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클로드가 조금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쁘지 않은 방법이군.”
“그렇죠?”
카리나는 미소 지었다.
죽는 것과 비교하자면 위치가 시시각각 클로드에게 알려지는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자신은 이미 표식을 상당한 기간 지니고 있지 않았는가.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에게 위치가 계속 알려지고 있다는 점만 제외한다면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법사는 카리나와는 생각이 달랐는지, 어이가 없다는 듯 계속해서 신음만 흘렸다.
“으억…… 윽…….”
“죽고 싶다면, 지금 바로 죽게 해 주겠다.”
마법사는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에요! 표식, 지금 박을게요!”
“허튼 수를 쓴다면 곧바로 목이 날아갈 거다.”
클로드는 마법사에게 차갑게 경고했다. 마법사가 고개를 끄덕인 순간, 다섯 검이 땅으로 떨어졌다.
“으으윽…….”
마법사는 비틀거리며 팔다리를 주물렀다.
“어서 시작하지.”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눈을 감았다.
푸른 스파크가 전신에서 튀기 시작했다.
‘뭐지?’
카리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렝케 경은 물론, 롤랜드나 멜리사 역시 마법을 시전할 때 한 번도 이랬던 적이 없었다.
클로드가 중얼거렸다.
“싸울 때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독학이었나.”
“독학이요?”
카리나는 조금 놀라 되물었다.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만 보고도 어떻게 배웠는지 알 수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제대로 배운 적이 없는 마법사들이, 자신의 마력을 주체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야. 처음부터 가르쳐야 겨우 쓸 만해지겠어.”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잖아요.”
카리나는 마법사가 독학을 했든, 대마법사에게서 기초부터 제대로 배웠든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현재 롤랜드와 멜리사가 할 수 있는 간단한 마법 정도야 이 마법사도 손쉽게 해낼 것이다.
설령 기초부터 하나하나 가르쳐야 하더라도 그건 공작가의 문제였지 그녀가 상관할 바는 아니었다.
“그래, 부인의 말이 옳아. 없는 것보다야 낫지. 그리고 나는 이런 쓰레기조차 활용해야 하는 처지고.”
클로드의 목소리엔 자괴감이 서려 있었다.
잠시 후.
마법사의 전신에 튀던 스파크가 사그라들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더니, 검붉은 눈동자가 클로드를 직시했다.
“손.”
마법사는 클로드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클로드는 조금 멈칫했으나 이내 마법사의 손을 잡았다.
“…….”
클로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런 거군.”
“어떤 기분이에요?”
“알고 싶지 않은 정보들이 밀려 들어오는 기분.”
클로드는 카리나가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에 마법사를 노려보았다.
“당장 블로에 부인의 표식을 제거해라.”
“알, 알았어요!”
마법사가 허겁지겁 카리나의 손을 잡았다.
수 초 후.
‘……아.’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이런 거였구나.’
있었던 줄도 몰랐던 이질적인 기운이, 몸을 한 차례 훑고 사라지는 듯한 느낌이 났다.
“완전히 사라졌어요.”
“그래 보이는군.”
클로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허튼 수를 썼다간…….”
“알겠어요! 절대, 절대 배신 안 할게요!”
클로드는 마법사의 약속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표식에도 허점이 있다. 그러니 쉽게 안심할 수는 없어.”
카리나도 클로드에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마법사가 속지는 않았다고는 하나 롤랜드가 표식을 복제하여 돌파구를 만들지 않았던가.
“이걸로 충분하지 않다고? 이번엔 또 뭘 하게?”
마법사가 조금 질린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클로드는 마법사의 무례한 말투는 완전히 무시하며 품에서 마정석을 두 개 꺼냈다.
아니, 한 쌍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서로 꼭 닮은, 진주 모양 쌍둥이 마정석이었으니까.
“삼켜.”
클로드는 마정석이 알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중 한 개를 마법사를 향해 내밀었다.
