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23)화 (23/145)

<23화>

“아니에요. 제 잘못이에요.”

“뭘 잘못했는데?”

“분명, 제가 뭔가를 잘못 가르쳐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거예요. 삼촌 말이 맞았어요. 저는 삼촌 없이는 마법은 꿈도 못 꾼다는 게…….”

롤랜드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카리나는 할 말을 잠시 잃었다. 롤랜드는 항상 그녀를 놀래켰지만, 지금만큼 놀라게 한 적은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섣불리 위로해 주려다가 롤랜드의 마음을 더 다치게 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멀쩡했잖아!”

갑자기, 멜리사가 소리를 지르며 롤랜드를 밀쳐냈다. 카리나는 깜짝 놀라 멜리사를 소리쳐 불렀다.

“멜리사!”

놀란 건 카리나만이 아니었다.

롤랜드 역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멜리사를 바라보았다.

방금 멜리사가 그를 밀쳤는데도, 전혀 화가 나거나 언짢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멜리사가 앙칼진 목소리로 롤랜드를 향해 외쳤다.

“왜, 왜 롤랜드 잘못이라고 그러는 거야? 나는 아무 이상 없었다구!”

“멜리사!”

롤랜드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엄마는 처음 배우는 거였잖아! 내가 잘했어야 했다고! 삼촌이…….”

렝케 경의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멜리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항상 삼촌, 삼촌! 그렇게 삼촌이 좋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든가!”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카리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어린 시절 다른 아이와 다투어 본 적이 없었을뿐더러, 멜리사의 입장과 롤랜드의 입장 모두 이해가 되어 어느 한쪽을 혼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롤랜드가 자책하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카리나와 멜리사에게 마법을 가르치는 건 렝케 경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첫 발자국이었다.

그 첫 단계가, 실패로 끝났으니 롤랜드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멜리사는…….

‘멜리사는 나보다 롤랜드를 더 걱정하는 거야. 멜리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롤랜드니까.’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스럽기도 했다.

사이좋은 남매의 사이를 갈라놓는 원흉이 되는 것만큼 씁쓸한 일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아이들이 싸우는 걸 그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실제로 카리나가 생각에 잠긴 사이에, 두 아이의 다툼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해지고 있었다.

“롤랜드, 멜리사.”

결정을 마친 카리나는 아이들을 엄한 목소리로 불렀다.

“…….”

“…….”

두 아이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입을 다물고 상대를 째려보았다.

“한 명씩 말해 보자. 멜리사, 뭐가 문제니?”

“……롤랜드가 틀렸어요.”

“아니에요. 멜리사가 틀렸어요!”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정답이 없는 문제라서, 둘 모두가 맞았다고 말하며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금만큼은 멜리사의 편을 들어주어야 했다.

“와일더 씨가 다 설명해 주셨어. 절대 롤랜드 잘못이 아니야.”

카리나가 멜리사의 손을 들어 주었는데도 롤랜드는 전혀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동그랗게 눈을 뜨면서 카리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제 잘못이 아니에요?”

“그래. 롤랜드가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

“만약 제 잘못이면, 앞으로 절대 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롤랜드.”

카리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내 문제였어.”

“엄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롤랜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멜리사가 뻣뻣이 긴장하며 카리나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내 문제는 맞아. 나는 마법을 쓰면 안 되는 체질로 태어났어.”

“……!”

아이들의 얼굴이 경악에 질려 새파랗게 변했다.

“엄마…….”

멜리사가 카리나의 치맛자락에 고개를 파묻고 웅얼거렸다.

“아이고, 멜리사.”

카리나는 치마가 축축해지는 걸 눈치채고는, 품에서 손수건을 꺼내 멜리사의 얼굴을 닦아 주었다.

“절대 롤랜드 잘못이 아니야. 나는 원래부터 마법을 쓰면 안 되는 체질이었어. 그 사실을 이제야 알았을 뿐이야.”

“……그, 그런 게 어딨어요.”

롤랜드가 떨리는 목소리로 반박을 시도했다.

“그런 건 한 번도 못 봤어요. 제가 얼마나 많이 배웠는데, 삼촌의 책들엔 그런 말이 하나도 없었다구요!”

“렝케 경이 모든 걸 다 아는 건 아니야.”

카리나는 렝케 경이 아는 게 별로 없다거나, 그동안 그가 롤랜드에게 한 말이 모두 틀렸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좋든 싫든 롤랜드는 렝케 경의 가르침 하에 많은 걸 배웠다.

렝케 경을 지나칠 정도로 비하한다면 아직 어린 롤랜드에게 혼란만 심어 주게 될 것이다.

