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29)화 (29/145)

<29화>

“공작저요? 제가요?”

카리나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조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방안이었다.

‘당연히 가게에서 나가면 안 되는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클로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카리나가 그렇게 생각할 만했던 것이, 클로드에 따르면 심장에 박힌 표식은 그녀의 위치를 시전자에게 알려주었다.

당연히 어딜 가든 그 장소를 위험에 빠트릴 것이다.

공작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제가 가면, 공작저도 위험해지잖아요.”

“블로에 부인.”

클로드는 나지막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부끄럽지만, 공작저는 전 제국에서 가장 안전한 곳이야. 황궁보다도 더.”

“…….”

카리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전생에 읽은 소설 속에서 항상 암살자와 마물, 반역자의 침입을 받기 일쑤였던 황궁보다야 당연히 안전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클로드의 말이 맞았다.

남부는 베가 왕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었기 때문에, 대대로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 견고한 요새를 구축했다.

지금은 시대에 걸맞게 성벽을 허물고 낡은 성을 개조해 최신식 저택이 되었지만 그 옛날 난공불락의 명성이 어디 가지는 않았다.

카리나가 공작저에 머물러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여기 머문다면 나를 지키기 위한 인력을 따로 보내야 하겠지.’

하지만 공작저에 머문다면, 상주 병력으로도 충분히 방어가 가능할 것이다.

카리나가 생각에 잠긴 탓에 침묵이 길어지자 클로드는 불안한 모양인지 불쑥 말을 꺼냈다.

“물론 걱정이 많이 되겠지. 사람들의 이목도 신경이 쓰일 테고. 하지만 입단속은 제대로 하겠다.”

카리나는 웃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실패하고 말았다.

사람들의 이목을 걱정하기엔 자신과 아이들은 이미 공공연한 가십거리가 되어 있었다.

“학교는 역시 가지 않는 게 좋겠어. 조금만 뒷조사를 해 보아도 그대의 아이들이라는 걸 알 테니 인질로 붙잡힐 수 있으니까.”

“……!”

카리나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클로드는 그녀의 동요를 눈치채지 못한 듯, 평이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다.

“대신, 이번 건이 모두 해결이 될 때까지 최고의 가정교사를…….”

“빨리 아이들에게로 가야겠어요.”

카리나는 냅다 클로드의 말을 잘랐다. 클로드가 뒷조사 이야기를 꺼낸 순간, 다른 모든 문제들은 카리나의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심지어 아직 클로드의 제안에 답을 하지 않았다는 점마저도.

이미 공작가의 적들이 아이들을 향해 달려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카리나를 지배했다.

‘학교만 갔어도, 조금은 안심했을 텐데…….’

하필 오늘은 학교가 일주일에 하루 유일하게 쉬는 날이었다. 카리나는 초조하게 입술을 짓이겼다.

‘유난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뭐, 상관없어.’

만약 여기서 꾸물거려 롤랜드나 멜리사가 죽는다면 절대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알았다.”

다행스럽게도 클로드는 바로 카리나의 뜻대로 움직여주었다.

클로드는 지금 상황이 아이들에게 위험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했기에 상당히 뜻밖이었다.

“감사합니다.”

카리나는 클로드의 도움을 받아 말에 올라타면서 인사했다.

“고마워할 것 없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도 없어요. 모두가 공작님처럼 대응해주시는 것도 아니니까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는 자들이 세상에 많지. 되레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는 자들도 많고.”

클로드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언젠가 그들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를 거다.”

* * *

마침내 그들은 여관 앞에 도착했다. 카리나는 반쯤 뛰어서 달려 들어갔다.

당황한 클로드가 그녀를 소리쳐 부르는 소리는 귓가에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아이들은 평소와 전혀 다를 게 없는 얼굴로 카리나를 맞이했다.

카리나는 반가워하는 아이들을 힘을 주어 끌어안았다.

“엄마……?”

“다행이야.”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정말, 다행이야…….’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싶은 안도감이 몰려왔다. 카리나는 아이들의 포근한 온기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이들이 무사해서 다행이군.”

“네. 정말로요.”

카리나는 아이들에게서 몸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롤랜드가 놀란 얼굴로 그녀에게 무언가를 물으려 입을 뻐끔거렸지만, 클로드가 조금 더 빨랐다.

“아이들이 안전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대답을 들려줬으면 하는데.”

