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182화 (182/189)

182화

에르잔이 애써 손에 힘을 빼고 아랫배를 더듬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사비나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에르잔의 턱부터 뺨까지 이어지는 부분을 혀로 할짝거렸다. 긴장을 풀기 위한 장난이었으나 애석하게도 그것은 에르잔이 다잡고 있는 이성의 끈을 끊어 버리기에 충분한 행동이었다.

푸른 눈이 크게 떠지더니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 표정의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사비나의 몸이 쑥 위로 들어 올려졌다.

“꺄! 에르잔!”

커다란 손이 골반부터 엉덩이까지 전부 감싸 들어 올리더니 단단한 손가락이 음순 사이의 갈라진 부분을 쓱 문질렀다. 사비나는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아 얼른 벽에 손을 짚었다.

앉은 것도 일어선 것도 아닌 어정쩡한 자세 탓에 몸이 바짝 긴장했는지 찌르르한 감각이 허벅지부터 아랫배를 타고 올라왔다. 아니, 긴장해서 그런 게 아닌 것 같다.

그녀의 둔부를 움켜쥔 채 뜨거운 혀로 등줄기를 훑는 동작은 애무라기보다는 꼭 식사를 하는 모양에 가까웠다. 질척한 타액이 흐르는 소리 사이로 초조한 한숨이 섞였다. 굶주린 짐승이 먹이를 먹어치우는 것처럼 보드라운 살갗을 빨던 에르잔은 기어이 하얀 살결에 잇자국을 남기고 말았다.

“아…!”

깨물린 순간 통증보다는 오싹한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마치 찬물과 더운물을 번갈아 끼얹는 것처럼 화끈하고 서늘한 감각이 등 뒤를 질주했다. 반사적으로 무릎을 세워 일어나려는 사비나의 허리를 끌어당겨 다시 자신의 허벅지에 앉힌 에르잔은 그녀의 양 무릎을 끌어당겨 가두듯이 품에 안았다.

가슴이 미친 듯이 뛴다. 몇 번이나 몸을 겹쳐 왔음에도 이 감각에 익숙해질 수 없는 것은 사비나 역시 마찬가지였을까. 벗어나려는 듯이 바둥거리는 그녀의 목을 살짝 깨물자 가느다란 신음이 높아졌다.

“에르잔, 잠깐…….”

“허락을 구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아니, 이건…… 흐앗!”

늘 그녀를 배려하듯 정중하게 움직이던 남자의 손이 아니었다. 허기를 참지 못하는 짐승처럼 거친 숨을 내뱉는 에르잔에게서는 평소 맡아보지 못했던 야성적인 냄새가 났다. 등 뒤로 느껴지는 넓은 가슴이 크게 들썩이더니 허리 아래에 닿던 복근의 감각이 선명해졌다.

당황한 사비나는 몸을 움찔거리다가 다리 사이에 들어찬 커다란 것을 움켜쥐었다. 에르잔이 끌어안고 있어 벽을 짚을 수도, 바닥을 짚을 수도 없으니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을 움켜쥐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물론 그 행동이 에르잔의 욕망을 비정상적으로 충동질하게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사비나 아가씨, 읏…… 더, 만져 주십시오…….”

“네, 네?”

사비나는 제가 손에 뭘 쥐고 있는지도 알아채지 못한 태로 손에 힘을 주었다. 에르잔의 신음이 커지며 황홀하다는 듯한 탄식이 터져 나온 다음에야 사비나는 제가 양손으로 붙들고 있는 흉악한 물건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앗! 에르잔, 미안하…… 아흑!”

움켜쥔 손에 힘을 빼기 무섭게 몸이 앞으로 쏠렸다. 분명 새 짚을 넣어 푹신한 침대인데도 엎어지는 순간 단단하고 뜨거운 것이 몸을 두드리는 기분이 들어 사비나는 새된 비명을 질렀다.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것이 쓰러진 충격 때문인지 아래를 지분거리는 아찔한 느낌 때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손가락도 혀도 아닌 뭉툭하고 단단한 무언가가 꼭 화가 난 듯이 그녀의 음부를 쿵쿵 두드렸다.

