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43)화 (43/145)

<43화>

“제 도움이요?”

카리나는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 도움이라니……?’

자신은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었다. 특히나 이 사건에선 무기력하게 심장에 표식이나 박히지 않았던가.

제대로 된 반항 한번 못 해보고.

“그래.”

와일더가 기묘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우리의 친애하는 공작 각하께서는 그 생각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어. 아니, 반대했다고 말해야겠군.”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와일더는 나쁜 사람이 아니었지만 클로드처럼 교과서적인 도덕심이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부인은 미끼가 되는 거야. 나와 함께.”

“네?”

“계획은 간단해. 부인이 딱히 할 일도 없고. 그냥, 평소처럼 매일 출근만 하면 돼.”

“아…….”

카리나는 신음을 흘렸다.

“그러면 그자가 다시 올 것이라고 보시는군요.”

“정확해. 그자는 부인의 위치를 알고 있고, 나 또한 감시하고 있을 테니 우리가 일상으로 돌아갔다는 것 정도야 바로 알아차리겠지.”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마법사가 다시 현장에 나타날 때를 대비해, 잠복하고 있다가 덮친다.

하지만 이 계획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그자도 함정이라는 사실을 바로 눈치채지 않을까요? 너무 뻔하잖아요.”

카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웬만하면 해결은 와일더와 클로드에게 맡겨 두고 싶었지만, 가장 큰 피해자가 자신이니만큼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와일더가 코웃음을 쳤다.

“그 마법사를 회유한 건 베가 왕국이다. 강력한 마법사도 단칼에 죽여버리는 자들이지. 만약 뻔히 보이는 함정이라고 포기했다간, 그 마법사는 뼈도 추리지 못할 거야.”

카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와일더가 세운 계획은 타당했다.

‘분명, 그자를 유인할 수 있겠지.’

카리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충분히 생각한 뒤 내린 결론이었다.

“저는 이 계획에서 빠지겠어요.”

“왜지?”

와일더가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대체 왜? 조금이라도 위험해지기는 싫다는 건가?”

“네.”

카리나는 당당하게 대답했다.

“저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그자가 나타나 저를 노린다면 무기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죠. 누군가가 절 구해줄 때까지.”

“그야 그렇지만…….”

“거기다, 미끼 역할은 와일더 씨 한 명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부인이 있어야 해.”

와일더가 냉정하게 말했다.

“방금 말대로, 아무런 능력이 없는 부인이 나와 함께 다닌다면 그자는 평소보다 더더욱 방심할 거다.”

카리나는 한마디 톡 쏘고 싶은 요구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결국, 미끼는 저네요?”

침묵이 흘렀다.

와일더는 잠시 그녀의 시선을 피하며 딴청을 피웠지만, 입마저 막아 버릴 수는 없었다.

“하지 않겠어요.”

“부인.”

“어차피 공작 각하께서도 반대하셨다면서요. 제가 왜 그런 위험한 작전에 나서야 하죠?”

와일더가 기가 막힌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럼, 평생 동안 그 표식을 품에 안고 살 텐가?”

“목숨이 위험해지는 것보단 그게 낫죠.”

“부인은 보기보다 겁쟁이였군.”

카리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정확하게 보셨네요. 네, 전 겁쟁이예요. 지킬 게 많거든요.”

“…….”

와일더도 할 말이 없는 듯했다.

그는 허공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기껏 사용인으로 위장한 베가의 세작까지 찾아냈더니…….”

무슨 소리인지 궁금했지만 카리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분명 그녀가 들으라고 하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묻는 순간, 넘어가게 될 거야.’

역시 그녀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던 모양인지 와일더는 중얼거리며 말을 이었다.

“부인이 나서주기만 한다면, 세작을 통해 거짓 정보를 충분히 흘릴 수 있을 텐데…….”

“와일더 씨, 뭐라고 중얼거리시든 전 제 목숨을 가지고 도박할 생각이 없어요.”

와일더가 손을 내저으며 신경질을 냈다.

“나라고 뭐, 좋아서 이러는 줄 아는가? 다른 방도가 없어서 이러는 것이지!”

“각하께서 반대하신다는 건 다른 방법이…….”

급기야 와일더는 불같은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하! 있을 것 같나? 그 애송이는 그냥, 부인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뿐이야. 대안 따위는 없어!”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자신보다 훨씬 많이 알고 배웠다는 사람들이 기껏 내놓은 방안이, 아무런 힘이 없는 사람을 미끼로 내세우는 것뿐이란 말인가?

