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그가 다가오자 다봄은 기다렸단 듯 고개를 들었다. 곧장 두 사람의 입술이 닿았다.
그가 고개를 비틀자, 그녀도 그에 맞춰 고개를 돌렸다.
그 틈 사이로 잠깐 뜨거운 숨이 샜다 다시 막혔다.
그를 붙잡은 다봄의 손에 점차 힘이 들어갔다. 그게 꼭 자신을 원하는 것 같아 건오의 눈앞이 흐려졌다.
“으응.”
다봄의 입술 사이로 보채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건오는 식탁 위로 거의 무너지려던 몸을 세우고 그녀 앞에 섰다.
“저녁은.”
“이따가.”
다봄의 입술을 누르듯 다가간 건오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그녀를 점령하듯 고개를 젖혔다.
무언가 잡을 곳을 찾는 그녀의 손이 테이블을 건드린 후 건오의 목을 감싸 안았다.
다봄이 부딪힌 식탁 위에서 초밥이 후드득 떨어졌다.
그들은 입을 맞추던 도중 그 소리에 눈을 떴다.
건오는 가늘어진 눈으로 남은 것들을 옆으로 밀어내곤 다봄을 세워 그곳에 걸터앉혔다.
얼추 키가 맞자 그는 그녀에게 더 깊게 침범했다.
다봄은 갈급하게 침범하는 그를 받아내며 본능대로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점차 격해지는 행위에 이번엔 수저가 떨어졌다.
“……건오야.”
제법 요란한 소리에 이번엔 다봄이 그를 밀어냈다.
그들 주변은 엉망진창이었지만, 지금 건오의 눈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잠깐의 틈조차 아쉬워서 이 와중에도 입맛을 다셨다. 살짝 맛이 간 것 같은 눈이 다봄을 집요하게 바라봤다.
그러다 돌연 건오가 그녀를 안아 들었다. 놀란 다봄이 그를 꽉 잡았다.
“소파도 괜찮죠?”
그는 다봄의 대답 따윈 듣지 않고, 방으로 가는 시간도 아까워 소파에 그녀를 앉혔다.
다봄의 엉덩이가 안착하자마자 입술이 재차 맞물렸다.
다봄은 눈을 감지 못했다. 건오가 언제부턴가 눈을 감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며 혀를 섞어서였다.
금욕적일 것만 같은 자태와 다르게 그의 눈빛은 원색적이고, 그의 손길은 노골적이었다.
다봄은 제 옷을 벗기는 그의 눈빛이 날것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그러다 그의 탁한 시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손을 뻗었다.
다봄이 건오의 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그 손길에 잔뜩 긴장한 건오의 근육이 팽팽해졌다.
“하아.”
이내 그녀의 작은 손이 그의 셔츠를 벗겨 냈다. 동시에 건오는 제 허벅지 위에 다봄을 앉혔다.
“내려다보니까 어때요.”
“몰라. 이상해.”
다봄은 건오가 더 말을 걸까 봐 먼저 입을 맞췄다.
어설픈 입맞춤에도 그는 기꺼이 응하며 그녀의 혀를 괴롭혔다.
다봄의 눈이 녹진하게 풀어졌다. 건오는 그 풀어진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상의를 벗겼다.
단추로 여며져 있던 잠옷이 소파 바닥에 떨어졌다.
가는 어깨와 굴곡진 선이 드러났다.
그는 이 순간을 기다린 것처럼 다봄에게 손을 뻗었다.
건오의 굵직한 팔이 그녀의 매끈한 허리를 휘감으며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곧장 그의 입술이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점차 아래로 내려갔다.
“아아…….”
다봄의 손가락이 건오의 등 위에서 펴졌다가 도로 곱아들길 반복했다.
건오는 그녀의 반응을 느끼며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의 의도대로 상체보다 하체가 먼저 밀착되었다.
다봄은 눈꺼풀을 꽉 감았다.
맞닿는 느낌도 생경하거니와, 건오의 혀가 그녀의 예민한 곳만 찾아 건드리고 있었다.
입술 사이로 뜻 없는 탄성을 연신 흘린 다봄은 저도 모르게 허리를 들썩였다.