“제가 원하는 건, 당신뿐입니다.”

시야도 분별이 가지 않을 정도로 혼란한데 에르잔의 억눌린 음성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사비나는 헉 숨을 삼켰다. 뜨겁게 안을 가르며 들어오는 흉포한 성기는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오던 처음과는 달리 그녀의 내벽에 감싸이는 순간 움직임을 느리게 했다.

“앗, 아. 에르잔…….”

“죄송, 합니다……. 너무 급하게…….”

“아, 아니…….”

에르잔은 성급하게 밀어 넣었다고 생각했으나 어차피 입구는 충분히 젖어 있었다. 오히려 안쪽을 세게 문질러 주지 않고 중간에 멈추는 것이 도리어 안달이 나, 사비나는 침대 시트를 움켜쥐고 허리를 떨었다. 그녀의 안쪽이 긴장으로 꽉 조여들다 에르잔이 크게 신음했다.

“아, 아가씨. 힘을, 빼셔야 합니다…….”

“흐으, 응…….”

씨근거리는 숨을 내뱉는 사비나의 표정에는 여유가 없었다. 어서 안을 문질러 줬으면 좋겠다며 애가 타는 심정을 조롱하듯이 그녀의 몸은 긴장을 풀지 않았다. 아플 정도로 성기를 조이는 속살의 뜨거움에 에르잔은 낮은 신음을 흘리고는 사비나의 등을 쓰다듬었다. 하얗게 매끈한 등에 제가 남긴 잇자국이 붉게 도드라졌다.

그녀의 몸에 티끌만 한 상처 하나 남기지 않겠다고 맹세해 놓고서, 기사도를 저버린 자신은 이토록 흉악한 남자였던 건가. 뜨거운 배덕감이 배 속을 울려, 에르잔은 사비나의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더 바짝 조여드는 그녀의 속살을 짓쳐서 벌리듯이 허리를 털자, 사비나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시트를 잡아 뜯었다.

새로 빤 시트 위로 검은 머리카락이 길게 흐트러지고, 하얀 피부가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광경은 눈앞이 아찔할 만큼 선정적이었다. 얼굴을 마주하며 섹스할 때는 그녀의 표정을 들여다보고 반응을 살피느라 이런 모습을 감상할 수가 없었다.

사비나에게 쾌감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쾌락을 얻기 위해서 몸을 겹치는 것은 처음이었다. 달군 쇠로 살갗을 지지는 듯한 기분. 그러나 그 섬뜩한 고통은 기이하게도 황홀하기만 했다.

스스로 인내심이 많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이 오만임을 에르잔은 뼈저리게 느꼈다. 생식을 위해서도, 봉사를 위해서도 아닌 오로지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 몸을 섞는 감각이 이토록 중독적인 줄 몰랐다.

“아가씨, 아가씨…… 읏!”

정신이 혼미해졌으나 혼란은 그를 두렵게 하지 못했다. 마치 불길을 향해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에르잔의 몸이 격정적으로 움직였다. 철썩철썩 살이 부딪히는 소리는 커다란 날짐승이 날갯짓을 하는 소리 같기도 했고, 불에 바싹 타들어 가는 벌레가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왜?

그렇게 여러 번 그녀를 안았는데, 왜 하나가 될 때의 섬뜩하고 짜릿한 기분에는 익숙해질 수가 없는 걸까.

쾌감의 불길이 두 사람을 에워쌌다. 제 몸이 그녀를 짓누르지 않도록 상체를 세우고 있는 탓에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사비나의 몸이 흔들리는 것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를 부르는 목소리도.

“에르잔, 흑! 에르잔……!”

