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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40)화 (40/145)

<40화>

카리나는 일순간 굳어 버린 클로드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너무 무례했나?’

생각해 보니, 그냥 관용적인 인사말을 너무 진지하게 받아들인 듯했다.

“들, 들어가도록 하지.”

다행히 클로드는 역정을 내지도, 돌아가지도 않은 채 별채로 발을 들였다.

그때야 아스트리드가 와 있다는 귀띔을 살짝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카리나는 황급히 클로드의 뒤를 쫓았다.

“공, 공작 각하……!”

아스트리드가 희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아스트리드?”

클로드가 어안이 벙벙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여기에 있지?”

“그, 그게…….”

아스트리드는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 망설였다.

멜리사와 롤랜드는 처음에는 아스트리드와 제법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지만 클로드가 풍기는 위압감에 겁을 먹었는지 슬금슬금 멀어졌다.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간 음식이 모두 차려진 이후에도 모두가 이 자리에 못 박힌 것처럼 있기만 할 듯했다.

“각하, 공녀님께서는…….”

아스트리드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말하겠어.”

클로드의 눈이 가늘어졌다.

“나도 그게 옳다고 본다. 아스트리드, 대체 무슨 일이지?”

“…….”

아스트리드는 눈을 꽉 감았다가 떴다. 자수정을 닮은 눈동자에 물기가 서렸다.

“제가, 이 아이들에게 크게 잘못해서 사과하러 온 거예요.”

“뭐라고?”

“제가, 이 아이들한테……. 더럽다고 했어요.”

“……아스트리드.”

클로드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아스트리드를 불렀다.

아스트리드가 눈을 질끈 감는 것으로 보아, 무언가 질책이 쏟아질 듯했다.

바로 그때.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카리나의 치마폭에 감겨 있다시피 하던 멜리사가 앞으로 뛰쳐나갔다.

모든 사람들이 그녀의 등장에 깜짝 놀라 쳐다보았다.

“공녀님의 사과는 이미 받았어요. 저도, 롤랜드도 괜찮다고 했고요.”

“……!”

아스트리드와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앞은 맞았지만, 뒤는 새빨간 거짓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공녀님을 혼내실 필요는 없어요. 저희도 그냥 받아 주지는 않았으니까.”

멜리사는 숨도 돌리지 않고 말하더니, 클로드의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카리나를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카리나는 멜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멜리사는 그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눈을 깜박였는데, 안아 달라는 신호였다.

카리나는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아 올렸다. 조금 무거웠지만, 잠시라면 안아 줄 만했다.

“…….”

침묵이 흘렀다.

아스트리드는 새빨개진 얼굴로 어쩔 바를 모르고 있었고, 클로드는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결국 침묵을 참지 못한 카리나가 멜리사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입을 열었다.

“공작 각하, 저희는 이만 점심을 먹어야 해서요. 사실 공녀님도 제가 점심 식사에 초대해서 오셨거든요. 이만 용건을 말씀해주시겠어요?”

“아스트리드를? 점심에?”

클로드는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초대했어요.”

“……그렇군.”

클로드는 신음을 토해냈다.

“나는, 크흠, 그러니까…… 블로에 부인과 아이들이 불편한 게 없는지 살펴보러 왔다.”

“그게 다인가요?”

카리나는 놀라서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그래.”

“저희는 잘 지냅니다. 공작저는 참 아름다운 곳이고, 아이들도 만족하고 있어요.”

카리나는 슬쩍 클로드의 눈치를 살폈다. 공짜로 얹혀살고 있으니, 무언가 집주인에 대한 칭찬을 해 주어야 할 것 같았다.

“당연히 이 모든 건 공작 각하 덕분이죠. 바라시던 답이 되었나요?”

“다행이군.”

클로드는 어딘가 맥없이 대답했다.

“불편한 게 있다면 언제든지 찾아와서 말하도록.”

“그럴게요.”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실례했다.”

클로드가 멋쩍은 얼굴로 뒤를 돌아서 나가려 할 때였다.

“각하, 마침 시간이 식사 시간이라서…… 같이 드시겠어요?”

다분히 충동적인 권유였다.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카리나 자신조차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머리에 묻은 꽃잎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안부를 묻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남자를 그냥 돌려보내고 싶지 않아서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클로드를 간절하게 바라보는 아스트리드의 눈길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클로드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단순히 안부를 묻기 위해서는 아닌 것처럼 보여서일지도 모른다.

그 많은 가능성이 모여, 카리나의 혀를 움직였다.

“……그래도 되겠나? 준비를 네 명에 맞춰서 했을 텐데.”