“왜 없죠?”

“그자를 꾀려면, 부인의 심장에 박힌 그 표식이 필요하니까.”

“…….”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확실히 할 말이 없어지는 답변이었다.

그녀 역시 평생을 이 표식을 안고 살 생각은 없었다.

무엇보다도…….

‘이 표식이 남아 있는 한은, 공작저의 보호를 받고 있어야 해.’

이대로 지워지지 않는다면 평생토록. 그 경우, 그녀의 의사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이 롤랜드는 클로드의 가신이 될 것이다.

‘그건…… 막아야겠지.’

카리나는 간절하게 물었다.

“정말, 다른 방법은 없나요?”

“부인에게 표식이 남아 있는 한은, 없어.”

“…….”

카리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표식을 옮길 수는 없나요? 일시적으로라도…….”

“없어.”

와일더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가 그 생각을 해 보지 않았다고 생각하나?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수는 다 생각해 보았어. 심지어 호문쿨루스조차…….”

“호문쿨루스요?”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그게 무슨 소리죠?”

“호문쿨루스를 아나?”

와일더는 조금 놀란 듯했다.

“네. 알아요.”

“그래. 호문쿨루스에 부인의 피를 섞는다면, 표식을 옮겨오지는 못해도 그대로 복사할 수는 있지.”

“……!”

심장이 쿵쿵 소리를 내며 뛰었다. 호문쿨루스. 그녀가 품속에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는 진흙 덩어리가 그 존재감을 빛냈다.

“하지만 호문쿨루스를 다룰 수 있는 마법사는 현재 공작저에 없어.”

“네?”

“마법사가 단 한 명도 없으니까.”

와일더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서 그 애송이가 부인에게 큰 기대를 건 거지. 뭐, 지금도 매달리는 걸 보면 그 이유만은 아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하지만 호문쿨루스를 움직이는 건…… 간단한 마법 아닌가요?”

렝케 경의 저택에서 탈출하기 위해 롤랜드와 멜리사가 간단하게 해낸 마법이다.

폭주를 감수하고서라도 카리나가 시도해 볼 가치가 있었다.

클로드와 와일더 역시 마법에 조예가 있어 보였다.

가장 어려운, 완성된 호문쿨루스 원형이 있으니 그걸 움직이는 거야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간단한 마법이라고?”

와일더가 눈살을 찌푸렸다.

“부인, 대체 누구의 밑에서 마법을 배운 건가? 호문쿨루스는 숙련된 마법사들도 어려워한다. 그 부작용이 크기에 웬만큼 성숙한 마법사가 아니면 시도조차 하지 않아.”

“부작용이라면…….”

“호문쿨루스에 시전자가 완전히 잡아먹힐 수 있어.”

“……!”

“그 경우, 시전자는 정신을 완전히 놓아 버리고 호문쿨루스가 살아서 돌아다니지.”

와일더가 잠시 망설이다가, 한 마디 덧붙였다.

“끔찍한 광경이야. 두 번은 보고 싶지 않은.”

“아…….”

카리나는 다시금 신음했다.

‘대체 난, 아이들에게 뭘 시킨 거였을까.’

무지의 대가가 처참하게 다가왔다.

비록 운이 좋았다고는 하나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 뼈아프게 와닿았다.

“왜 호문쿨루스에 대해 물었지? 설마…….”

“아무것도 아니에요.”

카리나는 도리질을 쳤다.

“그냥,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어요. 그래서 물어보았을 뿐이에요.”

“그렇군.”

와일더는 전혀 믿지 않는 눈치였지만 더 캐묻지는 않았다.

“일단은 생각해 볼게요. 당장 결정할 수는 없어요. 이해하시죠?”

와일더는 코웃음을 쳤다.

“시간은 얼마든지 주지. 하지만 부인은 결국 깨닫게 될 거야. 방법은 하나뿐이라는 걸.”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롤랜드가 큰소리로 외치며 그들에게로 달려온 건.

“제가…… 제가 호문쿨루스를 조형할게요. 할 수 있어요!”

“롤랜드!”

카리나가 기겁하며 롤랜드를 향해 소리쳤다.

롤랜드는 간절한 눈빛으로 와일더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엄마를 미끼로 쓰지 마세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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