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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짐승이 황자였다 (128)화 (128/141)

128화

오래전, 이 땅에 제국을 선포한 나라가 존재하기 이전부터.

마녀는 언제나 사람들 가까이 있었다.

피로 이어지는 특별한 능력, 병을 고치고 상처를 낫게 하는 신비한 힘으로 사람들을 도왔다.

당연하지만 마녀는 그들에게 있어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그러나 초대 황제가 제국령을 선포하고 엔하시아 제국이 자리를 잡게 되었을 때부터, 모든 것이 비틀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황제보다 마녀를 더 필요로 했고 나라라는 울타리보다 그들의 능력에 의지했다.

머리 위에 군림하는 이보다 당장의 상처와 병을 고쳐 주는 사람을 더욱 믿고 따르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이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황실에선 마녀의 존재를 꺼리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올랐음에도 그들이 진정으로 존경하는 것은 황제가 아닌 한낱 마녀였다.

그에 대응하고자 마탑을 세우고, 모든 마법사는 마탑에 속해야 한다는 법까지 만들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마법사는 마녀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눈 깜짝할 새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거나 손가락 하나 튕기는 것만으로도 불을 피울 수 있는 능력은 물론 신기했지만 마찬가지로 저들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는 아니었으므로.

마법사 또한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마녀와 비교된다는 사실에 무척 분개했다.

황실과 마탑이 손을 잡고 본격적으로 작당하게 된 건 바로 그때였다.

“본래는 조용하고 또 은밀하게 그들을 처리하려 했다. 마녀 사이에서 이상한 병이 돈다는 핑계로 제거하려던 것이지. 그런데 웬걸, 마녀가 가진 능력은 단순한 치유 능력만이 아니었다.”

마녀는 사람을 치유하는 것 외에도,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비책이었다.

황실이 마녀를 완벽한 적으로 인식하게 된 계기 또한 그것이었다.

“전쟁은 사람과 사람이 하는 것이지. 한데 사람의 지능과 이성을 가진 짐승이 사람과 싸우면 어느 쪽이 지는지는 불 보듯 뻔하지 않느냐? 그래서 황실은 마녀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마법사는 마녀에게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나 강력한 마법을 구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많았을 뿐더러 몸도 약했다.

무예를 갈고 닦는 대신 책을 들여다보고 연구하는 사람들인지라 갑작스러운 급습에 무척 취약했다.

하지만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능력을 갖춘 마녀가 야심을 품고 일어난다면?

황좌는 물론이고 마법사들 또한 저들의 입지를 완전히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해서 벌어진 전쟁은 무려 세 번에 걸쳐 이어졌다.

여기에 평민들은 모두 마녀의 편에 섰다.

저들이 자처해 짐승으로 변하길 청하고, 마녀를 지키기 위해 앞장섰다.

단순히 저들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이려는 군주의 모습에 분개한 탓도 있었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참으로 간사해서, 수많은 사람이 죽어 갈수록 민심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황실은 이날을 대비해 쌓아 둔 국고가 있었지만 평민이 어디 그럴 수나 있겠느냐, 채 치료하기도 전에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두룩했고 그들은 곯은 배를 움켜쥐고 전장터에 뛰어들어야 했다.”

와중에 황제는 마녀를 회유하려 들었다.

황실에 충성을 맹세하고 마법사와 마찬가지로 마탑에 속하기로 약속하면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그러나 마녀들은 끝내 받아들이지 않았다.

황실이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비기에 대해 알게 된 이상, 국토를 넓히고 국력을 키우는 데 필요한 살상 병기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렇게 전쟁이 길어질수록 사람들은 차츰 마녀들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가족을 잃은 걸로도 모자라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데 이 의미 없는 싸움을 지속할 이유가 있느냐고, 너희가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더는 사람이 죽지 않는데 아직 벌어지지도 않은 상황을 그리 염려해야만 하냐고.

마녀의 입지는 추락했고 그들은 차츰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벌어진 마지막 세 번째 전쟁은 결국 황제의 승리로 끝났다.

“그 전쟁에서 더는 승산이 없음을 확신한 마녀들은 도피를 계획했다. 이 나라에선 도저히 발붙이고 살 수가 없음을 안 것이지. 한데 황실은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인간의 지성을 가진 짐승과 대적할 수 있는 방도로 마법사들은 ‘마수’라는 것을 만들어 냈다.

마법으로 짐승을 변종으로 만든 후 강력한 살상 무기로 이용하려던 것이었는데, 문제는 저들도 통제할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러다 세 번째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자 황제는 그 마수를 민가 곳곳에 풀어 놓았다.

“더는 짐승이 되길 자처하는 사람이 없자 마녀가 황제를 끌어내리기 위해 괴물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퍼뜨렸지. 저들에게 등을 돌린 사람에게 보복하기 위함이다, 사실 짐승으로 만들어 저들 뜻대로 조종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는 둥, 참으로 여러 가지 소문을 내어 사람들을 선동했다.”

이러한 소문이 실제로 신뢰를 얻은 데엔 마녀의 능력도 한몫했다.

