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71)화 (71/145)

<71화>

황실 기사단은 약속한 시일을 사흘 넘겨서야 도착했다.

토벌은 순식간에 끝났다.

그동안 클로드가 노력한 게 허망할 정도였다.

마물들의 둥지는 기사단의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초토화되었다.

당연히 그 이후론 단 한 마리의 마물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단 한 명, 카리나만큼은 아니었다.

황실 기사단이 모두 돌아간 바로 그다음 날.

카리나는 치체스터를 찾아갔다.

“무슨 일이십니까?”

치체스터는 클로드 못지않게 지쳐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황실 기사단의 접대는 모조리 그가 도맡아야 했다.

카리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마음과 이성은 별개였다.

“공작가의 기사단에 대해 알고 싶어요.”

치체스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부인께 알려 주어야 하는 것들은 다 알려 드렸습니다.”

“아뇨.”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정확히 어떤 상태인지 알고 싶어요.”

“…….”

침묵이 흘렀다.

치체스터는 카리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의도가 무엇인지 가늠하려는 것처럼.

“정말 알고 싶으십니까?”

“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알아야만 해요. 제가 어떤 사람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는지……. 혹은, 지켜지고 있지 않은지.”

치체스터가 몸을 천천히 돌렸다.

“따라오십시오.”

잠시 뒤.

그들은 기사단 숙소에 도착했다.

“기사단은 이 건물 전체를 쓰고 있습니다.”

“…….”

카리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숙소가 형편없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숙소는 지나칠 정도로 호화로워 보였다.

채광이 잘 되게 설계된 복도에는 기사들의 취향을 고려한 듯한 장식품들이 곳곳에 놓여 있었고, 기사들이 사용하는 방 하나하나가 널찍하니 컸다.

그리고 또 연무장은 어떠한가.

다음에는 마법 훈련을 여기서 하자고 클로드에게 제안하고 싶을 정도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하지만 연무장에서 실력을 연마하는 기사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생각보다 훨씬…….”

카리나는 말을 흐렸다.

“시설이 좋다고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치체스터가 무뚝뚝하게 카리나가 못다 한 말을 이어 주었다.

“이자들은 수도의 내로라하는 기사단과 비교했을 때, 월급을 보나 복지를 보나 결코 못한 대우를 받고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력은 형편없다고 하셨죠. 대체 왜인가요?”

“실력이 괜찮은 자들은 다 떠났으니까요. 남은 것들은, 실력도 재능도 욕심도 없는 자들입니다. 하나라도 괜찮으면 이미 여길 떠났죠.”

“이해가 안 가요.”

카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각하는 좋은 분이시잖아요. 여길 보니까, 대우도 좋은 것 같고요. 그런데 왜…….”

“세상에는 더 좋은 곳들이 많습니다, 블로에 부인.”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이 보기에는, 토르스 공작가는 공작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위상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갈 자리가 많은, 유능한 기사들의 눈은 또 다를 것이다.

“그럼 토르스도 다른 영지들처럼 기사들을 영입해 올 수는 없나요?”

“미래가 창창한 젊은 기사들이 왜 제국의 최남단에 오려고 하겠습니까? 그나마 남부 출신이라 애향심이 있던 기사들도 각종 조건에 굴복하더군요.”

“조건을 맞춰 주면 되잖아요.”

“그 조건에는, 자신의 수준과 비슷하거나 더욱 뛰어난 기사들과 어울리는 것도 포함됩니다.”

“…….”

할 말이 없었다.

사실 카리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마법사와는 달리, 기사단은 함께 협력하여 임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형편없는 무리 중 군계일학이 되어봤자 무얼 하겠는가.

“그리고…….”

치체스터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건 비밀입니다. 각하께도 제가 말하더라고 알리지 말아 주십시오.”

카리나는 다소 긴장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뭔가 있어.’

단순한 영입 경쟁 탓에 한 가문의 기사단이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릴 리가 없다.

