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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47)화 (47/145)

<47화>

“그런가?”

클로드는 코웃음을 치더니, 시퍼런 빛을 뿜어내는 단검을 마법사의 턱밑에 가져다 댔다.

“…….”

마법사는 입을 꾹 다물고 클로드를 노려보았다.

하지만 마법사의 의연한 태도는 오래가지 못했다.

클로드가 말없이 손에 힘을 주자마자, 곧바로 고막을 찢을 듯한 비명이 울렸다.

“아아악! 아파! 아아아악! 살려줘! 뭐든지 할게!”

“뭐든지?”

“으응, 뭐든지!”

카리나는 허무한 심정으로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나약한 인간에게…….’

그간 모두가 쩔쩔맸다는 말인가?

이 마법사는 뿔 달린 악마도, 괴물도 아니었다.

하다못해 렝케 경처럼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그저 철없는 마법사일 뿐이었다.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치워, 그거 좀 치워 줘! 제발!”

클로드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얼굴로 마법사를 바라보더니, 검을 바닥에 떨어트렸다.

마법사는 그 틈을 타 오각형 결계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버둥거렸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클로드가 얼굴을 찡그렸다.

“다리가 잘리고 싶은 모양이군.”

“아니…… 아니에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각하!”

“아는 것, 모두 말해라.”

“없어요, 아무것도!”

파직.

클로드가 아무런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파열음과 함께 오각형을 이룬 검들이 붉게 달아올랐다.

“몰라요! 진짜로! 전 표적만 납치하고 돈을 받게 되어 있었어요!”

“접선은 누구와 했지?”

검들이 보라색으로 변했다.

“커흑, 늘 얼굴을 항상 가려서……! 이것들, 좀 놔 줘요. 제발!”

“네가 한 짓이 있는데 놔 줄 수가 없지.”

차가운 목소리가 창고에 울려 퍼졌다.

“대가로 뭘 받기로 했지?”

“돈이요! 돈! 다른 건 아무것도 없어요. 정말이에요!”

클로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내 이럴 줄 알았어. 더 볼 것도 없군.”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각하?”

“이자는 마법을 쓸 수 있다뿐이지 시정잡배에 불과하다. 겨우 이 정도에 휘말리다니…… 나도 멀었군.”

마법사의 얼굴이 화르르 불타올랐다.

“누굴, 시정잡배라고……!”

붙들려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조차 화낼 기운이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클로드는 그가 그러든 말든 카리나에게 냉정하게 일렀다.

“블로에 부인, 뒤돌아 있어. 그다지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닐 테니까.”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죽이시려고요? 이 자리에서?”

“그래.”

클로드는 친절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자를 살려두면 화근만 생기는 셈이다.”

본디대로라면 사형은 형식상으로나마 재판을 거쳐야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클로드는 공작.

그가 자신의 영지에서, 영지민을 해치려 한 자를 즉결처분한다 해서 아무도 그를 탓하지 않았다.

마법사는 열심히 버둥거리며 괴성을 질렀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잠시 등 돌리고 눈 감는 거야 어려울 게 없다.

렝케 경의 저택에서 항상 해 왔던 게 아니던가?

심지어 렝케 경은 카리나에게 미리 경고해 주는 친절도 베풀지 않았다.

하지만…….

카리나는 등을 돌리지도, 눈을 감지도 않았다.

그녀는 클로드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각하, 제가 이자와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클로드는 잠시 그녀를 의중을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카리나는 마법사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마법사는 잔뜩 날이 선 눈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니?”

“없어! 없다구! 부인을 죽일 생각도 아니었어!”

“죽일 생각이 아니었다고?”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클로드가 냉정한 판단을 내렸다.

“당연히 거짓말이지. 죽일 생각이 아니었다면, 대체 무슨 이유로 여기까지 침입했겠나?”

“그야, 납…….”

“납치?”

마법사는 입을 꾹 다물었지만 이미 숨기려던 사실은 완전히 새어 나간 이후였다.

카리나는 어이가 없어 되물었다.

