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28)화 (28/145)

<28화>

클로드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떠올랐다.

“물론이지. 하지만 무엇보다도 부인의 안전이 우선이야. 아무리 재물을 받아 봤자 당장 쓸 수가 없으면 없느니만 못하지 않겠나.”

“재물을 바라는 건 아니에요.”

“재물이 아니라고?”

“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제 아이들을 보호해 주세요.”

“……!”

조금 전 클로드가 당황했다면, 이제는 크게 놀랄 차례였다.

카리나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전 집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제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릴 수 없으니까요.”

“알고 있다. 나 역시 부인을 집으로 돌려보낼 생각이 없었어. 그리고 아이들을…… 내가 어떻게 잊겠나.”

당연히 잊을 수가 없겠지.

카리나는 씁쓸하게 생각했다.

롤랜드의 잠재력을 알아보고 자신을 계속해서 가신으로 영입하려고 하는 남자가 아닌가.

하지만 지금, 그녀가 매달릴 수 있는 것 역시 눈앞의 남자뿐이었다.

“아이들을 봐 달라고 부탁할 사람은 와일더 씨뿐인데, 주제넘지만 그분 역시……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어서 불안해요.”

“물론 와일더에게 아이들을 맡기는 건 나도 반대야. 어린아이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절대 아니거든.”

“그런가요?”

카리나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와일더처럼 괴팍한 사람이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모습은 상상조차 어려웠다.

“그래도, 안전하다면 얼마든지 맡길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아니니까…… 공작저에서 제 아이들을 잠시 맡아 주실 수 없을까요?”

“그게 부인이 바라는 보상인가?”

“네. 재물은 안 주셔도 괜찮아요.”

카리나는 재물이 아예 필요 없다고는 않았다.

물론 아이들의 안전과 돈을 저울에 매단다면 카리나는 당연히 전자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클로드가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함과 동시에 재물도 내려준다면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클로드는 바로 대답하는 대신, 잠시간 카리나를 지그시 쳐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인정해야겠군. 정말 놀랐어.”

“주제넘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카리나는 순순히 인정했다.

자신은 공작가의 가신이 되라는 클로드의 제안을 두 번이나 거절했다.

당연히 아이들 역시 클로드의 가신이 될 리가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작저에서 아이들을 맡아 달라는 건 아무리 사고를 당한 보상이라지만 지나친 요구였다.

“뭔가를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나도, 부인이 말한 것과 비슷한 걸 제안하려고 했거든. 그러니 보상은 다른 걸 생각해 두는 게 좋을 거야.”

“……!”

클로드는 카리나의 놀란 얼굴을 슬쩍 바라보더니, 피식하고 웃었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네.”

카리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각하께서 제 아이들을 보호해 주실 의무는 없…….”

카리나의 말이 끝을 맺지 못하고 끊어졌다.

자신이 무언가 큰 착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 사람은 롤랜드를 포기하지 못한 거야.’

카리나의 몸이 조금 굳어졌다.

롤랜드의 재능을 이미 알아본 클로드가, 가신 제안을 겨우 두 번 거절했다고 포기할 인물은 아니었다.

‘지금 포기할 사람이었다면, 소설 속에서도 진작 포기했겠지.’

카리나가 망설이는 사이, 클로드가 끊어진 말을 이어서 완성했다.

“의무는 없다? 그 말만큼은 틀렸어, 블로에 부인. 나는 부인과 부인의 아이들을 지킬 의무가 있으니까.”

“제가 다쳤기 때문인가요?”

클로드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카리나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뭐지?’

카리나는 당황하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어딜 다쳤지?”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내 생각이 짧았군. 그런 일을 겪었는데 무사할 리가 없지. 당장 의사를 불러오겠다.”

“아뇨. 전 괜찮아요.”

실은 괜찮지 않았다.

전신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욱신거릴 뿐만 아니라, 현관까지 바닥을 기어가느라 다리에 멍과 생채기가 잔뜩 생긴 듯했다.

“별것 아니에요. 그냥 내버려 두면 저절로 나을 것들이라…….”

“다리.”

클로드의 차가운 말이 카리나의 말을 끊었다.

“그리고 전신의 움직임이 불편하다. 아마 통증이 아직 가시지 않은 것 같군.”

“…….”

“부인이 말이 틀리지는 않았어. 가만히 내버려 둬도 다 나을 것들이지. 하지만…….”