카리나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아이들이 무사하다는 걸 확인했으니, 이제 다 같이 공작저로 가기만 하면 되는 것 아닌가.

“무슨 대답 말씀이신가요?”

클로드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한 한숨을 토해냈다.

“부인도, 공작저로 갈 것인지에 대해.”

카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제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였나요?”

“당연하지.”

클로드는 무슨 그런 당연한 걸 묻느냐는 듯 대답했다.

“받아들이든 거절하든, 그건 부인의 자유야.”

“그러면 제가 각하의 계획을 망가뜨리게 되잖아요.”

“그렇다고 내가 부인을 가둬 두기라도 하겠나? 부인은 자유민이야.”

“하지만 각하께서는 공작이시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당황스럽게도, 클로드는 기가 막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카리나는 자신의 말이 혹시 예의에 어긋났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맞는 말인데……?’

아무리 자신이 자유민이라 한들 클로드 데비아탄 토르스는 공작이었다. 당연히 자신은 그의 말에 복종하여야 한다.

“내가 공작이라고 해서 부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건 아니야.”

클로드는 조금 느리게 말을 이었다.

“원하지 않는다면 가지 않아도 좋아. 부인이 원하는 곳에 있도록 해. 아이들은 부인이 원한 대로 공작저에서 보호하지.”

“싫어요!”

갑자기 멜리사가 와아앙,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카리나는 당황하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멜리사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울먹거리고 있었다.

롤랜드가 멜리사를 황급히 끌어안는 카리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엄마는 우리랑 같이 안 가요……?”

멜리사는 롤랜드의 말을 듣자마자 크게 도리질 쳤다.

“싫어. 아무 데도 안 갈 거야!”

“멜리사, 우리는 잠시만 공작 각하의 보호를 받게 되는 거란다. 그리고 롤랜드, 당연히 엄마도 같이 갈 거야.”

다행히 멜리사는 금방 진정하고는 카리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카리나는 멜리사를 한 차례 꽉 안아준 다음, 자리에서 일어나 클로드를 향해 몸을 돌렸다.

“각하의 제안, 감사히 받아들이겠어요.”

“내가 원한 것이었으니, 내가 감사해야지.”

클로드가 부드럽게 대답했다.

카리나가 한 번 더 감사를 표하기 위해 입을 여는 순간, 멜리사가 그녀의 치마를 잡아당겼다.

“엄마, 꼭 가야 해요……?”

“가야 해.”

카리나는 엄하게 말했다.

“나쁜 사람들이 우리를 잡으려고 해서 가는 거야.”

“……!”

멜리사의 눈이 공포에 질려 크게 떠졌다.

아이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단 한 음절을 더듬거렸다.

“삼, 삼촌…….”

“삼촌은 아니야.”

카리나는 단호하게 멜리사의 말을 잘랐다.

그녀는 멜리사가 렝케 경의 이름을 밖으로 내지 않은 걸 다행스럽게 여겼다.

렝케 경은 일개 남작에 불과하다곤 하나 그 역시 귀족 연감에 실려 있는 귀족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삼촌은 우리를 찾지도 못했어. 다른 나쁜 사람들이란다.”

“삼촌보다 더 나빠요?”

다행히 멜리사는 눈치 빠르게 카리나가 의도하는 바를 알아챈 모양인지 렝케 경의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글쎄…… 비슷하려나. 자, 멜리사. 엄마는 이제 짐을 챙겨야 해.”

난감하게도 멜리사는 도리질을 치며 카리나의 치맛자락에 폭 파묻혔다.

“그래도 싫어요…… 안 갈래요.”

“이런, 멜리사.”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며 멜리사를 달랬다.

아이가 왜 이렇게까지 공작저로 가는 걸 거부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억지로 끌고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공작저에 가면…… 음…… 여기보다 훨씬 넓을 거야. 깨끗할 거고…….”

쩔쩔매는 카리나를 보다 못한 클로드가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자랑은 아니지만, 주방장이 제법 요리를 잘하지. 그리고 네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든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다. 없다면, 가지 않아도 좋아.”

“…….”

“무엇이든 말해 보렴.”

멜리사는 잠시간 클로드를 빤히 쳐다보았다.

불길한 직감이 들었다.

카리나는 아이의 입을 막기 위해 손을 뻗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멜리사는 의기양양하게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그럼, 공주님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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