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68)화 (68/145)

<68화>

“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만이 있는 건 아니었다.

만약 체스처럼 바빴다면,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 테니까.

임무가 우선시 된다면 클로드와의 훈련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리나도 사람인 이상, 궁금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냉정하게 말해서, 부인은 지금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

“…….”

“솔직히 부인이 할 수 있는 건 용병들도 다 할 수 있는 것들이니까.”

카리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느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렇게 듣자니 정말로 뼈가 아팠다.

“하지만 나는 당장 부인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보고 가신이 되어 달라 청한 게 아니야.”

카리나는 쓸쓸하게 대답했다.

“그러니 실력이나 열심히 쌓아라, 라는 얘기시군요.”

“잘 아는군.”

카리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그가 생각하는 미래에 자신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각하께선 대체 제가 어떤 능력을 갖추기를 원하시는 건가요?”

“본디는 부인이 좋은 마법상, 좋은 제련사, 좋은 결계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젠 생각이 달라졌어.”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미 클로드가 말한 직업들만 해도 충분한 과찬이었다.

“내가 쓰는 마정석들을 전부 어디에서 조달하는지 알고 있나?”

“황실 아닌가요?”

“정확해.”

클로드가 쓴웃음을 지었다.

“좋은 거…… 아닌가요?”

“좋을 리가.”

카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약 상대가 동등한 귀족이었다면 무언가 꿍꿍이를 가지고 무상 제공을 하겠거니, 생각하겠지만 상대는 황실이다.

황실이 충실한 신하에게 마정석을 무상으로 공급하겠다는데, 무슨 문제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본디는 조달이 필요하지도 않았어. 남부엔 유명한 마정석 광산이 여럿 있으니까.”

“지금은요?”

“다 빼앗겼어.”

클로드는 누구에게 빼앗겼는지 말하지 않았다.

카리나 역시 묻지 않았다.

이미 그의 말에 서린 절망의 흔적이, 누가 빼앗아 갔는지 알려 주었기 때문이었다.

“부인은 열쇠야. 남부가 이 지긋지긋한 종속에서 벗어날.”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클로드가 자신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는지, 이제야 똑똑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은 마정석을 만들 수 있다.

황실이 제공하는 마정석보다 더 높은 품실의 마정석을 만들어낸다면, 그 순간 황실이 남부에 걸어 놓은 제약들이 산산이 조각날 것이다.

그녀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기대였다.

“각하, 저는 5년 뒤면 남부를 떠날 거예요. 당연히 각하의 가신도 더는 아닐 거고요.”

클로드는 부정하지 않았다.

단지, 너무나 간단한 질문을 하나 던졌을 뿐이었다.

“그 뒤엔 뭘 할 생각이지?”

“그냥, 수도로 가서…….”

말문이 막혔다.

그동안 카리나는 막연하게 5년 동안 클로드 데비아탄의 가신으로서 할 도리를 다하는 것만을 생각했다.

그 뒤, 정확히 무얼 하고 어떻게 지낼지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해 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겠죠. 저는…… 마법 상점이나 차려 볼까요?”

“그게 부인이 원하는 건가?”

“음…….”

카리나는 잠시 고민했다.

“그렇게 원하는 건 아니지만, 달리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으니까요.”

카리나는 쾌활하게 말을 이었다.

마법상의 수익이 상당하다는 점이 떠올라 기분이 좋아진 탓이었다.

“게다가 마법상은 벌이도 좋을 거고, 벌이가 좋으면 아이들도 안전하게, 잘 크겠죠.”

“그렇다면 아이들이 안전하게 크는 게 부인이 원하는 거군.”

“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너무 당연해서 생각조차 못하고 있던 지점이었다.

“그 뒤엔, 저도 다른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볼 수 있겠죠. 하지만 그때까진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자라주기만 하면 돼요.”

클로드는 그녀를 지그시 응시했다.

가늠하거나 평가하는 시선이 아니었다.

무슨 말을 할지 곰곰이 생각하고 판단을 내리는 사람의 눈빛이었다.

“도와주겠다.”

고민 끝에 나온 말은 의외로 단출한 한마디였다.

카리나의 입술이 살짝 열렸다가, 다시 닫혀 버렸다.

분명 들었다.

