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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22)화 (22/145)

<22화>

카리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뭐든지 문제점부터 알고 해치우는 게 낫다.

“나쁜 소식이요.”

“안 돼. 좋은 소식부터 들어야 해.”

카리나는 얼굴을 찡그렸다.

이럴 거면 대관절 왜 물어봤다는 말인가?

“나는 블로에 부인이 좋은 소식부터 듣겠다고 말할 줄 알았지.”

와일더가 조금 미안한 얼굴로 설명했다.

“보통은 그러잖나.”

“그런가요?”

“흠, 적어도 여기 사람들은 그래. 좋은 소식부터 들어서 그걸 위안으로 삼으려 하지.”

“좋은 소식은 있다는 것 자체가 위안 아닌가요?”

“정확한 내용을 들을 때까지는 그렇다고 할 수도 없어.”

“알았어요. 그럼 대체 그 좋은 소식은 뭐죠?”

카리나는 순서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와일더는 그녀에게 두 가지 모두를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저 와일더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끄는 게 느껴져, 그 내용이 더욱더 궁금해졌을 뿐이었다.

“일단, 지금 블로에 부인이 일으키는 현상은 길어도 사흘 안에는 사라질 거야.”

카리나는 안도했다.

와일더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하는 걸 보니 자신을 해고할 생각은 없는 듯했다.

물론 이 현상이 아무런 조치가 없어도 사흘 만에 사라진다는 것 역시 좋은 소식이었고.

“사흘 동안은 식물에 최대한 접촉하지 말아야겠군요.”

“그래. 이 일을 그만두고 꽃집을 열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식물을 만져도 되고.”

“아쉽네요. 꽃집을 열 돈만 있으면 당장 그만두는 건데.”

와일더가 카리나의 농담이 마음에 들었는지 킬킬거리며 웃었다.

“블로에 부인에게 돈이 없는 게 천만다행이군.”

“나쁜 소식은 뭔가요?”

카리나는 와일더를 재촉했다.

와일더가 거창하게 뜸을 들이길래 긴장했는데, 듣고 보니 좋은 소식은 별것 아니었다.

어차피 카리나도 이 기이한 현상이 오래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쁜 소식 역시 대수롭지 않은 수준일 듯했지만, 긴장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쁜 소식은…….”

와일더의 목소리가 한층 낮게 가라앉았다.

“블로에 부인은 앞으로 마법을 써선 안 돼.”

“……네?”

카리나는 입술을 겨우 달싹거리며 되물었다. 방금 들은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부인이 마법을 시도할 때마다 이런 현상이 일어날 거야. 그걸 어떻게 감당하겠나?”

“……!”

카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거대한 종이 바로 옆에서 댕댕거리며 울리고 있는 것처럼 머리가 먹먹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심지어 자세한 설명조차 요구할 수 없었다.

들었다간, 자신에게 남아 있는 일말의 희망마저도 산산이 조각날 것 같았기에.

와일더가 그녀를 안쓰럽다는 듯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너무 상심하지는 말게. 블로에 부인이 잘못한 건 아무것도 없어. 그저 운이 나빴을 뿐이야.”

“…….”

“이유가 궁금하겠군. 간단해. 일종의 체질이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체질이라니……?’

병약한 체질, 건강한 체질 등 마법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단어가 지금 상황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와일더가 정말 내키지 않는 듯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아주 가끔 이런 경우가 있기는 해. 마법사의 재능을 타고나기는 하지만, 그 위험성 때문에 결코 마법을 써서는 안 될 자들이지. 직접 만난 건 부인이 처음이야.”

“아…….”

카리나는 나지막한 신음을 흘렸다.

‘와일더 씨가 옳아.’

카리나는 별다른 질문이나 의심도 없이 와일더의 말을 바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시도조차 못 하고 자랐던 그녀의 유년 시절이, 와일더의 말을 뒷받침해 주고 있었으니까.

‘내게 가능성이 있다면 렝케 경이 나 역시 대마법사로 키워보려고 했겠지.’

그간 카리나는 렝케 경이 마법을 가르쳐 주지 않은 이유가 단순히 자신이 그의 사생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택의 모든 이가 그녀의 출생을 알고 있었고, 아무리 소질이 뛰어나다 한들 사생아라는 신분으로는 모든 사회적 활동이 막혀 버리는 게 제국의 인식이었으니까.

하지만 와일더의 설명은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기억에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카리나가 아주 어렸을 때, 렝케 경은 그녀를 시험해 보았을 것이다.

‘…….’

카리나의 몸이 순간 경직되었다.

렝케 경이 아이들을 상대로 가장 먼저 가르치는 마법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

첫 마법에 성공한 아이들은 금세 불의 아름다움과 따뜻함에 현혹되곤 했다.

난이도 또한 쉬운 편이었기에 렝케 경이 불이 아닌 다른 마법을 처음으로 가르친 적은 없었다.

당연히 어렸던 카리나 또한 첫 마법으로는 불을 생성하는 법을 배웠을 것이고.

