과 함께 기사들을 위한 재활 시설을 구축한다면 충분히 유인책이 될 수 있다고 봐요.”

“부인이 정리한 자료들을 잠시 볼 수 있겠나?”

카리나는 황급히 클로드에게 자신이 정리한 자료들을 건네주었다. 그는 빠른 속도로 자료를 훑어내렸다.

잘생긴 얼굴이 감탄하는 듯한 기색을 띠었다.

“역시 대단하군.”

“그렇죠?”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아무리 공중목욕탕이 금지된 탓에 제대로 개발이 되지 않았다고는 하나, 역대 상류층들은 자신들만의 휴양지로 누려왔다.

그 덕에 각종 자료들이 공작가의 서재에 구비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효능이 많더라고요. 그냥 피로가 풀리는 정도인 줄 알았는데 훨씬 많아서 놀랐어요.”

특히 카리나가 주목한 건 바로 피부염을 낫게 해주는 효능이었다.

기사들은 육중한 장비를 하고 다니는 탓에 만성적인 피부질환에 시달렸다.

치료에 효과적인 온천을 사용할 수 있다면 토르스에 터를 잡으려는 자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온천이 얼마나 대단한지에 대한 카리나의 설명을 잠자코 경청하던 클로드가 머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는 부인이 대단하다고 말한 거였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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