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알던 짐승이 황자였다 (105)화 (105/141)

105화

모든 것이 이상했다.

불안감을 동반한 이질감은 숲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피부로 와닿았다.

‘안개?’

지금은 대낮이었다.

사냥터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지켜볼 때만 하더라도 환한 햇빛이 숲을 내리쬐고 있었다.

그러나 테시우스를 뒤따라 들어온 순간, 마치 잠식되듯 불길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무성한 잎사귀에 햇빛이 가려졌나 문득 생각하긴 했으나 한여름도 아니고 다 저물어가는 가을에, 나무는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았는데 그럴 리가 없는 것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을 땐 마치 먹구름이라도 낀 듯 우중충한 회색이 눈에 들어왔고, 고개를 내렸을 땐 희끄무레한 대낮의 안개가 시야를 방해했다.

정말로, 모든 것이 이상했다.

바스토르는 긴장감에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도 계속 전진했다.

뭔가 이상하긴 해도 그는 기사들과 함께였다.

그들 앞에서 저가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여 줬다가는 사기만 잔뜩 떨어질 터였다.

‘대놓고 부를 수도 없으니 더 답답하군.’

가능하면 “테시우스!” 하고 이름을 부르고 싶은데, 보는 눈이 많아 그럴 수가 없었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그 무엇도 짐작할 수 없으나 저주에 관한 것만큼은 감출 수 있을 때까지 감추는 게 좋았다.

“모두 사방으로 흩어져 찾는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포박을 최우선으로 한다.”

“예!”

바스토르의 명령에 힘찬 대답이 나왔지만 기사들은 의아해하는 기색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사슴들만 뛰어노는 사냥터에 흑표범이 나왔다.

발견하자마자 창을 던져도 모자란 판국에 그 사나운 짐승을 산 채로 잡으라니 도무지 이해하려야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황태자의 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는 노릇, 기사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뿔뿔이 흩어졌다.

말이 놀랐다간 자칫 낙마할 수도 있어 고삐를 쥔 손에도 잔뜩 힘을 주었다.

대낮에 내려앉은 안개는 불길함을 자아냈다.

왠지 모르게 사방이 고요해진 듯한 것도 같았다.

머리를 감싼 투구 아래로 식은땀이 비질 흘러내린 순간이었다.

“크르륵……!”

어디선가 짐승의 목 울림, 아니, 그보다 더 기괴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으나 그보다 빠르게 반응한 건 자신이 타고 있던 말이었다.

히히힝!

말은 앞발을 치켜들며 놀라 울었고, 기사는 고삐를 한껏 움켜쥐었으나 몸은 그대로 기울어져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으, 으아악!”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널브러진 기사는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전신에 내리꽂히는 고통에 울부짖었다.

단말마 같은 비명이 숲속을 쟁쟁하게 울렸다.

“저쪽이다!”

다른 곳에 흩어져 있던 기사들이 소리가 난 방향으로 일제히 말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비명의 원인을 두 눈으로 확인하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파리하게 질려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괴, 괴물이다……!”

“마수, 마수가 있다!”

그것은 얼핏 사슴의 형상도 띠고 있었다.

머리 위로 길게 뻗어 나온 뿔은 그들 눈에도 퍽 익숙한 것이었다.

그러나 갈고리 같은 발톱은 쇠로 만든 철갑옷을 단숨에 찢었고, 사족보행을 하는 사슴과 달리 뒷발로 지탱하고 앉은 채였다.

얼굴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만큼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으며 눈은 시뻘건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길쭉하게 튀어나온 주둥이는 조금 전 비명을 지른 기사의 피로 흠뻑 젖은 채였다.

“키르륵!”

한창 식사 중이던 마수는 저들 가까이 다가온 기사들을 발견하자마자 먹는 걸 멈추고 곧장 달려들었다.

가공할 정도로 빠른 속도에 말 한 마리가 순식간에 목을 꿰뚫렸고, 타고 있던 기사 또한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주변에 있던 다른 이들이 황급히 들고 있던 창을 찔러넣었으나 마수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면서도 발톱을 휘두르며 발버둥 쳤다.

창에 꽂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죽이려는 것처럼 실로 괴기스러운 몸부림이었다.

핏빛 눈동자엔 오직 살의만이 존재했고, 그 눈을 마주한 기사들은 공포에 사로잡혔다.

“어, 어서 황태자 전하를 찾아라!”

“전하를 지켜야 한다!”

이런 괴물이라니, 기사들은 눈앞에 있던 마수가 끝내 버티지 못하고 “크르륵…….” 소리를 내며 숨을 달리하자마자 바스토르를 찾았다.

잔인하게 살해당한 동료의 시체를 수습할 시간 따윈 없었다.

“황태자 전하!”

“어디 계십니까, 어서 이곳을 나가셔야 합니다!”

그러나 기사들의 간절한 외침은 보이지 않는 벽에 막힌 것처럼 제자리에서 메아리쳤다.

그리고 바스토르는 그들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에서, 저를 찾는 이들이 아닌 다른 사람을 조우하고 있었다.

아드넬이었다.

* * *

“……여기서 뭘 하는 거냐!”

“황태자 전하…….”

눈물로 흠뻑 젖은 얼굴은 안쓰러웠으나 바스토르는 황당했다.

아무리 테시우스가 걱정된다고 해도 무기 하나, 방어구 하나 없이 홀로 사냥터에 들어오다니!

바스토르는 진노한 얼굴로 호통치며 말에서 내려왔다.

“전하, 전하를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들어온 것 아니냐! 어서 말을 타고 막사로 돌아가라!”

“안 됩니다! 전하가 안전하신 것을 제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진 절대……!”

