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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8)화 (8/145)

<8화>

“엄마가 그때 말한 것처럼, 우리 때문에 엄마까지 수상해 보이는 거예요.”

말문이 막혔다. 롤랜드가 괜한 추측을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롤랜드의 말이 사리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었다.

어린아이를 둘 데리고 다니는 꾀죄죄한 젊은 여자는 굉장히 부자연스럽게 보였으리라.

하지만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잘못 짚어도 너무 잘못 짚었는데?”

“정말요?”

롤랜드의 눈이 흔들렸다.

“그럼. 진짜 이유를 말해 줄까?”

“……네.”

카리나는 허리를 굽혀 아이들과 눈높이를 맞추며 속삭였다.

“우리가 돈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야.”

“……!”

다행히 제법 그럴듯하게 들린 모양이었다. 심지어 반쯤은 사실이기도 했다. 카리나는 재빨리 말을 이었다.

“큰 문제는 아니야. 굉장히 저렴한 곳을 가면 돼. 아무리 돈이 없어 보이더라도 우릴 받아줄 테니까.”

“그런 거였어요?”

“그런 거였어.”

카리나는 고개에 힘을 주어 끄덕였다. 롤랜드의 표정이 아주 서서히 밝아졌다. 카리나는 허리를 숙여 롤랜드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이제 말도 안 되는 걱정은 하지 마. 알겠지?”

“네!”

롤랜드의 대답이 귓가에 밝게 울렸다.

* * *

여관 거리에서 가장 저렴한 여관은 하루 5키브린짜리 여관이었다.

들어가자마자 청소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끈적이는 마루바닥과 퀴퀴한 냄새가 거슬렸지만 카리나는 돌아서 나가지 않았다.

이런 여관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찾는답시고 아이들에게 다시 거부당하는 상처를 줄 수는 없었다.

카운터에 털이 부숭부숭하게 난 발을 올려놓고 낮잠을 자던 여관 주인은 그들이 들어오자 겨울잠에서 깨어난 두꺼비처럼 눈을 끔벅거렸다.

카리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여관 주인은 그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퉁명스레 말을 내뱉었다.

“하루 10키브린.”

“5키브린이라고…….”

“그건 인당이야. 애들이니까 둘은 한 명으로 치지. 아가씨도 쟤들을 침대에는 재워야 하지 않겠어?”

카리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보통 여관방은 2인 1실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지만 카리나에게는 더 따질 시간도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벌써 눈이 감겨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는 멜리사를 얼른 침대에 눕히고, 조금 전부터 꼬르륵 소리가 들리는 롤랜드에게 어제 먹다 남은 빵조각이라도 주고 싶었다.

“알겠어요.”

“선불이야.”

카리나는 주머니 속에서 조심스레 10키브린짜리 은화 하나를 꺼내 여관 주인에게 건네주었다.

“식사는? 끼당 1키브린.”

“괜찮아요.”

“후회할 텐데.”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 여관은 조금 둘러보기만 해도 무척 불결했다. 음식들을 어떠한 환경에서 만들지는 뻔할 뻔 자였다.

렝케 경은 아이들을 학대했지만, 적어도 사용인들은 저택을 쓸고 닦는 본연의 업무에 충실했다.

아무리 싸다고 해도 이런 곳에서 만든 음식을 아이들에게 먹일 수는 없었다.

‘오늘 하룻밤만 대충 버티고, 내일부턴 숙소를 옮겨야겠어.’

카리나는 여관 주인에게서 방 열쇠를 건네받았다.

녹이 잔뜩 슨 열쇠였지만 카리나는 얼굴 하나 찡그리지 않고 맨손에 받아들였다.

렝케 경의 실험실에서 닦곤 했던 정체불명의 액체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퀴퀴한 냄새는 복도를 걸어갈수록 더욱더 심해졌다.

롤랜드와 멜리사는 겁을 먹었는지 그녀의 치맛자락에 폭 달라붙었다. 그 모습이 가슴이 아파 카리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엄마……?”

멜리사가 졸린 눈으로 카리나를 올려다보았다.

“아무것도 아니야.”

카리나는 애써 웃었다. 다행히 멜리사는 그냥 졸린 모양인지, 카리나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치맛자락에 폭 안겨들었다.

마침내 그들은 배정된 객실 문 앞에 도착했다. 좀벌레 구멍이 송송 뚫린 문은 잠겨 있지도 않았다.

“…….”

셋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방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벽지는 곰팡이로 난장판이었고 뿌옇게 먼지가 낀 창문은 마지막으로 닦은 게 언제였는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침대 두 개 역시 불결하기 짝이 없어 겉옷을 입히고 재워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청소부터 해야겠네.’

카리나는 문득 든 생각에 웃고 말았다. 겨우 하루 자고 말 숙소에서 청소라니! 이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었다.

“내일은 딴 데로 옮기자.”

“우리가 돈이 없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잖아요. 그럼 가 봤자 또 쫓겨날 거고요.”

