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70)화 (70/145)

<70화>

카리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왜, 이 사람을 걱정한담…….’

클로드 데비아탄은 어딜 보나 그녀가 걱정하는 것 자체가 불경으로 느껴질 듯한 사람이었다.

신분과 재산, 그리고 능력을 갖춘 남자다.

그런 사람이 자신을 희생하겠다면 고맙다고 납작 엎드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동정하는 게 아니라.

‘…….’

카리나는 자기 자신에 대한 거짓말은 그만두기로 했다.

그녀는 이미 답을 알았다.

클로드는 그 자신을 보살피지 않은 사람이었다.

마치, 미래의 롤랜드처럼.

‘이런 사람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잖아…….’

카리나는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는 클로드를 바로 아래에서 올려다보았다.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이, 아무래도 단순히 피곤한 것 이상의 부상이 있어 보였다.

카리나는 금세 깨달았다.

‘다쳤구나.’

마검사인 클로드는 마법사들처럼 마물을 원거리에서 공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상대를 공격하고, 베기 위해선 그 자신 역시 공격받을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카리나는 신중하게, 그러나 과감하게 물었다.

“각하, 왜 기사단을 대동하지 않으신 건가요?”

“무슨 소리지?”

클로드는 시치미를 뗐다.

“마물들을 혼자 대적하는 건 아무리 각하라도 무리라고 생각해요.”

“무엄하군, 블로에 부인.”

클로드의 말투는 짐짓 성이 난 듯했으나, 어조에는 아무런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어딜 다치셨죠? 의사에게는 보이셨어요?”

“…….”

클로드는 포기했다는 듯 고개를 내저었다.

“……미행이라도 했나?”

“그랬다면 각하께서 눈치를 채셨겠죠. 아닌가요?”

“그건 그렇지.”

클로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베리티 솔베타인이 치료했다. 그녀의 실력은 부인도 알겠지.”

카리나는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솔베타인 선생님이라면 걱정 없긴 해요. 그 돌팔이들을 물리쳐 주신 분이시니까요.”

“그래, 남부의 모든 돌팔이들을 합친 것보다 능력 있는 의사지.”

“아무리 그래도, 다치셨는데 오늘 훈련까지 나오실 필요는…….”

“걱정해 주어서 고맙다만, 별것 아닌 상처였다.”

카리나는 주제넘는 걸 싫어했다.

특히나 귀족 고용주라면 더더욱.

하지만 클로드 데비아탄은…….

그녀가 아는 귀족 고용주들과는 많이 달랐다.

카리나가 자신의 원칙을 깰 만큼.

“별것 아닌 상처였다면 애초에 제가 눈치채지도 못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카리나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당분간 훈련은 저 혼자서 할게요.”

“너무 위험……!”

“체스랑 할게요. 그건 괜찮죠?”

“안 돼.”

클로드가 곧바로 거절했다.

카리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체스가 가신이 되고 나서는 썩 그를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럼 당분간은 책만 읽을게요. 저도 글자는 읽을 줄 아니까, 적당한 이론서 몇 개만 골라 보내주세요.”

“블로에 부인, 왜 이렇게까지…….”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네요. 왜 각하께서는 그렇게까지 혼자서 모든 걸 다 하시려는 거죠?”

어디선가 기시감이 들었다.

마치 먼 옛날, 그녀 스스로의 입으로 누군가에게 직접 말한 것만 같은…….

하지만 이런 기시감은 때때로 들곤 했기에, 카리나는 가볍게 머리를 저어 흘려보냈다.

별것 아닐 것이다.

지금은 당장 눈앞의 상황에 집중해야 한다.

클로드가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렸다.

“나 말곤, 할 사람이 없잖나.”

“기사단이 있잖아요! 물론, 상황은 시종장님께서 알려 주셨어요. 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없는 게 나아.”

클로드가 단호하게 카리나의 말을 끊었다.

“나 혼자 가면 나 하나 조금 다치고 말지만, 그 어중이떠중이들을 데리고 갔다간 분명 죽는 자가 나와.”

“정말 그 정도인가요?”

