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57)화 (57/145)

<57화>

당연히, 체스는 뛸 듯이 기뻐했다.

클로드를 향해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였다.

실행에 옮기기 직전, 클로드가 제지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클로드가 이마를 짚으며 설명했다.

“그렇게 기뻐할 것 없다. 아직 네 형이 풀려난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공작 각, 각하께서 나, 나서 주신다니…….”

카리나는 감격에 차 말을 더듬거리기까지 하는 체스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클로드는 그에게 당당하게 구는 사람을 좋아했다. 굳이 심기를 거스를 필요가 없었다.

“인신매매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지. 네 아비가 형을 넘긴 인신매매는 어떤 형태였지?”

“노예노동입니다.”

체스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형은 공사장, 항구, 각종 가게를 가리지 않고 끌려가서 일해요. 일하게 되는 사업장 자체는 합법적이에요. 하지만…….”

“신변을 구속할 뿐만 아니라 임금은 모두 업자가 갈취한다는 거군. 알겠다.”

“네. 단 한 푼도 주지 않아요. 모두 아버지의 빚을 갚는다는 명목으로 빼앗기죠.”

“형을 데리고 도망칠 생각은 해 본 적 없나?”

“당연히 했죠!”

체스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하지만, 형이 거부했어요. 저까지 평생 도망자 신세로 만들 수 없다고……. 그리고 그자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휴식을 취하는 날마다 약에 취해 있었어요.”

“약이라니?”

“제가 형을 마지막으로 봤을 때, 이상한 약초 냄새가 났어요. 팔다리를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주제에, 제 말을 거부만 했고요. 전…… 형을 도저히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어요.”

드디어 카리나는 왜 체스가 베가 왕국과 손을 잡았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도저히 형이 망가져 가는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고할 생각은 안 했어요?”

“하! 신고요?”

체스가 악을 쓰듯 말을 쏟아냈다.

“당연히 했죠! 하지만 그자들이 경비대에 돈을 먹였다고요! 경비대 인간들이 얼마나 도박을 좋아하는 줄 아세요?”

“짐작은 했다. 하지만 인신매매범의 뒤를 봐줄 만큼 타락한 줄은 몰랐지.”

클로드가 딱딱하게 대답했다.

“네 말을 듣고 보니 경비대도 손을 봐줘야겠군. 하지만 일단은 네 형이 먼저다.”

“네……!”

체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그 천진난만한 표정은 체스를 본디 나이인 스무 살보다 훨씬 어려 보이게 만들었다.

클로드도 카리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네 형을 구속하고 있는 인신매매 업자가 누군지 알고 있나?”

“……아뇨.”

체스는 순식간에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클로드는 곧바로 상황을 파악한 듯했다.

“이미 사람 손을 여럿 거쳤군.”

“인신매매 업자들은 정체를 철저히 숨겨서……. 형이 지금 누구 손에 들어갔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어요.”

“그럼 추적해야겠군.”

클로드가 냉정하게 말했다.

“네 아비가 돈을 잃은 도박장은 어디지?”

“베온헴 도박장이요.”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베온헴…….’

분명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이었다.

카리나는 흐릿한 기억을 떠올리려 애쓰며 얼굴을 찡그리다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설에서 봤어!’

엄밀히 말해, 소설에 등장한 건 ‘베온헴 도박장’이 아니었다.

이안 베온헴.

소설 중반쯤 의문의 갑부로 등장한 그는, 롤랜드를 돈의 함정에 빠트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실제로 거의 성공할 뻔하기까지 했고.

‘그게 전부, 도박으로 사람들을 착취해서 쌓아 올린 부였어.’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클로드와 체스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인신매매범들이었지 도박장은 아니었다.

“처음 듣는군. 위치는?”

체스는 그 도박장의 위치와 이름을 망설임 없이 줄줄 말했다.

“한 번 옮겼거든요. 지금 위치는 거기가 맞아요. 확실해요.”

카리나는 체스가 왜 도박장의 위치를 잘 아는지 금세 알아차렸다.

체스의 아버지는 아직도 자신의 아들을 팔아넘긴 그 도박장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잠입하도록 하지. 도박장엔 당연히 돈을 빌려주는 사채업자가 있을 것이고, 그 사채업자와 결탁한 인신매매 업자가 있을 테니까.”

카리나의 입이 살짝 열렸다.

“잠입이라면…….”

“그래. 거기서 돈을 진탕 잃어줘야 해. 그럼 사채업자를 알아낼 수 있을 거고, 그 사채업자와 거래하는 인신매매 업자들을 추적하면 돼.”