롤랜드가 중요한 문제를 지적했다.

좀 더 정확히는, 카리나와 아이들의 행색이 수상쩍어 보이는 건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카리나는 두 가지 문제 모두에 대한 해답을 알고 있었다.

“새 옷을 사면 돼.”

굳이 사정을 설명하지 않아도 상복을 입고 다닌다면 졸지에 죽은 남편의 두 아이를 떠맡게 된 젊은 과부라는 사실을 알릴 수 있다.

상복을 사는 덴 제법 돈이 들어갈 테니, 카리나는 제발 새로운 방법이 효과가 있기를 빌었다.

“새 옷이요?”

롤랜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나만 새 옷을 살 거란다. 못된 새엄마답게 너희 옷은 없어.”

“……돈이 없어 보이는 게, 엄마가 입은 옷 때문이에요?”

사실 카리나는 렝케 경의 저택에서 제법 괜찮은 대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이렇게 저렴한 여관 거리에서 돈이 없다고 쫓겨날 차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게다가 일주일간 옷을 제대로 빨지도 못했잖아? 누가 봐도 거지로 보일걸.”

“당장, 당장 사러 가요!”

롤랜드는 당장이라도 달려나갈 것처럼 카리나의 손을 잡아끌었다.

“너희는 여기 있어.”

“왜요?”

“멜리사는 가다가 잠들어 버릴걸?”

롤랜드는 멜리사를 쳐다보고는 금방 카리나의 말을 수긍했다.

멜리사는 이미 침대에 반쯤 드러누워 있었는데,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는 게 잠을 겨우 참고 있는 듯했다.

멜리사를 혼자 남겨둘 순 없으니 당연히 방안엔 롤랜드가 머물러야 했다.

롤랜드는 아쉬운 얼굴로 입을 뗐다.

“얼른 다녀오세요.”

“물론이지. 너무 멜리사만 보지 말고, 너도 쉬고 있어. 참, 나 말곤 누가 오든 간에 문 열어 주면 안 된다?”

카리나는 멜리사를 침대에 완전히 눕히고 롤랜드에게는 남은 빵을 쥐여다 준 다음, 객실 문을 굳게 걸어 잠궜다.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하니 상복만 사서 바로 돌아오고 싶었지만 오늘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남아 있었다.

바로 일자리였다.

* * *

상인들의 말처럼 토르스에서 일자리를 찾는 것만큼 쉬운 건 없었다.

하지만 그 일자리를 얻는 데 성공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모두 카리나에게 언제 남편이 죽었는지, 아이가 있는지를 물었고 카리나가 둘이라고 말하자마자 질색을 하며 그녀를 내쫓았다.

아이들이 제법 커 손이 별로 들지 않는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었다.

“애들이 아프기라도 하면? 그땐 우는소리를 하면서 빠질 거 아냐? 우린 그런 사람 못 받아.”

“……빠지지 않을게요.”

“그 말을 어떻게 믿지?”

결국 카리나는 열 번째 상점 역시 돌아나올 수밖에 없었다.

카리나는 사람을 구한다는 방을 써 붙인 바로 다음 상점에 기계적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보석 상점이었다.

“카리나 블로에입니다. 사람을 구하신다고 해서 왔어요.”

본디 카리나에겐 성이 없었다.

일찍 죽은 어머니에겐 성이 있었지만 사생아들은 양쪽 부모의 성 모두 사용하지 않는 게 관습이었다.

그래서 카리나는 아이들의 성을 차용하기로 했다.

나이 지긋해 보이는 보석상은 돋보기 안경을 낀 채 보석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그는 조용히 장비들을 내려놓고는 카리나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카리나는 초조하게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사람도 남편이 죽었냐고 묻겠지.’

하지만 보석상은 고개를 저으며 단 한 마디를 내뱉었을 뿐이었다.

“안 돼.”

“……제가 과부라서요?”

“그런 문제가 아니야. 나는 보석을 어느 정도 볼 줄 아는 사람만 받아. 루비와 석류석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고용하겠나?”

“…….”

카리나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정말로 루비와 석류석을 구분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두 가지 모두 그런 게 있다는 말 정도만 들어본 적 있었다.

빠르게 포기한 그녀는 몸을 돌려 천천히 가게를 걸어 나가다가 우뚝 멈춰 섰다.

무심코 눈에 들어온 돌에서 도저히 눈을 뗄 수가 없었다.

‘……?’

카리나는 그런 자신을 의아하게 생각하면서도 돌을 보고 또 보았다.

투박하고 주먹만 한 돌은 어딜 보아도 보석처럼 보이진 않았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돌을 주워 진열장 안에 넣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듯했다.

하지만 왜인지 그 돌이 이곳의 어느 보석보다도 귀중한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음 순간.

돌이 빛을 발산하는 동시에 보석상의 다급한 외침이 카리나의 귓가에 박혔다.

“물러서!”

카리나는 억지로 돌에서 눈을 떼었지만 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거대한 빛무리가 그들을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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