마법사가 기겁을 하며 고개를 세차게 내저었다.
“마정석을 먹으라고?”
“이걸 먹는다고 해서 네게 해가 되는 건 없다. 허튼짓만 하지 않는다면 말이지.”
“허튼짓을 한다면…… 요?”
마법사의 말투가 다시금 공손해졌다.
“그럼, 나머지 한 알을 가진 사람이 네 몸을 폭파하겠지.”
“미친……!”
마법사가 덜덜 떨리는 입으로 욕을 내뱉었다.
충격을 받았는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였다.
“부적절한 언사도 허튼짓의 일부이니, 참고하도록.”
“…….”
마법사는 입을 꾹 다물고 클로드를 노려보았다.
클로드는 그를 무시하고는 카리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손.”
카리나는 의아해졌지만 클로드의 말에 따라 손을 내밀었다.
‘……?’
클로드는 마법사가 방금 삼킨 마정석과 쌍이 되는 마정석을 카리나의 손 위에 올려다 놓았다.
“이건 마법이잖아요.”
“마법이라고 할 것도 없다.”
클로드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저놈의 몸을 폭파하고 싶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돼. 그럼 십 초 안에 저놈의 몸이 산산조각이 날 거다.”
“미쳤어?”
마법사가 소리쳤지만 둘은 신경 쓰지 않았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마정석을 들여다보았다.
클로드는 방금 마법사의 생사를 자신에게 넘겨주었다.
그 무게감이 카리나를 서서히 잠식했다.
“왜 이런 걸, 저한테……?”
카리나는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무얼 보나 자신이 아닌 클로드가 가지고 있어야 합당할 듯한 마정석이었다.
“저놈은 부인을 만만하게 생각하고 있어. 기회만 있으면 해코지를 할 녀석이지. 그러니 부인도 무기를 가지고 있어야 해.”
카리나는 물끄러미 클로드를 올려다보았다.
클로드의 설명은 길었지만, 그 어디에도 자신에게 마정석을 넘겨준 핵심적인 이유는 들어 있지 않았다.
“저를 신뢰하시는 거군요.”
“…….”
클로드는 잠시 말이 없었다.
카리나는 인내심을 가지고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쥐 죽은 것처럼 고요한 창고 안에서 소리를 내는 존재라곤, 눈을 도르르 굴리는 마법사뿐이었다.
“그래, 나는 부인을 신뢰한다. 그게 그렇게 신기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런가요.”
카리나에게는 제법 신기한 일이었지만, 그녀는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자신은 주인이 키우는 아이들을 데리고 달아난 하녀다.
심지어 사생아라는 사실을 숨기고 아이들의 죽은 부모 성을 따 사칭하기까지 했다.
이런 과거사를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도, 어느 날 갑자기 토르스에 나타난 신분이 불분명한 과부일 뿐이다.
그런 자신을 클로드가 믿어 준다면 고마워해야 마땅하지 반박할 일은 아니었다.
카리나는 마정석을 품에 조용히 집어넣었다.
이 마정석을 쓸 날이 제발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클로드가 마법사를 내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이름, 뭐지?”
“……체스 버케인.”
카리나는 그제야 그때까지 그들이 이 마법사의 이름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체스?”
클로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가명인가?”
“그랬으면 소원이 없겠어.”
체스 버케인이 자조적으로 중얼거렸다.
“좋아, 거짓말처럼 들리지는 않는군.”
클로드는 여전히 바닥에 반쯤 너부러진 상태인 체스를 내려다보며 명령했다.
“얼른 일어나라. 오늘 할 일이 많으니?”
“뭘…… 해야 하죠? 고문받기?”
클로드는 코웃음을 쳤다.
“그 마정석을 먹은 것만 한 고문도 없을 텐데?”
“그럼 뭐죠?”
“당연히, 교육이지.”
클로드가 싸늘하게 내뱉었다.
“각오해라. 한 번 죽었다가 되살아나야 겨우 쓸만해 질 듯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