건오의 팔뚝에 막히지 않았더라면 제 몸짓에 제가 부끄러워져 진작 도망갔을 터였다.
“아, 제발, 그만.”
발가락까지 곱아들 정도가 되자 다봄은 고개를 도리질 치며 말했다.
열기 띤 음성으로 애원하니, 건오가 그녀의 상체에서 입술을 뗐다.
다봄은 더욱 붉어진 건오의 입술을 바라보다 불현듯 고개를 숙였다. 입술과 입술이 짧게 맞물렸다.
“이리 와요.”
짧아도 너무 짧은 입맞춤에 건오가 다봄을 불렀다.
그런데 그의 위에 앉은 그녀가 좀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건오는 콧등을 찡그리는 다봄을 보며 피식 웃었다. 복수라도 하는 모양이었지만, 건오는 이렇게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었다.
“이리 오랬잖아요.”
건오가 제 허벅지에 앉은 다봄을 소파에 눕혔다. 순식간에 그를 올려다보게 된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봄을 눕히자마자 건오는 바로 벨트를 풀었다.
그녀는 거실에 불이 켜지지 않은 게 이렇게나 다행일 수가 없었다.
“누나.”
“으응.”
“벗길게요.”
단숨에 나체가 된 건오는 어느새 다봄의 바지를 잡고 있었다.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비틀고 허리를 들었다. 벌써 숨이 가쁜 느낌이었다.
“나 봐요.”
그의 요청에 다봄은 천천히 건오와 눈을 맞췄다.
그는 그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다봄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잔뜩 긴장한 다봄의 어깨가 올라가자, 건오는 몸을 맞대며 입을 맞췄다.
이번에도 건오는 눈을 감지 않았고, 다봄도 역시 그를 따라 했다.
문득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던 그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다봄의 눈이 커지자, 건오가 걱정 말라는 것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그녀가 그 모습을 보며 겨우 힘을 뺀 순간, 그의 이마가 살짝 찡그려졌다.
동시에 다봄의 손이 그의 등을 다급하게 안았다.
건오는 괜찮다는 듯 입을 연신 맞췄지만, 다봄은 잠시 아무것도 못 하고 굳어 있어야 했다.
“……하. 건오야.”
다정한 얼굴은 거짓말이라는 듯 건오가 움직였다.
녹녹하던 그의 몸짓이 점차 거세졌다. 다봄의 숨이 가빠질수록 건오의 미간이 좁혀졌다.
다봄의 흔들리는 시야에 찡그린 그의 얼굴이 담겼다. 그 색정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잠시였다.
어느 순간 건오가 허리를 세우고 소파를 짚으며 그녀를 몰아쳤다.
세찬 기세에 그녀의 몸이 밀리며 긴 머리카락이 엉켰다. 다봄의 눈앞이 점차 아득해졌다.
“건오야, 건오야.”
다봄이 그를 부르는 소리가 다급해지자 건오가 그녀 위로 몸을 덮었다.
그게 다였다. 그는 그녀의 부름에 더욱 극렬하게 밀어붙였다.
다봄의 신음이 정신없이 퍼지던 찰나였다.
그녀가 고개를 젖히며 건오를 껴안았다. 그와 함께 건오가 깊은 탄성을 터트렸다.
그의 젖은 머리카락이 그녀의 어깨에 닿으며 누구 것인지 분별할 수 없는 숨결이 한곳에 섞였다.
* * *
무슨 정신으로 씻었는지도 모르겠다.
온몸이 탈진한 것처럼 힘이 빠진 다봄은 이불 속으로 들어가 고개를 저었다.
“배 안 고파. 혼자 먹어.”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건오의 이마가 바로 구겨졌다.
다봄보다 먼저 씻고 나와 뭐라도 먹이기 위해 핸드폰을 이리저리 누르던 그는 한숨을 꾹 참고 회유해 보았다.
“혼자 먹으면 맛없어요.”
“입맛이 없어.”
“지금 복수하는 거예요?”
건오의 비딱한 질문이 웃겨서 다봄은 키득거리며 되물었다.
