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30)화 (30/145)

<30화>

“멜리사!”

카리나는 당황하며 멜리사를 소리쳐 불렀다.

멜리사는 가지 않아도 된다고 확신하는 듯한 어조로 거듭 물었다.

“있어요, 없어요?”

클로드가 피식 웃었다.

“있어.”

“……진짜요?”

“그래.”

클로드는 무릎을 굽혀 멜리사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남부의 공주님이지. 널 보면 반가워할 거란다.”

“…….”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딸이 있었구나.’

클로드는 멜리사를 설득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았다.

공작과 공작의 가족들은 일반적인 귀족이 아닌, 군주와 군주의 직계 일가였다.

당연히 공작의 딸은 공주로 불릴 것이다.

상황이 자신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자 멜리사는 입을 삐죽거렸다.

클로드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더 원하는 게 있니, 멜리사?”

“……갈게요.”

“착한 아이구나.”

클로드는 멜리사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인만 괜찮다면, 주인장에게 바로 마차를 잡아달라고 하겠다.”

“짐을 챙겨야 해요.”

“사람을 보내면 돼. 아직 통증이 남아 있잖나. 지나친 움직임은 좋지 않다.”

카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알았지?’

아직 통증이 남아 있기는 했지만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참을 수 있을 정도였다.

전혀 티를 내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걸 눈치채다니.

“엄마, 아파요……?”

롤랜드가 겁먹은 얼굴로 카리나를 불렀다.

“별거 아니야. 오다가 돌멩이에 걸려서 넘어졌어.”

“엄마는 크니까, 넘어지면 더 많이 아플 거예요. 괜찮아요?”

“엄마는 어른이니까 별로 안 아파.”

카리나는 웃으며 롤랜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가지. 지체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으니.”

클로드는 여관 주인에게 금화를 쥐여 주며 네 사람이 탈 수 있는 마차를 부르라고 명령했다.

여관 주인은 손을 벌벌 떨며 금화를 주머니에 고이 챙겨 넣더니, 서둘러 마차를 부르러 떠났다.

잠시 후.

마차가 여관 앞에 도착했다.

‘……오.’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마차는 번쩍번쩍한 금장을 온 데 두르고 비단 커튼이 부착된, 카리나가 여태까지 본 것 중 가장 사치스러운 마차였다.

클로드의 어이없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과하군.”

“뭐, 예쁘네요.”

안은 더욱더 사치스러웠다. 카리나는 내부에 테이블이 있는 마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테이블 위엔 뜯기 아까운 포장지에 쌓인 간식거리가 놓여 있었다. 클로드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카리나의 입에서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각하, 드시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왜지?”

“먼지가 남아 있어요.”

카리나는 남은 간식들을 손으로 살짝 쓸어보았다.

겉보기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숨길 수 없는 먼지들이 손에 묻어났다.

“원래는 먼지가 제법 쌓여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저희가 탄다고 하니, 대충 털어낸 것 같아요.”

이 마차는 카리나가 묵는 값싼 여관 거리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마차였다.

아마 다른 숙소를 찾지 못하고 이 거리에 묵은 부유한 상인이 마차를 찾을 때를 대비해 만들었을 것이다.

사용한 적이 없으니, 간식 또한 누구도 손대지 않은 상태로 오래 남아 있었을 것이고.

“눈썰미가 좋군.”

“예전…… 결혼 전엔 하녀로 일했어요. 이런 건 바로 알아봐야죠.”

카리나는 공작에게 스스럼없이 과거를 얘기하고 있는 자신에게 조금 놀라고 말았다.

‘입조심을 해야겠어.’

카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공작저로 가는 내내 멜리사가 칭얼거렸기 때문에, 아이를 달래느라 클로드와 필요 이상 대화를 나눌 일은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롤랜드가 창문을 가리키며 외쳤다.

“엄마, 성이에요!”

성이라니?

카리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작저는 성이 아니었다.

호기심에 창문으로 다가간 카리나는 곧 자신이 얼마나 큰 착각에 빠져 있었는지 깨달았다.

은연중에 공작저 역시 렝케 경 같은 일반 귀족의 집보다 몇 배 정도 더 큰 수준의 저택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궁전이잖아.’

멜리사도 공작저의 모습은 신기했는지 창문에 찰싹 달라붙었다.

어느덧 마차는 오직 마차를 세우는 용도로 보이는 공간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클로드가 내리고, 그다음에는 아이들이, 마지막으로 카리나가 내렸다.

“엄마아…….”

카리나가 높다란 발 받침을 밟으며 조심스럽게 내리자마자 롤랜드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롤랜드?”

카리나는 서둘러 롤랜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

몸이 저절로 굳었다.

갈색 털이 복슬복슬한 귀여운 강아지가 롤랜드와 멜리사를 향해 꼬리를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카리나의 머릿속에, 불과 몇 달 전의 일이 떠올랐다.