클로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못 믿는군. 보여 주고 싶다만…… 그들도 자존심이 있을 테니 자제해야겠지. 어쨌든, 기사단을 데리고 갈 순 없어. 내 손으로 민간인을 죽이는 짓이나 다름없으니까.”

“체스가 있잖아요.”

카리나가 지적했다.

가신이 되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 그가 체스의 도움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체스도 마물을 상대한 적이 없어. 몇 번 죽여 본 경험이 없다면 처음부터 마물 무리를 상대하긴 힘들지. 이제 겨우 한 명 더 생긴 가신을, 사지로 밀어 넣을 수는 없어.”

“…….”

카리나는 클로드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결국, 각하께선 혼자 가시겠다는 거네요. 앞으로도 그럴 거고요.”

“그래.”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당연히 자신은 클로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마법은 쓰지 못하고, 마정석을 만들어내는 능력 따위는 전투에선 쓸모가 없으니까.

그렇다고 마물을 렝케 경의 지휘 아래 죽인 경험이 있는 롤랜드를 데려가라고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당연히, 클로드 본인이 거부하기도 할 테지만은.

카리나는 뻐근해진 눈을 비볐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뾰족한 묘안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클로드는 황실의 기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어설픈 장벽 안으로 들어가 마물들을 처치할 것이다.

매일 밤마다.

“내가 그렇게 불쌍한가?”

“…….”

“그렇게 생각할 것 없다. 내가 원해서 하는 것들이니.”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미래의 롤랜드도…….

‘자기가 원해서 한다고 했지.’

하지만 모든 책임이 어깨에 얹어진 사람이 내리는 결정이, 과연 순전한 자신의 소망이 맞을까?

카리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단순한 의무감에서라고 생각하나?”

“……네.”

카리나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의 감정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카리나는 이 남자를 동정했고, 그 사실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각하, 그렇게까지 모두를 지키려고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저도, 체스도, 기사단도 모두 각하를 위해 고용된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모두 내가 지켜야 할 토르스의 주민이기도 하지.”

클로드가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부인, 나는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토르스의 공작이 된 게 아니야. 어릴 때부터 이 자리는 내 꿈이었고…… 그 꿈을 이루었지.”

클로드의 목소리는 씁쓸한 기색을 띠고 있었다.

당연했다.

그가 젊은 나이에 공작이 된 건, 부모의 불행한 사망 때문이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단순히 토르스의 공작인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그는 희미한 미소를 띠고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언젠가, 토르스는 지금과는 비교과 되지 않을 정도로 부강해질 거다. 그 어디에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하고, 그 누구도 생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로 부유한……. 그날이 오기 전까지는 나는 쉴 수 없어.”

아.

카리나는 깨달았다.

클로드 데비아탄이 미래를 바라보는 건 비단 그녀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는 카리나처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급급한 평범한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불가능한 꿈이야.’

이건 카리나가 품질 좋은 마정석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될 거라든가, 롤랜드와 멜리사가 안전하게 성장할 거라는 등의 평범한 예측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클로드는 불가능한 유토피아를 꿈꾸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 점이, 미래의 롤랜드와는 달랐다.

미래의 롤랜드는 목표가 없었다.

‘그래서 불행했지. 모두를 구해도…… 정작 자신은 무얼 해야 할지 전혀 몰랐으니까.’

클로드 데비아탄에겐 목표가 있었다. 아마도, 평생 이루지 못할.

바로 그 목표 덕분에 그는 그녀가 두려워하는 미래의 롤랜드처럼 절망에 빠져 스러지지 않을 것이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서도, 목표를 이루겠다는 다짐 하나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

카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축축했다.

‘상관없어.’

클로드는 그녀의 눈물을 못 본 척해 줄 정도의 눈치는 있는 남자였다.

“각하.”

그동안 카리나는 항상 그녀와 아이들에 대해서만 생각해왔다.

좀 더 정확히는, 자신과 아이들의 안전과 생존 욕구에 대해서였다.

높은 목표나 머나먼 미래에 대해선 감히 생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 카리나는 이 남자가 바라보는 하늘의 드높은 별에 함께 손을 뻗고 싶어졌다.

그것이 단 몇 년뿐일지라도.

“도와드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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