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58)화 (58/145)

<58화>

“……!”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설마…….”

“예. 부인과 함께 잠입하겠다고 각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부인은 마땅한 증거를 찾으십시오.”

카리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각하께서 용납하실까요?”

“당연히 부인의 사정을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합니다.”

“…….”

“각하께선 도움을 청하는 가신을 무시하실 분이 아니니, 부인을 적극적으로 도와주실 겁니다.”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사람 좋은 에두아르는 대충 꾸며낸 변명에 속아 넘어갔을지 몰라도, 클로드 데비아탄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나를 의심할지도 몰라. 아니, 분명히 의심할 거야.’

카리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언 감사드려요. 하지만 각하께 제 개인적인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릴 수는 없어요.”

“각하께선 가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살피는 것 역시 주군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보아하니, 에두아르를 설득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듯했다.

‘어쩔 수 없어.’

어차피 카리나는 남부에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다.

평생을 모실 주군이 아니니 클로드의 신뢰를 조금 잃더라도 롤랜드의 미래에 도움이 될 행동을 하는 게 이득일 것이다.

하지만 왜일까.

그녀를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는 클로드를 상상만 하여도 가슴이 이다지도 조여드는 건.

망설임은 고통스러웠으나 그리 길지 않았다.

“……에두아르 씨의 조언대로 하겠어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에두아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 모든 일이 잘 풀리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의 미소였다.

다음날.

카리나는 클로드와의 훈련을 마치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각하, 도박장 말인데요.”

클로드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렸다. 그 사안에서 카리나의 역할은 이미 끝났기 때문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저도…… 에두아르 씨와 함께 도박장에 잠입할 수 있을까요?”

“왜지?”

카리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핥았다.

“베온헴 도박장의 운영자는 이안 베온헴이라는 자인데, 사람을 함정에 빠트리는 사악한 자예요. 고향에서…… 친했던 분 역시 당했고요.”

너무 긴장한 탓인지 에두아르에게 얘기할 때와는 달리, 제대로 설명을 꾸며낼 수가 없었다.

카리나는 자신이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 나갔다.

“제가 함께 잠입해서 그자를 구속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면…….”

“미안하지만, 그건 안 되겠어.”

클로드가 카리나의 말을 끊었다.

‘역시, 망했구나.’

카리나는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였다.

자신은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클로드의 신뢰만 잃고 말았다.

‘그래도 해 보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아.’

클로드가 조금 미안한 듯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부인이 미덥지 않아서 안 되는 건 아니야. 내가 체스 버케인을 왜 잠입에서 뺐는지 기억하고 있나?”

“아…….”

입에서 저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과정을 직접 옆에서 보았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게, 패착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도감이 카리나의 가슴에 차올랐다.

‘신뢰가 깨진 건 아니야.’

클로드 데비아탄은 단지, 자신만의 원칙이 있고 그 원칙을 지켰을 뿐이었다.

“나는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사람을 임무에 투입시키지 않아. 차라리 유착 관계가 있는 게 낫지. 흥분하지 않고, 도리어 그 관계를 숨기기 위해 노력하니까. 하나…….”

클로드가 카리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부인이 말한 사항은 잘 조사해 보겠다. 이안 베온헴이라고 했나?”

“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자가 문제예요.”

“이안 베온헴?”

그때, 카리나의 등 뒤에서 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카리나는 갑작스레 나타난 체스 때문에 반쯤 소스라치고 말았다.

클로드가 체스를 대놓고 노려보았다.

“사람을 놀라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다. 명심하도록.”

“예, 예. 예의도 모르는 촌놈이라 죄송합니다.”

체스는 클로드를 향해 한바탕 비꼬더니, 카리나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뭔가 재밌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던데, 뭐야?”

“…….”

카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클로드가 이지적이라면, 체스는 약은 놈이었다.

만약 공작저에 있는 사람들 중 그녀의 거짓말을 간파해 낼 사람이 있다면 바로 체스 버케인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클로드가 대신 대답해 주었다.

“부인이 도박장의 주인인 이안 베온헴과 원한이 있다더군.”

