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함께요?”
두 아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카리나를 바라보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법사는 고독한 존재이며, 마법의 시행과 그 결과는 오직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는 게 렝케 경의 입버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카리나는 알았다.
저 바깥에선 마법사들 간의 협업이 오히려 당연시되며, 동시 시전 역시 없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호문쿨루스를 조형하는 건 멜리사가, 움직이는 건 롤랜드가.”
“제가…… 조형해요?”
멜리사가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한 얼굴로 되물었다.
“그래.”
카리나는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작은 진흙 덩어리를 꺼냈다. 롤랜드가 숨을 들이켰다.
“호문쿨루스!”
“그래.”
카리나는 연구실에서 어렵지 않게 찾은 렝케 경의 머리카락 한 가닥을 진흙 덩어리 안에 뭉쳐 넣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진흙에 불과했지만, 감촉과 온기가 마치 살아있는 사람의 살점을 주물럭거리는 것 같아 소름이 돋았다.
작업을 마친 카리나는 호문쿨루스를 멜리사에게 건네주었다.
“멜리사, 어떻게 하는지 기억나니?”
“네.”
멜리사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두려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카리나에게서 건네받은 호문쿨루스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 동안 정신을 집중했다.
십여 분쯤 흘렀을까.
셋 모두가 숨죽여 고요한 침실 안이 서서히 매캐한 연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멜리사가 제대로 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카리나는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은 채 멜리사를 주시했다.
만약 상황이 잘못될 경우, 당장 멜리사와 호문쿨루스를 떼어놓아야 했다. 늦게 조치한다면 멜리사가 호문쿨루스에 녹아들 수도 있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자욱해졌을 때.
이질적인 냉기가 느껴졌다.
‘됐어!’
카리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창문으로 달려가 연기를 빼내었다.
이 연기는 몸에 그다지 좋지 않았다.
지금은 롤랜드와 멜리사 모두 콜록거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긴장해 있었지만, 제대로 환기하지 않는다면 견디기 힘든 매캐한 연기에 울음을 터트릴지도 모른다.
서서히 연기가 빠져나가자 완벽히 조형된 렝케 경의 모습이 드러났다.
‘역시.’
카리나는 렝케 경의 다양한 모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멜리사에겐 렝케 경이란 연구실에서 자신을 고문하는 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지금, 멜리사가 조형한 렝케 경의 모습은 일그러진 얼굴의 미친 마법사였다.
카리나는 멜리사가 갑작스레 나타난 렝케 경의 모습에 지나치게 겁먹었을까 봐 걱정스러워하며 소녀의 안색을 살폈다.
‘……?’
카리나의 눈이 커졌다.
멜리사는 전혀 겁에 질린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뺨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르고 눈이 반짝거리는 모습이 그 어느 때보다도 기뻐 보였다.
“잘했어, 멜리사.”
“정말, 제가 잘했나요?”
카리나는 웃으며 멜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이보다 더 잘할 수는 없을 거야.”
“……!”
멜리사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기 직전, 가까스로 그들이 도망칠 준비 중이라는 걸 떠올린 것처럼 입을 막았다.
“롤랜드, 준비됐니?”
“네.”
동생의 성공에 롤랜드 역시 기분이 좋아졌는지, 한결 밝아진 목소리였다. 여태까지 희게 질려 있기만 하던 뺨에 장밋빛 홍조가 떠올랐다.
롤랜드는 가만히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카리나는 멜리사가 호문쿨루스를 조형할 때보다 더욱더 긴장하며 롤랜드를 바라보았다.
롤랜드의 실력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마법을 부린다는 게 지금 롤랜드에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괜한 고통을 안겨 주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에 가슴이 따끔거렸다.
잠시 후.
롤랜드는 카리나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렝케 경의 연구실에서보다 훨씬 손쉽게 마법을 해냈다.
렝케 경의 모습을 한 호문쿨루스는 처음엔 비틀거렸지만, 곧 렝케 경의 걸음걸이를 정확히 흉내 내며 걷게 되었다.
롤랜드가 조금 불안해진 얼굴로 말했다.
“목소리는…….”
“그건 걱정 마.”
카리나가 롤랜드를 안심시켰다.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그들은 호문쿨루스를 앞세운 채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갔다.
롤랜드는 연구실 밖에서 호문쿨루스를 움직여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계단을 내려가는 것과 같은 어려운 조작도 능숙하게 잘 해냈다.
다행히 저택의 입구까지 가는 동안 그들은 그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다.
‘빨리 나가야 해.’
아직 렝케 경이 깨어날 때까진 시간이 두 시간가량 남아 있었다.
하지만 렝케 경이 깨어나서 그들 셋이 모두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말을 타고 쫓아오기라도 한다면…….
카리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마 자신과 두 아이는 여태껏 맛보지 못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마구간으로 가자.”
카리나는 롤랜드에게 속삭였다.
다행히 마구간 지기는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님?”
마구간 지기는 두 손을 뒤로 허겁지겁 감추며 놀란 얼굴로 눈을 끔벅거렸다.
카리나는 그의 손에서 떨어지는 불법 담뱃잎을 놓치지 않았다.
“어딜 가십니까?”
