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146화 (146/189)

146화

엉망으로 찢어진 옷자락에 덕지덕지 들러붙은 피. 원래의 색이 무엇이었는지 판별하기 어려울 만큼 붉게 물든 상처 부위를 은색의 주술이 덮어 갔다.

마치 흠집이 난 벽에 흙을 덧발라 붙이고 쪼개진 기둥에 보강목을 덧댄 것처럼, 욕망의 저주는 카이라트의 상처가 벌어지지 않도록 그의 환부를 착실히 감싸고 있었다.

“카이라트.”

“…….”

의식을 잃은 것 같지는 않지만, 카이라트는 대답하거나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았다.

환자를 무리해서 깨우고 싶지 않았던 사비나는 그를 내버려 두고 일어났다. 광장은 무척 고요했다. 에르잔과 사비나를 제외한, 광장에 모여 있던 이들은 모두 은색의 거울에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엎어져 있었다.

<편해지고 싶다>는 욕망에 의해 분노와 증오를 내려놓은 이들은, 에르잔의 정화의 빛에 의해 달콤한 휴식에 빠져들었다. 사비나는 은빛의 거울 위로 금빛이 반짝이는 것을 바라보며 조금 아연해졌다.

“사비나 아가씨. 이 사람들은…….”

“잠든 것뿐이에요. 피로가 풀릴 정도로 휴식을 취하고 나면 일어날 거예요.”

체념이 깃든 마을의 북쪽에서 15년간 잠들어 있었다고 한들 그들에게 그 세월은 온전한 <쉬는 시간>이 아니었다. 무기력하게 늘어져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들은 단 한 순간도 마음 편히 쉬어 본 적이 없다. 욕망은 그들의 소망을 들어주었고, 에르잔의 정화의 힘은 그 욕망이 그들을 좀먹지 않도록 지켜 주었다.

“에르잔이 지켜 주고 있으니까, 저주에 물들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제가 말입니까? 저는 아무것도…….”

“이게 전부 에르잔이 한 일이에요.”

사비나가 바닥을 감싸는 은은한 금빛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저주만을 골라 정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저주가 더 이상 저주받은 대상에 들러붙지 않도록 경계를 나눌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저주에 단계가 있는 것처럼, 정화에도 단계가 있다.

첫째로 저주와 결합해 있던 저주받은 대상을 저주로부터 분리해 내고, 그다음에 분리해 낸 저주를 정화한다.

그러니 첫 번째 단계에서 멈추면, 저주를 불태워 없애지 않은 상태에서도 사람들이 저주로부터 안전하게 지켜 내는 것이 가능하다.

“에르잔은 역시 굉장해요. 나는 이런 식으로 힘을 조절할 줄 모르는데…….”

“사비나 아가씨께서 가르쳐 주시지 않았더라면 저는 제게 어떤 능력이 있는지 평생 모르고 살았을 테니까요.”

“나처럼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는 능력이 아니라, 구하고 돕는 능력이잖아요. 그게 부러워요.”

“이 마을 사람들을 구원한 건, 사비나 아가씨이십니다.”

마을의 저주를 눈치챈 것도 사비나, 그들이 저주로부터 벗어나게 해 준 것도 사비나, 저주의 핵을 없애지 않고 몸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네 개의 핵을 보유한 <제물>의 목숨을 구한 것도 사비나다.

스스로 이 마을의 구원자라 말하더라도 과장이 아닐 터인데, 사비나는 매번 에르잔에게 공을 돌리고 자신은 그림자처럼 숨어 있기를 바랐다.

그것이 꼭 그녀가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것처럼 보여서…… 아니,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것처럼 보여서, 에르잔은 사비나가 안타까웠다.

“카밀라를 비롯해서 많은 이들이 사비나 아가씨께 희망을 걸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부정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밀라는 내가 죽음의 화신인 걸 모르니까…….”

“그리고 제가 충성하는…… 아니, 소중히 여기는 분입니다.”

“…….”

“아가씨 자신을 조금 더 아껴 주셨으면 합니다.”

