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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51)화 (51/145)

<51화>

카리나가 아는 마법은 단 한 가지뿐이었다.

식물의 씨앗을 틔워내고 성장시키는 마법.

보잘것없는 마법이지만, 지금은 굳이 화려한 마법이 필요할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이 아는 유일한 마법이 사람에게 상해를 입히는 종류가 아니라 다행이었다.

“불허한다.”

클로드가 고개를 저었다.

“위험해.”

“왜죠? 그냥, 마법만 쓸 뿐이잖아요. 그다지 위험하지도 않은…….”

“부인은 지금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하고 있어.”

“…….”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분명, 클로드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카리나는 인정했다.

‘솔직히 미친 짓이긴 해.’

카리나가 여태까지 마법을 사용해본 적은 단 한 번이었다.

재앙으로 끝났고.

바로 그 통제 불능인 면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겠다니, 클로드가 단칼에 거절할 만도 했다.

하지만 카리나가 순순히 물러설 수 없었던 건, 체스 버케인을 구하고자 하는 이유가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숭고한 도덕심 때문만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차라리 도덕심 때문이었다면 카리나는 클로드의 말에 수긍하고 물러섰을 것이다.

그녀 자신을 해치려 든 자를 목숨을 걸고 구할 만큼 카리나는 성인군자가 아니었으니까.

카리나의 목적은 좀 더 실질적인 데 있었다.

‘분명, 내가 마법을 써야만 할 때가 와.’

이번에도 클로드가 아니었다면 카리나는 분명히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공격 마법을 썼을 것이다.

‘마법을 멈추려는 시도도 하지 않았을 거야.’

카리나는 그렇게 자신의 한계까지 마법을 폭주했을 때 어떤 결과가 일어나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설령 일이 크게 잘못되더라도 그녀의 곁에는 전문가인 클로드가 있다.

‘만약, 그 부작용이 내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라면…….’

카리나는 몇 번이고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마법을 쓰게 될 것이다.

물론 감당할 수 없다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봉인해야 할 테고.

‘확인하기에 좋은 기회야.’

그리고…….

카리나가 매정하게 체스 버케인을 버릴 수만은 없는 이유가 있었다.

그녀 또한 마정석의 폭주를 겪어보았다.

체외에서 벌어진 폭주도 그렇게나 고통스러웠는데, 체내에서 일어난다면 어느 정도 수준인지 충분히 짐작이 갔다.

막을 가능성을 이렇게 흘려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각하, 체스 버케인에게 죽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그건 내가 한 약속이지, 부인이 한 약속은 아니야. 부인이 책임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좋아요. 그렇다고 쳐요.”

카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럼, 각하께선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실 생각이죠?”

그때.

바닥에 누워서 신음하던 체스가 손을 들어 올렸다.

“저기, 내 의사 좀 물어보면 안 되나요?”

클로드가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원하는 게 뭐지?”

“저…… 부인이 원하는 대로 하게 해 줘요.”

체스가 숨을 헐떡였다.

“이렇게 개죽음당하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겠죠, 공작 각하.”

“…….”

클로드는 의중을 알 수 없는 얼굴로 체스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분명, 거절할 거야.’

카리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서둘러 체스 버케인을 향해 다가갔다.

“부인?”

체스가 그녀를 의아해하면 올려다보았다.

카리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체스 버케인의 손을 꽉 잡았다.

마정석의 진동이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블로에 부인!”

뒤늦게 클로드가 그녀를 잡아떼려 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이미 카리나는 마법을 완벽히 발동시켰으니까.

카리나는 한 손으로는 체스의 손을 잡고, 다른 손으로는 바닥을 더듬거렸다.

‘바닥, 신발, 치맛자락…….’

씨앗이 묻어 있을 만한 곳이면 어디든 간에, 카리나의 손이 스쳤다.

펑!

파열음이 들리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녀를 향해 손을 뻗었던 클로드는 순식간에 자라나는 나무와 꽃, 잡초에 의해 밀려났다.

카리나와 체스의 전신이 식물들로 뒤덮였지만 끝까지 체스의 손을 놓지 않았다.

다른 손 역시 계속해서 식물들을 만지면서.

어느덧 식물들은 그들을 빼곡하게 메워, 더는 숨을 쉴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체스가 억눌린 소리를 냈다.

“다른…… 다른 마법 좀 쓸 수 없어?”

“못 해.”

카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러다가 다 숨 막혀서 죽겠어!”

본인을 구해 주려는 사람에게 신경질을 내는 체스가 짜증스러웠지만, 사실 맞는 말이었다.

카리나는 목을 조여오는 칡넝쿨을 본능적으로 움켜쥐었다.

‘……아차.’

피가 식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칡넝굴은 카리나의 전신을 조일 기세로 자라났다.

