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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12)화 (12/145)

<12화>

카리나는 잠시 어이가 없어 멍하니 있었다가,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롤랜드는 보기보다 훨씬 섬세한 편이었다.

자신이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에, 저 작고 귀여운 머리에는 수십 가지 심각한 걱정이 스쳐 지나갈 것이다.

“내가 아파 보이니?”

“……힘들잖아요. 저희 때문에…….”

“내가 이런 것들로 아플 사람이었다면, 진작 몇 년 전에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을 거야. 너희들과 만나기도 전에.”

“……!”

롤랜드의 눈이 커지는 걸 보니, 제법 효과가 있는 말이었다.

“렝케 경이 너희들만 데리고 있었다고는 생각하지 말렴. 그리고 렝케 경 본인도……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 어휴.”

카리나는 질색을 했다.

지난 십여 년 동안 그녀가 저 집에서 쓸고 닦은 것들에 비하면 밀가루 반죽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엄마도 어릴 땐 우리처럼 마법을 배웠어요?”

“……아니.”

카리나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렝케 경은 내게 마법사의 재능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한 번도 가르치려 들지 않았어. 오히려 내가 마법에 관심을 보이는 걸 무척 경계했지. 대신 이런 걸 배웠단다.”

카리나는 웃으며 걸레를 들어 보였다.

“덕분에 너희들이 만들어놓은 이 난장판을 청소할 수 있고. 괜찮지 않니?”

“마법을 써서 치우려고 했어요. 치우려고 했는데……!”

롤랜드의 눈가가 발개졌다.

“마법을 쓰면 쓸수록 더 엉망이 되어서…….”

곳곳에 보이는 물웅덩이와 거품의 이유가 설명이 되는 고백이었다.

“으이구.”

카리나는 걸레를 놓고 롤랜드에게로 다가갔다.

롤랜드는 아직 밀가루 반죽투성이였지만 카리나는 개의치 않고 롤랜드를 안아 주었다.

어차피 자신의 옷도 한창 청소를 하느라 더러워진 상태였다.

“롤랜드, 너희가 잘못한 게 있다면 모든 걸 너희들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는 거야.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하지 않고.”

“잘, 잘 해내지 못한 게 잘못한 게 아닌가요?”

어리둥절하며 카리나를 올려다보는 눈빛이 가슴이 아팠다.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너희들은 이제 너희 둘뿐인 게 아니잖니.”

“……고아원에서도 늘 저희 둘이서 해야 했어요.”

“지금은 아니야.”

카리나는 힘을 주어 말했다.

“언제라도 내게 도움을 요청하면 돼.”

“엄마가……. 힘들잖아요.”

“그래, 롤랜드 말이 맞아.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야.”

카리나는 롤랜드를 더욱더 힘을 주어 껴안았다.

“하지만 너희들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있어.”

“엄마…….”

“너희들 힘으로 힘들겠다 싶은 건 꼭 나에게 도와달라고 해야 해. 너희들끼리 끙끙거리지 말고. 알겠어?”

“네……!”

롤랜드의 목에서 울음 섞인 대답이 터져 나왔다.

카리나는 한숨을 쉬며 롤랜드를 달래주었다. 곧이어 멜리사도 같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두 아이를 끌어안고 눈물을 닦아 주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욕실을 나가면 온통 난장판이다.

아이들은 몸 군데군데 밀가루 반죽이 남아 있는 걸 보니 역시 자신이 제대로 씻겨 주어야 할 것 같았다.

어쩌면 소란을 들은 여관 주인이 한소리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리나는 행복했다.

* * *

아이들이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카리나 역시 새로운 일자리에 익숙해졌다.

와일더는 카리나의 사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꿰뚫어 보았고, 첫 달 월급은 예정보다 2주 일찍 주기로 약속했다.

카리나는 어느덧 사흘 후로 성큼 다가온 첫 월급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드디어 루비와 가넷이 어떻게 다른지 익혔고, 다이아몬드의 등급은 어떻게 구분하는지 배웠다.

하지만 와일더는 다른 일반적인 보석처럼 마정석에 대해선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귀한 마정석들을 카리나에게 보여 주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때마다 카리나는 자신이 느낀 바를 그대로 설명했고, 와일더는 무척 흡족해하는 듯했다.