하지만 들은 게 무슨 뜻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부인의 아이들이 잘 자라도록 도와주겠어. 원하는 대로, 수도에서. 안전하게.”

카리나의 심장이 가빠졌다.

클로드는 그녀에게 거래를 제안하고 있었다.

그것도 5년 뒤를 내다본.

“그걸 대가로 제가 할 건 뭐죠?”

클로드는 이번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부인은 그때쯤이면 최상급의 마정석을 만들어 낼 수 있겠지. 남부에 선매입권을 줘.”

카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가신과 다름없지 않나요?”

“아니지.”

클로드가 단호하게 말했다.

“계약에 따라 5년 뒤면 부인은 내게 그 어떤 의무도 없어. 단지, 사업 파트너일 뿐이야.”

“…….”

카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카리나가 생각하는 클로드는 ‘그 자신의 인재’에 집착했다.

전생에 읽은 소설 속에서도 그랬고 만난 이후에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의 클로드는…….

‘좀 달라.’

클로드는 카리나가 그를 떠난 이후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인재가 아닌 카리나 블로에 역시 원하고 있는 것이다.

‘조건 자체만 놓고 생각해도 괜찮은 거래야.’

롤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 최근에 특이한 재능을 드러내고 있는 멜리사도 걱정되었다.

공작가의 보호를 벗어난 이후, 아이들이 두각을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온갖 위협이 닥쳐올 것이다.

‘안타깝지만 내 능력은 아이들을 지켜 주기에 한계가 있고.’

그런데 공작가가 가신이 아닌, 사업 파트너로서 아이들을 지켜 준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클로드가 롤랜드의 재능을 완전히 파악했을 때 어떻게 반응할지는 상당한 변수지만, 가신이 아닌 사업 파트너니 거래를 끊어 버리면 어느 정도 해결된다.

카리나는 클로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받아들이겠어요.”

“……!”

클로드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동요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기쁨도.

조금 쑥스러워진 그녀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시간이 많이 지나 있었다.

“티파티가 끝났을 것 같네요. 저는 아스트리드 님을 보러 가야겠어요. 각하께서는 바쁘실 테니, 길을 안내할 사람을 아무나 불러 주세요.”

“……나도 가겠다.”

“네?”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하지만, 집무실로 가셔야 하지 않나요?”

“잠시 미뤄 둔다고 큰일 나는 것들은 아니야. 오늘 밤 조금 늦게 자면 되는 문제다.”

“다행이네요. 각하께서 가신다면 아스트리드 님이 좋아하실 거예요.”

“……정말 그럴까?”

“그럼요.”

카리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용기를 내세요. 아스트리드 님은 각하의 유일한 가족이잖아요?”

그들은 금세 티파티가 열리던 응접실에 도착했다.

응접실에는 뒷정리를 하는 하녀들에게 다기를 잘 간수하라며 마지막까지 꼼꼼히 챙기는 아스트리드가 남아 있었다.

클로드가 응접실 안으로 한 발짝 발을 들였다.

“아스트리드.”

“공작 각하……?”

아스트리드가 자리에 선 그대로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도저히 자신의 눈을 믿지 못하는 듯, 불안한 눈망울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걱정했다, 아스트리드.”

“……!”

아스트리드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떨리는 시선으로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정말로 잘 해냈구나. 네가 자랑스럽다.”

“각, 각하…….”

눈물 섞인 목소리가 아스트리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카리나는 방금 클로드의 말이, 아스트리드가 지난 7년 동안 기다려 온 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스트리드는 저 말을 듣고 싶어한 거야. 나도 아니고, 안드레아도 아니고, 다른 어른들도 아니고…… 오직 클로드 데비아탄에게.’

그러니 그 누가 칭찬을 해주어도 욕구가 충족되지 못할 수밖에.

하지만 이제 클로드는 아스트리드에게 다가갈 용기를 냈다.

아스트리드 역시 클로드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은 해소되었을 것이다.

카리나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이젠 공작 남매의 감동적인 그림에서 눈치껏 빠져 줄 때였다.

“블로에 부인, 어디 가?”

“부인, 어딜 가는 거지?”

남매의 목소리가 동시에 카리나에게 꽂혔다.

카리나는 어리둥절해하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두 분, 제게 할 얘기가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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