“삼촌이…… 모르는 게 있다고요?”

“그래.”

카리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아는 걸 네게 다 알려 주지도 않았을 거고.”

“아…….”

롤랜드는 그제야 겨우 납득한 듯, 고개를 떨구며 중얼거렸다.

“저도 와일더 씨를 믿어요. 하지만, 엄마가…….”

카리나는 롤랜드의 말을 잘랐다.

“나는 마법을 못 써도 괜찮아.”

멜리사가 카리나의 팔을 잡아당기며 얼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엄마, 진짜 못 쓴대요?”

“못 써. 아니, 쓰면 안 돼. 그리고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카리나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내뱉었다.

고통스러운 거짓말을 하자니 속이 쓰렸다.

“너희들이 마법보다 훨씬 소중해.”

이건, 진실이었다.

* * *

토르스의 공작, 클로드 데비아탄 토르스는 천천히 방안을 거닐었다.

잘생긴 이마는 찌푸려졌고, 항상 이지적으로 빛나던 눈은 허공을 배회하여 누가 보아도 깊이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공작가에서 오랫동안 일한 시종장이 그 원인을 조심스레 물어온 건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각하, 무슨 고민을 그리하십니까?”

“……아무것도 아니다.”

클로드는 멍하니 시종장을 돌아보았다.

“이번에도 다 내 잘못이겠지.”

“맹세컨대, 그건 아닐 겁니다.”

“고맙다, 치체스터 경.”

클로드는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

자신이 태어나기도 더 전부터 공작가에 충성했던 이 나이 든 시종장은 언제나 그에게 관대했다.

하지만 클로드는 더는 위로가 필요한 ‘어린 도련님’이 아니었다.

“하지만 작금의 상황은 내 문제라고밖에 말할 수가 없어.”

“각하. 그게 무슨……?”

“또 실패했네.”

클로드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카리나 블로에는 이번에도 자신의 영입 제안을 단칼에 거절해 버렸다.

아니, 면전에서 거절당한 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었다.

공작가의 초대장을 보냈는데도 답장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공작저에서 키우는 꽃과 함께 보낸 정식 초대장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입맛이 썼다.

자신이 인재 영입에 실패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으며 마지막 역시 아닐 것이다.

하지만 카리나 블로에는 너무나 탐이 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었기에 무척 아쉬웠다.

“이번에는 누굽니까?”

시종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상황을 바로 알아차린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작가의 일원이라면 젊은 공작의 인재에 대한 집착을 모를 수가 없었다.

클로드는 한숨을 폭 내쉬었다.

“……블로에 부인. 와일더의 조수야.”

“와일더가 안 놔준 거군요. 그 배은망덕한……!”

시종장의 눈이 불타올랐다.

그는 평민 주제에 클로드에게 무례한 말들을 툭툭 내뱉는 와일더를 끔찍이도 싫어했다.

그 와일더라면, 공작의 제안을 받고 뛸 듯이 기뻐하는 자신의 조수를 억지로 붙들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아니.”

클로드는 고개를 저었다.

“내 명인데 어떻게 와일더가 놔주지 않을 수가 있겠나. 본인이 거부했어.”

“세상에.”

시종장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각하가 누군지는 알고 거부한 겁니까?”

“사실, 내가 누군지 알자마자 바로 도망치려고 하더군.”

클로드는 씁쓸하게 웃었다.

“겁이 난 모양이야.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다고 생각 안 했는데.”

“그럴 리가요. 각하께서는 매우 잘생기셨습니다.”

시종장은 고개를 저으며 극구 부정했지만 클로드는 대충 흘려들었다.

치체스터 경은 갓난아기 시절부터 보살펴 온 자신에 대한 콩깍지가 심하게 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면 아이 둘 있는 과부를 탐낼 호색한처럼 보였다거나.”

이쪽이 좀 더 가능성 있었다.

자신은 종종 공작령 휘하 영주들이 일으킨 문제를 해결해야 했는데, 개중 여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색을 탐한 영주의 사건도 있었다.

비단 남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건 풍문을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공작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이곳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으니까요.”

“여기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 나에 대해 잘 모르겠지.”

클로드는 카리나 블로에의 영입을 위해 와일더에게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캐냈다.

애석하게도 쓸 만한 정보는 별로 없었지만, 모르는 것보단 나았다.

시종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곳 사람이 아니라고요?”

“그래. 북부 출신인데, 원래는 수도로 가려고 했다더군. 우연히 오게 된 모양이야.”

“……각하.”

클로드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시종장은 무언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한 목소리였다.

“저는 블로에 부인의 영입을 반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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