“아주 재능이 있어.”

“보석상의 재능인가요?”

“비밀.”

와일더는 킬킬거리더니 카리나가 조금 전 수상쩍다고 얘기한 마정석을 집어 들고는 찬찬히 살폈다.

“내 장담하지. 삼 년 뒤면 블로에 부인은 이 작은 가게 따윈 무시할 정도로 큰 가게를 열 수 있을 거야.”

카리나는 와일더가 보석상에 관해 얘기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마정석…… 상인인가요?”

“마법상이라고 해 두지.”

“……!”

“나쁘지 않은 직업이야, 마법상은. 마법사처럼 음침한 족속들과 거래해야 한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카리나는 와일더의 넋두리를 듣다가 불쑥 질문을 던졌다.

“공작 각하께서도, 마법사이신가요?”

“공작?”

와일더는 눈을 끔벅거렸다.

“내가 말 안 했나?”

“그냥, 마법에 조예가 있다고만…….”

“말 그대로 조예만 있지. 조예만.”

“네?”

카리나는 그 말이 정확히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손님의 출입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와일더 보석 상점입니다…….”

말꼬리가 저절로 흐려졌다.

“또 보는군.”

들은 지 일주일 넘게 흘렀지만 아직도 기억 속 생생한 목소리가 카리나의 귓가에 박혔다.

“안 그래도 각하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잘 오셨지 뭡니까.”

“……내 얘기를?”

날카롭던 공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누구랑?”

“여기 사람이 두 명이 아니라 세 명으로 보입디까?”

와일더가 대놓고 투덜거렸다.

“…….”

공작은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시선으로 카리나를 뚫어지라 쳐다보았다.

와일더는 제대로 된 대답을 할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해명은 카리나의 몫이었다.

“아, 그게…… 마정석 얘기를 하다가…….”

“그런가.”

공작은 그만하면 되었다는 듯 손을 휘저어 카리나의 말을 끊었다.

“그럼 마침 내가 때맞춰 왔군.”

그는 와일더의 손에 비단 주머니를 건네주었다.

“황실에서 내려온 것입니까?”

“골치 아프게 되었어.”

“각하께서 골치 아플 게 뭐가 있습니까. 제가 문제지.”

“자네에게 잔소리 듣는 내 골치가 아파.”

와일더는 한숨을 내쉬는 듯하더니, 카리나를 불렀다.

“블로에 부인, 이것 좀 보시오.”

카리나는 와일더에게서 주머니를 건네받았다.

금색 실로 사자가 수놓아진 게, 범상치 않은 물건이 안에 담겨 있다는 걸 암시하는 듯했다.

“……!”

“뭐가 느껴지지?”

카리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황급히 저으며 와일더에게 되돌려주었다.

“이건……. 위험해요.”

“위험하다고?”

“제가 첫날 봤던 것과 비슷해요.”

카리나는 최대한 빠르게 설명했다. 저것 근처에서 최대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곧 폭주할 것 같아요.”

그다음부턴 모든 게 정신없이 돌아갔다.

공작은 순식간에 와일더에게서 주머니를 낚아챘고, 그 안에 든 마정석을 꺼냈다.

“……!”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여태까지 보아왔던 평범한 돌멩이 모양의 마정석이 아니었다.

어느 귀족 마님이 끼고 다닐 만한 화려한 산호 브로치였다.

공작은 그 산호 브로치를 당장이라도 으깨 버릴 기세로 움켜쥐었다.

“잘 봐둬.”

와일더가 이죽거렸다.

“저게 부인이 그렇게나 궁금해했던 공작 각하의 정체니까.”

“닥쳐, 와일더.”

공작의 이마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카리나는 숨죽여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공작이 마법사는 아닌 듯했으니 마정석으로 무언가 마법을 부릴 것 같지는 않았다.

‘봉인을 하려는 걸까?’

마법사는 아니지만, 마력을 억누르는 체질을 타고나 미쳐 날뛰는 마정석이나 마도구를 제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작이 그중 한 명이라면 와일더의 모호한 말이 이해가 간다.

하지만 다음 순간, 카리나의 망막에 비친 광경은 추측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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