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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짐승이 황자였다 (47)화 (47/141)

47화

아드넬이 만들어 가져온 근육통 연고는 총 700여 개로, 무투회가 진행되는 3일간 한정 수량으로 풀려면 당장 무투회가 시작되는 오늘부터 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클리프는 아드넬과의 상의 끝에 수도에 있는 가게 3곳을 선정해 곧바로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첫날과 둘째 날엔 300여 개를, 마지막 셋째 날엔 100여 개를 풀기로 하고 연고를 보냈는데, 여기에 가게 주인에게 ‘직접 써 보고 대신 홍보해 줄 것.’을 부탁했다.

평민들은 글을 모르기 때문에 공고를 붙여 홍보하는 건 의미가 없는 데다, 근육통 연고라는 것 자체가 워낙 생소했기 때문이다.

다만 맨살에 연고를 바른다니, 가게 주인들은 반신반의하며 쓰기를 망설였지만 카리아 상회의 상단주가 급히 연락해 부탁한 것이니만큼 속는 셈 치고 연고를 한 번씩 발라 보았다.

그리고 이날 점심 즈음.

가게 주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아드넬의 근육통 연고를 큰 목소리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무투회에 참가하시는 무사님들! 의뢰로 지치신 용병님들! 고된 일에 시달려 근육통이 사라질 일이 없으신 분께 강력 추천드립니다! 한 번 바르고 나면 근육통이 사라지고 몸이 곱절은 편해지는 마법의 연고가 있어요!”

당연한 일이지만, 저들이 머뭇거린 만큼 사람들도 그 말을 쉬이 믿진 않았다.

상처가 난 것도 아닌 맨살에 연고를 바른다는 것 자체도 이상했거니와 근육통이 사라지고 몸이 편해지는 마법의 연고라니, 순 사기꾼 아니냐는 반응도 더러 있었다.

하지만 클리프가 선정한 가게들은 전반적으로 평이 좋은 축에 속했다.

들여오는 물건의 품질도 좋고 가격도 과하지 않은 편이었다.

여기에 가게 주인들은 한 가지 방법을 더 도입했는데, 바로 자신들이 받은 연고를 시제품처럼 한번 사용해 보라 권하는 것이었다.

“무슨 연고 따위가 근육통을 없애 준다는…….”

“아, 그러니까 글쎄 일단 한 번 써 보시라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가게에 들어오는 물건이 얼마나 많은데 제가 근육통에 좀 시달렸겠습니까? 그런데 이 연고를 바르고 나면 몸이 훨씬 편해진다고요! 효과가 없으면 추천드리지도 않습니다. 장사는 곧 신뢰인데 설마하니 제가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아무리 그래도…….”

“제 가게의 이름을 걸고, 카리아 상회의 이름을 걸고 약속드립니다! 효과가 없으면 그 즉시 환불해 드립지요. 참고로 말씀드리는데, 이 제품은 무투회 기간 동안만 팔 수 있습니다. 수량도 정해져 있어서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사고 싶어도 못 사는 물건이에요!”

그리 말하니 뭔가 혹하는 기분이었다.

‘한정 수량’이라는 단어가 가져오는 유혹!

이와 더불어 나중엔 사고 싶어도 살 수 없다니, 일단 한 번 써 보기나 해 보겠다는 사람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달각 하고 동그란 뚜껑을 열자 박하 같기도 하고 민트 같기도 한, 알싸하면서 시원한 향이 강하게 풍겼다.

한 남자가 손가락으로 연고의 윗부분을 적당량 덜어낸 뒤 뻐근하게 결리던 어깨에 문지른 그때였다.

“……음?”

연고를 묻힌 손가락이 어깨에 닿는 순간 화하는 느낌과 함께 화끈거리기도, 시원하기도 한 감촉이 피부를 따갑게 찔러왔다.

그러나 그 느낌이 불쾌하다기보단 정확하게 지끈거리던 부위를 자극해 주는 것 같이 기분이 묘했다.

그렇게 뻐근한 무릎과 단단히 뭉친 어깨에 한 번 발라 본 사람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눈을 크게 뜨며,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한 가지를 물었다.

“이거 얼맙니까?”

홍보는 제대로 먹혔고, 그때마다 가게 주인들은 활짝 웃는 낯으로 답했다.

“단돈 2크라운 9페논입니다, 손님!”

제국에는 타란, 크라운, 페논이라는 화폐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아드넬의 기준에서 1타란은 전생의 단위로 백만 원, 1크라운은 만원, 1페논은 천원 정도와 비슷한 가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까 2크라운 9페논은 평민들도 부담스럽지 않게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이었다.

“아니, 이게 3크라운도 안 된다고?”

“그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습니까?”

“카리아 상회의 상단주님이 말씀하시길,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가격에 좋은 물건을 사용하는 게 상회의 목표라 하시더군요! 앞으로 여기, 이 ‘마르타’라는 이름으로 화장품도 싸게 공급하신다지 뭡니까?”

“화장품은 너무 비싸지 않을까요? 그건 귀족들이나 사용하는 건데….”

“실은 이 근육통 연고도 화장품의 일종이랍니다. 아시다시피 카리아 상회에서 수도의 유행을 주도하는 화장품을 독점 공급하지 않았습니까, 그 비싼 화장품을 만드시는 분이 이번에 상회와 계약을 해서 이렇게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는 것이라더군요.”

“맙소사…….”

“아무튼 이걸 사려면 지금 아니고선 못 산다, 그 말이죠?”

“예! 맞습니다!”

“그럼 하나 주세요.”

“감사합니다! 또 들러주십시오, 손님!”

