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11)화 (11/145)

<11화>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조금 전 느껴졌던 냉기 탓에 당연히 공작의 손은 차가우리라고 생각했는데, 도리어 뜨겁게 달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일더는 나머지를 조사해.”

“힘든 건 다 내게 시키는구만.”

와일더는 투덜거렸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공작은 마정석을 품속에 넣더니, 더는 이 작은 가게에 볼일이 없다는 듯 인사도 하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와일더는 지친 얼굴로 의자에 털푸덕 주저앉았다.

“저 애송이를 출입 금지 시키든가 해야지…….”

“내일부터 여기 출근하면 되나요?”

“응? 당연하지.”

와일더는 뭐 그런 걸 다 묻는냐는 듯 카리나를 짜증스레 쳐다보았다.

“오늘 잘했어. 그렇게만 계속 해 주면 돼.”

카리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지만 간신히 마법에 대해 물어볼 용기를 냈다.

“저어, 마법은…….”

“나는 마법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라.”

와일더는 손을 내저었다.

“공작은 어느 정도 알겠지. 궁금하면 애송이한테 물어봐. 말리진 않겠어.”

말하는 투로 보아, 공작 역시 마법사라기보단 마법에 조예가 있는 수준인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럴 순 없다는 거, 아시잖아요.”

“그럼 계속 아까 했던 대로만 해 주면 돼. 보이는 걸 숨기려 들지 말라는 말이야. 알겠나?”

“네.”

와일더는 그녀를 향해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을 내밀었다.

“잘해 보자구, 블로에 부인.”

* * *

일주일이 흘렀다.

카리나는 그 불결한 여관보다야 조금 더 나은 여관으로 옮겼다.

그다지 만족할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정도의 환경은 되었다.

아이들 역시 새로운 여관을 더욱 좋아했다.

카리나는 아이들에게 푼돈에 살 수 있는 장난감들을 여럿 사 주었고, 근처의 또래 아이들과 놀아도 좋다고 허락했다.

‘나처럼 자라게 할 수는 없어.’

카리나는 아직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했다.

‘어머니는 나에게 신경 하나 쓰지 않았고, 렝케 경은……. 생각을 말자.’

롤랜드와 멜리사만큼은 자신이 어릴 적 부러워하던 다른 아이들처럼 컸으면 했다.

생일엔 조촐하게나마 생일 파티를 열고, 내일은 누구와 놀지 정도의 사소한 고민 말고는 아무런 걱정이 없는 삶.

여관까지 걸어가던 도중, 달콤한 쿠키 냄새가 카리나의 코끝을 스쳤다. 주위를 둘러보니 길거리에서 쿠키를 파는 좌판대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은 쿠키를 사 들고 갈까.’

렝케 경의 저택에서 가져온 음식은 사흘 만에 바닥이 났다.

그 뒤로 아이들과 카리나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음식만 먹었을 뿐이었다.

간만에 달콤한 쿠키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카리나는 2키브린을 주고 쿠키를 한 봉지 샀다.

십여 분 후.

여느 때와 전혀 다름없는 객실 문을 열고 한 발 들어간 카리나의 몸이 뻣뻣이 굳었다.

쿠키 봉지가 바닥에 떨어졌다.

분명 아침에 나갈 때까지만 해도 깔끔했던 방안이, 렝케 경이 마법 실험에 실패했을 때처럼 엉망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롤랜드! 멜리사!”

카리나는 목이 터져나갈 정도로 계속해서 아이들을 불렀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렝케 경이야…….’

뜨거운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카리나는 눈물을 대충 훔치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이럴 때가 아니었다. 어서 단서를 찾아서, 렝케 경을 뒤쫓아야…….

그때였다.

욕실에서 미약하게 울먹이는 소리가 돌아온 건.

“어어엄마…….”

카리나는 한달음에 욕실로 달려갔다. 심장이 갈비뼈를 뛰쳐나올 것처럼 뜀박질해 매초 가슴이 아프게 조여들었다.

“……!”

눈앞에 보이는 모습에 맥이 탁 풀렸다.

롤랜드와 멜리사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 한편 걱정이 몰려왔다.

둘은 흰 가루를 잔뜩 뒤집어썼는데, 자세히 보니 밀가루 반죽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두 아이는 카리나를 발견하자마자 눈에 띄게 안도하면서도, 자신들이 저지른 사고를 들켰다는 생각에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다 밀가루 반죽이었구나.’

사실 조금 전, 카리나가 렝케 경의 습격이라고 생각하고 지레 겁을 먹지 않았더라면 방안이 난장판인 이유는 밀가루 반죽과 아침에 시장에서 사다 놓은 삶은 계란, 그리고 사과 조각들이라는 사실을 금방 눈치챘을 것이다.

“엄마…….”

롤랜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카리나를 불렀다.

“잘못했어요…….”

“저, 저도…….”

멜리사가 롤랜드의 곁에 꼭 붙은 채 고개를 빼꼼히 들어 카리나의 눈치를 살폈다.

카리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을 야단칠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이 다시금 발생하는 건 그다지 달갑지 않으니, 적어도 재발 방지 정도는 해야 했다.

청소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에서 그친 게 다행이지, 자칫하다간 객실 전체가 날아갈 수도 있지 않았는가.

