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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짐승이 황자였다 (118)화 (118/141)

118화

“문제는 지금 마녀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는 거야. 그런 전염병을 퍼트릴 존재는 마녀밖에 없다고 알려져 있기도 하거니와, 실제로 그런 상황이라 네가 정체를 드러냈다가는…….”

“……저도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이대로 손 놓고 지켜볼 수는 없잖아요.”

“아드넬…….”

“방법을 알고도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때와 뭐가 다르죠?”

아드넬이 말하는 그때라 함은 세레나가 죽은 줄로 알았던 시기였다.

당시 느꼈던 죄책감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크게, 훨씬 어둡게 다가왔다.

세레나가 알려진 것과 다르게 살아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충격보다는 안도감이 먼저 느껴졌을 정도로.

“……전염병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하나예요. 저 또한 목숨을 거는 것.”

한순간에 퍼진 악독한 저주를, 마찬가지로 한순간에 없애려면 세레나처럼 본인의 생명력을 태워야만 했다.

비록 목걸이는 세레나와 함께 잿더미가 되어 사라졌지만 아드넬은 이미 능력을 한층 증폭한 상태였다.

여기에 목숨까지 건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그건 안 돼! 네가 어떻게 살아났는데, 똑같이 목숨을 걸면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론 저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아요.”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을 하염없이 걸으면서도 포기하지 않았던 건 사랑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삶의 기쁨으로 돌아왔다.

태어난 순간부터 사람은 당연하게 살아 숨 쉬지만, 살아있음이 얼마나 찬란하게 빛나는 축복인지 그 소중함을 잠시 잊을 수는 있어도 모를 수는 없다.

아드넬 또한 그러한 제 생명을 포기하면서까지 희생하고 싶진 않았다.

어떤 방법도 없었더라면 고민했을지 몰라도, 적어도 그녀에겐 다른 방도가 있었다.

“세레나가 퍼뜨린 병은 ‘천연두’, 그것도 심각한 전염성을 가진 피부병이에요. 완벽한 치료는 어렵겠지만 적어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알아요.”

방법이라는 단어에 테시우스가 두 눈을 크게 떴다.

기록을 찾아봐도 한때 발병했으나 자연스레 사라졌다는 내용만 있어 설마하니 예방법이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 했다 보니 자연히 아드넬 또한 모르리라 생각한 것이다.

‘나는 전생의 기억 덕분이지만. 능력을 증폭할 때 알게 된 것도 조금 있어.’

그 악독한 병이 사라지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마녀였다.

비록 기록에는 남지 않았지만, 머릿속에 흘러들어온 수많은 지식 중에는 마녀가 자신의 생명력을 태워 저주와 다름없는 전염병을 거두어간 장면 또한 있었다.

전신에 남는 끔찍한 흉터를 치료하는 약 제조법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목숨을 걸지 않고선 깨끗이 치료할 순 없었다.

‘천연두는 전염성이 제일 무서운 병이기도 해.’

20세기에만 해도 무려 3억에 달하는 목숨을 앗아간 병이다.

지금이야 수도에 한정되어 있다지만 머지않아 더 많이 퍼져나갈 터다, 이를 예방하려면 일명 ‘백신’을 개발해야만 했다.

“이미 병에 걸린 사람 모두를 구제할 수는 없겠지만 천연두에 좋은 약초가 뭔지도 알고 있어요. 우선 그것들부터 구해야 해요.”

“그럼 예방은 어떻게 하는 거지?”

“소의 젖을 짜는 여자들은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속설이 있어요.”

실은 소와 접촉해 ‘우두’라는 병을 앓은 사람은 천연두에 면역력을 갖게 되는 것인데, 물론 부작용도 없진 않았다.

손에 물집이 생기거나 가벼운 발열이 일어날 수 있고, 종두 후 뇌염 같은 중증 합병증에 걸릴 수 있다는 게 그것이었다.

하지만 천연두는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병이다.

손에 남는 작은 상흔과 얼굴을 뒤덮는 흉터를 비교할 수 없듯이.

더구나 천연두는 치사율도 높고 감염력도 높기 때문에 지금으로선 ‘우두법’으로 예방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

희생자를 한 명이라도 줄이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기도 했다.

‘문제는 그 방법을 어떻게 아느냐는 것인데…….’

마녀라는 것과 전생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아는 바스토르야 이해한다 쳐도, 다른 사람들은?

그들을 이해시키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게다가 세레나 때문에 이미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사람들의 분노와 원성은 감히 짐작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마녀라는 걸 밝히는 건 그들 손에 제 목을 자르라며 칼을 쥐여 주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까 말씀드린 속설을 바탕으로 실험해 보자는 의견을 내 보면 어떨까요?”

전생에서 우두법을 발견한 에드워드 제너가 그러했다.

소와 접촉해 우두라는 병을 앓은 사람은 천연두에도 면역력을 갖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추측을 바탕으로, 이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최초로 우두법 실험을 실시했다.

그 결과 우두에 천연두 예방 효과가 있음을 확신했고 우두법은 실제로 수없이 많은 목숨을 구제했다.

“우선……. 바스토르에게 먼저 말해 보지.”

테시우스도 끝내 수긍하고 말았다.

아드넬이 염려되고 걱정되긴 하나, 그녀의 말마따나 방법을 알고서도 모른 척 외면할 수는 없었다.