홍보는 성공적이었고, 이날 푼 300여 개의 근육통 연고는 수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구매자는 대부분 무투회에 참가하는 무사들이었는데, 가격도 저렴하니 속는 셈 치고 산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근육통 연고는 곧 수도에 열풍을 몰고 왔다.

정확히는 무투회 둘째 날 아침부터였다.

“허, 진짜 효과가 있잖아?”

맨 처음 바를 땐 화끈거리면서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자기 전에 바르고 잤다가 일어나니 몸이 훨씬 개운해진 기분이었다.

근육통으로 온몸이 아프던 전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컨디션도 좋았다.

물론 예선에 올라간 사람보다 떨어진 사람이 훨씬 많긴 했지만 이런 연고는 쟁여 둘 가치가 있었다.

가격도 저렴한 데다 효과도 탁월하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덕분에 카리아 상회의 이미지도 하루 새에 대폭 좋아지며, ‘마르타’라는 브랜드 또한 아드넬이 의도한 대로 평민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드넬은 그 모든 것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했다.

무투회 둘째 날이 되었을 때, 아침 일찍 클리프가 선정한 세 개의 가게 중 한 곳에 간 것이다.

“거 밀치지 맙시다!”

“밀치긴 누가 밀쳤다는 거요? 빨리 앞으로 가기나 하지.”

“자, 차례를 지켜 주십시오! 새치기하는 분께는 판매하지 않으니 순번을 꼭 지켜 주셔야 합니다!”

평민 지구 대로변에 있는 잡화점은 상대적으로 조용한 일번가와 달리 무척이나 소란스럽고 또 시끄러웠다.

줄을 서긴 했지만 모여든 인파에 구경하려 몰려온 사람들도 많았고, 가게 주인은 하루 새에 호황을 맞아 만개한 미소를 지으면서도 열심히 팔았다.

아드넬은 구경하러 온 사람들 사이에 섞인 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예의 주시했다.

“뭣 때문에 저렇게 줄을 서고 있는 거야?”

“듣기로는 근육통에 좋은 연고라더군. 정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저리 줄을 설 정도면 효과가 있다는 것 아닌가?”

“그거야 모르지, 무투회가 열리고 있으니 혹시나 싶어 사는 걸 수도 있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그래도 카리아 상회에서 보증하는 물건인데 효과가 아예 없진 않을 것 같아.”

“언뜻 보니 연고 통에 그려진 그림이 마르타님의 상징이더라고. 설마하니 우리 같은 평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겠어?”

아직 의심하는 사람도 많지만, 꽤 신뢰를 가진 사람도 많았다.

여신 마르타의 상징도 예상대로 긍정적인 반응을 몰고 왔다.

아드넬은 뿌듯한 얼굴로 활짝 미소 지었다.

‘진짜 고생한 보람이 있다……!’

얼마나 힘들었던가.

무투회가 열리고 푼 한정 수량은 무려 700여 개.

아무리 만드는 방법이 쉽다지만 아드넬이 가지고 있는 도구는 소량 제작에 적합해서, 정말이지 끊임없이 만들어야만 했다.

하지만 정말로, 보람이 있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엔 각각 300개를 풀고 마지막 셋째 날엔 100개를 풀기로 했는데, 여기서 판매하는 가게가 총 세 군데이다 보니 오늘 여기서 연고를 사갈 수 있는 사람은 백여 명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아드넬이 지켜본 지 얼마 되지 않아 연고는 금세 동나고 말았다.

“자, 자! 오늘 판매는 여기서 끝입니다! 오늘 사지 못하신 분은 내일 다시 와 주십시오!”

“아니, 벌써 다 팔렸다고?”

“하루에 파는 양이 얼마길래 벌써 끝입니까?”

“오늘은 총 100여 개, 모레엔 30여 개 정도입니다! 저희 가게 말고도 3번가에 있는 ‘론타의 잡화점’에서도 마찬가지로 판매하니 참고해 주십시오!”

“이런 제길, 이래서야 어디 살 수는 있겠어?”

예선이 시작되기 전, 아침 일찍부터 와서 기다린 만큼 여기저기서 불만이 속출했다.

하지만 없는 물건을 팔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몇몇은 가게 주인에게 은밀한 뒷거래를 청하기도 했으나 칼같이 거절당했다.

카리아 상회에서 ‘특별히’ 공급하는 ‘한정 수량’ 물품을 제멋대로 팔았다가 걸렸다가는 지금 같은 조건으론 다시 거래를 틀 수 없을 테니까.

그래서인지 연고를 사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 묘한 거래가 생성되었다.

“저기, 용병님. 실례가 안 된다면 제가 값을 쳐 드릴 테니 저랑 반반 나누시면 어떨까요?”

“……흠, 뭐. 나도 효과가 조금 의심되던 참이니……. 대신 값은 두 배로 쳐 줘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아침 훈련도 못 하고 와서 기다렸단 말이요.”

“그야 물론이지요! 여기 3타란입니다, 연고는 여기 이 통에 덜어 주시면….”

아드넬은 신기한 눈으로 웅성대는 사람들을 지켜보며 묘한 희열에 사로잡혔다.

그도 그럴 게 이들 중 그 누구도 저들이 사고 싶어 안달 난 연고를 만든 장본인이 여기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할 테니.

게다가 반응도 좋아서, 내일까지 지켜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어차피 내일은 나도 무투회에 참석해야 해서 못 보지만.’

그러고 보니 2황자 전하는 어떠셨으려나?

사람들의 반응이 좋다 보니 자연히 그의 반응도 궁금해졌다.

물론 한창 바쁠 테니 직접 만나 확인하긴 어렵겠지만.

아드넬은 그도 만족하길 바라며 총총 별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음 날, 대망의 무투회 셋째 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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