“식기야 많고, 에두아르 씨는 손이 커서 항상 음식이 남는답니다.”

“알겠다.”

계속 굳어만 있던 클로드의 얼굴이 부드럽게 풀어졌다.

카리나는 황급히 부엌으로 달려갔다. 에두아르는 무언가를 열심히 젓고 있었다.

“에두아르 씨! 한 사람을 더 초대해도 괜찮을까요?”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 에두아르가 눈을 반짝 빛냈다.

“당연히 괜찮죠. 누굽니까?”

카리나는 조금 주저하며 대답했다.

“공, 공작 각하요…….”

“예?”

“안, 안되나요?”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에두아르는 잠시 허공을 노려보며 그녀가 알아들을 수 없는 몇 마디를 중얼거렸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카리나는 조금이라도 일손을 거들겠다며 그의 근처에서 얼쩡거렸다.

이내 방해만 된다며 쫓겨나고 말았지만.

거실로 돌아가 보니 아이들 셋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고, 클로드만이 의자에 앉아 마정석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카리나는 그 마정석을 금방 알아보았다.

자신의 심장에 표식이 박히도록 만든, 바로 그 마정석이었다.

“그걸 항상 들고 다니시나요?”

“물론이지.”

“이제 아무 쓸모가 없어진, 빈껍데기가 아닌가요?”

클로드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긴 하지. 그래도…… 잊지 않게 해 주니까.”

“뭐를요?”

“내가 바보 멍청이라는 걸.”

“…….”

카리나는 할 말이 없어 잠시 침묵하다가, 황급히 말머리를 돌렸다.

“아이들이 여기서 고양이 비슷한 무언가를 보았다고 하더라고요. 얘기를 들어보니 확실히 고양이는 아닌 것 같던데…… 뭔지 아시나요?”

클로드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변종 고양이다.”

“네?”

“고양이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개중 마물과의 교합종이 있는데, 아이들이 그걸 보고 겁에 질린 모양이군. 하나도 무서워할 것 없다.”

“그렇군요.”

카리나는 순순히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물과의 교합종이라면 충분히 아이들이 보기에 꺼릴만한 생김새일 것이다.

본판은 고양이니 멜리사가 평범한 고양이라고 생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이들을 찾으러 왔나?”

“그건 아니지만…… 지금 다들 어디에 있나요?”

클로드가 손가락으로 2층을 가리켰다.

“2층으로 올라가더군.”

“한 번 살펴보아야겠어요.”

2층으로 올라가려는 카리나를, 클로드가 붙잡았다.

“……고맙다.”

“뭐가요?”

“아스트리드가 그렇게 즐거워하는 건 처음 보았어.”

“……?”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 아스트리드는 새빨개진 얼굴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며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부인의 아이들과 즐겁게 놀더군.”

“공녀님이요?”

“그래.”

카리나는 좀 더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에두아르가 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면서 그들을 불렀다.

아이들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2층에서 내려오는 걸 보니 아스트리드가 즐거워했다는 클로드의 말은 거짓이 아닌 모양이었다.

에두아르가 메인 요리를 테이블 위에 내려다 놓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공녀님이 좋아하시는 음식들로 준비했습니다.”

클로드가 아스트리드를 힐끗 바라보았다.

“네가 연어 스테이크와 칠리소스를 끼얹은 칠면조를 좋아하는지는 몰랐구나.”

에두아르가 쾌활하게 대답했다.

“공녀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시는데요. 평소 다른 고기 요리는 거의 드시지 않지만 이 둘만큼은 싹싹 비우십니다.”

“…….”

아스트리드는 말없이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어찌나 긴장했는지, 포크를 들어 올리는 손이 바들바들 떨릴 정도였다.

보다 못한 카리나가 한마디 했다.

“아스트리드 님, 편하게 드세요. 좋아하는 음식이잖아요.”

클로드가 놀란 얼굴로 아스트리드를 바라보았다.

‘공녀님이라고 할 걸 그랬나.’

아무리 아스트리드가 먼저 부탁했다고 해도, 공작 앞에서 부를 만한 호칭은 아니었다.

카리나는 후회했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모양이었다.

클로드의 시선을 느낀 아스트리드가 몸을 부르르 떨더니, 카리나를 노려보았다.

겨우 열두 살 난 소녀에게 어울리지 않은, 찬 바람 쌩쌩 도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대로 불러.”

“알겠습니다, 공녀님.”

카리나는 부드럽게 대답했지만, 클로드는 가만히 넘어가지 않았다.

“무슨 짓이냐, 아스트리드. 네가 먼저 허락해 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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