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69)화 (69/145)

<69화>

“당연하지!”

아스트리드가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았다.

“아까 정말 고마웠어. 부인이 아니었다면…… 큰일이 났을 거야.”

“하지만 정말 그건 벌이 아니었는걸요.”

“부인은 너무 겸손해.”

아스트리드는 카리나의 말을 가볍게 무시했다.

“다들 부인에 대해 궁금해해. 하지만 각하의 가신이니, 손댈 생각도 하지 마라고 했지.”

“잘했다, 아스트리드.”

클로드의 칭찬을 들은 아스트리드가 수줍게 미소 지었다.

“있잖아, 부인.”

아스트리드는 조금 망설이다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여태까지 미안했어.”

“뭐…… 뭐가요?”

“많이 귀찮게 굴었잖아.”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안 귀찮았어요.”

“거짓말인 거, 다 알아.”

“…….”

사실, 어느 정도 귀찮았던 건 맞았기 때문에 카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아스트리드가 그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그래도 내…… 친구지? 블로에 부인은?”

“제가, 아스트리드 님의 친구요?”

놀라움에 겨워 카리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카리나는 귀족과 평민이 친구가 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는 법이었으니까.

이를테면…… 평민을 가신으로 삼고 싶어서 안달 내는 공작처럼.

하지만 카리나가 보아온 아스트리드는 평민과 친구가 되고 싶어 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지.’

그런 아스트리드가 자신에게 친구가 맞냐고 물었다.

“아, 아니야?”

아스트리드의 목소리가 불안한 기색을 띠었다.

“……아스트리드 님이 허락하신다면요.”

“내가 무슨 허락이야.”

아스트리드가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난 그냥, 부인이 내 친구였으면 좋겠어.”

카리나는 허리를 굽혀 아스트리드와 눈을 맞추었다.

“그럼요, 친구죠.”

“……!”

아스트리드는 밝게 웃으며 카리나의 손을 붙잡고 흔들었다.

“나는 부인이 정말 좋아.”

“저도요.”

몸을 일으킨 카리나는 묘한 표정의 클로드와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이맛살을 살짝 찡그린 채 그녀와 아스트리드를 내려다보고 있다가, 나쁜 짓이라도 들킨 것처럼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질투하는구나.’

카리나는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아무래도 클로드는 아스트리드와 손쉽게 친해진 자신이 부러운 모양이었다.

‘언제 한 번 둘이 친해지도록 도와줘야겠어.’

하지만 아스트리드가 하품하는 걸 보니,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아스트리드 님, 이제 쉬셔야겠어요.”

“그으…… 래. 고마…… 워.”

카리나는 미소 지었다.

열두 살인데도, 잠기운에 발음이 뭉그러지는 건 롤랜드나 멜리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잘 자요, 아스트리드 님.”

* * *

티파티는 카리나의 생각보다 훨씬 파급력이 컸다.

모두가 노엘이 새롭게 제작한 도자기를 가지고 싶어 했다.

개중 아스트리드가 남부의 상징을 담은 도자기를 주문한 것처럼, 자신 영지의 상징을 담은 도자기를 주문한 귀족도 있었으나 노엘은 모조리 거절했다.

자신의 후원자는 아스트리드 공녀이니, 다른 가문의 상징은 만들 수 없다면서.

그런 제약에도 불구하고 노엘의 공방은 급속도로 규모가 커졌으며, 자연히 후원자인 아스트리드의 위상 역시 높아졌다.

아스트리드는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지만, 현 상황에 안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선대 공작 부부가 살아 있을 적에 비하면 겨우 시작 단계에 불과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상단이 있으면 좋을 텐데…….”

아스트리드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클로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아스트리드. 내가 많이 부족해서 제대로 된 상단 하나 꾸리지 못했구나.”

“아, 아니에요!”

아스트리드가 연거푸 부정하며 빠르게 말을 이었다.

“사실 저희에게 상단이 뭐가 필요하겠어요? 도로가 잘 되어 있으니, 물자가 필요한 영지들이 다 직접 가지러 오잖아요. 노엘의 도자기 역시 다들 사러 온다구요.”

“그래도 우리가 직접 운영하는 상단이 필요하긴 하지.”

클로드가 생각에 잠겼다.

