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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를 입양합니다 (5)화 (5/145)

<5화>

카리나와 아이들이 도착한 마을은 제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시골 마을에 불과했다.

피곤에 찌들어 노동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어린아이들이 시끄러운 소리를 지르며 뛰어다녔다.

그 아이들의 발치에서 쥐와 고양이가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고.

하지만 성에 갇혀 살았던 카리나에겐 별천지로만 느껴졌다.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이 작은 마을에 감탄하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을 것이다.

물론 그들에겐 시간적 여유라곤 전혀 없었고, 카리나는 평소라면 눈 돌아가서 바라보았을 광경을 무심히 지나쳤다.

초조하게 타들어 가는 카리나의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의 눈은 연신 반짝거렸다.

카리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이들은 고아원에서 방치당하며 자라다가 렝케 경의 숲속 저택에 갇혔다.

작은 시내 하나 볼 기회도 없었던 것이다.

카리나 역시 전생의 기억이 아니었다면 세상엔 오직 숲과 저택, 그리고 일 년에 한 번쯤 갈까 말까 하는 작은 시내가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으리라.

하지만 카리나는 알았다.

단지 그동안 갈 기회만 없었을 뿐이지, 이제 그들 앞엔 무궁무진하게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는 걸.

“……?”

카리나는 눈을 깜박거렸다.

무언가 무게감이 느껴진다 싶었더니, 롤랜드가 소심하게 가방에 매달려 있었다.

카리나가 그 사실을 눈치채자마자 한 발짝 뒤로 물러서 그녀의 눈치를 보는 모습이 애처로웠다.

“롤랜드.”

카리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리 오렴.”

“……죄송해요.”

“죄송할 것 없어.”

카리나는 손에 든 가방을 어깨까지 올렸다.

어차피 안에 든 것도 얼마 없어, 일반적인 짐가방이라기보단 손가방에 어울리는 모양새였다.

“자.”

“…….”

롤랜드는 자신에게 내밀어진 카리나의 손을 잡지 못하고 잠시 머뭇거렸다.

“싫어?”

“아, 아뇨!”

롤랜드는 황급히 카리나의 손을 잡았다. 긴장으로 달아오른 작은 손이 느껴졌다.

카리나는 바삐 아이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갈 길이 멀었다.

어느덧 다른 도시로 떠나는 마차들을 탈 수 있는 장소에 도착한 카리나는 잠시 심호흡했다.

그동안 머릿속으로 상상만 해왔던 일들을 실행에 옮기려니 발걸음 하나하나가 긴장되었다.

자신만 바라보는 두 어린아이의 손을 잡은 상태라 더더욱.

“사람이 너무 많아요.”

멜리사가 겁에 질린 듯 카리나의 옆구리에 파고들었다.

“괜찮아.”

카리나는 멜리사를 안심시켰다.

“이 정도는 많은 것도 아니야.”

그 말대로였다.

마을에서 가장 큰 상단, 어벨라우의 건물은 항상 북적거렸지만 아이가 겁에 질릴 정도는 아니었다.

멜리사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카리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았다.

카리나도 굳이 멜리사를 떼어내지 않았다.

그녀는 건물을 빙 둘러 마구간이 있는 뒤편까지 걸어갔다.

몰래 상단의 마차에 숨어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일하는 문지기 한 명이 심드렁하게 그녀를 내려보았다.

“돈은 있소?”

카리나는 대답 대신 짤랑거리는 돈주머니의 소리를 들려주었다. 문지기의 얼굴이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어디까지 가나?”

“에드무어까지요.”

카리나는 대뜸 수도를 말했다.

“에드무어?”

문지기가 얼굴을 찌푸렸다.

“그 먼 데까지?”

“친척이 살고 있어요.”

문지기는 카리나와 아이들의 초라하고 지친 행색을 훑어보았다.

“에드무어로는 내일 떠나는데.”

“내일은 안 돼요.”

카리나는 바싹 말라가는 입안을 적셨다. 초조해서 발이라도 동동 구르고 싶었지만 자신보다 더욱 불안해할 아이들을 생각해서 참았다.

“그럼 오늘은 어디로 가나요?”

“토르스. 한 시간 뒤에 출발한다.”

토르스. 카리나는 그 지명의 이름을 입안에서 굴렸다.

남의 입으로는 처음 들었지만 분명 몰래 틈틈이 훔쳐본 렝케 경의 제국 지도에서 본 기억이 났다.

“남부에 있죠?”

“그래. 평소엔 안 가던 곳인데, 최근 이 지역의 목재를 특별히 요구하길래 1년 치를 몰아서 수송한다. 오늘이 하필 그 날이라니, 아가씨도 운이 나쁘군.”

“토르스도 괜찮아요.”

“에드무어와는 완전히 떨어져 있잖나.”

“그래도 괜찮아요.”

“거기도 친척이 사나?”

“……네.”

문지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카리나를 쳐다보았다.

“이제 보니 도망치는 모양이군.”

“그럼 안 되나요?”

심장이 떨어질 것 같았지만 카리나는 냉담하게 받아쳤다.

“아니, 도망친다면 토르스는 최적의 도시라서.”

“…….”

“통나무들과 같이 잠을 자도 상관없다면 비용은 내가 최대한 깎아주지.”

“상, 상관없어요!”

문지기는 들을 말은 다 들었다는 듯 몸을 돌려 목재가 가득 실린 마차들로 걸어갔다.