“허억……!”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순간, 바람이 느껴졌다.

카리나는 헐떡이며 바닥에 엎드렸다. 마법을 멈출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식물들은 계속해서 자라났다.

하지만, 식물들이 다시금 그녀의 몸을 덮쳐오는 일은 없었다.

“……!”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클로드가 급속도로 자라나는 식물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베어 내고 있었다.

그는 카리나를 쳐다보지도 않았고, 카리나 역시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사실, 말 한마디 할 수 없을 정도로 지친 상황이기도 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지금 이 상황을 버텨내는 것에만 집중했다.

‘정신을 잃으면 안 돼.’

정신을 잃는 순간, 마정석에 홀린 것과 다름없는 상황에 부딪히고 말 것이다.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숙주를 죽일 기세로 불타오르던 마정석의 험악한 기운이 수그러들었다.

창백하게 질려 식은땀만 뻘뻘 흘리던 체스의 숨소리도 진정되었다.

하지만 승리감이 아닌 절망감이 카리나를 덮쳤다.

마정석의 기운은 사라졌지만, 그녀 내면의 무언가가 손 쓸 도리가 없는 산불처럼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체스가 무어라 말했지만 카리나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내부의 힘을 지배하려고 애썼지만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는 댐을 손으로 막으려는 시도나 다름없었다.

‘망했어.’

카리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클로드가 옳았다.

그녀는 검증되지 않은 위험한 방법을 시도하려 들었고,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카리나는 전신을 조여오는 식물들에 굴복하지 않으려 발버둥 쳤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음 순간.

조여 오던 식물들이 순식간에 그녀를 놓아주었다.

카리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어딘가 친숙한 냉기가 느껴졌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클로드가, 그녀의 양손을 모두 붙잡고 있었다.

“블로에 부인.”

클로드의 목소리는 화난 것처럼 들리지 않았다. 겁에 질렸거나, 걱정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뻐하고 있어?’

카리나는 간신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

카리나는 놀라 숨을 훅 들이켰다.

시야가 온통 금색 찬란한 빛으로 덮여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 무슨 일…….”

“쉿.”

클로드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기울이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카리나는 간신히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행동을 눈으로 좇았다.

클로드는 흐르는 빛에 손을 넣고 섬세하게 움직였다.

마치, 조각을 빚어내는 장인처럼.

카리나가 속으로 수십 번을 헤아린 이후.

클로드가 과감한 동작으로 무언가를 빛 속에서 빼내었다.

‘……!’

검이었다.

카리나는 직감했다.

‘저건, 그냥 검이 아니야.’

클로드의 손에 들린 검은, 그녀가 여러 번 보아왔던 마정석에서 뽑은 검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금색 빛을 뿜어내는 검에선 절대 끝나지 않을 듯한 생기와 생명력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언가 익숙한 기운도…….

‘내 마력이구나.’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카리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게 마력이 있을 리가 없는데!’

마법사의 자질을 지녔다는 것과 마력을 지녔다는 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마력은 마법사의 수련 과정에서 형성되니까.

그래서 카리나는 그녀에게 금빛 마력이 있다는 멜리사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에게 마력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

클로드가 검을 경건하게 들어 올리며 카리나의 눈을 직시했다.

그 시선에 담긴 열망과 흥분에, 카리나의 얼굴이 저절로 달아올랐다.

클로드는 그녀가 무언가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보고 있었다.

‘여태까지와 달라.’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방금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부디, 클로드가 자신을 또 가신으로 삼으려고 할 만한 일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지 않는 법이다.

“몸은 괜찮은가?”

“네, 정말 괜찮아요. 다시 태어난 것처럼 멀쩡하고요. 또다시 저를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카리나가 전혀 다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한 클로드의 입가가 잔잔한 호선을 그렸다.

“부인이 전혀 해를 입지 않았다니 다행이군.”

솔직히, 몸 구석구석이 욱신거렸지만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 각하 덕분입니다. 바보 같은 짓이었어요. 죄송합니다.”

클로드가 소리 내어 웃었다.

“틀렸어.”

“네……?”

카리나는 멍하니 클로드를 바라보았다.

“바보 같은 짓이라니……. 부인, 이게 뭔지 알겠나?”

클로드가 금빛이 은은하게 쏟아지는 검을 카리나에게 보여주었다.

“제 마력에서 검을 뽑으셨군요.”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는데도 부인은 전혀 다치지 않았지.”

“……그게, 많이 이상한 건가요?”

“사람의 마력으로 검을 뽑으면, 마력이 회복될 때까지 몇 달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게 정상이야.”

“……!”

클로드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건 부인의 마력이 선천적이라는 뜻이지. 후천적이 아니라.”

“아…….”

“축하한다, 블로에 부인. 그대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재능을 타고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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