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3. (43/72)

43.

건오는 체중을 실어 다봄의 배꼽 아래를 지그시 눌렀다.

그의 몸짓이 노골적일수록 다봄의 몸이 뻣뻣해졌다.

“흐으, 건오야.”

“안 돼. 못 물러.”

그녀가 이름을 부른 것뿐인데 건오는 듣지도 않고 다봄의 말을 잘랐다.

애초에 무를 생각도 없었지만, 억눌린 건오의 음성을 들으니 다봄은 조금 무서워졌다.

건오는 경직된 그녀의 쇄골에 입술을 묻었다.

가느다란 뼈를 씹어 먹기라도 할 듯 그곳을 빨아들이며 건오는 재차 손을 움직였다.

블라우스 단추를 끄르는 그의 손놀림에서는 조급함이 묻어났다.

“흡.”

그의 입술이 그녀의 피부 위에서 농밀하게 움직였다. 건오의 숨이 가슴 사이로 내려올 때, 마지막 단추가 풀어졌다.

정염에 젖은 시선이 다봄의 몸을 훑었다.

그는 약하게 들어오는 빛이 못마땅해 당장이라도 커튼을 젖히고 싶었다.

다봄은 이 순간이 몹시 부끄러워 두 팔로 제 눈을 가렸다.

“하아.”

그는 탄성과 함께 작게 욕설을 흘리며 그녀의 등 뒤로 손을 넣었다.

다봄이 마른침을 넘기는 소리와 훅이 풀리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다봄의 상의를 벗긴 건오는 다리 사이에 그녀를 두고 내려다보며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다봄은 온몸이 새빨개지는 기분이었다.

“저기, 건오야.”

그녀가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저를 부르는 소리에 다봄의 몸을 하염없이 보고 있던 건오가 시선을 들었다. 그는 대답 대신 그녀와 눈이 마주친 채로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다봄의 마른침 소리처럼 그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그녀가 눈을 꽉 감았다.

“겁나요?”

다봄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거기까지 확인한 그는 이제 당연하게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곳곳을 파고드는 농밀한 입맞춤에 그녀의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 틈에 건오는 다봄의 바지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감고 허리를 들어 주며 눈을 뜨지 않았다.

그러곤 절대 내려다보지 말라는 듯 그의 목과 어깨에서 손을 떨어트리지 않았다.

그녀의 뜻을 받들며 그는 착실히 다봄을 벗겼다. 하지만 그의 입술이 직접 내려가자 다봄의 손은 갈 곳을 잃었다.

“자, 잠깐.”

건오의 혀가 다봄의 가슴에 다다랐다. 그때부터 그나 그녀나 이성이 완벽히 무너졌다.

그의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그와 닿은 모든 살결이 부드러운데, 그의 행동과 손짓만큼은 상냥함과 거리가 멀었다. 그는 상상 이상으로 집요했고, 짓궂었다.

다봄의 입술 사이로 새는 소리에 숨기지 못한 정욕이 묻어났다.

그 소리가 커질수록 건오의 눈빛이 탁해졌다.

“흡, 건오야.”

다봄의 위에 자리를 잡은 건오가 그녀의 허벅지를 들어 올렸다.

다봄은 침대에 누운 채 뒷걸음질을 치듯 위로 올라가려 했지만, 그는 그곳을 딱 붙여 고정하듯 힘을 줬다.

“싫어?”

더는 올라갈 곳도 없는 다봄을 바라보며 그가 물었다.

그녀는 정신없이 도리질 치다 무심코 시선을 내렸다.

“닿은 게 보고 싶어?”

다봄은 또 고개를 저었다.

그는 그 고갯짓에 만족한 것처럼 입매를 늘어트렸다.

“누나.”

그가 그녀를 불렀다.

다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의 몸짓이 더욱 거세졌다.

“연다봄.”

열기로 가득한 공기가 침실을 채웠다. 그 안에서 건오는 정신없이 다봄을 탐했다.

어디 하나 예쁘지 않은 곳이 없었다.

흥분한 그녀의 얼굴은 미치게 황홀했고, 그녀의 숨소리는 그를 녹였다.

“나 봐.”

다봄이 겨우 눈을 떴다.

그녀는 더는 그를 붙잡을 힘도 없어 이불을 움켜쥐고 있었다.

흔들리는 시야에 저를 파고드는 그가 담겼다.

건오는 그 눈동자에 다시금 욕을 짓씹을 뻔했다.

그의 몸짓이 절정으로 달려갔다.

* * *

“누나, 일어나요.”

그녀가 까무룩 잠이 든 지 벌써 다섯 시간이 흘렀다.

건오는 곤히 잠든 그녀를 정말 깨우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나.”

“우음.”

다봄이 잠결에 웅얼거리며 그의 품 안으로 파고들었다.

건오는 그녀의 등을 꽉 안고 귓가에 조용조용 일렀다.

“일어나야 해요.”

저녁때가 훌쩍 지났다.

뭐라도 먹여야 하는데, 다봄은 배가 고프지도 않은지 잠만 잤다. 이제껏 자지 못했던 걸 몰아 자기라도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누나.”

그가 세 번이나 그녀를 부르고 나서야 다봄은 무거운 눈꺼풀을 올렸다.

잠에 취한 다봄은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눈 떠요.”