카리나는 아이들의 손을 잡은 채 그의 뒤를 황급히 쫓아갔다.

문지기는 일렬로 주차한 짐마차의 덮개를 열며 여기저기 살피더니, 개중 목재가 그나마 덜 실린 마차를 찾아내어 가리켰다.

“들어가게.”

“돈은…….”

“이미 받았어.”

다시금 입안이 바싹 타들어 가기 시작했다.

“그, 그런…….”

“앞으론 돈이 많이 필요할 거야. 어린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더 그렇겠지.”

“그래도 드릴게요.”

문지기 또한 형편이 넉넉지는 않을 것이다.

성인 여자 한 사람과 아이 둘을 수송하는 비용을 모두 떠넘길 수는 없었다.

“경험담이니 믿는 게 좋아.”

“……!”

카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문지기는 그녀를 바라보는 대신, 그녀 뒤에 숨은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꼬맹이들아, 얌전히 있어야 한다?”

“네, 해야지.”

카리나가 부드럽게 타일렀지만 아이들은 겁을 잔뜩 먹은 탓에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문지기는 한차례 크게 웃더니 카리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아가씨의 흔적은 내가 대충 지워주지.”

“감, 감사합니다…….”

“감사는 넣어둬. 나도 아가씨와 같은 경험이 있으니까.”

그 말을 끝으로 문지기는 사라졌다.

카리나는 안도하며 바닥에 반쯤 주저앉았다.

처음엔 겁에 질려 벌벌 떨던 아이들도 잠시, 곧 짐마차와 목재들이 신기한지 이곳저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카리나는 아이들이 행여 상품에 손상을 입힐까 봐 목재 근처에 가지 못하게 하려고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말 없이 스스로 달리는 마차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니?”

“마법이겠죠.”

롤랜드가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대답했다.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마법도 쓰지 않고.”

“그게 가능해요?”

멜리사가 눈을 반짝 빛냈다.

“그래. 세상에 마법이 다는 아니란다. 대륙 어딘가에선 이미 말이 없는 마차가 달리고 있다고 해.”

거짓말이었다.

카리나는 전생의 세계와 지금의 세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사실 정도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말하니, 정말로 대륙 어딘가에는 지금보다 카리나가 훨씬 행복했던 전생의 세계가 존재할 것 같았다.

“거기로 가는 거예요?”

멜리사가 카리나의 손을 잡아 장난감이라도 되는 것처럼 조물거렸다.

“아니. 토르스는 남부에 있어. 따뜻한 곳이란다.”

“얼른 가고 싶어요.”

롤랜드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분명 쌀쌀한 초봄 날씨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며칠 밤은 기다려야 할 거야.”

“그동안 잡히지 않을까요?”

“안 잡힐 거야.”

단순한 희망 사항은 아니었다.

처음엔 최대한 빨리 에드무어로 가서 수도의 인파에 숨을 생각이었지만, 아예 수송 마차조차 1년에 한 번쯤 다닐까 말까 하는 남부로 숨어버리는 게 더 나을 것이다.

‘문지기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해는 안 끼치겠지.’

카리나는 아이들을 끌어안았다.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제 남은 건 오직 결과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뭐야, 승객이 있네? 없다더니.”

“있대. 대신 조용히 해 달랬어.”

“왜지?”

“타이슨은 믿을 만한 사람이야. 그자의 말이라면 들어서 손해 볼 건 없지.”

아이들과 조곤조곤 담소를 나누던 카리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아이들 역시 그녀와 다른 생각이 아닌지, 꾹 입을 다문 채 그녀의 뒤로 다시 숨기 시작했다.

작은 몸 둘이 부들부들 떠는 진동이 카리나에게 그대로 전해져 왔다.

발걸음과 대화 소리가 시시각각 가까워졌다.

카리나는 마른침을 꿀꺽 삼켜 바싹 타는 속을 진정시키며 다가올 일을 기다렸다.

덮개가 들추어지면서 빛과 마부 두 명이 불쑥 나타났다.

“어린애가…… 두 명?”

마부 한 명이 얼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어린애 두 명을 데리고 토르스까지 가라고?”

“제가 보호자예요.”

카리나는 겁에 질려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그 노력이 효과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아가씨가요?”

다른 마부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네.”

의아한 눈빛은 점점 의심의 눈초리로 바뀌었다.

“나이 차이가 좀 많이 나고…… 닮지도 않았는데. 가족은 맞습니까?”

이번엔 카리나는 정말로 당황했다.

마부는 앞으로 그녀가 감내해야 할 사람들의 시선을 콕 찔러 물었다.

서로 닮지 않은 친족이야 많으니 손윗누이라고 우기려면 우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카리나와 아이들의 나이 차가 남매라기에는 너무 많이 난다는 데 있었다.

스물세 살짜리 첫째에 여덟 살과 일곱 살짜리 둘째, 셋째라니. 너무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솔직하게 하녀와 도련님, 아가씨 사이라고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자칫하다간 유괴 의심을 받을지도 몰랐으니까.

만약 카리나가 친족 관계에 대해 조금만 더 잘 알았더라면 이모라거나, 고모라는 핑계를 대었으리라.

하지만 당시의 카리나는 일반적인 가족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기껏해야 형제자매뿐이었고.

지금 상황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듯한.

그때였다.

멜리사와 롤랜드가 한목소리로 그녀를 부른 것은.

“엄마.”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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