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54)화 (54/145)

<54화>

카리나는 롤랜드와 멜리사가 돌아오기만을 별채에 앉아 기다렸다.

자신이 생애 처음으로 만든 마정석을 소중하게 만지작거리면서.

카리나는 당연히 자신이 만들어 낸 마정석들을 모두 클로드가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개만을 가져갈 뿐 나머지는 모두 카리나의 몫으로 남겨 놓았다.

‘부인은 이제 겨우 첫 발자국을 떼었을 뿐이야. 자연 마정석의 위력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니, 이것들은 기념으로 가져가도록.’

하지만 카리나는 그게 클로드의 배려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동안 카리나는 상당히 많은 마정석을 봐 왔다.

자신이 만들어 낸 마정석은 최상위 등급의 마정석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그래도 평범한 마정석의 수준에는 도달해 있었다.

“엄마!”

카리나는 자신에게로 힘차게 달려오는 롤랜드와 멜리사를 두 팔 벌려 반겼다.

“오늘은 뭘 배웠니?”

“오늘은 수를 다뤘어요. 되게 어려웠는데…… 그래도 열심히 하니까 조금은 알겠어요.”

롤랜드가 신나서 재잘거렸다.

멜리사가 수줍게 덧붙였다.

“근데, 공녀님은 정말 잘하신대요.”

“그래?”

카리나는 진지한 얼굴의 꼬마 공녀를 떠올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아스트리드는 완벽한 학생일 것이다.

“얘들아, 이것 좀 보렴.”

그녀는 테이블 위에 자신이 만든 마정석을 두 개 올려놓았다.

하나는 롤랜드 쪽으로, 하나는 멜리사 쪽으로 살짝 밀어 놓은 채였다.

롤랜드는 조금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그들이 공작저에서 마정석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멜리사의 눈은 놀라서 휘둥그레졌다.

“엄마처럼 느껴져요.”

아이의 자그마한 손이 마정석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롤랜드는 그런 멜리사의 반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분명 멜리사에게는 무언가 심상치 않은 재능이 있었다.

롤랜드나 카리나의 재능과는 다른.

‘어떻게 한담.’

카리나는 한숨을 삼켰다.

와일더나 클로드에게 알릴 수는 없었다.

당장 롤랜드를 클로드의 예정된 집착으로부터 대피시키기 위해 5년이라는 제한을 걸지 않았는가.

멜리사까지 눈독을 들이게 할 수는 없었다.

결국, 카리나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당분간 조용히 멜리사를 지켜보는 것밖에 없었다.

“맞췄네, 멜리사. 내가 만들었어.”

“마정석은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멜리사와 달리, 아직도 어리둥절해 보이는 롤랜드가 의아한 얼굴로 지적했다.

“내가 좀 특별해서.”

카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하지만, 너희들이 만들려고 하면 안 돼. 알겠지? 내가 마법을 쓸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마정석을 만들면 안 돼.”

카리나는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엄한 목소리를 냈다.

“시도했다간 아주 혼쭐을 낼 거야.”

롤랜드와 멜리사는 착한 아이들이었지만, 개구쟁이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안 되는 건 안 된다며 단호하게 못 박아 줄 때도 있어야 했다.

“이것들은 내 마력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자연 마정석보다 훨씬 안전하대.”

카리나는 클로드에게서 들은 설명을 그대로 읊었다.

숙련된 마법사에겐 큰 차이가 없겠지만, 아이들처럼 미성숙한 마법사에겐 이만한 도구가 없을 것이다.

롤랜드의 눈이 커졌다.

“설마, 저희 건가요?”

“그래, 너희 것이란다. 하나씩 가지렴. 잘 보관하고.”

“……!”

아이들은 앞다투어 자신 앞에 놓인 마정석으로 손을 뻗었다.

“엄마 느낌이 나요.”

멜리사가 소중하게 마정석을 감싸 쥐며 말했다.

“그런 게 어딨어?”

롤랜드는 툴툴거렸지만 자신이 가장 아끼는 물건들만 넣어 두는 윗주머니에 마정석을 집어넣었다.

카리나는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드디어, 도움이 될 수 있어.’

카리나는 그동안 거대한 잠재력을 가진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발목만 잡고 있다는 자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 카리나는 아이들에게 도움을 조금이나마 줄 수 있었다.

이 작은 사실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롤랜드와 멜리사는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카리나는 아이들을 흐뭇하게 내려다보았다.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엄마, 누가 왔나 봐요.”