“대체 왜, 나를 납치하려고?”

“그건 나도 몰라! 그냥, 부인을 납치하면 돈을 준댔어!”

마법사의 목소리에는 무시할 수 없는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카리나는 문득 그가 돈이 필요한 이유가 궁금해졌으나 묻지 않았다.

모두에겐 각자의 사정이 있는 법이고, 돈이 절박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납치범이 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디서 접선하기로 했지?”

클로드가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다시 주워들며 물었다.

“에드무어! 거기서 어디로 가는지는 몰라요, 정말로요!”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각하.”

마법사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짓말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제발……!”

클로드가 싸늘하게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설령 부인을 죽이려고 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도, 넌 나를 해치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즉결처분이 가능한 사안이지.”

단검을 쥔 손에 시퍼런 힘줄이 돋아났다.

카리나는 황급히 클로드의 앞을 가로막았다.

“부인. 동정심 때문이라면…….”

“동정심이 아니에요.”

카리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 공작가 제대로 된 마법사가, 단 한 명도 없는 게 맞죠?”

“…….”

클로드는 허를 찔린 얼굴이었다.

“오늘, 제 아들이 마법을 썼어요. 각하의 말씀대로, 여덟 살은 마법을 배우기에 어린 나이죠.”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심지어 마법을…… 싫어하고요. 그래도 마법을 써야 했어요.”

“그래서, 이 시정잡배만도 못한 놈을 내 가신으로 삼아라? 부인이 하고 싶은 말이 그건가?”

“그럴 리가요.”

카리나는 일고할 가치도 없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냥, 믿을 만한 마법사를 얻을 때까지는 이 애송이를 이용하시라고요. 죽는 것보다야 나으니 이 작자도 찬성할 거고요.”

마법사가 이를 악물며 한 마디 내뱉었다.

“누굴 보고 애송이라고……!”

카리나는 코웃음을 쳤다.

“그럼, 죽은 어르신이 될래? 죽으면 어르신이라고 불러 주마. 황제 폐하라고도 불러 줄 수 있어.”

“…….”

마법사는 한 방 먹은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클로드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부인이 뭘 생각하는지는 알겠어. 하지만 한 번 배신한 자는 앞으로도 배신한다. 그리고…….”

클로드는 조금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부인을 납치하려고 한 자다. 얼마나 젊든 간에 그런 자를 공작가에 둘 순 없어.”

“왜죠?”

“꺼림칙하지 않나, 부인은.”

카리나는 망설임 없이 바로 대담했다.

“저는 제 아이가 마법을 써야 한다는 이 상황이 가장 꺼림칙해요. 앞으로 또 써야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더 꺼림칙하고요.”

“…….”

“이런 일이, 앞으로 또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잖아요.”

카리나는 누군가 자신을 납치하려고 하는 상황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롤랜드가, 혹은 멜리사가 공작저에 마법사가 한 명도 없다는 이유로 마법을 써야 하는 상황을 뜻했다.

‘만약 이자를 포섭하지 않는다면, 롤랜드나 멜리사가 계속해서 마법을 써야 할지도 몰라.’

카리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

“그리고 배신을 막을 만한 방법이 떠올랐어요.”

“뭐지?”

카리나는 자신의 가슴을 살짝 두드렸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티가 나지 않지만 그녀의 심장에는 자신의 위치를 눈앞의 마법사에게 시시각각 알려주는 표식이 박혀 있었다.

“이 표식…… 마법사가 스스로에게도 박아넣을 수 있죠?”

“……!”

“그리고 그 위치는 굳이 마법사가 아닌 사람도 알 수 있을 거고요.”

마법사의 입이 벌어졌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카리나는 웃었다.

“한 번 떠본 건데, 진짜였구나?”

“…….”

마법사는 분통 터지는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카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알겠지? 표식을…… 네 스스로, 네 심장에 박아넣으렴.”

마법사가 경악하면서 소리쳤다.

“너, 미쳤어?”

카리나는 마법사의 반응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 위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각하로 해. 죽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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