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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짐승이 황자였다 (106)화 (106/141)

106화

모든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사냥터의 온순한 사슴을 변종으로 만든 것도, 소리를 차단하는 마법석을 사방에 설치하는 것도, 테시우스로 황태자를 유인한 것도.

모든 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목걸이, 그것만 있으면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어……!’

게르펜이 찾으러 간 목걸이를 애타게 기다리며 세레나는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앉은 남자도 초조하기로는 마찬가지였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마수에게 황태자가 살해당하면 테시우스를 추대해야 하는데, 그의 저주를 완전히 풀려면 목걸이가 필수적이었으니까.

‘여차하면 죽이라 했으니 반드시 가져올 거야.’

아드넬이 가지고 있다면 대놓고 모습을 드러내서라도 가져오라 명했으니까.

사내는 게르펜의 임무 수행 능력을 믿었다.

그리고 그 믿음에 보답하듯,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서 게르펜이 나타났다.

그가 모습을 드러낸 순간 세레나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목걸이는? 분명 가져왔을 테지?”

저가 상전이라도 되는 양 거만하기 짝이 없는 말투에 게르펜의 눈썹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는 세레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남자의 앞으로 가 허리를 깊숙이 숙여 보였다.

“다녀왔습니다.”

“찾으라 한 건?”

남자가 묻자 게르펜은 공손히 두 손을 내밀었다.

그의 손 위엔 영롱하게 빛나는 사파이어 목걸이가 올라가 있었다.

“아아……!”

드디어!

그토록 간절히 찾아 헤매던 목걸이를 찾았다.

저를 완전히 무시하는 태도에 기분이 나쁜 것도 잠시, 세레나는 탄성을 내뱉으며 감격했고 사내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게르펜이 내민 목걸이를 집어 들었다.

“수고했다, 게르펜.”

“송구합니다.”

“나머지는 너에게 달렸다.”

남자가 목걸이를 건네자마자 받아 든 세레나는 곧장 목에 차고 사파이어를 손에 쥔 채 눈을 감았다.

‘내게 능력을 줘, 네가 품은 힘을 내게 줘!’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된다고 들은 만큼, 세레나는 탐욕 어린 진심을 담아 기원했다.

그에 응하듯 일순 목걸이에서 화한 빛이 뿜어져 나오며 머릿속에 온갖 지식이 흘러들어 왔다.

아드넬이 처음 능력을 개방했을 때와 같았다.

전신을 휘감는 힘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했고,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 세레나의 얼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찬 채였다.

“이제 비기를 알려 주세요.”

“능력은 확실히 증폭되었을 테지?”

“몸에서 힘이 흘러넘치는걸요. 지금이라면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좋다.”

사내는 세레나의 확신 어린 얼굴에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다름 아닌 오래된 종이로, 보통 사람은 쉬이 알아보기 어려운 술식이 그려져 있었고 그 위엔 약간의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이것은 우리의 마지막 방패이자, 최후의 수단이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해 이 금기를 깬다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을 것이요, 누군가를 돕기 위해 금기를 깬다면 피해 갈 수 있을지니. 오롯이 사람을 돕고 지키는 데에만 사용할 것을 엄중히 경고하는 바이다.]

이 문구는 세레나도 일찍이 봤던 것이었다.

테시우스를 처음 짐승으로 만들 당시 후작이 보여 준 것에도 같은 설명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설명 아래 적힌 술식은 그때와 다른 것이지만.

마법사가 마법진을 그려 주문을 발동하는 것과 다르게 마녀는 보는 것만으로도 어떻게 힘을 운용해서 시전해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많은 힘이 필요했는지 새삼 체감하게 되었다.

‘이래서 알려 줘도 소용이 없다고 한 거군.’

사람을 짐승으로 바꾸는 것보다 다시 돌이키는 게 더 어려운 이유도 대충 짐작이 됐다.

자칫하면 영영 본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으니 시도하기 전에 백번은 더 생각하고 신중하게 하라는 뜻이겠지.

물론 세레나도 테시우스에게 저주를 걸었을 적만 하더라도 많이 불안했었다.

그러나 후작은 응당한 자격을 가진 그에게 황제의 자리를 주기 위해선 황태자를 몰아내야 하고, 저주를 거는 건 훗날 있을 그 계획을 위한 것이라 말했다.

처음엔 고통받을 그가 염려되었으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후계자 수업을 포기한 테시우스가 안타깝기도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 결국 후작의 말을 따랐다.

아마도 시전자의 마음에 따라 다른 듯한데, 덕분에 그녀는 설명에 나온 금기를 깬 벌을 피해 갈 수 있었다.

“2황자 전하께선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사냥터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두었다. 지금쯤이면 정신을 차렸겠군.”

사내의 말에 세레나는 활짝 웃으며 기쁨을 드러냈다.

이제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온전하지 못한 저주를 풀어주고 나면 테시우스는 긴긴 시간 자신을 괴롭혀 온 고통에서 벗어남에 기뻐하며 저를 사랑하게 될 터다.

황태자가 어찌 되었는진 아직 듣지 못했지만 설령 죽지 않았어도 대비해둔 방도도 있으니 끝내 2황자가 추대될 것이고, 그럼 나는 머지않아 그의 옆에 서서 황후의 관을 머리에 쓸 테지.