은빛의 샘은 욕망의 거울. 저주보다 넓은 주술에 속하는 개념이라고는 하나 정화 체질인 에르잔에게는 주술의 효력이 통하지 않을 터인데, 어째서일까.

두 사람의 아래 그림자 대신 번져있는 은빛의 거울이 에르잔의 욕망을 비추는 것 같았다.

그를 닮은 금빛이 반짝이는 모습은, 마치 낮의 하늘에 별이 반짝인다면 이런 모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에르잔이 좋아요. 그래서 당신이 다치는 게 싫어요. 내 옆을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내가 내쳐도,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사비나가 다치지 않기를. 스스로를 깎아내리지 않기를. 혼자서 상처를 끌어안고 울지 않기를. 에르잔에게 의지하기를. 그녀의 아픔을 달랠 힘이 그에게 있기를 얼마나 소망했던가.

“사비나 아가씨께서…… 괴로워하지 않기를, 원합니다.”

주군이 욕망하는 바를 대신 이루는 것이 기사의 도리이건만, 에르잔은 거꾸로 자신의 욕망을 사비나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비나는 에르잔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가 붉어진 얼굴로, 그러나 진지한 눈으로, 마치 소원을 빌듯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싫지 않았다.

처음 받았을 때는 낯설었던 친절이, 어색해서 피하고 싶었던 호감이, 따스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사비나는 에르잔을 살며시 밀어냈다. 그러나 붙어 있는 것이 싫어서는 아니었다. 너무 가까이서 바라보는 것보다, 한 걸음 물러났을 때 그의 모습을 온전히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에르잔. 나는…….”

“으아아! 이게 다 뭐야?”

쓸데없이 목청만 좋은 나자예프의 경악이 평온을 되찾았던 광장의 정적을 단번에 깨뜨렸다. 돌아보니 동쪽 첨탑 방향에서 아페티트와 바르셀다, 그리고 절뚝거리는 나자예프가 걸어오고 있었다.

다리를 저는 탓에 걸음은 제일 뒤처져 있는데도 목소리는 제일 큰 까닭에, 아페티트가 다가오면서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으나 나자예프의 목소리에 묻혀서 하나도 안 들렸다.

“사비나, 괜찮아? 네가 숲에 갇혀 있는 줄 알고 엄청 걱정했잖아. 이제 우리 앞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지?”

마음은 급한데 다리를 질질 끄느라 뛸 수가 없어서 표정만 필사적인 나자예프가 다가오자, 에르잔이 슬쩍 사비나의 앞을 막아섰다.

“나자예프. 죽은 게 아니었나?”

“뭐? 내가 왜 죽어! 멀쩡한 사람 죽이지 말아 줄래?”

나자예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올려다보자, 에르잔은 그의 검게 물든 팔과 저는 듯한 다리를 훑어보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봐도 멀쩡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서 하는 소리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다니 너무하네, 에르잔! 사람은 성품을 봐야 하는 거라고!”

에르잔은 나자예프가 말하는 <겉모습>의 정의를 정정해 줘야 하나, 성품이야말로 멀쩡함과는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 나자예프라는 사실을 지적해 줘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다른 두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바르셀다의 얼굴은 요전에 한 번 보았으니, 아마도 붉은 머리에 황금빛 눈동자를 지닌 남자가 사비나가 말하던 <아페티트>이리라.

“그쪽이 아페티트인가? 여기엔 무얼 하러 왔지?”

“뭘 하러 온 게 아니라 헤어졌다가 이제 만난 겁니다. 원래 우리는 사비나와 함께 숲을 빠져나오려고 했으니까요.”

도중에 사비나가 사라지고, 아페티트는 숲에 감도는 욕망의 저주를 감지했다.

에르잔이 숲에 들어와 사비나를 만난 건 아페티트가 나자예프와 카림을 데리고 동쪽 첨탑으로 달아난 후의 일이었으나 그 사실은 에르잔도 사비나도 알지 못했다.

아페티트는 바닥에 쓰러진 마을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작게 감탄했다.