“이따금, 황실에서 유능한 기사를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네?”

카리나는 잠시 귀를 의심했다.

“그럴 리가요. 황실의 기사들은 정예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나요?”

“그렇게 각 영지에서 차출했으니, 정예가 아니라면 그게 더 이상할 겁니다.”

치체스터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게 잘못되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충성심을 확인하면서 군사를 모으는 좋은 방법이죠. 단지, 저희의 사정이 그에 따라 주지 못할 뿐.”

치체스터는 설명을 이어나갔다.

본디도 남부에서 기사는 선호되는 직업이 아니었다.

물론 준귀족으로 취급받기는 했으나, 신분의 차별이 덜한 남부에선 차라리 부농이나 상인이 더 선망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대대로 가업을 잇던 대표적인 기사 가문들은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하나둘 남부를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로드의 즉위 이전까지는 토르스의 기사단은 나름대로의 명성을 누렸다.

바로 선대 공작 부부에게 충성하던 노련한 기사들 때문이었다.

그들은 쭉정이들 사이에서 쓸 만한 싹수들을 찾아내어 훈련시켰고, 어엿한 기사로 키워냈다.

“그리고 키우는 족족 다 빼앗겼다, 그 말씀이시군요.”

“맞습니다.”

카리나는 눈을 감았다.

머리가 아파 왔다.

이건…….

완전히 깨진 항아리에 물을 붓는 수준이 아닌가.

“그나마 발굴이라도 할 수 있었던 건 노련한 기사들이 있어서였습니다. 지금은 다들 나이가 들어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만…… 그들이 없었다면 기사단은 훨씬 빨리 와해되었을 겁니다.”

치체스터가 한숨을 내쉬었다.

“어린 기사들 대신, 노련한 기사들을 영입하는 건 어떨까요?”

“당연히 그 생각을 안 해 본 것도 아닙니다.”

치체스터가 음울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노련한 기사들은 굳이 남부까지 오려 하지 않더군요. 이미 부와 명성을 쌓은 자들이, 뭐가 모자라서 토르스로 오겠습니까?”

“그래도, 돈이 필요한 자들이…….”

“그런 자들이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치체스터가 목을 가다듬었다.

“기사단은 한 명으로 굴러가는 게 아닙니다. 당연히 십수 명은 필요한데, 돈을 밝히는 십수 명의 몸값을 대기에는…….”

“재정이 빠듯하다는 거군요. 알겠어요.”

치체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언짢은 시선으로 텅 빈 연무장을 바라보았다.

“실력을 알려드리기엔 대련만 한 것도 없겠지만…… 보셨죠?”

“저희가 얘기를 나누는 내내 그 누구도 연습을 하러 나오지 않네요.”

“맞습니다. 저 중 검을 휘두른 지 몇 년이 지난 자들도 있을 겁니다.”

“왜 그걸 다들 내버려 두는 거죠?”

카리나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일을 하지 않으면 해고당한다.

렝케 경의 저택에선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었다.

치체스터가 어깨를 으쓱였다.

“기사단의 명맥이라도 유지해 둬야 하니까요. 기준에 맞춰 자르면 모든 기사들이 쫓겨 나갈 텐데, 토르스에 기사단이 아예 없는 것도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상황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사실만 확인하고 별채로 돌아온 카리나는 생각에 잠겼다.

‘진퇴양난이네…….’

차라리 인재 한두 명으로 해결될 문제였다면 훨씬 마음이 가벼웠을 것이다.

그러면 마땅한 인재를 수소문해서, 영입에 공을 들이기만 하면 되니까.

하지만 토르스 공작가의 기사단이 지니고 있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인원을 완전히 바꾸어야 해.’

현재 기사단원들을 내쫓지 않은 이유가 이해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당장 대체 인력이 없는 상황에서 그들을 내쫓는다면, 적들에게 남부의 문이 활짝 열려 있다고 고래고래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카리나가 생각하기에 치체스터의 말엔 조금 과장된 부분이 있었다.

