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32)화 (32/145)

<32화>

가슴 한편이 먹먹해졌다.

‘딸이 있어서 내 마음을 이해하는 걸까.’

카리나는 자신의 생각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감히 어떻게 자신이 공녀에 대해 왈가왈부를 하겠는가.

우당탕!

별안간 물건들이 우르르 떨어지는 소리가 벽 너머에서 들려왔다.

카리나는 허겁지겁 창고 밖으로 나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런.”

부엌에 발을 들이자마자 클로드가 탄식하듯 중얼거렸다.

카리나는 황당한 얼굴로 바닥에 굴러다니는 식자재와 의자들을 바라보았다.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려고 애쓰다가 그대로 얼어붙어 버린 롤랜드가 조금 굳은 얼굴로 더듬거렸다.

“멜리사가 배가 고프다고 해서……. 저도 먹고 싶었고…….”

카리나는 곧 상황을 알아차렸다.

웬만한 식자재들은 모두 찬장에 들어 있거나 벽면에 매달려 있었다.

아이들의 키로는 닿을 도리가 없는 높이였다.

마법을 쓰자니 일전의 빵 사건이 생각났을 터.

결국 아이들은 의자란 의자는 모두 끌어모아 무언가 먹을 만한 것을 찬장에서 꺼내 보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은 낮에 받은 충격 때문인지 전혀 식욕이 없었지만, 지금은 점심시간이다.

아이들은 배가 고플 만도 했다.

멜리사가 롤랜드의 뒤에 숨어서 중얼거렸다.

“……그런데, 야옹이가 나타나서…….”

“고양이?”

카리나가 되묻자 롤랜드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고양이 같은 건 없었어요.”

멜리사가 화를 내며 롤랜드의 말에 반박했다.

“아냐, 야옹이었어!”

“그게 어떻게 고양이야? 완전 다르게 생겼잖아!”

“야옹이 맞아. 눈이랑 털이 이상하지만 그래도 야옹이야!”

카리나는 아옹다옹하는 아이들의 틈바구니에서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고양이 때문에 이렇게 된 거니?”

“고양이는 아니었어요. 이상한 거였어요.”

“야옹이었어.”

멜리사가 여전히 고집스럽게 한 마디 내뱉었다.

클로드가 복잡미묘한 표정을 짓더니, 멜리사를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양이가 맞아.”

“정말이에요?”

동그란 눈을 휘둥그렇게 뜨는 롤랜드와 반대로, 멜리사는 클로드가 자신의 편을 들어 주었는데도 얼굴을 찌푸리며 롤랜드의 뒤로 더더욱 몸을 숨겼다.

“그래. 여긴 특이한 고양이들도 많이 살거든.”

카리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특이한 고양이라니?’

카리나는 자신이 고양이에 대해 제법 잘 안다고 생각했다.

렝케 경의 저택에서도 고양이를 여럿 키웠으니까.

고양이는 그냥 고양이었다.

만약 롤랜드는 고양이로 생각하지도 않았고, 멜리사도 눈이랑 털이 이상한 고양이로 생각했다면, 그건…….

‘아마 고양이가 아니겠지.’

하지만 클로드는 고양이라고 말했다. 대체 무엇인지 그들에게 밝히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그러니 지금 이 자리에서 물을 수는 없어.’

카리나는 있다가 클로드가 돌아가고 나면, 대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이들에게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사용인이 한 명도 없군. 평소에는 비워 두는 집이라…….”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사람을 보내 주실 필요는 없어요.”

“세 명은 필요하겠어.”

클로드가 카리나의 말은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이 말했다.

“각하, 저흰 여기에 잠시 머물 뿐이니 굳이 그렇게 사람을 보내 주실 필요는 없어요.”

카리나는 클로드가 무언가 대답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요리도, 청소도 다 제가 하는 게 나을 거예요. 원래 하녀로 일했다니까요?”

“요리 하녀와 청소 하녀가 있지 않나? 그 중 어느 쪽이었지?”

엄밀히 말해 둘 다 아니었지만 카리나는 자신이 가까운 쪽을 말했다.

“청소를 담당했어요.”

“그렇다면 주방장을 보내주지.”

“……?”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대의 딸에게 내가 약속하지 않았나. 우리 주방장이 요리를 제법 잘한다고.”

“주방장이요?”

카리나는 기가 막혀 클로드를 빨리 바라보았다.

주방장을 보내주겠다니?

공작저의 주방장은 아무나 허투루 앉는 자리가 아니었다.