어두운 지하실 안, 우리에 갇힌 귀여운 갈색 강아지. 창백하게 질린 롤랜드와 멜리사. 그 둘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자신.

마지막으로 렝케 경의 차가운 명령까지.

‘롤랜드, 저걸 죽여.’

‘못, 못할 것 같아요…….’

덜덜 떨던 롤랜드는 결국 강아지를 죽이지 못했고, 그 대가로 멜리사가 대신 벌을 받았다.

물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렝케 경은 계속해서 롤랜드에게 강아지를 죽이라며 다그쳤다.

멜리사와 강아지를 번갈아 보며 패닉에 빠진 롤랜드는 결국 강아지를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카리나는 강아지를 감싸 안았다.

롤랜드의 공격 주문은 카리나의 등에 커다란 상처를 냈지만, 최소한 강아지는 무사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당시 받은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공작저의 강아지는 롤랜드와 멜리사 중 누굴 더 환영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양쪽을 향해 번갈아 꼬리를 흔들었다.

“흐어, 흐어어…….”

급기야 롤랜드는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주저앉았다.

강아지는 친해지려는 시도라고 생각했는지, 바싹 얼어버린 롤랜드의 무릎에 올라가 턱을 핥기 시작했다.

카리나가 곧바로 강아지를 부드럽게 안아 올렸지만, 롤랜드의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이리 줘.”

클로드가 그녀에게서 곧바로 강아지를 건네받았다.

“아이들이 개를 무서워하는가 보군.”

“……네.”

카리나는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아이들을 향해 다가갔다.

겁에 질린 건 쭈그려 앉아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롤랜드 뿐만이 아니었다.

멜리사는 차렷 자세로 서서 땅바닥만 똑바로 노려보고 있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멜리사는 렝케 경의 고문을 저런 자세로 버티곤 했다.

비록, 한 시간도 채 넘기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지곤 했지만.

카리나는 둘을 한꺼번에 끌어안고 말없이 등을 토닥거렸다.

“엄마…….”

“……엄마…….”

두 아이의 입에서 동시에 흐느낌이 터져 나왔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이들은 아직도 렝케 경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삼촌의 개예요.”

멜리사였다.

카리나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냥 비슷하게 생긴 강아지일 뿐이야. 다친 곳도 없었잖아?”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롤랜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카리나는 그제야 자신의 말을 후회했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은 물릴 수가 없는 법이다.

“어쨌든, 그때 그 강아지랑 많이 달라.”

갈색 털이 복슬복슬한 강아지는 대륙 어디에나 널린, 흔히 볼 수 있는 종이었다.

카리나는 아이들의 공포심을 충분히 이해했지만 두 아이가 개를 볼 때마다 공포에 떨기를 바라지는 않았다.

지금은 어쩔 수 없이 강아지를 아이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는 방법으로 해결했다.

하지만 언젠가 이 문제에 정면으로 부딪쳐야 할 때가 올 것이다.

롤랜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로요?”

“그럼.”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너희들이 너무 겁을 먹어서 제대로 못 봤을 뿐이야. 그때…… 우리가 봤던 강아지는 머리에 흰 점이 있었는걸?”

두 아이만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었다.

카리나 역시, 그 강아지를 껴안아 롤랜드의 마법에 대신 다치지 않았던가.

심지어 무사히 살아남은 강아지를 개를 좋아하는 하녀에게 몰래 넘겨준 것도 그녀였다.

당연히 생김새는 아직도 생생히 떠올랐다.

롤랜드의 입술이 비죽이더니, 마치 카리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엄마가 그때 다쳤었잖아요…….”

“예전 일이잖아. 어쩔 수 없었고. 그리고 난 다칠 줄 알고 들어간 거였어.”

카리나는 빠르게 말을 쏟아냈다.

‘기억하는구나.’

사실, 카리나는 롤랜드가 그 사건을 빠르게 잊어버리기를 바랐다.

자신의 힘으로 카리나를 다치게 했다는 사실은 제법 충격이었을 테니까.

불행히도, 잊어버리기는커녕 두 아이에게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버린 모양이었다.

“나, 나는 또…… 엄마가 또…… 다칠까 봐.”

울먹거리는 롤랜드의 등을 두드리던 카리나의 손이 멈추었다.

‘맙소사.’

아이들은 강아지를 보았을 때, 그 실험실에서 겪은 자신들의 괴로움을 연상한 게 아니었다.

롤랜드와 멜리사는 자신들이 당한 심리적, 육체적 고통이 아니라 그녀가 다쳤을 때를 떠올린 것이었다.

설령 이 강아지가 정말로 렝케 경의 강아지라고 해도, 카리나가 그때처럼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머리는 어른처럼 차갑게 굴러가지 않는다.

카리나가 얼어붙은 머리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을 떠올리려고 애쓸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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