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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49)화 (49/145)

<49화>

클로드는 체스를 이끌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창고는 원래대로 복구해 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카리나는 기쁨을 숨기지 않았다.

‘힘을 키워야 해.’

죽음의 공포 속에서 누군가 구해주기만을 기다리는 건 이제 질렸다.

와일더를 귀찮게 굴어서라도 한 사람 몫의 방어는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생각이었다.

‘잠깐. 나는, 아니 우리는…….’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녀를 해치려던 범인은 잡혔고, 가슴 속 표식은 사라졌다.

자신과 아이들이 공작저의 별채에 머물 이유가 사라진 셈이다.

‘……나, 한심하구나.’

카리나는 스스로가 한심해 입술을 깨물었다.

공작가의 안락함과 친절한 사람들과의 만남이 너무나 달콤했던 나머지 이곳에 온 이유조차 잠시 잊어버리고 말았다.

‘공작 각하는 경황이 없어서 창고를 복구해 주겠다고 한 거겠지.’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정신 차려야 했다.

롤랜드와 멜리사는 아직 겁에 질려 덜덜 떨고 있을 것이다.

얼른 돌아가 아이들을 안심시켜 주어야 했다.

잠시 후.

카리나는 심호흡을 크게 한 번 하고 문을 열었다.

“엄마!”

“엄마……!”

카리나는 당황하며 자신에게로 뛰어오르는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당연히 롤랜드와 멜리사가 겁에 질려 방에 숨어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흥분한 얼굴로 자신에게 달려오는 게 아닌가.

“공작님이죠? 그렇죠?”

롤랜드가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으응……?”

카리나는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이들은 창고 안의 상황을 모를 것이다. 아니, 몰라야만 했다.

“너희, 설마 나와서 봤니?”

“아뇨.”

멜리사가 당당하게 말했다.

“절대, 한 발짝도 안 나갔어요. 그냥…… 느껴졌어요.”

“뭐가?”

카리나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싸우는 거요. 마법사 한 명이랑, 엄청 많은 마정석이랑……. 전 엄마라고 생각했는데, 롤랜드는 공작님이었을 거래요.”

멜리사는 뾰로통하게 입술을 내밀었다.

카리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멜리사가 클로드를 꺼려하는 건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할 줄이야.

“당연히 공작님이지. 엄마가 그런 마법사를 물리칠 리가 없잖니.”

“치이…….”

“그런데 멜리사, 그냥 느껴졌다고? 싸우는 게?”

“네.”

멜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롤랜드가 설명을 덧붙였다.

“저는 전혀 못 느꼈는데, 멜리사는 느꼈대요. 어떻게 싸웠는지…… 마력의 흐름이랑, 그런 거요.”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마력의 흐름을 느낀 것만 해도 놀라운데, 더 훈련을 오래 받은 롤랜드가 아니라 멜리사가 느꼈다니.

‘마력의 흐름에 관련된 내용은 렝케 경에게서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는데…….’

와일더는 알지도 모른다.

그를 언제쯤 만날 수 있을지 카리나가 곰곰이 생각하던 도중, 멜리사가 들뜬 얼굴로 외쳤다.

“그런데 어느 순간 마력이 다 사라지고, 엄마만 느껴졌어요!”

멜리사가 눈을 반짝였다.

“내가 느껴졌다고……?”

카리나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되물었다.

“하지만 멜리사, 나는 마법을 쓰지 않았어. 뭔가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에요. 엄마가 맞아요!”

멜리사가 힘차게 고개를 저었다.

“내 마력이 느껴진 거니?”

“네.”

멜리사가 확신에 찬 어조로 덧붙였다.

“지금도, 느껴져요.”

“말도 안 돼.”

카리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왜요?”

멜리사가 카리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마법을 쓰지 않았으니까. 쓸 수도 없고.”

“하지만, 분명 엄만데…….”

멜리사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엄마 색깔은 금색이라구요.”

“금색?”

“네.”

멜리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롤랜드는 빨간색, 나쁜 마법사는 파란색이었어요.”

카리나는 더는 멜리사에게 캐묻지 않았다.

이건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하는 문제였다.

‘멜리사가 무언가 착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마력의 색깔이라니.

카리나는 그런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하지만 카리나가 의심하는 건 멜리사의 색깔을 보았다는 말이 아니었다.

‘색깔이든 뭐든, 마력을 느낀 건 진짜일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전투 결과를 미리 알았을 리가 없을 테니까. 내 마력을 느낀다는 건…… 착각일 거고.’

카리나는 분명 마법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과 마력 보유는 다른 문제였다.

마법사의 마력은 다양한 마법을 사용한 끝에 생성되는 일종의 기운이었다.

그런데 마법을 거의 써 보지도 못한 자신이, 어떻게 마력이 있겠는가?