셀 수 없이 많은 장미가 휘날리며 모두의 축하를 받는 아름다운 결혼식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세레나는 설렘으로 양 볼을 발갛게 붉혔다.

‘……또 상상의 나래에 빠졌군.’

한편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남자는 쯧 하고 속으로 연신 혀를 찼다.

처음 만났을 적만 하더라도 고분고분, 온순하기 짝이 없는 천한 계집이었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정신이 이상한 건지 작은 속살거림에도 금세 눈이 돌아가더니만, 지금은 방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동업자네 뭐네 하며 기어오르는데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그의 눈엔 참 같잖게 보였다.

‘내가 어디 너 같은 것을 옆에 둘 줄 알고?’

세레나의 처분은 그녀가 제 손을 잡고 따라온 순간부터 이미 정해져 있었다.

지금이야 테시우스의 옆에 서서 황자비, 이후로는 황후가 될 줄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지만 어디서 굴러먹다 온 줄도 모를 계집을 그런 지고한 자리에 올릴 리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달콤한 상상에 빠져 행복함에 허우적대는 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

사내는 씨익 웃어 보이며 게르펜에게 말했다.

“세레나를 2황자에게 데려다주도록. 그리고 황태자가 어찌 되었는지도 알아보고 와.”

“존명!”

* * *

‘여기가……. 대체…….’

둔기로 얻어맞은 양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야는 뿌옇고 속은 울렁거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정신을 다잡기도 어려웠다.

테시우스는 가까스로 고개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았다.

콧속으로 먼지 섞인 공기가 들어오고, 낡아빠진 판자를 조악하게 엮어 세운 벽면이 보였다.

바닥은 물론 창문에도 회색 먼지가 내려앉아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질 않아 통 일어설 수가 없었다.

테시우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그러니까 거처에서……. 이상한 놈들이 나타났고…….’

새카만 복면으로 얼굴까지 가린 불청객들.

그중 하나는 그의 몸에 상처까지 낼 만큼 뛰어난 실력자였다.

남자가 약병의 뚜껑을 열자 액체는 기체로 피어오르며 방 안을 잠식했고, 그걸 맡은 순간부터 점점 정신이 이상해졌던 것 같다.

‘……아드넬이 거기 있을 리가 없는데, 눈에는 분명 보였어.’

그리고 이후로는…….

더 이상 기억나는 바가 없었다.

테시우스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앞발로 감싸 쥐며 엎드렸다.

그래서 이후로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사냥 대회는 또 어떻게 된 건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에 마냥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 순간, 타박타박하는 다소 가볍고 또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그가 있는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테시우스는 어지럼증에 완전히 몸을 일으켜 세우지는 못하고 가까스로 고개만 들 수 있었다.

그리고 닫혀 있던 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어떻게……!’

눈앞에 선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는 순간 테시우스의 동공이 크게 벌어졌다.

보고도 믿기지 않아 연신 눈을 끔벅거렸다.

구름으로 만든 사탕처럼 풍성한 분홍빛 머릿결과 저를 볼 때마다 수줍게 미소 짓던 얼굴은 그에게도 너무 익숙했다.

“2황자 전하……!”

그건 다소 새되고 앙칼진 목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것이 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었다.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드넬의 시녀, 세레나 바얄란이었다.

‘네가 왜…….’

“묻고 싶은 것이 무척 많으시겠죠. 저도 다 안답니다, 그래서 이리 찾아왔어요.”

세레나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을 한 채 테시우스의 곁에 가까이 다가와 앉았다.

그리곤 몸에 힘이 없어 저항하지 못하는 그의 목덜미를 부드럽게 끌어안으며 울먹이듯 속삭였다.

“그동안 얼마나 많이 걱정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어떻게든 전하의 저주를 풀어드리고자 방도를 찾아 헤매고, 또 헤매며 적당한 때만을 기다려 왔답니다.”

그러나 세레나의 입에서 ‘저주’라는 단어가 나온 순간 테시우스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확 뺐다.

어떻게 저 여자가 그걸 알고 있지?

아니, 생각해 보면 세레나는…….

‘여기에 찾아온 걸 떠나서도, 날 보자마자 2황자라고 불렀어.’

지금 그는 사람이 아닌 흑표범의 모습이었다.

짐승인 저를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바스토르와 아드넬뿐일 터인데 그걸 세레나가 안다는 사실이 놀랍고 혼란스러웠다.

“저만큼은 믿으셔도 되어요, 전하. 그리 경계하지 않으셔도…….”

그러나 테시우스가 위협적으로 으르렁대자 세레나는 말을 하다 말고 폭 한숨을 내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그럼 상황부터 설명드려야겠네요. 우선……. 저는 전하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답니다. 정확히 8년 전, 2황자 전하께서 황태자 전하와 함께 산티노에 가셨을 때부터요.”

그때 바스토르의 시녀로 따라갔다며, 세레나가 덧붙이며 이어 말했다.

“하루아침에 짐승으로 바뀌신 그날, 저 또한 모든 것을 지켜보았어요. 하지만 제가 본 건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전하께 저주를 건 사람 또한 제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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