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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50)화 (50/145)

<50화>

“네.”

카리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클로드의 반응을 보니 그는 그녀가 이제 떠나야 한다고 전혀 생각지도 않은 듯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설마,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는 건가요?”

클로드의 대답은 조금 느리게 돌아왔다.

“그래.”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대체 무슨 문제죠?”

“그건…….”

클로드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잊어버린 건가? 그럴 수도 있지.’

클로드에게 오늘은 정말 힘든 하루였을 것이다.

체스 버케인의 함정에 빠져 다치기까지 했다.

그 뒤로 푹 쉬지도 못하고, 체스를 훈련장으로 끌고 와 수련을 시키고 있었으니 머리가 제대로 굴러간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카리나는 친절하게 말을 돌렸다.

“괜찮아요. 저와 애들이야 쉬고 있을 테니, 있다가 생각나시면 천천히 말해 주세요.”

클로드가 무어라 대답하려는 순간.

체스 버케인의 비명과 뒤섞인 거대한 폭발음이 귀를 때렸다.

클로드와 카리나는 체스를 향해 동시에 몸을 돌렸다.

“……!”

카리나는 입을 틀어막았다.

온몸이 기이하게 뒤틀린 체스 버케인을 중심으로 새파란 기운이 치솟고 있었다.

“이 무슨 멍청한……!”

클로드가 체스를 향해 한달음에 달려갔다.

“무슨 일이죠?”

“한계치를 넘는 마법을 사용하려고 한 모양이다.”

“왜 그런 짓을……?”

“보나 마나 탈출할 생각이었겠지. 바보 같은 짓이군.”

클로드는 바닥에 수북한 검 중 하나를 골라잡았다.

“죽이실 건가요?”

“그래. 탈출하려고 한 이상, 봐줄 수가 없다.”

카리나는 반대하지 않았다.

클로드의 판단이 옳았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회유하고자 한 카리나의 판단이 틀렸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체스 버케인은 회유하기엔 너무나 생각이 없는 자였으니까.

카리나는 체스로부터 등을 돌렸다.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체스 버케인의 모습에서 눈을 떼자, 어딘가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정석.

그것도 폭주하는.

카리나는 황급히 돌아섰다.

클로드가 칼을 높이 치켜들고 있었다. 아직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한 체스 버케인은 곧 자신에게 떨어질 죽음의 칼날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괴로움에 신음하는 중이었다.

카리나의 목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안 돼요!”

클로드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체스를 내리치지도 않았다.

단지, 검을 들어 올린 채 차가운 시선을 체스에 고정하고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카리나는 이를 악물었다.

심장이 너무나 빨리 튀어, 갈비뼈 밖으로 튀어 나갈 듯했다.

“마정석이에요. 마법을 쓴 게 아니라, 마정석이 폭주한 거예요!”

클로드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건, 이자의 마력이다. 마정석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아뇨.”

카리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마정석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알아.’

만약 다른 문제라면 카리나는 클로드가 무슨 말을 했든 간에 수긍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정석은 달랐다.

클로드와 와일더가 몇 번이고 보증해주지 않았던가.

카리나는 체스에게로 서서히 다가갔다.

“부인, 물러서라.”

클로드의 경고가 들려왔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를 무시했다.

체스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수록 확신이 강해졌다.

‘……확실해.’

카리나는 클로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금 저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원인은 확실해요. 마정석이에요!”

착각했을 리가 없다.

카리나는 폭주하는 마정석에 두 번이나 당했다.

그 기운이 체스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클로드의 건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자는 마법사다. 부인처럼 마정석에 그리 쉽게 홀릴 리가 없어.”

“홀릴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잖아요.”

클로드는 눈살을 찌푸리더니, 검을 검집에 집어넣었다.

“확인만 해 보도록 하지.”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드는 체스를 향해 다가가 검을 휘둘렀다. 타원형을 그리는 듯한 섬세한 궤적이었다.

“…….”

클로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카리나는 침을 꼴딱 삼켰다.

‘혹시, 아니라면…….’

클로드는 자신에게 실망할 것이다.

‘잠깐.’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클로드가 그녀에게 실망하든 말든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히려 카리나가 바라는 바에 더 가까웠다.

카리나는 클로드의 가신이 되기를 원치 않으니까.

착실히 돈을 모아서 롤랜드가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 남부를 떠날 생각이니까.