하지만 카리나는 멜리사에게 네가 틀렸다거나, 착각하고 있다고 말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멜리사는 마법 때문에 수많은 상처를 받아왔다.

그 상처를 후벼 파는 건 도저히 못 할 짓이었다.

카리나는 방긋 미소 지었다.

“그렇네. 내가 금색이라니, 좋은걸?”

“엄마, 금색 좋아해요?”

롤랜드가 눈을 반짝였다.

“그럼. 나는 금을 참 좋아하거든. 그래서 금색도 좋아.”

“금……. 이것도 금이에요! 엄마 가져요!”

롤랜드가 장난감 무더기로 달려가 무언가를 꼭 쥐고 카리나를 향해 외쳤다.

자세히 살펴보니, 견장과 검에 금칠이 되어 있는 장난감 병정이었다.

‘이걸 나한테?’

카리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롤랜드가 가장 열심히 가지고 놀아, 유독 눈에 익은 장난감이었다.

“어머나, 이걸 나한테 주려고?”

“네.”

롤랜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리나의 주머니에 자꾸만 병정을 밀어 넣으려고 했다.

“금이니까, 엄마 해요.”

“그럴게. 정말 고마워, 롤랜드.”

카리나가 웃으며 롤랜드의 머리를 쓰다듬자, 롤랜드가 반짝이는 눈으로 응답했다.

“엄마, 나도요. 나도!”

멜리사가 낑낑거리며 무언가를 가지고 왔다.

카리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멜리사는 아스트리드의 선물 중 가장 크고 무거운 장난감을 거의 끌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이는 시커먼 동굴 모형 앞에 주저앉더니, 안을 가리켰다.

“여기 금도 있구 보석도 있어요. 반짝이는 거, 진짜 많으니까 다 엄마 해요. 네?”

“고마워, 멜리사. 이 두 개는 내 방에 가져다 놓아야겠…….”

일단은 옮겨놓았다가 아이들에게 또다시 선물이라는 형식으로 돌려줄 생각이었던 카리나는 말을 뚝 멈추었다.

‘이젠 내 방이…… 아니야.’

그들은 이제 그 좁고 퀴퀴한 여관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당연한 수순이었지만, 카리나도 사람인만큼 아쉬운 감정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얘들아, 둘이서 좀 놀고 있을래? 엄마는 공작 각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어차피 그들이 가지고 온 건 거의 없으니 짐을 챙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그동안 친절히 대해 주고 이번에도 목숨을 구해 준 클로드에게 인사만 하고 나면, 여관으로 돌아가면 되었다.

카리나는 당연히 놀 수 있다고 큰소리로 외치는 아이들을 뒤로하고 별채를 나섰다.

‘어…… 집무실에는 없으려나?’

생각해 보니, 체스 버케인을 이끌고 집무실로 갔을 것 같지는 않았다.

카리나는 마침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던 하인에게 말을 걸었다.

“공작 각하께서 어디 계신지 알 수 있을까요?”

남루한 상복을 입은 낯선 여자가 말을 걸자 당황하던 하인은 이내 카리나를 알아보았다.

“아, 블로에 부인이시군요. 제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클로드와 체스 버케인이 있다는 거대한 홀에 도착했다.

‘훈련실이구나.’

마법사의 저택에서 지낸 이십 삼 년이 헛되지는 않았다.

카리나는 홀 입구의 위압감으로부터 이미 이곳이 살벌한 훈련장이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니나 다를까, 발을 들이자마자 거대한 폭발이 눈을 가렸다.

“블로에 부인?”

클로드가 얼굴을 찌푸리며 카리나에게로 다가왔다.

살았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주저앉는 체스 버케인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무슨 일인가? 설마, 아이들이…….”

“감사 인사를 드리려고요.”

클로드가 입을 살짝 벌렸다가, 닫았다가, 다시 벌렸다.

“뭐……?”

카리나는 무릎을 굽히며 정중히 인사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공작 각하. 세심하게 신경 써주셔서, 더할 나위 없는 날들을 보냈어요.”

“…….”

침묵이 흘렀다.

클로드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조금 불안해진 카리나는 빠르게 말을 이었다.

“각하 덕분에 이제 표식 문제도 완전히 해결되었으니, 내일 아침에 바로 떠날까 합니다.”

카리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마차를 준비해 달라고 부탁하면 좀 무례할까? 아니지, 일반 짐마차를 감히 공작저에 들일 수도 없잖아.’

그녀는 애써 미소 지었다.

“그러니 마차를 준비해 주신다면 최대한 빨리…….”

하지만 카리나는 부탁을 끝마치지 못했다.

클로드가 카리나의 말을 낚아챘기 때문이었다.

“떠난다고?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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