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주를 입양합니다 (7)화 (7/145)

<7화>

말문이 털썩 막혔다.

카리나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있는 사이, 롤랜드가 질문을 쏟아냈다.

“저희 엄마 하면, 카리나가 곤란해지는 거 아니에요? 우릴 먹여 살리려면 카리나가 힘들 거고…….”

카리나는 입술을 으득 깨물며 렝케 경을 속으로 조용히 저주했다.

그는 롤랜드와 멜리사의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두 아이를 가르치고 먹여 살리는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강조했다.

그 상흔이 치유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카리나는 감히 그 질문에 답할 수 없었다.

“힘들겠지.”

“…….”

“하지만 너희가 없으면 훨씬 더 힘들 거야.”

“정, 정말로요?”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아이들을 고아원에다 맡기고 혼자 산다면 몸은 덜 힘들 것이다.

카리나 혼자 건사할 정도로만 벌면 되니까.

어쩌면 결혼도 할 수 있을 테고.

그야말로 카리나가 그동안 꿈에 그리던 평범한 마을 처녀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산다 해서 과연 행복할까?

“너희 걱정에 제대로 못 살걸.”

카리나는 자신이 순수하게 아이들의 안위만을 얘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알아차렸다.

롤랜드가 대마법사가 되지 못한다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문제를 어느덧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 그 문제도 있지만…….’

카리나는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만약 예전의 카리나였다면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탈출할 기회마저 날려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카리나는 알았다.

소설 속의 남주인공, 대마법사 롤랜드가 있기까지는 감히 평범한 사람이 상상할 수도 없는 학대가 있어 왔다는 걸.

그 어떤 어린아이도 그와 같은 학대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걸.

‘롤랜드는 겨우 여덟 살이야.’

겨우 저 나이인 소년에게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짐을 벌써부터 그녀가 씌워 줄 필요가 있을까.

세상의 구원이 카리나에게 얹힌 짐이 아니듯 지금의 롤랜드에게도 아니었다.

“카리나가…… 우리를 걱정해요?”

“그렇단다. 왜, 안 믿겨?”

“네…….”

롤랜드는 솔직하게 털어놓더니 바로 입을 막았다. 카리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이야.”

“그럼…… 전 좋아요. 카리나가 저희 엄마 되는 거. 너무너무 좋을 것 같아요.”

“멜리사는?”

멜리사는 롤랜드처럼 곧바로 신나서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카리나를 빤히 올려다보다가, 입술을 작게 달싹거렸다.

“……엄마.”

“그럼, 멜리사.”

멜리사는 더 말하는 대신 와락 카리나에게 안겨들었다. 롤랜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리나는 아이들의 온기 속에서 생각했다.

앞으로 그 어떤 일이 닥치든, 이 아이들을 지키겠다고.

* * *

일주일간의 여행은 힘들었지만 고생스럽지는 않았다.

마부와 상인들 모두 남편의 아이를 졸지에 둘이나 떠맡게 된 젊은 과부에게 친절했다.

경유하는 마을에 하루 묵을 때마다 사비를 내어 방을 따로 잡아 줄 정도였다. 원래 차비에 다 포함이 된다나 뭐라나.

하지만 카리나는 그들의 순수한 호의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카리나는 물론 아이들까지도 계속 렝케 경의 추격을 걱정했지만 문지기가 약속을 지킨 모양이었다.

그동안 렝케 경의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그들은 토르스에 도착했다.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따스한 남부의 봄이 그들의 살갗을 스쳤다.

분명 그들이 막 도망쳐 왔을 땐 꽃망울도 제대로 터지지 않은 초봄이었는데, 곳곳에 꽃향기가 진동하고 연두색 잎사귀들이 흔들리는 걸 보니 이미 완연한 봄이었다.

아이들 역시 처음 와보는 남부가 신기한지 몇 초에 한 번씩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카리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토르스는 카리나가 도망쳐 나온 조그마한 시골 마을에 비교하면 그야말로 별천지였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마차, 말이 엉켜서 이리저리 떠밀려 다녔으며 숲에서 가장 큰 나무보다 더 큰 건물들이 여기저기 우뚝 솟아 있었다.

그리고 또 그 냄새는 어떻고!

곳곳에서 맛있는 음식 냄새들이 풍겨왔다.

더 놀라운 건, 사람들이 가지고 다니는 도시락이나 가정집에서 나는 냄새가 아니라 좌판에 내다 파는 음식 냄새라는 점이었다.

카리나는 아이들과 함께 넋 놓고 주위를 구경하다 정신을 차렸다.

구경이야 나중에라도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당분간 지낼 여관부터 얼른 찾아야겠어.’

카리나는 마부들과 얘기를 나누며 토르스의 물가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토르스는 물자가 풍부해 마음만 먹으면 단돈 1키브린으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도시였다.