“마땅한 사람이 없긴 하다만은……. 여유가 생기면 한번 작게나마 만들어 보겠다.”

“네!”

아스트리드의 눈이 클로드에 대한 신뢰감으로 빛났다. 하지만 겨우 며칠 만에 클로드의 약속은 무기한으로 미루어지고 말았다.

수도에 사는 남작이 노엘의 도자기를 구입하기 위해 토르스를 방문하다가, 마물 무리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당장 대책 회의가 소집되었다.

회의라고 해 보았자 참석자는 클로드, 치체스터, 에두아르, 체스, 그리고 카리나가 끝이었지만.

믿고 조언을 구할 만한 기사단장 한 명 없다는 점이 현재 공작가의 상황을 짐작게 했다.

“마물이라니…….”

치체스터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근 이십 년 만입니다. 선대께서 기사단을 이끌고 모조리 근절하신 이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는데…….”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롤랜드는 이미 마물을 죽여 보았다.

그것도 여러 번.

하지만 그녀는 그 사실을 절대 알리지 않을 것이다.

이곳의 그 누구에게도.

“없던 마물이 아무런 이유 없이 생겨날 리가 없다. 사악한 마법의 부산물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디선가 이주해 터를 잡은 거겠지.”

“마법의 부산물이라면 이렇게 규모가 클 리가 없습니다.”

치체스터가 심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둥지가 있는 게 분명해.”

“둥지를 토벌하려면 제대로 된 기사단이 필요합니다. 역시, 황실에 도움을 요청해야…….”

“그래야겠지.”

클로드가 씁쓸하게 말했다.

“이번엔 대체 뭘 요구하실지 모르겠군.”

카리나는 그 어조에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황제가 신하를 지키는데, 그 대가로 무언가를 요구하다니?

마정석 광산 얘기 때도 생각했지만, 남부와 황실의 관계엔 무언가 심상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황실은 기사단을 보내주었다.

카리나는 그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자신이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을 거라고 생각해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기사단이 도착할 때까지 이 주일은 족히 걸리기에, 그때까지 남부는 버텨야만 했다.

클로드는 영지민들을 동원해 마물 서식지 인근에 장벽을 쌓아 올렸다.

생사가 달려 있었기 때문에 순식간에 장벽이 완성되었다.

“그나마 안심이네요.”

“두고 봐야지.”

클로드가 장벽을 노려보며 대답했다. 카리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일주일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다.

* * *

마물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뒤숭숭한 분위기에서도 카리나의 훈련은 계속되었다.

보통 훈련은 카리나가 지쳐서 바닥에 반쯤 쓰러지며 끝나곤 했다.

그때마다 최근 들어 흙바닥을 뚫고 자라난 잡초의 노란 꽃망울이 그녀의 얼굴을 간질였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카리나가 아니라, 클로드가 눈에 띄게 지친 기색을 보이며 벽에 기대서 숨을 몰아 내쉬었다.

“각하, 어디 많이 편찮으신가요? 의사를 불러야 할 게 아닐지…….”

“괜찮다.”

클로드가 이마를 짚으며 얼굴을 찡그렸다.

“단지, 머리가 조금 아플 뿐이다.”

“얼른 쉬셔요. 두통약을 가져오게 사용인을 부를까요?”

“그럴 것 없다. 단지……. 단지 여기에 있어 줘.”

클로드의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다. 카리나는 그를 찬찬히 살폈다.

최근 들어 피로는 클로드의 만성 질환이나 다름없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피곤한 듯했다.

‘뭔가 이상해.’

물론 클로드는 수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카리나가 감히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일들을.

하지만 카리나는 그가 이 정도로 지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장벽을 세운 지도 며칠 지났는데…… 피로가 몰려온 걸까.’

카리나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떨어트리다가, 그의 손톱에 시선이 닿게 되었다.

보라색 핏물이 남아 있는.

카리나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녀는 저 핏물의 정체를 알았다.

한번 손끝에 물들면 한 달은 지나야 겨우 사라진다는 사실도 알았다.

롤랜드가 마물을 죽이고 나면, 마물의 보라색 피는 전부 그녀가 닦아야 했으니까.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클로드 데비아탄은 겨우 나무와 흙으로 며칠 만에 쌓은 장벽에 만족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마물의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 날마다 없는 시간을 쪼개 장벽 안에서 홀로 싸워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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