그녀가 부르는 제 이름이 가슴 속을 뜨겁게 물들인다. 에르잔은 참지 못하고 사비나의 몸을 안아 일으켰다. 시트에 뺨을 비비고 있던 사비나는 갑자기 뒤바뀐 자세에 당황하여 허우적거렸으나 에르잔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당신을, 놓지 않겠습니다……!”

자신이 있을 자리를 찾고 싶다던 욕망은 사실 위선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자신은 처음부터 이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그녀가 허락하기도 더 전부터 이곳을 그가 있을 자리로 정해 두었던 것은 아닐까.

한 사람분의 자리에 두 사람이 끼어드는 건 분명 불편하고 성가신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르잔에게는 자유로움 하나 없이 온몸이 맞붙는 이 감각이 너무나도 소중했다.

사비나. 그의 주인. 그의 연인. 그와 함께 있는, 그래서 비로소 그에게 ‘있을 자리’를 만들어주는 창조주이자 구원과도 같은 존재.

이 빛에 휩싸일 수만 있다면, 이 몸이 불에 타 재가 되어 버린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다.

“사비나 아가씨. 아가씨…….”

“에르잔, 흐, 에르잔…….”

“사비나…….”

정신없이 몸을 섞으면서, 세상에 아는 이름이라고는 딱 하나뿐인 바보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지독히도 사랑스러웠다.

어떤 명분이나 변명으로도 치장하지 않은 날것의 욕망이 두 사람을 삼켜 버렸다. 예의도 체면도 사리도 분별도 없는 쾌감을 만끽하며, 에르잔은 사비나를 꽉 끌어안았다.

새하얀 충만감이 찾아왔다.

***

밤이 깊은 시각, 카이라트는 삐걱대는 문을 열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에르잔이 베어 넘긴 나무가 세 채의 오두막을 모두 때려 부순 탓에, 카밀라는 바람 드는 폐가에 있고 싶지 않다며 교회로 건너간 뒤였다.

돌무더기로 무너진 벽 부분을 대충 막아 놓고 판자를 기대 놓은 오두막의 꼴은 말이 아니었으나 카이라트에게는 이쪽이 더 편했다. 누군가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게 혼자 있을 수 있으므로.

‘당분간 이쪽에는 아무도 오지 않겠어.’

간단한 장비를 챙긴 카이라트는 맞은편에 보이는 교회의 불빛을 확인한 후, 발소리를 죽여 가며 동쪽 첨탑으로 향했다.

알렉세이의 시체에는 아무도 손을 대지 못했다. 저주의 반작용으로 숨이 끊어졌으니 매장하기 위해 건드렸다가 저주가 옮을지도 모른다며 다들 두려워한 탓이다.

‘술자로부터 출발하여 대상을 저주하고 다시 되돌아온 시점에서 주술은 이미 역할이 끝나 안정돼. 닿는다고 저주가 전염될 리는 없어.’

일생 주술을 연구해 온 카이라트는 알렉세이가 죽은 시점에서 저주가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에게는 알려 주지 않았다.

지금처럼 사람 눈을 피해 알렉세이의 시체에 다가갈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젠장. 마취 때문에 숨이 차는군.’

에르잔의 정화 능력은 저주로 인해 받은 피해를 없애 줄 뿐 물리적인 부상은 치료하지 못한다. 네나뷔스테가 휘두른 갈퀴에 얻어맞은 부위가 아직도 뜨거웠다. 카이라트는 걷다가 멈춰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걷기를 반복했다. 광장이 그리 넓은 것도 아닌데, 서쪽의 오두막에서 동쪽 첨탑까지 가는 길이 멀게 느껴졌다.

밤은 고요했으나 저주에서 벗어난 환희로 가득 찬 마을은 발소리 하나에 신경을 기울일 만큼 예민하지 않았다. 카이라트는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동쪽 첨탑까지 걸어오는 데 성공했다.

‘저기 있다.’

삐죽삐죽. 유리거울의 조각과도 같은 것이 온몸을 빼곡하게 둘러싼 알렉세이의 시체가 보였다.

늪 속의 불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