“네가 다치면 테시우스가 어떨지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는 거냐!”

미련하기는, 바스토르는 말고삐를 아드넬의 손에 쥐여 주면서도 화난 목소리로 다그쳤다.

“테시우스의 안전이 중요하기로는 나도 너 못지않아, 그러니 어서 돌아가!”

“황태자 전하, 제발…….”

“아드넬!”

“…….”

“더는 말하지도, 듣지도 않겠다.”

바스토르는 아드넬의 반항을 대번에 묵살하며 눈빛으로 말했다.

어서 안장에 오르라는 무언의 압박이 가득한 시선에 아드넬은 결국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정말 괜찮으실까.’

기사들은 갑자기 나타난 흑표범의 정체를 모른다.

아무리 바스토르가 사로잡으라 명한들 공격성을 띠는 순간 저도 모르게 창을 던질 수도 있는 건데, 그 끔찍한 광경이 도무지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전하…….’

하지만 여기서 아무리 흐느낀들, 저가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는 건 명백했다.

기사들처럼 무장하지도 않았고 강하지도 않다.

아니, 그런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들보다 빠르게 테시우스를 찾을 수 있다는 보장도 없었다.

최후의 수단 하나만을 믿고 사냥터에 들어왔으나 아무리 찾아 헤매도 테시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아드넬은 훌쩍이며 바스토르가 건넨 고삐를 손에 쥐었다.

“부디……. 2황자 전하를, 반드시 그분을 지켜 주십시오.”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하마.”

“……황태자 전하께서도 무사히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래.”

어차피 테시우스만 찾으면 곧장 돌아갈 테니.

사슴만 뛰어노는 사냥터에 달리 위험할 건 없었다.

쇠갑옷으로 무장한 상태이니만큼 사람이 아니고선 제게 해를 입힐 수도 없고, 바스토르가 그리 생각한 때였다.

“크륵! 키르륵!”

이상하고,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

바스토르와 아드넬의 눈동자가 동시에 한 곳을 향했다.

찔리면 단숨에 몸이 관통될 정도로 길게 자란 뿔과 시뻘건 핏빛 눈동자.

길쭉한 주둥이 아래엔 덫의 칼날 같은 이빨이 튀어나와 있었고, 뭉툭한 발굽엔 독수리의 갈고리 같은 발톱이 자라나 살벌하게 빛나고 있었다.

부숭부숭한 털로 뒤덮였으나 녹아내린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은 흉측했고 온몸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저것은 괴물, 그 자체였다.

“저게 무슨……!”

바스토르와 아드넬은 이미 숨을 달리한 기사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그의 죽음을 목격한 다른 기사들이 저를 찾는 소리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누가 인위적으로 막기라도 한 듯이.

그러나 두 사람은 그 사실을 꿈에도 몰랐고 지금 이 자리에서 흉측한 괴물을 마주하고 있었다.

히힝!

바스토르의 말이 마수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놀라 도망치는 바람에 아드넬은 손에 잡고 있던 고삐를 허무하리만큼 쉽게 놓치고 말았다.

바스토르는 안쪽 입술을 짓이기며 아드넬 앞에 나섰다.

무장한 건 그뿐이었고, 무기를 다룰 줄 아는 것도 그뿐이었다.

“어서 도망쳐라, 아드넬!”

“전하를 두고서 제가 어떻게……!”

“다른 기사들과 함께 왔으니 그들을 찾아 돌아가! 나는 최대한 시간을 끌어 보겠다.”

말은 그리했지만 사실 바스토르도 자신은 없었다.

눈앞의 마수는 아직까진 저들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으나,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쳐다보는 섬찟한 시선에 오소소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

무언가를 기다리듯, 혹은 간을 보듯.

바스토르는 마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옆구리에 차고 있던 검을 빼 들었다.

스르릉!

예리한 장검이 빛을 발하며 검집에서 빠져나오자 마수가 “크륵!” 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그리곤 기다렸다는 듯 바스토르에게 달려들었다.

“흡!”

“키르르!”

눈 깜짝할 새에 달려든 마수의 공격은 바스토르의 칼에 막혔다.

그러나 그 순간 그는 보고 말았다.

마수는 바로 코앞에서 날카로운 칼을 까득까득 깨물고 있었다.

양손으로 장검을 붙잡은 채, 이빨에서 피가 흘러내리는데도 먹어 치우겠다는 듯 아귀처럼 입을 벌린 채 저를 직시하는 붉은 눈동자에 전신이 얼어붙었다.

핏기가 싹 가시며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힘을 주어 칼을 빼내자 마수는 한 차례 뒤로 물러섰으나, 제 입과 손에서 흘러내리는 피 맛을 보곤 연신 입맛을 다시며 크륵댔다.

기괴하고, 끔찍하다.

바스토르는 다급한 목소리로 뒤에 선 아드넬을 향해 외쳤다.

“아드넬, 어서……!”

하지만 그는 한 가지를 간과하고 말았다.

눈앞에 보이는 적만을 생각하느라 등 뒤의 허점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그가 몸을 돌리자마자 순식간에 덮쳐들어 오는 또 한 마리의 괴수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도 가까웠고, 너무도 빨랐다.

‘끝이구나.’

찰나에 불과한 시간임에도 마지막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 순간 모든 것이 느리게 보이며, 제게 달려드는 괴물을 먼저 발견한 아드넬이 등을 돌리는 것 또한 보였다.

그녀는 두 팔을 뻗어 제 몸을 감싸 안았다.

콰득!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환한 빛이 번쩍 뿜어져 나온 뒤 그 자리엔, 두 마리의 마수만이 남아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