클로드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극적인 효과를 노려서라기보단 최대한 조심스레 말을 고르는 듯했다.

“기왕 낫는 거, 훨씬 편하고 빠르게 낫는 게 낫지 않겠나.”

“그야 그렇죠.”

“그러니 의사를 봐야 하는 거야. 가벼운 처치를 받고 진통제를 먹으면, 고통은 바로 사라질 거다.”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클로드는 분명히 그녀를 배려해주고 있었다.

문제는 그의 목적이 그녀의 평안이 아닌, 롤랜드라는 점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도움을 받을 필요는 없어.’

카리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했다.

“제의는 감사합니다. 하지만 참을 만해요.”

“……알겠다.”

클로드는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얼굴이었지만 치료를 더 강요하지는 않았다.

카리나는 싱긋 웃었다.

“그런 얼굴 하실 필요 없어요. 전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 정도야, 꽤 겪어 보기도 했고…….”

“겪어 봤다고?”

“아, 이 정도까지는 아녔을지도 몰라요.”

카리나는 황급히 말을 돌렸다.

렝케 경의 처벌은 이보다 좀 더 심했지만, 생각해 보니 평범한 과부가 마법에 휘말려서 고통받을 가능성이 클 것 같지가 않았다.

“그, 아이들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 알고 싶어요.”

“아.”

클로드는 그제야 그들이 아이들의 거취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이맛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카리나는 속지 않았다.

분명 클로드의 가장 큰 관심사는 롤랜드였다.

“아까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야겠군. 내가 부인과 부인의 아이들을 지키는 이유는 간단해.”

카리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참이었다. 좀 더 정확히는, 클로드가 그녀에게 말하고 싶은 이유가.

“부인은 이제 토르스 사람이니까.”

“……?”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저는 토르스 사람이 아니에요. 북부에서 왔…….”

“토르스에 살면 토르스 사람이지.”

토르스의 공작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부인은 토르스에서 살고, 토르스에서 일하고, 아이들을 토르스의 공립학교에 보내지.”

“…….”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 하나 반박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도 토르스 사람이 아니라면 어디 사람이란 말인가?”

“그, 그렇네요.”

카리나는 클로드가 제법 특이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굳이 반박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제가 토르스 사람인 게…… 무슨 상관이죠?”

“나는 토르스의 공작이니까.”

클로드는 그 이상 자명한 진리가 어딨냐는 듯 대답했다.

“당연히 토르스 사람을 지켜야지. 더군다나 내 실책으로 위험에 빠졌다면 더더욱.”

카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비록 이 모든 게 롤랜드를 겨냥한 클로드의 큰 그림이라고 하더라도,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영지를 다스리는 군주이니 영지민을 지키겠다는 말.

‘이 사람은, 다를지도 몰라.’

물론 클로드는 말 말곤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었다.

하지만 카리나가 여태까지 알아 왔던 귀족들은 말에서 이미 평민을 인간 취급도 하지 않는 천박한 사고방식이 드러났다.

그런데 이 사람은…….

좀 달랐다.

“……믿어도 될까요?”

카리나는 말이 튀어 나가기가 무섭게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저 생각만 했을 뿐인데, 입 밖으로 나오다니!

“믿지 못하는 모양이군.”

“아뇨, 믿을래요.”

“당연히 부인 입장에선 믿기 어렵겠지. 나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으니.”

“…….”

“그러니 부인, 내가 부인을 설득할 기회를 먼저 제안해서 고맙다고 생각한다.”

“아뇨, 각하께서는 아이들을 선뜻 보호하시는 것만으로도 정말 제게 과분한 일을 해 주시는 거예요.”

“무언가 착각하는 모양이군. 나는 부인도 보호하겠다고 했어.”

카리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잊지 않았어요. 이…… 표식이 해결될 때까지 여기에 얌전히 있을게요. 아이들도 만나지 않겠어요.”

카리나는 제발 아이들이 상황을 이해해주길 빌었다.

다행히 롤랜드와 멜리사는 마법 교육을 받았으니, 설명만 제대로 해 준다면 금방 이해해줄 것이다.

설령 이해를 하지 못하고 카리나가 그들을 떠났다고 생각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카리나와 함께 토르스 공작의 적들에게 노려지는 것보다야, 카리나를 잠시 원망하는 게 훨씬 나았으니까.

“무슨 소리지?”

클로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목소리였다.

“당연히 부인도 공작저에서 보호받게 될 거야. 아이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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