“이안 베온헴이 주인이라고?”

체스의 눈이 커지고 입이 동그라미 모양으로 벌어졌다.

그는 카리나를 향해 홱 돌아섰다.

“부인, 어디서 그런 얘기를 들은 거지?”

“……고향에서.”

“부인의 고향이면…… 저기 북쪽?”

“맞아.”

“그럼, 거기선 도박장의 주인 행세를 하고 다녔나 보네. 어이가 가출하겠다.”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체스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안 베온헴은 도박장의 주인이 아니라는 건가?”

“정답입니다, 각하.”

그때, 깨달음이 뇌리를 스쳤다.

‘아직은 이안 베온헴이 도박장의 주인이 아니야!’

카리나는 이마를 짚었다.

어떻게 그런 실수를 할 수가 있었을까.

미래에 도박장으로 부를 쌓아 올렸다고 해서 현재도 그렇다고 확신할 순 없었다.

당연히 아닐 가능성도 생각했어야 했다.

클로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대체 그 이안 베온헴이라는 자는 누구지?”

“뭐, 아주 거짓말을 하고 다닌 건 아니죠. 후계자이긴 하니까요. 도박장 주인의 아들입니다. 저보다 나이가 서너 살 많을걸요?”

“아…….”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퍼즐이 얼추 맞추어진 느낌이었다.

“들었나? 설령 도박장이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를 잡았다고 해도 이안 베온헴은 건드릴 수 없어. 부인의 말만 듣고 증거 없이 내 영지민을 구속할 순 없으니…… 미안하네.”

“아니에요.”

카리나는 쓰게 대답했다.

“제가 생각이 짦았어요. 잠시나마 신경을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클로드가 손을 가볍게 내저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라. 당연히…… 내가 부인의 상황이었어도, 비슷한 말을 했을 테니까.”

카리나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찰나, 급사가 달려왔다.

“각하, 황실에서 마정석이 도착했습니다.”

클로드가 작은 한숨을 토해냈다.

“이만 가야겠군.”

클로드가 떠난 이후, 카리나는 쓸쓸하게 훈련장을 정리했다.

체스가 말없이 그녀를 도와주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있잖아, 이안 베온헴이랑 지인이 원한이 있다는 거…… 거짓말이지?”

“…….”

아무로 변명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카리나는 그저 멍하니 체스를 바라보기만 했다.

체스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역시 그렇네. 이안 베온헴은 단 한 번도 남부를 떠난 적이 없거든.”

“어떻게 알아?”

“베온헴 일가에 원수진 사람이 부인뿐이라고 생각해?”

“……!”

체스의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이안 베온헴의 이름을 들은 순간 나는 확신했어. 부인은…… 베온헴 전체를 박살 내고 싶은 거구나. 그래서 그가 도박장의 주인이라는 이상한 소리를 한 거고.”

체스는 바닥에서 주먹만 한 돌을 하나 주워 올려, 있는 힘껏 집어던졌다.

돌은 바닥에 큰 자국을 남기며 박혔다.

그는 돌을 던진 오른손을 카리나를 향해 내밀었다.

“부인의 동기야 내가 알 바 아니야. 이안 베온헴이 베온헴 일가의 브레인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손을 잡을 만한 가치가 있지.”

카리나는 흉터가 많고 굳은살이 울퉁불퉁하게 박인 그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일반적인 마법사의 손은 각종 마법약을 다룬 탓에 얼룩덜룩하게 변색되기는 하나, 살결 자체는 고운 편이었다.

하지만 체스는 달랐다.

‘나와 비슷해.’

체스 역시 아버지라고 부르기조차 싫은 사람의 아들로 태어났다.

분명 그 역시 고달픈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카리나는 체스와 힘주어 악수했다.

체스가 경쾌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 이제 말해 줘. 원하는 게 뭐야? 도박장에 잠입하는 거? 그거라면 지금이라도 내가 대신 해 줄 수 있어.”

카리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이안 베온헴을 내 눈으로 볼 수 있게 해 줘.”

체스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그것만큼 쉬운 것도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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