‘이미 나는 그들을 외면했어…….’

그때는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자위할 뿐이었지만, 그들의 간절함과 고통은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저리도록 다가왔다.

하지만 방법을 알게 된 이상 아드넬이 무사하길 바라는 제 이기심만을 고집할 수는 없었다.

그러길 원치 않는 건 당사자도 마찬가지였다.

테시우스는 일단 안정을 취하라는 말을 남기고 곧장 바스토르가 있는 본성으로 향했다.

* * *

전염병 발발 일주일째, 본성 회의실.

바스토르는 그야말로 난관에 봉착한 상태였다.

“글쎄 황태자 전하께서도 전혀 몰랐다 하시질 않습니까!”

“십 년 가까이 전하를 보필하던 시녀입니다, 아무리 잘 숨겨도 그만한 낌새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셨을 리가 있습니까?”

“어디 그뿐입니까? 수도에 돌던 소문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아무리 헛소문이래도 뭔가 심증이 있으니 말이 나온 것이지요!”

“지금 그 말씀은 황태자 전하께서 입에 담기 어려운 죄를 지으셨다 확정 지으시는 거라 봐도 되겠습니까?”

“누가 그렇답니까? 소문이 그렇다는 거지요, 소문이!”

회의실은 그야말로 난장판, 너 나 할 것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 사이에서 바스토르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는 수도에 창궐한 전염병의 방안을 강구하고자 모인 자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황제파와 귀족파의 대립으로, 싸움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니까 회의를 막 시작했을 즈음이었다.

“남아 있는 기록에 따르면 지금 수도에 발발한 전염병의 이름은 ‘마라이 병’, 단순한 피부병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심각한 전염성 또한 가지고 있는 병이다. 마땅한 치료 약도, 예방법도 없다 알려져 있지. 따라서 그대들의 의견을 얻고자 하네.”

“저희의 의견이라 하시면…….”

“어찌하면 좋을지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 방법을 모색하자는 것이네.”

그러나 바스토르의 말에 넓은 회의실 어디선가 가벼운 비웃음이 피식하고 새어 나왔다.

조소로 가득한 웃음소리에 고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 찰나, 케르페온 공작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한데 전하, 저희로서는 왜 해결 방법을 찾으려 하시는지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지, 공작?”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이긴 하나 감히 말씀드리건대, 이미 수도에 널리 퍼진 소문이 있질 않았습니까.”

그 소문이라 함은 바스토르가 실로 염려하던, 테시우스를 해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케르페온 공작은 그가 뭐라 말을 더 꺼내기 전에 냉큼 덧붙였다.

“두 분 전하의 우애가 좋으시다는 것은 한 치의 의심도 품을 수 없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적어도 한때는 그러했지요.”

“말하고자 하는 게 무엇인가.”

“전하를 오래도록 보필하던 시녀가 이 사달을 만든 주인공이라 들었습니다.”

그 말에 회의실에 있던 모든 사람이 격하게 숨을 들이켜며 눈을 크게 떴다.

놀란 건 바스토르도 마찬가지였다.

‘공작이 어떻게 그걸…….’

전염병을 퍼트린 게 세레나라는 사실은 테시우스만이 알고 있었고 그 덕분에 바스토르와 알라니아 또한 알게 되었다.

현재로서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 외부인은 마탑주 아파르치와 아드넬 둘, 한데 이를 하르트 공작이 알 거라곤 상상도 못 한 터라 바스토르는 동요를 채 감추지 못했다.

“물론 전염병을 퍼트린 마녀가 사실은 전하께서 신뢰하시던 시녀라는 사실만 본다면 모르셨을 수도 있다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수도에 퍼진 소문과 2황자 전하께서 걸리신 저주를 생각하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지요.”

“저주라니요?”

“2황자 전하께서 무슨 저주에 걸리셨다는…….”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다시피 2황자 전하께선 매년 일정한 시기가 되면 자리를 비우곤 하셨습니다. 가을에 있는 사냥 대회가 시작되기 전, 매번 그러셨지요.”

“그러고 보니 늘 이맘때쯤이면…….”

“그게 저주 때문이라는 말씀이십니까?”

“사냥 대회에 참석한 이들이라면 모두 똑똑히 보았을 것입니다. 사냥 대회에 나타난 흑표범을요!”

“……설마!”

“그 흑표범이 바로, 테시우스 폰 아이테라 2황자 전하셨습니다!”

어느새 케르페온은 이야기의 주도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바스토르는 너무 놀란 나머지 허무하리만큼 쉽게 통제권을 빼앗겼고, 사람들은 크게 동요했다.

그들의 웅성거림이 커질수록 심장이 불안감으로 요동쳤다.

그러나 케르페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2황자 전하께선 짐승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려 오랜 시간을 고통받으셨습니다. 사냥터에선 마녀와 함께 사라진 줄 알았던 마수가 나타났고, 황태자 전하를 보필하던 시녀는 마녀였으며, 그녀 때문에 전염병이 창궐했습니다. 여기에 수도에 돌던 소문까지!”

케르페온은 저가 더 화난다는 듯 큰 목소리로 외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러한 정황들을 조합해 본 결과, 감히 말씀드리건대……! 저는 황태자 전하께서 그 시녀와 손을 잡고 지금까지 벌어진 모든 일을 계획하셨노라 확신하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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