그 결과는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렝케 경은 그때 알게 된 거야. 내가 마법을 써서는 안 되는 체질이라는 걸.’

당연히 렝케 경은 기겁하고 카리나에게 그 어떠한 마법도 허락하지 않았으리라.

카리나는 평생을 걸쳐 렝케 경을 증오하고 두려워했다.

하지만, 자신에게서 마법을 막은 것만큼은 옳은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나는 마법을 접해선 안 되는 사람이었어.’

그간 렝케 경이 자신에게 마법을 금지했던 이유를 말해 주지 않은 건, 생물학적 아비로서 마지막 배려였을까.

카리나는 손등으로 이마를 쓸어내렸다.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고, 렝케 경은 그때나 지금이나 벗어나야만 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알겠어요.”

“괜찮나.”

“당연히, 아니죠.”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제가 마법을 배울 기회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와일더 씨 덕분에 배울 기회가 생겼고, 그 덕에 제가 배워선 안 된다는 걸 알게 된 거니 후회는 없어요.”

“그래도 교육은 계속하겠네.”

“왜죠?”

“나는 원래부터 부인을 좋은 마법사로 만들 생각이 없었어. 좋은 마법상으로 키우기 위한 교육이었지.”

“……!”

듣고 보니 그랬다.

마법사 교육이라고 생각했던 건 순전히 카리나의 착각에 불과했다.

아니, 착각이라는 표현조차 자기기만이었다.

와일더는 단지 마법사들이 필수적으로 배워야 할 사항이라고만 말했으니까.

그 어디에도 그녀를 마법사로 키워주겠다는 말은 없었다.

‘당연히 기초적인 마법 지식은 마법상도 알아야 하는 거니까…… 그걸 생각하지 못했어.’

밀려오는 죄책감에 속이 쓰라렸다.

“다만, 더 이상 아이들에게 마법을 배우지는 말게. 블로에 부인을 위해서야.”

“……당연히 그러지 말아야죠.”

카리나는 씁쓸하게 대답했다.

지금은 사소한 해프닝에 그쳤지만, 큰 재앙으로 번질 수도 있었다.

만약 롤랜드가 식물을 키우는 마법 대신 불이나 물을 만들어내는 마법을 가르쳐 주었다면…….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가 무슨 짓을…….’

그동안 마법을 배울 수 있다는 흥분이 눈을 가렸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와일더에게 민폐를 끼치지도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블로에 부인.”

와일더의 엄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상한 생각은 그만하게.”

“안 했어요.”

“한 것 같은데.”

“그냥, 롤랜드가 처음으로 가르쳐 준 마법이 꽃을 피워내는 마법이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에요.”

“……부인.”

와일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자책할 필요는 없어.”

“그래도, 만약 제가 불이나 물을 생성하는 마법을 배웠다면…….”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카리나에게, 와일더가 퉁명스레 꾸짖었다.

“만약? 만약이라고? 그럼 만약 내가 블로에 부인한테 불 마법을 시켰더라면 어쩔 건가.”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잖아요.”

“그래. 그리고 부인이 불 마법을 배우는 일 역시 일어나지 않았어.”

“아…….”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지? 그러니까 잡생각 그만하고 얼른 일이나 하게.”

* * *

카리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아이들은 그녀가 문을 열자마자 현관으로 뛰어왔다.

“와일더 씨가 뭐라고 하셨어요?”

롤랜드는 얼마나 급했는지, 한쪽 손에 석필을 든 채였다.

“길어도 사흘이면 사라질 거라고 하셨어.”

“휴우, 다행이다.”

롤랜드와 멜리사는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안도하더니, 카리나의 치맛자락에 엉겨 붙었다.

카리나는 롤랜드의 어깨가 마치 울음을 참는 것처럼 들썩인다는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황급히 바닥에 주저앉아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아니나 다를까, 롤랜드의 눈이 발개져 있었다.

“걱정했어요오…….”

롤랜드가 웅얼거렸다.

“아이고, 롤랜드.”

카리나는 롤랜드를 끌어안는 동시에 멜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저택을 떠나온 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도, 어느덧 두 아이에게 애정을 공평하게 배분해 주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그때, 멜리사가 카리나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계속 자기가 엄마를 잘못 가르쳐서 그렇대요. 아까부터 계속 뭘 잘못했는지 찾아내려고 하고 있었어요.”

카리나는 눈을 감았다.

목이 칼칼했다. 이 모든 게 명백히 그녀 자신만의 문제인데도, 롤랜드는 자기 자신을 책망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사고에도 아이들이 씩씩해 보였던 건, 사고를 이겨내기 위한 남매만의 대처였던 것이다.

카리나는 롤랜드도, 멜리사도 품에서 떼어놓았다.

롤랜드의 커다란 눈망울에 눈물이 서려 있어 가슴이 아파 왔다.

멜리사 또한 롤랜드가 걱정된 모양인지 안절부절못하며 손을 비비적거리고 있었다.

카리나는 한 음절 한 음절을 또박또박 말했다.

“이건, 롤랜드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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