하지만 분명, 자신은 클로드가 실망할까 봐 불안해하고 있었다.

‘……정신 차려, 카리나.’

카리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신은 더 이상 어른의 칭찬을 받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런데 클로드의 눈치를 보다니, 자신을 제외하면 누구도 모르는 일인데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부인의 말이 맞군.”

반신반의하는 듯한 클로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체내에 마정석이 있다. 마력에 가려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군. 내부에서 폭발했으니…… 살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체내에 있다고요?”

카리나는 귀를 의심했다.

“그래. 이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군.”

“하지만 각하께서는 제가 폭주하는 마정석에 홀렸을 때에는 구해 주셨잖아요.”

“부인, 그때 부인은 그냥 홀렸을 뿐이었어. 이건 체내 폭발이라 이자의 마력을 모두 몰아내고…….”

그때, 체스가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렸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보니 고통을 겨우 버텨내는 듯했다.

클로드가 차갑게 명령했다.

“설명해라.”

“봐도…… 몰라? 베가 왕국의 장치잖아. 나 같은 배신자를 잡기 위한.”

체스의 무례한 말투에 클로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마법사가 없으니 이렇게 정교하게 마정석을 세공할 수 없을 텐데.”

“마정석 세공은 어디 마법사만 하나? 그럼 친애하는 공작 각하께선 마정석에서 검을 뽑아내니 대마법사쯤 되시겠네?”

체스는 이제 대놓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클로드는 그의 무례함을 지적하기엔 당장 직면한 문제에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설마, 지난 세월 동안 베가에서는 마법사를 제어할 마도구들을 연구해 왔던 건가.”

“빙고! 정확하게 맞췄네. 상금이라도 드릴까?”

체스 버케인은 숨을 헐떡거렸다.

“아니, 어차피 난 죽을 테니까…… 내 개죽음 정도면 썩 괜찮은 상품이네요. 안 그래요, 공작 각하?”

“…….”

클로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든 감정이 빠져나간 것처럼 무표정한 그의 얼굴은 싸늘하기만 했다.

마침내,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넌 죽지 않는다.”

“……웃기는 소리. 이 근방에 쓸만한 마법사 한 명 없는데, 너 같은 대장장이가 뭘 하겠다고…….”

“공작을 모욕한 죄로 바로 목이 잘리고 싶은 게 소원이라면 들어주도록 하지.”

“…….”

입이 바싹 탔다.

카리나는 이제 클로드를 알 만큼 알았다.

클로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면 저렇게 말로 시간을 끄는 대신, 이미 해결을 해주고도 남을 만한 사람이었다.

카리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와일더 씨를 불러올까요?”

“그럴 것 없어.”

클로드가 쓰게 대답했다.

“와일더는 그가 아는 모든 걸 내게 가르쳤으니까. 온다 한들 도움이 안 될 거다.”

“……혹시.”

카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급한 마음에 바보 같은 아이디어를 입 밖으로 내어놓을 뻔했다.

“뭐지?”

하지만, 클로드는 그녀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명령이다. 원래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말해.”

“…….”

카리나는 억지로 대답했다.

“별로……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바보 같은 생각이었어요.”

“부인은 바보가 아니다. 그러니 바보 같은 생각을 했을 리도 없지.”

딱딱한 어조였지만, 카리나는 그 안에서 자신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카리나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이게 다…… 이 사람의 마력이라는 거죠?”

“그래. 하지만 맹세코,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아. 마력은 마법사의 피나 다름없으니까.”

“마정석이 마력을 대체하고 있는 거군요.”

그때, 체스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람의 피를 모조리 빼내고 그 자리에 물을 채워 넣는 것도 대체라고 할 수 있다면, 대체는 맞아.”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체스와 클로드의 말을 종합하자면 지금 체스에게 일어난 문제는 순전히 체내의 마정석 때문이었다.

“그럼…….”

카리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정석의 에너지가 모두 소진된다면, 이자의 마력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군요.”

일반적으로 마정석은 무한한 에너지원이 아니었다.

베가가 사용한 마정석 역시 예외는 아닐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 하지만 마정석을 그 정도로 소진하려면 상당한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마법을 사용해야 하는데, 그건 웬만큼 숙달된 마법사들도 불가능해.”

카리나는 클로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가능해요. 그냥, 꽃 한 움큼만 가져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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