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카리나는 당황하며 반문했다.
“루비와 석류석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만 받으신다면서요?”
“가르치면 되겠지.”
아주 무책임한 대답이었다.
카리나는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오늘 자신이 다른 가게들에서 받은 푸대접을 생각할 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게다가 공고에 써 붙인 이곳의 임금은 매달 700키브린.
다른 가게보다 100키브린 가량 높은 임금이었다.
하지만 분명 보석상에겐 꿍꿍이가 있었다.
‘내가 또 폭주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일지도 몰라.’
공작과 보석상은 방금 그녀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제대로 된 설명이라곤 하나도 해 주지 않았지만 카리나에겐 짚이는 게 있었다.
‘나는 마법사의 폭주를 한 거야.’
마법사의 폭주는 세 가지 상황에서 일어난다.
첫 번째, 실력을 뛰어넘는 마법을 행하여 도저히 제어할 수가 없을 때.
두 번째, 마법에 따르는 제약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았을 때.
세 번째, 날뛰는 마정석을 제대로 길들이지 못했을 때.
방금 그녀와 공명해서 폭발을 일으킬 뻔한 돌이 바로 마정석이었으리라.
마정석은 겉보기에는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부터 절벽에 뿌리박힌 암벽, 귀중한 보석까지 그 형태가 다양했다.
흔하디흔한 형태와는 달리 매우 귀중해서, 렝케 경 같은 평범한 마법사는 평생 구경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까 그 마정석은 폭주 상태에 있지 않았는데.’
렝케 경의 서재에서 본 책엔 폭주 상태의 마정석은 시커먼 기운이 흘러나와, 감히 근처에 접근할 수도 없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아까의 마정석은 그저 평범한 돌 형태였지 않은가.
게다가 자신은 마법사라기엔…….
카리나는 이마를 짚었다. 자신에게 마법사의 재능이 있다는 것 정도는 눈치채고 있었다.
바보가 아닌 다음에야, 마법사에게 온갖 궂은일을 떠맡는 하녀로 십 년 동안 일하다 보면 저절로 눈치 정도는 채기 마련이다.
하지만 마법사의 재능 자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많았다.
다만 그 재능을 개화하려면, 부단한 노력과 정성, 그리고 가르침이 필요했다.
카리나는 그중 그 무엇도 가지지 못했다. 그 결과, 간단한 마법 하나 쓸 줄 몰랐고.
한 마디로 마법사라고 할 수가 없었다.
‘제어하지 못하는 힘은 없는 것보다 더 나빠.’
카리나는 와일더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했다.
“제가 어쩌다 폭주한 거죠?”
공작과 보석상은 말없이 서로 눈길을 나누었다.
“같은 일이 또 일어날 수도 있는데, 여기서 일할 순 없어요.”
“그건 걱정하지 마라.”
카리나의 이마에 주름이 졌다. 보석상이 아닌, 공작이 말한 탓이었다.
“저건…… 와일더의 실수다. 와일더, 사과해.”
와일더라 불린 보석상은 얼굴을 찡그렸지만 공작의 명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미안하게 되었소, 블로에 부인.”
“저는 사과를 바라지 않아요.”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뭐가 좋다고 미래의 고용주가 될 수도 있는 사람에게 사과를 받겠는가?
“그냥 여기서 일하면, 아까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 봐 걱정될 뿐이에요. 진짜 죽을 뻔했잖아요?”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군.”
공작이 카리나에게 한 걸음 다가오다, 그녀가 깜짝 놀라며 뒷걸음질치자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아까 폭주는 그대 때문이 아니야. 와일더가 위험한 물건을 아무 곳에나 방치했기 때문이지.”
“그럼……. 여기서 일하고 싶어요.”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 그리고, 저건 내가 가져가도록 하지.”
“공작님!”
와일더가 항의하듯 소리쳤다. 공작은 귀찮다는 듯 손사래를 쳤다.
“최상등품 마정석 열 개면 되겠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딱딱하게 굳어 있던 와일더의 얼굴이 헤실헤실 풀어졌다.
“물론입죠. 당장 포장해 드릴까요?”
“됐어, 내가 알아서 가져가겠다.”
공작은 빙긋 웃었다. 귀족 특유의 냉혹함과 소년의 장난기가 뒤섞인 기묘한 웃음이었다.
“자, 이제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말해 볼까?”
카리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서 있었다.
분명히 자신은 방금 이 보석 상점에 채용되었다.
그러니 자리를 지켜 업무를 익혀야 할 것이다.
하지만 공작과 한 건물에 계속 있고 싶지는 않았다.
그녀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든 말든, 공작은 카리나가 그 자리에 있는지도 몰랐던 의자를 꺼내 턱 하니 자리를 잡았다.
자신의 집이라도 되는 것처럼 편해 보이는 모양새였다.