“내가 밥 안 먹으면 안달 나? 그래도 나만큼은 아닐 거야.”
“이제 그딴 말 안 할 거니까 누나도 굶을 생각 마요.”
“정말?”
건오의 끼니에 예민한 그녀는 그가 굶지 않겠다는 말만으로도 고민했다.
아, 그래도 너무 피곤한데.
“진짜 매끼 챙겨 먹을게요.”
그가 덧붙인 말에 그녀는 기꺼이 저녁 식사에 동참했다.
다봄은 자지 않기 위해, 먹을 걸 찾는 건오 옆에서 엎어 두었던 핸드폰을 들었다.
자느라 읽지 못한 사람들의 안부 메시지와 건오의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없죠?”
“으응.”
“그럼 내가 시킬게요.”
“응, 고마워.”
다봄의 음성이 점차 가라앉았다.
침대 헤드에 기대 위에서 그녀의 핸드폰을 내려다본 건오는 알아서 저녁을 주문했다.
다봄의 핸드폰 액정 위엔 뉴스 페이지가 떠 있었다.
“건오야, 너 뉴스 본 거지?”
“워낙 시끄러워서요.”
지웅의 마약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다봄은 너무 놀랐다. 밝혀진 경위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사람이 죄를 짓고 살면 어떻게든 들통나게 되어 있나 봐.”
압수수색 한 달 전. 한 오피스텔에 층간 소음 민원이 접수됐다.
민원이 접수된 이상 출동은 해야 했기에 경찰이 문제의 집으로 향했고, 그 집에 모여 있던 사람들 상태를 수상하게 여겨 첫 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렇게 보름 만에 유통책으로 지목된 사람이 잡혀 들어왔고, 그 사람 동선을 CCTV로 따라잡다가 지웅을 발견했다.
그 후 유통책으로 잡혀 들어온 사람의 자백과 함께 지웅의 자택과 신체에 영장이 발부되었다. 그게 오늘이었다.
“지금 연광 주가는…….”
“보지 마요. 밥맛 더 없어지니까.”
그러나 이미 파란색을 본 다봄은 벌떡 상체를 세웠다.
“아, 연지웅.”
다봄이 단전에서부터 깊은 한숨을 끌어 내쉬자마자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처음 보는 번호였다.
“연다봄입니다.”
-경기경찰청 마약수사대입니다. 연지웅 씨 관련해 참고인 조사를 하려고 하는데 방문할 수 있으십니까?
“저를요?”
다봄은 무척 황당했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손가락으로 스스로를 가리키다, 이 전화가 스팸은 아닐지까지 생각이 흘러갔다.
그때 건너편에서 건조한 목소리로 부연했다.
-얼마 전 통화 기록이 남아 있어서요. 연지웅 씨가 부재중 전화까지 남기기도 했고, 사안이 사안이다 보니 모쪼록 협조 부탁드립니다.
통화 기록이란 말에 다봄은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피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날짜 안내해 주시면 일정 보고 방문하겠습니다. 수고하세요.”
통화를 종료한 다봄은 목덜미를 긁적였다.
그녀는 여러모로 복잡한 기분인데, 건오는 아무렇지 않게 본인 일정을 확인했다.
여차하면 다봄과 함께할 요량이었다.
“그놈과 따로 만난 적 있어요?”
“아니.”
“통화 내용은 기억해요?”
다봄은 멋쩍은 표정으로 그날 통화기록과 따로 저장해 두기까지 한 USB를 떠올렸다.
다봄이 핸드폰을 뒤져 음성 녹음을 재생했다.
-용건만 간단히 해요. 당신과 다르게 일이 차고 넘쳐서.
-이 미친년이.
그 후 다봄을 향한 지웅의 욕설이 쏟아졌다.
건오는 핸드폰이 지웅이라도 되는 양 서늘한 시선으로 깔아보았다.
못 들어 줄 정도의 욕설이 그의 신경을 바짝바짝 갈고 있던 때였다.
다시 다봄의 목소리가 들렸다.
-닥쳐, 덜떨어진 놈아.
본인이 한 말을 잊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가 급격히 요동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