카리나는 아이들을 뒤에 남겨둔 채 호문쿨루스보다 몇 발짝 앞서 걸었다.
“주인님께선 지금 제약 때문에 말을 못하십니다. 급하게 실험을 하실 게 있다고, 숲에 가자고 하셨어요.”
“그렇군요.”
마구간 지기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고차원적인 마법에 걸리는 ‘제약’은 다양했다.
오른쪽 발을 땅에 디디면 안 된다거나, 항상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말해야 한다는 제약에 비하면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차가 필요하겠군요.”
“네.”
카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롤랜드와 멜리사는 말을 탈 줄 몰랐다.
남녀를 불문하고 귀족 자제라면 말을 당연히 탈 줄 알아야 한다는 건 상식이었다.
하지만 남매는 본인들의 부모도 모른 채 고아원에서 자랐고, 삼촌 렝케 경에 의해 고아원을 나온 후에도 오직 마법과 관련된 교육만 받았다.
마구간 지기는 능숙하게 마차와 말을 준비해 주었다.
마부만 빼고.
피가 식은 카리나는 몇 마디 주워섬겼다.
“마부는…… 어디…….”
“아, 휴가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선 말을 잘 모시니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람을 불러 데려오도록 할까요?”
카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괜한 의심을 사고 싶지 않았다.
더더구나 휴가 중인 마부를 대체할 사람을 구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릴 것이다.
렝케 경이 깨어나기 전 최대한 멀리 도망쳐야 했다.
“별문제는 없겠네요. 그냥 보이지 않아서 궁금했을 뿐이에요.”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마구간 지기는 카리나는 존재하지도 않은 것처럼 그녀 뒤의 호문쿨루스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는 그들이 제대로 마차에 타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바로 마구간으로 돌아갔다.
정신이 온통 불법 담뱃잎에 팔린 모양이었다.
카리나는 서둘러 아이들을 마차에 태웠다.
“호문쿨루스도 나와 같이 마부석에 태울 수 있겠니?”
“네.”
롤랜드는 카리나보다 먼저 호문쿨루스를 마부석에 앉혔다.
카리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호문쿨루스의 옆에 앉았다. 이제 가장 큰 문제가 남았다.
자신은 말만 몇 번 타 봤지, 한 번도 마차를 몰아본 적이 없었다!
카리나는 한 차례 크게 심호흡했다.
‘할 수 있어.’
차라리 말을 타는 건 쉬웠다.
미숙해서 떨어져서 다치든 말든 그녀 자신의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니까.
하지만 지금, 카리나의 등 뒤엔 그녀만 믿고 있는 두 아이가 있었다.
카리나가 실패한다면 멜리사는 죽고, 롤랜드는 끔찍한 유년시절을 가진 성인으로 성장하는 미래가 닥쳐올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죽겠지. 아니면 죽기보다 더 못한 삶을 살거나.’
렝케 경은, 자신의 소중한 대마법사 후보를 탈출시키려 한 카리나를 결코 용서하지 못할 테니까.
그녀는 고삐를 꽉 움켜쥐었다. 다행히 훈련이 잘된 말은 터벅터벅 걷기 시작했다.
좀 더 빨리 달렸으면 좋겠지만, 그러다 사고라도 나면 그들은 꼼짝없이 붙잡히게 된다.
대문을 나서니 구불구불한 숲길이 나타났다.
시내까지 가는 길이야 머릿속에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지만.
고삐를 움켜쥔 손에 식은땀이 흥건히 고였다.
길이 일직선이면 좀 나았으련만, 곳곳이 굽이친 길이라 고삐를 제대로 잡아당겨 말을 몰아야 했다.
다행히 말은 잘 길들어져 있어 카리나가 오른쪽 고삐를 잡아당기면 오른쪽으로, 왼쪽 고삐를 잡아당기면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카리나는 매 순간마다 말에게 감사했다.
만약에 말이 서툰 마부라고 사람을 가려 날뛰었다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을 것이다.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대낮에도 햇볕이 제대로 내리쬐지 않는 어둑한 숲을 완전히 빠져나왔다.
카리나는 으슥한 구석에 마차를 세운 이후 아이들이 마차에서 내리는 걸 도와주었다.
시끌벅적한 마을의 소란이 그들을 집어삼켰다.
화려한 마차에서 내리는 초라한 형색의 여자 한 명과 아이 둘은 제법 가십거리가 될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각자의 일을 하기에도 바빴던 마을 사람들은 아무도 그들을 눈여겨보지 않았다.
“다 온 거예요?”
“아니야. 아직 한참 남았어.”
그들은 겨우 숲을 빠져나왔을 뿐이다. 지금쯤 슬슬 렝케 경이 깨어났을 시간. 최대한 빨리 이 작은 마을을 빠져나가야 했다.
“렝케 경이 곧 깨어날 시간이야.”
“아!”
멜리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마부석으로 기어 올라갔다.
다음 순간, 음침하게 마부석에 앉아 있던 렝케 경이 순식간에 진흙 덩어리로 변했다.
카리나는 말없이 멜리사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진흙 덩어리 모양의 호문쿨루스를 주머니 안에 집어넣었다. 또 쓸 날이 있을지도 몰랐다.
“이제 정말로 떠나자. 렝케 경이 우릴 쫓아올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