다봄은 금방 다시 잠든 것처럼 말이 없었다.

건오는 제 품에 안긴 다봄을 보며 최후의 수단을 꺼냈다.

“나 밥 안 먹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다봄은 대번에 눈을 번쩍 떴다.

“몇 시야?”

다봄은 시간을 물으며 핸드폰을 찾아 침대를 더듬거렸다.

건오는 부스스한 그녀의 머리카락을 직접 넘겨 주었다. 제 끼니를 챙기는 그녀의 모습은 언제 봐도 소중했다.

“9시요.”

“밤?”

“응, 밤.”

“어떡해!”

“괜찮아요.”

잠이 확 달아난 다봄은 침대에서 내려오려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는 제 꼴을 알아채고 깜짝 놀랐다.

다봄이 다급히 가까이 있는 이불을 끌어당겼다.

곧 그녀의 머릿속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랐다.

건오는 모든 생각을 내보이는 그녀의 표정을 웃으며 구경했다.

마침 눈을 굴리던 다봄과 그의 시선이 맞닿았다. 그는 나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으, 안 무른다니까.”

다봄이 코까지 이불을 끌어당기며 괜히 그를 흘겨보았다.

건오가 나른하게 웃으며 훌쩍 그녀와의 거리를 좁혔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닿을 듯한 거리에서 그는 다봄이 좋아하는 예쁘게 웃는 얼굴로 못 박았다.

“결혼도 못 물러.”

그를 밉지 않게 흘겨보던 그녀는 이불을 더 끌어 올렸다.

“나 옷 갈아입을 거니까 얼른 나가.”

다봄이 제가 할 수 있는 한 태연한 목소리로 말을 돌렸으나 그렇다고 난리가 난 속내가 감춰지지는 않았다.

“다 봤는데 꼭 나가야 해요?”

“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여유롭게 어깨를 으쓱인 그는 순순히 침대에서 일어나 먼저 침실을 벗어났다.

다봄의 옷들은 협탁 위에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그 위에 놓인 속옷을 보며 다봄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그가 벗겨 낸 옷을 도로 입는데, 옷에 기억이라도 새겨진 것처럼 몇 시간 전 광경이 다시 그려졌다.

다봄은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한동안 심호흡만 했다.

* * *

“가요.”

“늦어서 멀리는 못 가겠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다봄은 그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지나갔다. 건오는 그럴 줄 알았던 것처럼 그녀 옆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응. 호텔 레스토랑 가면 되겠어요.”

다봄은 앞만 보고 걸으면서도 건오의 손을 놓지는 않았다.

건오는 제 눈을 피하는 다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녀에 대한 막연한 욕심이 구체적으로 변해 갔다.

“배 안 고파요?”

“응. 너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호텔 레스토랑에 왔지만 그녀가 원하는 거라곤 샤오룽바오와 와인뿐이었다.

건오는 알아서 식사가 될 만한 것들을 시켰고, 다봄은 그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아 그 모습을 흘끗흘끗 보았다.

건오는 그 시선을 느꼈으면서 굳이 아는 척하지 않았다.

다봄은 그와 눈이 마주치려면 어색하게 고개를 돌리기도 하고, 말수도 적어졌다.

지금 다봄은 도망치기 전과 비슷하면서도 분명 달랐다. 그래서 건오는 불안하지 않았다.

“내일 돌아가네요.”

“응.”

“아쉽지 않아요?”

“아쉬워.”

짧은 대답 안에서도 그녀의 설렘이 전해졌다. 실제로 다봄은 간질간질한 기분에 들떠 있었다.

건오가 다봄의 잔을 채워 그녀 쪽으로 밀었다.

“누나.”

“응.”

“20년 전에 말이에요.”

다봄이 그가 내민 잔을 받아 든 순간, 건오는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꺼냈다.

건오가 그때 얘기를 먼저 입에 올리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가 처음 얘기한 날, 기억해요?”

“기억해.”

긴장한 다봄이 붉은 와인으로 목을 축였다.

조용한 동네의 성당.

그 안에서 이웃집 아이들은 부모님끼리 인사할 때나 보던 또래였다.

‘곧 선거네요. 잘 되실 거예요.’

‘감사합니다. 다 사장님 덕이죠. 하하.’

부모들이 형식적인 대화를 나눌 때, 아이들은 그들 다리 뒤에 서 있거나 어른들께 인사 후 도망치곤 했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다봄은 대화 한번 해 본 적 없는 옆집 남자아이를 뚫어지게 관찰했다.

하람과 공놀이를 한, 그날 이후였다.

‘아줌마, 쟤 밥 줬어요?’

어린 다봄이 담을 넘어간 공을 쫓아 작은 걸음을 옮기던 중이었다.

까랑까랑한 목소리가 다봄의 발을 붙잡았다.

‘사모님, 애가 너무 배고파해서 제가 사비로…….’

‘아줌마 사비든 뭐든, 내가 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배부르면 그게 당연한 줄 알까 봐 적당히 굶기면서 키우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교육을 방해하면 어떡해요?’

‘아무리 그래도 애인데.’

‘이 아줌마, 말이 안 통하네. 말했죠? 쟨 지금 수많은 고아 중 본인이 선택받은 것에 감사함을 배우는 중이라고. 주워 온 애라 특별히 신경 써서 교육하는 거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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