수십 년 동안 요리를 해온 베테랑들이기도 했지만, 의학 등 각종 지식에 해박해 결코 놓칠 수 없는 인재이기도 했다.

게다가 주방장이 겨우 그녀와 아이들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온다면, 공작 일가는 누구의 음식을 먹는다는 말인가?

클로드가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주방보조들도 요리를 잘해.”

“저도 요리를 못 하지는 않아요.”

클로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대가 왜 거절하려는지는 잘 알아. 그대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당연히 부담스럽겠지.”

“…….”

“하지만 거절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그대와 아이들의 호위도 겸할 테니까.”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아무래도 공작저는 주방장마저도 범상치 않은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 집이 위험하다는 소리는 아니다. 굳이 개인 호위가 없어도 마음대로 돌아다녀도 좋아.”

클로드는 잠시 생각에 잠겨 그녀를 바라보더니, 말머리를 돌렸다.

“아이들의 교육 문제가 남았군.”

“가정교사를 불러준다고 하셨죠?”

“그래. 내 여동생과 함께 배우면 될 듯하다.”

“네……? 따님이 아니라요……?”

“딸?”

클로드의 한쪽 눈썹이 올라갔다.

“부인, 무슨 생각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나는 결혼한 적이 없다. 당연히 자식도 없지.”

“……실례했습니다.”

카리나는 두 가지 사실에 놀랐다.

첫 번째는 클로드에게 가정교사에서 배울 만큼 어린 여동생이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 아까 멜리사에게 말했던 공주님은…….’

명백히 여동생을 가리키고 있었다.

두 번째는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는데, 무려 공작이 자신의 여동생과 같은 가정교사에서 배울 것을 제의했다는 점이었다.

“어떻게, 제 아이들이 감히 공녀님과…… 각하, 그것만큼은 재고해주세요.”

“나는 부인에게 최고의 가정교사를 불러 주겠다고 약속했어.”

클로드가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그 약속을 지켜야지.”

“토르스에는 굳이 공녀님의 가정교사가 아니라도 좋은 가정교사들이 많지 않나요?”

“그래, 하지만 최고의 가정교사는 단 한 명뿐이지.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군, 부인.”

카리나는 한숨을 삼켰다.

클로드는 이미 결정을 내렸다.

‘그래, 롤랜드와 멜리사에게는 좋은 일이니까.’

생각해 보면 클로드에겐 그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었다.

결국엔 롤랜드의 재능에 눈독을 들였기에 그녀에게도 관심을 보인 게 아닌가.

당연히 최고의 가정교사를 붙여 주겠다고 고집을 피울 만도 했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물론 요일과 시간은 달리해야지. 나이 차가 상당하니까.”

“몇 살 정도…….”

“부인의 큰아이가 몇 살인가?”

“여덟 살입니다.”

“그보다 네 살 많아.”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클로드는 자신보다 서너 살은 많아 보였다.

그런데 열두 살짜리 여동생이라니,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늦둥이인 모양이었다.

“부인도 아이들의 교육이 늦어지는 걸 원하지 않겠지. 당장 내일부터 시작해야겠어.”

클로드는 거실에 비치된 은빛 종을 울렸다.

“부인도 무언가 필요한 게 있으면 굳이 나가서 사람을 찾지 말고 이 종을 울려. 그러면 한가한 누군가가 달려올 거야.”

클로드는 친절하게 말을 덧붙였다.

“이 종은 저택 곳곳에 있지. 일손이 필요한 사용인들도 사용할 수 있어. 그러니 사용인이 종을 울리더라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말도록.”

카리나는 대체 무슨 원리인지 궁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잠시 후, 옷을 잘 차려입은 하인이 나타났다.

“테라이스 양을 불러오게.”

“알겠습니다.”

하인은 테라이스 양을 데리고 돌아왔다.

테라이스 양은 창백한 피부에 매서운 눈매를 가진 깐깐해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클로드를 향해 완벽한 예법으로 인사하더니 입을 열었다.

“이 아이들을 가르치시란 건가요?”

“그래. 아스트리드와 시간은 분리해서.”

“거절하겠습니다.”

카리나는 놀라지 않았다.

공녀의 가정교사로 일할 정도면, 상당한 신분의 귀족 영애일 것이다.

난생처음 보는 평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지 않을 만도 했다.

“테라이스 양.”

클로드가 경고하듯 입을 열었으나, 테라이스 양의 거센 항의에 묻혀버리고 말았다.

“공작 각하, 전 공녀님만으로도 충분히 벅찹니다. 그런데 두 명을 더 가르치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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