바로, 아무도 남부에 오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예전의 나와 아이들처럼 오갈 데 없어서 어디라도 터를 잡아야 하는 기사들이…… 정말 없을까?’

그런 기사들을 찾아야 했다.

‘범죄자. 안 돼. 빚쟁이. 돈을 많이 잡아먹지. 부상자. 부상자……?’

카리나의 입가가 실룩거렸다.

드디어, 뭔가 실마리가 잡히는 듯했다.

기사는 몸이 생명이자 재산이다.

아무리 실력이 좋다 한들 그 몸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모시던 가문에서 내쳐질 것이다.

‘하지만, 토르스의 의술도 그렇게 뛰어난 수준은 아니지.’

베리티 솔베타인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뛰어난 의사는 다른 영지들에도 많을 것이다.

‘차라리 은퇴 직전의, 혹은 은퇴한 기사들을 영입해서 새싹들을 길러내도록 하는 건…… 소용없겠지.’

그 잘 자라난 새싹들은 다른 영지나 황실에 순식간에 빼앗길 것이다.

‘…….’

카리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뭘 그렇게 고민해?”

“체스?”

카리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눈앞의 남자를 쳐다보았다.

“잠깐만. 집 안엔 어떻게 들어온 거야? 분명 잠갔을 텐데.”

“열려 있던데?”

“…….”

카리나는 신음했다.

아무래도 자신이 정신을 어디 빼놓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야. 그냥…… 머리가 좀 아파서.”

“그럼, 바람 쐬러 가자.”

“무슨 꿍꿍이야?”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느닷없이 외출하자니.

분명 엄한 의도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체스가 억울해하며 손을 내저었다.

“그냥 좋은 데 발견해서, 구경시켜주려고 하는 건데……. 애들도 좋아할 것 같은 곳.”

“애들도?”

“그럼. 되게 좋아할걸? 롤랜드, 멜리사!”

체스는 어느새 친해졌는지 아이들의 이름을 스스럼없이 불렀다.

“너희들, 물놀이 하러 가고 싶지 않아?”

카리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뭔가 했더니……. 아무리 한두 달 뒤면 여름이라도 아직까진 물이 차가워. 안 돼.”

체스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물이 안 차가운 강을 발견했거든. 아니, 뜨거워. 안 가면 후회할걸?”

카리나는 더더욱 어리둥절해졌다.

뜨거운 강이라니.

그게 말이나 된다는 말인가.

아이들이 카리나의 눈치를 슬며시 살폈다.

“엄마, 가면 안 돼요?”

먼저 말을 꺼낸 건 롤랜드였지만, 멜리사 역시 간절한 눈으로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한 번 구경이나 해 보자. 하지만 경고하는데…… 마법으로 강물을 끓이는 등 시답잖은 장난을 쳤다간 가만 안 둘 거야.”

“그런 거 절대 아니야!”

체스가 억울한 얼굴로 두 손을 들어 올렸다.

“너, 수영은 할 줄 알아?”

“공작령에 있는 강이란 강은 다 헤엄쳐 봤어.”

“…….”

카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수건과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체스의 뻔한 장난에 어울려주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얼마 전, 멜리사가 지나가는 말로 수영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으니까.

‘뭐, 마법으로 뜨거운 바람이라도 불어 주려는 모양이니 감기는 걸리지 않겠지.’

수 시간 마차를 달린 후.

그들은 공작령 내의 한적한 강가에 도착했다.

“도착했습니다, 마님.”

체스가 어울리지 않게 과장된 몸짓을 하며 마차 문을 열어주었다.

카리나는 아이들부터 먼저 챙기며 내렸다.

“봐봐. 김이 나고 있잖아.”

체스가 강 가장자리를 가리켰다.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체스는 장난을 치러 그들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게 아니었다.

분명, 강과 강변의 경계쯤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잠깐만.’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이 ‘뜨거운 강’의 정체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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