“내가 나가 볼게.”

카리나는 서둘러 현관으로 나섰다.

조금 전 훈련을 마친 클로드가 자신을 불렀을 리가 없다.

아스트리드는 이제 한창 수업을 받고 있을 시간대였다.

‘설마, 체스인가?’

카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현관문을 열었다.

‘……?’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공작저에서 그녀가 마주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 덕에, 웬만한 지위는 이름을 다 외우고 있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난생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중년이라기보단 노년에 가까운 희끗희끗한 머리칼, 세월이 느껴지는 주름살, 꼿꼿한 자세, 화려하지만 절도를 지킨 의복은 그가 공작저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가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누구시죠?”

“치체스터 알몬토. 공작 각하의 시종장입니다.”

카리나의 눈이 가늘어졌다.

‘시종장이라니?’

공작가쯤 되면 시녀, 시종들은 웬만한 신분 이상의 귀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종장까지 오른 자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자가 일개 평민인 자신을 집무실로 부르는 것도 아니고, 직접 찾아왔다?

카리나의 몸이 긴장으로 팽팽해졌다. 그녀는 의심 어린 어조를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으며 입을 열었다.

“무슨 일로 오셨나요?”

“부인이 정식으로 공작가의 일원이 되었으니, 알려드릴 게 여럿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네.”

카리나는 치체스터를 응접실로 안내했다.

아이들은 낯선 사람이 들어오자 호기심 어린 눈길로 인사했다.

치체스터는 응접실에 들어서자마자 입에 발린 말 하나 하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토르스 공작가가 지금 어떤 상황인지 알고 있습니까?”

“어떤 상황이요?”

“역시 전혀 눈치채지 못했군요.”

치체스터는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가에 가신이 몇이나 되는지 알고 있습니까?”

“어…….”

카리나는 망설였다.

클로드는 분명, 그 자신의 입으로 가신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명색이 공작가인데, 가신이 실제로 없을 리가 있나.

‘엄청 적겠지. 한…… 대여섯 명 정도 되려나?’

하지만 클로드의 말이 엄살에 불과했다면 공작가의 가신들이 지나치게 적다고 말하는 건 불경죄다.

결국, 카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저, 에두아르, 부인. 이렇게 세 명입니다. 은퇴한 와일더까지 포함하면 네 명이군요.”

“네?”

억지로 가장하던 카리나의 평정이 깨졌다.

“지금 농담하시는 거면…….”

“농담이 아닙니다.”

치체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선대 부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진 당연히 지금의 열 배는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 지경입니다.”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치체스터는 그런 카리나의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 평온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왜 각하께서 그 마정석들을 모두 부인이 가지라고 하셨는지 아십니까?”

“……너그러우셔서요?”

“그럴 리가요.”

치체스터가 코웃음을 쳤다.

“각하께선 좋은 분이지만, 무턱대고 퍼주는 분도 아닙니다. 각하의 능력 덕에, 마정석은 무상으로 황실에서 제공받고 있습니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와일더의 가게에서 보았던, 보석을 가장한 마정석들의 출처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따라서 부인이 만든 마정석은 팔아야 하는데, 구매처를 물색하고 영업을 할 사람이 없거든요.”

“……그렇겠네요.”

“유사시 믿고 등을 맡길 기사단조차 없습니다. 전부 간단한 승급 절차조차 매번 떨어지는 하급 기사들이거든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알겠습니까?”

“토르스의 치안이 보기보다 약하다는 건가요?”

“순진하시군요.”

치체스터 경이 헛웃음을 내뱉었다.

“부인께서도 나가서 싸우셔야 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

카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베가 왕국이 호전적이기는 하나 제국 전체와 전쟁을 감수할 정도로 무모한 자들은 아니니까요.”

치체스터 경은 공작가의 상황에 대해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선대 공작 부부가 죽은 이후, 공작가의 가신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막 성년이 되었을 뿐인 새로운 공작은 그들을 붙잡지 못했고, 새로운 인재들을 영입하려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다.

그나마 영입한 인재들도 수도에서 살고 싶었다는 둥 핑계를 대며 몇 년 만에 도망치기 일쑤였다.

카리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왜 전 전혀 몰랐을까요?”

“저는 계속해서 부인에게 상황을 모두 알려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럼, 왜…….”

“각하께서 번번이 반대하시더군요. 부인에게 부담을 준다는 이유였죠. 각하께서는 부인께 위험한 일을 시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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