“불균형 마정석이 15개 들어왔어.”
“15개나요? 이 노인네를 아주 죽이려고 하십니까?”
“그 노인네를 살려 주고 있는 사람이 누구지?”
“바로 이 토르스를 다스리시는…… 공작 각하의 모친 되셨죠.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참 좋은 분이셨는데.”
공작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와일더, 내가 어머니의 유언을 어기게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그거야 각하께서 잘 지키면 되실 일입니다.”
와일더는 투덜거리면서도 공작이 던져준 꾸러미에서 마정석들을 조심스레 꺼내 탁자에 펼쳤다.
아이들이 공깃돌을 할 때 쓰는 조약돌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이는 마정석이 탁자에 좌르륵 펼쳐졌다.
카리나는 이 자리에 있어도 되는지, 아니면 내밀한 기밀로 인식하고 빠져나가야 하는지 결정하지 못한 채 눈치만 기웃기웃 살폈다.
불균형 마정석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종류의 마정석이었다.
즉, 렝케 경이 그녀가 혹여나 볼까 싶어 노심초사하던 서재의 비밀 공간에 있던 정보이거나, 렝케 경조차도 몰랐던 정보이리라.
“블로에 부인, 자세히 보시오. 앞으로 계속할 일이니까.”
다행히 와일더는 그녀의 위치를 정해 주었다.
카리나는 와일더의 바로 뒤에서 불균형 마정석들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었다.
“……!”
카리나의 눈이 크게 떠지더니 그대로 굳었다.
‘이건…….’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았다.
공작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듯한 와일더를 향해 무심히 물었다.
“뭔가 보이는가?”
“별로……. 테스트를 해 보기 전까지는 잘 모르겠군요. 이런 종류의 마정석들이 다 그렇잖습니까.”
와일더는 대체 그걸 왜 지금 묻느냐는 투였다.
“와일더, 자네 말고. 블로에 부인.”
공작의 말에 카리나는 물론 와일더도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블로에 부인 말입니까?”
“그래. 아까부터 뭔갈 잘 알고 있던 눈치던데.”
카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숨기는 거야 쉽다.
그냥 조금 전 마정석에서 받은 충격 때문에 이 작은 마정석도 두려워졌다고 말하면 된다.
하지만 카리나는 알고 싶었다. 그동안 렝케 경이, 자신에게서 철저하게 차단했던 마법에 대해…….
만약 귀족은 항상 경계해야 한다는 이유로 이 기회 앞에서 도망쳐 버린다면 카리나는 한동안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것 같았다.
카리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래, 나는 옛날부터 마법에 대해 알고 싶었어.’
그래서 멜리사가 롤랜드를 제치고 호문쿨루스를 조형하고 싶다고 했을 때도 실패할 가능성을 무릅쓰고 바로 허락했다.
그녀에게서 마법을 배우고 싶었음에도 좌절했던 어린 자신을 보았으니까.
마법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긴 롤랜드에게 마법이 그렇게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라는 걸 깨우쳐주기 위해 노력했다.
롤랜드가 대마법사가 되는 미래와 별개로, 카리나가 선망하는 마법과 롤랜드가 멀어지는 걸 바라지 않았으니까.
카리나에게 마법이란, 동화 속 여우가 결코 따먹을 수 없었던 신포도였다.
드디어 여우에게는 포도를 따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고, 카리나는 그것이 신포도일 수도 있다는 이유로 놓치는 바보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물론 곧 자신이 내뱉을 말로 인해 아이들을 무사히 키워낸다는 목표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렝케 경의 저택에선 하녀였던 것처럼, 지금은 이름만 엄마인 보모처럼 아이들을 무사히 키워내는 것에만 전념하는 게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입양하게 된 두 사랑스러운 아이들 역시 그것을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착한 아이들이니까, 자신들만큼이나 카리나가 행복하기를 바랄 것이다.
그래서 카리나는 머릿속을 맴도는 말을 밖으로 펼쳐 보였다.
“마정석은 이 중 하나뿐이에요.”
“……!”
좀 전의 와일더가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정도로 놀랐다면, 지금의 와일더는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놀란 상태였다.
그는 즉각 카리나를 쳐다보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입으로 되물었다.
“이 중 하나뿐이라고?”
“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이 가지고 온 열다섯 개의 불균형 마정석 중, 열네 개는 평범한 조약돌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나머지 하나는…….
카리나는 홀린 것처럼 마정석을 집어들었다.
마정석은 그녀의 손에서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공작과 와일더는 숨죽여 그녀의 움직임만 바라볼 뿐, 누구도 위험하다거나 물러서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게 맞아요.”
카리나는 확신을 가지고 와일더를 향해 마정석을 내밀었다.
와일더는 침묵을 지켰으나 공작은 천천히 그녀의 손에서 마정석을 가져갔다.
“내가 확인해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