무고한 사람을 공격하는 마수를 본 순간 약을 사용한 것인데, 그건 다름 아닌 다친 짐승의 경계심을 누그러트린 뒤 치료하려고 만든 약이었다.

그것이 마수에게도 통하자 사람들은 되레 마녀가 자신들을 지켜 준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보복하려다 보는 눈이 많아 중도에 멈춘 것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와중에 황실에서 국고를 풀어 사람들을 돕기까지 하니 소문은 처음보다 더욱 크게 부풀려졌다.

어느새 마녀는 사람을 돕고 치유하는 존재가 아닌,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사특한 주술을 사용해 조종하는 악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세 차례에 걸친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힘들어했지. 이를 놓치지 않고 황제는 마녀사냥을 선포했다. 그들을 직접 사로잡거나, 혹은 어디 있는지 위치를 밀고하는 사람에겐 큰 현상금을 내리겠다며 마녀의 존재를 이 땅에서 완전히 지우고자 했다.”

유일하게 그들에게 대적할 수 있는 능력을 가만히 둘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전쟁도 벌이지 않았을 터.

그렇게 마녀는 하나둘씩 붙잡혀 사람을 도운 죄로 화형에 처해졌다.

실로 억울하고도 비통한 죽음이었다.

“이제 알겠느냐? 황실의 강대한 힘은 무고한 자의 피를 제물로 바쳐 얻은 것이다. 참으로 추악하기 그지없지.”

“하지만…… 세간에 알려진 것은…….”

“황실이 그런 과거를 밝히려 들겠느냐? 해서 황제는 금언령을 내렸다. 전국 곳곳에 사람을 풀어 마녀의 진실을 말하는 이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제거했다. 쉬쉬하기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지, 상황이 나아지고 보니 죄책감을 느끼는 이도 더러 있었으니까. 무고한 여인을 산 채로 불태워 죽이는 일에 일조한 한때 자신의 모습을 외면하며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어떻게 그걸 다 알고 있는 겁니까? 아니, 사실이기는 합니까?”

“나는 없는 말을 지어낼 만큼 미련하지 않다, 테시우스.”

그리 말하며 리비엘은 손을 탁 하고 튕겨 보였다.

그러자 허공 위로 마도구가 영상을 재생하는 것처럼 한 장면이 번쩍하고 떠올랐다.

일순 테시우스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

어떻게 외숙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거지?

그런 의문이 드는 중 마주한 영상 속엔 아주 오래된 종이 묶음이 있었다.

“마녀 숙청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는 황실에도 남아 있지 않다. 후대에 알리기에도 부끄러웠겠지. 따라서 마탑주만이 보유할 수 있고, 대를 이어 물려받는다. 그리고 이 문서는 그 기록의 원본으로 현 마탑주가 아닌 내가 가지고 있다.”

“왜…… 왜…….”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고귀한 핏줄이라 불리던 황실의 추악한 이면을 본 것도 충격적이고, 리비엘이 마법을 사용할 줄 안다는 것도, 그가 마탑주 대신 원본 문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무엇 하나 쉬이 이해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건 언제나 제 편이리라 생각했던 외숙의 배신과 그 이유였다.

“아드넬이 마녀라는 걸 밝히지 않는다면 나는 역으로 황실의 과거를 밝힐 것이다. 세레나는 실제로 황실과 손을 잡아 일부러 전염병을 퍼트렸고, 치료제를 개발한 척 나누어 주며 황실에 대한 존경심을 높이고자 했노라고. 그리고 나는 고통받는 평민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과거의 추잡한 역사를 밝혔노라, 그리 말할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간 마탑주와 황후가 길길이 날뛸 테지, 결국은 아드넬이 마녀라는 걸 말할 수밖에 없을 게야.”

“대체……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제가 그간 봐 온 외숙은 이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 어머니의 원통함을 풀어 주고자 발 벗고 나서서 범인까지 잡으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리아누의 원통함을 풀어 줘?”

순간 리비엘의 한쪽 입꼬리가 비뚜름하게 치켜 올라가더니 이내 “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너무 어이가 없어 눈물이 다 나온다는 듯, 배를 움켜잡고 웃던 리비엘은 눈가를 손으로 슥 훔치며 가까스로 진정했다.

“아……. 하긴, 그렇게 알려져 있긴 하지. 단순히 동복 남매라는 이유로, 오라비라는 이유로, 당연히 그럴 것이라 생각하곤 하지.”

“…….”

“잘 들어라, 테시우스. 피가 섞였다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였다고 다가 아니란다. 때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될 수 있는 게 가족이야. 그 단어가 네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 모르지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나 또한 그리 생각하라는 법은 없어.”

테시우스는 그만 할 말을 잃고 리비엘을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리비엘은 문득, 허공을 응시하며 말문을 열었다.

“그래……. 내가 그리 생각할 필요는 없지. 그렇게 생각해 본 적도, 해 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 또한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알고 있는 사람은 모두 죽었다.

리비엘은 테시우스를 향해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래도 넌 부정할 수 없는 내 하나뿐인 조카이니, 알 자격은 충분하지. 그러니 알려 주마, 또 다른 과거의 진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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