카리나는 잠시 그 경우를 상상해 보다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보상 액수까지 대충 감이 잡혀 정신이 아득해지고 말았다.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할 순 없어.’

따라서 롤랜드와 멜리사에게 따끔하게 주의를 줄 필요는 있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 거니?”

“……맛있는 빵을 만들려고 했어요.”

카리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아.’

아이들끼리 사과 파이라도 만들려 한 모양이었다. 당연히 그 방법은……. 둘의 마법이겠고.

아직 마법에 서툰 데다가, 렝케 경은 위력적이고 파괴적인 마법을 가르치는 데에만 힘썼기 때문에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카리나는 그다지 화나지 않았다. 도리어 안심되기까지 했다.

‘아이들끼리 마법을 쓸 정도로, 마법에 대한 감정이 나쁘지 않다니 정말 다행이야.’

멜리사는 몰라도, 롤랜드가 영영 마법을 쓰지 않겠다고 할까 봐 내심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이건…… 이불이구나.”

카리나는 멜리사의 품에서 거대한 밀가루 반죽 덩어리처럼 보이는 무언가를 끄집어내며 말했다.

멜리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씻으려고 했어요. 씻으려고 했는데…….”

“내가 빨면 돼. 너희들은 너희들부터 씻었어야지.”

“이, 이불 빨래부터 도울래요.”

멜리사가 이불을 잡아끌었다.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보아하니 작은 손으로 얼마나 애썼는지, 손이 벌써 부르틀 지경이었다.

“너희들 몸부터 깨끗이 하는 게 나를 도와주는 거야.”

“그래도…….”

“대신, 빨리 끝나면 나를 도와줘.”

“네!”

그제야 멜리사는 안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카리나는 빨래를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아주 싸구려 여관은 아니라고 해도 저렴한 여관.

그런 여관의 객실에 딸린 욕실이 제대로 된 것일 리가 없다.

사실 욕실이라는 용어도 귀족의 저택에서 지내왔던 카리나의 생각이었고, 이곳은 사실상 세면소였다.

물이 잘 빠지도록 배수구가 있는 바닥과 힘을 잔뜩 주어 펌프질을 해야 겨우 물이 나오는 펌프, 그리고 이불 하나를 겨우 욱여넣을 수 있을 크기의 나무통이 전부였으니까.

카리나는 이불을 나무통에서 꺼낸 다음 열심히 펌프질을 해서 차가운 물을 통에 가득 받아두었다.

보아하니 아이 둘이 매달려도 제대로 힘을 주지 못해, 펌프질 한 두 번이 겨우 한계였던 모양이었다.

“이걸로 씻고 있어. 나는 저길 좀 정리할 테니까.”

다행히 멜리사와 롤랜드는 서로를 돕는 데 익숙했기에, 카리나는 빨래와 청소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불 빨래를 금방 끝낸 카리나는 능숙하게 밀가루 반죽을 벽면으로부터 제거하며 생각했다.

‘하녀로 지낸 게 아주 부질없진 않네.’

그래도 천장까지 튀지 않은 게 어딘가. 카리나는 괴생물체의 내장이 천장에 들러붙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기억했다.

‘으으으…….’

그때의 감촉과 피비린내가 눈에 선하게 살아나는 듯해 몸이 부르르 떨렸다.

“저희, 끝났어요. 이제 청소를 도와도 될까요?”

롤랜드가 조심스레 카리나를 불렀다. 카리나는 빠르게 아이들의 상태를 훑어내렸다.

아이들은 여덟, 일곱 살치고는 제법 열심히 씻은 편이었지만 어른의 눈으로 보기엔 부족한 점이 많았다.

특히 머리카락은 생각을 제대로 하지 못했는지, 풍성한 곱슬머리에 가득 엉킨 밀가루 반죽 덩어리들이 눈에 들었다.

카리나는 웃으며 아이들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이런, 머리카락에 빵을 구울 생각은 아니겠지? 굳기 전에 얼른 떼 내는 게 좋을 거야.”

“아……!”

롤랜드와 멜리사가 동시에 놀란 표정을 입을 막더니, 그제야 서로의 머리카락을 보고는 다급하게 밀가루 반죽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카리나는 그 광경을 잠시 바라보다 다시 청소에 전념했다.

굳기 전에 떼어내야 하는 건 아이들의 머리카락에 달라붙은 밀가루 반죽만이 아니었으니까.

얼마나 지났을까.

카리나는 이마에 몽글몽글 맺힌 땀을 훔치고 잠시 멈추어서 쉬었다.

아무래도 낮부터 계속 돌아다닌 탓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엄마, 어디 아파요?”

롤랜드가 멜리사의 머리카락에 들러붙은 밀가루 반죽을 떼어 주다 말고 조심스레 카리나에게 물었다.

카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자신은 그저 오늘 일어난 일 때문에 많이 지쳐 있었을 뿐이었다.

사실, 마정석을 잘못 건드렸다가 받은 고통에 비하면 지금 하는 청소 따위는 편하게 느껴졌다.

“아니?”

롤랜드는 잠시 침묵했다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듯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엄마가 저희 때문에 아프면……. 저흰 고아원에 갈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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