다만 인건비가 높은 편이라 식당, 옷가게 등은 비싼 편이었다.

‘여관은 하루에 10키브린 정도가 적당할 것 같다고 했지.’

카리나는 마부들이 일러준 저렴한 여관들이 옹기종기 모인 거리로 향했다.

서로 경쟁이 붙었는지, 바깥에 가격을 적어 둔 여관들이 많았다.

그녀는 마부들이 일러준 정보를 떠올렸다.

지나치게 저렴한 여관은 피하는 게 좋고, 본디 가격이 높은 편인데 장기 투숙 시 비용을 깎아주는 여관이 좋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었다.

마침내 카리나는 한 여관 앞에 멈춰 섰다.

벽면에는 커다란 포스터가 부착되어 있는, 상당히 규모가 큰 여관이었다.

[하루 10키브린. 장기 투숙 시 깎아드립니다. 단체 손님 환영]

카리나는 여관 안에 조심스레 들어갔다.

아직 토르스에 휴양객과 각종 상인들이 몰려드는 여름이 되지 않아서 그런지 로비에 서성이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카리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붙잡은 채 카운터로 다가갔다.

카운터는 카리나와 나이 차이가 그다지 나지 않은 젊은 직원이 보고 있었는데, 일이 지루한 모양인지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당장 장기 투숙을 하는 건 좀 그렇겠지.’

카리나는 돈을 조금 손해 보더라도, 일단 며칠 묵어본 다음 방이 괜찮으면 장기 투숙을 할 생각으로 입을 열었다.

“3인실 있나요?”

마부들은 돈을 아끼려면 두 아이는 한 침대에 재우는 게 좋을 것이라고 충고해 주었다.

하지만 카리나는 돈 차이가 크게 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에서 지냈으면 했다.

“없진 않은데…… 잠깐만요.”

직원은 카리나와 두 아이를 훑어보더니 카운터 뒤편의 방으로 사라졌다.

카리나는 낯선 환경 때문인지 겁에 질려 보이는 아이들을 토닥이며 직원을 기다렸다.

잠시 후.

머리가 반절 벗어진 여관 주인이 툴툴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3인실은 없수. 애들을 편하게 재우고 싶다면 가격이야 좀 나가지만 가족실을 사용하는 게 좋을…….”

카리나와 아이들을 본 여관 주인의 말이 뚝 하고 끊겼다. 순식간에 얼굴이 시뻘게지더니, 이내 머리끝까지 달아올랐다.

‘……?’

카리나는 어리둥절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무언가 여관 주인을 화나게 만들 일이라도 등 뒤에서 일어난 듯했다.

하지만 뒤를 돌아보자, 로비의 소파에 주저앉아 호기심 어린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는 몇몇 구경꾼만이 보일 뿐이었다.

여관 주인은 카운터 밖으로 나오더니, 카리나를 향해 성큼 다가왔다.

놀란 카리나는 아이들의 손을 꼭 붙든 채 뒷걸음질 칠 수밖에 없었다.

“방 없어요!”

“없다니요?”

카리나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가족실이니 뭐니 하지 않았던가.

여관 주인은 설명 하나, 변명 하나 하지 않은 채 손사래를 치며 카리나를 계속해서 뒤로 내몰았다.

“없다니까? 젊은 아가씨가 왜 그렇게 말이 많아. 당장 돌아가라고.”

카리나는 여관의 현관문이 자신 바로 앞에서 쾅, 닫히기 직전 주인이 큰 소리로 직원에게 호통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어디서 굴러먹었는지도 모르는 여자를 어딜 여기에 들여!”

카리나는 이젠 열 엄두도 나지 않은 문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왜……?’

분명 자신의 신분은 불분명하긴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관에서 내쫓길 정도는 아니었다.

어차피 신분이 드높고 돈깨나 있는 사람들이 이런 값싼 여관 거리까지 올 리는 없다.

카리나를 방금 쫓아낸 여관을 포함해서, 이 거리에 있는 여관들은 모두 카리나와 별다를 게 없거나 조금 더 나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주 고객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유를 더 깊게 생각하기에는 카리나는 너무 지치고 당황한 상태였다.

분명 아이들도 자신과 마찬가지이리라.

‘얼마나 놀랐을까.’

그 생각을 하니 우선 아이들부터 달래주어야겠다 싶어, 카리나는 두 아이의 굳어 있는 등을 토닥거렸다.

“괜찮아. 다른 여관을 찾아보면 되지. 널린 게 여관이잖아?”

롤랜드가 침울한 얼굴로 카리나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겼다.

다음 순간, 소년의 입에서 카리나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때문이에요.”

“……?”

카리나는 귀를 의심하며 롤랜드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무어라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머리가 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못 들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롤랜드가 천천히 말을 반복했다.

“우리 때문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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