체스가 성급히 나섰다.

“알겠어요. 제가 잠입하겠습니다!”

“넌 안 돼.”

클로드가 냉정하게 말했다.

“넌 너무 쉽게 흥분하지. 과연 도박장에서 네 아버지를 만나도 평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쫓겨나지만 않으면 다행이겠군.”

“으윽…….”

체스는 허를 찔린 얼굴로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걱정할 것 없다. 적당한 사람을 구하는 거야 쉬우니까.”

“제가 할게요.”

카리나가 불쑥 말을 내뱉었다.

베온헴 도박장에 직접 가 본다면, 아직 흐릿하기만 한 기억이 좀 더 생생해질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글자들.’

이따금씩 머릿속에 생생히 되살아나는 소설의 글자들이 간절했다.

만약 베온헴의 약점을 조금이라도 담고 있는 글들이 떠오른다면…….

‘그러면 이안 베온헴의 기반을 미리 무너뜨릴 수 있을지도 몰라.’

클로드의 얼굴이 굳어졌다.

“부인이?”

체스 역시 클로드와 별반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음은 고맙지만, 부인은 도박이라는 걸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사람 같아.”

카리나는 피식 웃었다.

“나 같은 사람이 더 속여넘기기 쉽지 않겠어?”

실제로 토르스에 카리나를 속이려 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카리나가 생각하기에 자신만큼 도박장에서 돈을 진탕 잃고 빌리려 하는 순진한 희생자 역에 적격인 사람도 없었다.

클로드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부인이 이런 일을 하려고 하지?”

카리나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잠입할 사람을 구한다고 쳐요. 각하께서는 그 사람을 믿으실 수 있겠어요?”

“그래도 공작가의 녹을 먹는 사람 중 고를 생각이다. 부인이 걱정할 정도로 내게 사람이 없지는 않아.”

카리나는 계속 클로드를 설득하려 애썼지만 완강한 거부에 부딪힐 뿐이었다.

마침내 클로드가 결정을 내렸다.

“미끼 역할은 에두아르가 맡게 될 거다. 주방장이기 때문에 얼굴이 거의 노출되지 않았고, 그 역시 가신이니 믿을 수 있지.”

체스는 감동하여 거의 눈물까지 흘릴 지경이었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베온헴에 대해 직접 알아보는 건 포기해야 할 듯했다.

‘그래도, 에두아르에게 나를 대신 보내 달라고 부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밑져 보았자 본전이다.

카리나는 클로드의 집무실을 나오자마자 바로 에두아르를 찾아갔다.

“부인, 식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아뇨. 에두아르의 솜씨는 완벽해요. 이건 전혀 다른 문제예요.”

카리나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과 클로드의 계획을 에두아르에게 미리 알려 주었다.

“근데, 그걸 왜 부인께서 제게……?”

“고향에서, 이안 베온헴에 대해 들은 적 있어요.”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사람을 함정에 빠트려 인생을 작정하고 망가뜨리는 사악한 자라고 하더군요. 제…… 지인도 당했고요.”

에두아르가 동정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카리나가 가까운 친인척의 이야기를 돌려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에게 복수하고 싶어 하시는 거군요.”

좀 더 정확하게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방비에 가까웠지만,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든 싫든 롤랜드는 결국엔 대마법사가 될 것이다. 카리나는 그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엔 주어진 운명을 찾아가게 되겠지.’

그때, 베온헴은 롤랜드의 가장 강력한 적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롤랜드가 성장한 이후의 베온헴은 제국에서 제일가는 갑부 중 하나였지만 지금은 단지 도박장 운영자에 불과하다.

카리나는 그를 손쉽게 무너뜨릴 기회를 그저 흘려보낼 수 없었다.

실패한다 하더라도, 해 보지 않은 것보다는 훨씬 나을 테니까.

“왜 각하께 직접 말씀하시지 않습니까?”

“딱히 증거가 있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제가 잠입하여 증거를 찾으면, 말씀드리려고 했어요.”

“증거를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심지어 다른 임무가 있을 땐 더더욱 그렇죠.”

“네. 하지만…….”

카리나는 잠시 망설였다.

아주 가끔, 자신의 머릿속에 생생히 떠오르는 글자들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심지어 원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도 아니다.

길어지는 침묵을 에두아르가 불쑥 깼다.

“제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뭐죠?”

“잠입을 꼭 한 명만 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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