“다음 욕망의 화살이 어디로 날아갈까 내심 불안했는데, 다행히 최악의 결과는 면했군요.”

“에르잔이 도와줘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개는 주인에게 충성하는 게 미덕인 법이죠.”

“에르잔은 개 취급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요?”

아페티트와 사비나가 대화하는데 왜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지, 그리고 왜 묘하게 기싸움을 하는 듯한 분위기인지 에르잔은 알 수 없었으나 물어볼 분위기도 아니었다.

나자예프는 말이 통하지 않고, 초면인 아페티트는 사비나와 대화 중인 터라 자연히 에르잔의 시선은 바르셀다에게로 향했다.

교회에서 마주친 적은 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자예프보다도 더욱 긴 검은 머리카락에 붉은 눈동자. 키도 크고 몸도 다부지지만 어딘가 우울한 인상의 남자였다.

에르잔이 뭐라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바르셀다가 던지듯이 툭 내뱉었다.

“언제 돌아갈 거예요?”

“뭐?”

“마을의 저주는 풀렸잖아요. 당신들이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는 거 아니에요?”

형과는 달리 기본적인 예의는 차리는 말씨였으나 묘하게 태도가 날이 서 있었다. 설마 지하에서 기둥으로 후려쳐 어깨를 부러뜨린 일을 기억하고 있나 싶어 에르잔은 조금 당황했다.

하지만 바르셀다가 경계하는 것은 에르잔보다도, 사비나 쪽인 듯했다.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알렉세이 형한테 더는 우리를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전해 주세요.”

바르셀다의 입에서 나온 알렉세이의 이름에 사비나가 아페티트와 실랑이하던 것을 멈추고 바르셀다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것만으로 바르셀다는 겁을 먹은 짐승처럼 아페티트의 뒤로 숨었다. 물론 바르셀다의 덩치가 훨씬 컸기에 숨는다고 숨겨지지는 않았다.

“알렉세이 형이 보내서 온 거죠? 그쪽은.”

바르셀다의 시선에 두려움과 원망이 섞인 것을 본 사비나는 나자예프를 바라보았다.

“나자예프. 말했어요?”

“아니, 나는 말 안 했어! 바르셀다는 아직 몰라!”

“내가 모르긴 뭘 몰라? 알렉세이 형이 보낸 사람이잖아, 이 여자.”

“바르셀다, 사비나 아가씨께 무례한 언행은 삼가라. 사비나 아가씨께서는 너의…….”

“에르잔, 그만!”

에르잔의 입에서 사비나의 출신이 까발려질까 봐, 나자예프가 황급히 앞으로 뛰어들었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하더라도 절뚝거리며 걸음이 느렸던 주제에, 끼어드는 것만큼은 재빠르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시답잖은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고.”

“시답잖은 이야기라니?”

“거, 참. 말이 많네. 과묵함은 남자의 덕목인 거 몰라? 좀 가만히 있어.”

에르잔의 입에서 허튼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하지만, 바르셀다의 의심을 사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자예프는 최대한 의젓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물론 의젓해 보인다는 것은 나자예프 자신의 생각이었고,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특히 이 자리에서 가장 오랫동안 나자예프를 보아온 바르셀다는 기가 차서 한숨을 뱉었다.

“과묵이라니, 그게 형 입에서 나올 소리는 아니지 않아?”

“바르셀다. 형 말에 토 달지 말고 그냥 들어. 어른 말을 들어야 행운이 찾아오는 법이야.”

“행운은 모르겠고 저주는 받았지.”

바르셀다의 지적에 나자예프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으나, 그에게는 염치도 양심도 없었으므로 재빨리 에르잔을 향해 입을 놀렸다.

“아무튼 에르잔 너는 입 다물고 있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아, 좀! 사비나를 위한다면 경솔하게 아무 말이나 지껄이지 말라고.”

경솔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일 듯한 나자예프로부터 듣기에는 어이가 없는 말이었으나, 자신의 손을 잡아끄는 사비나의 표정을 보고 에르잔은 입을 다물었다.

묻고 싶은 것도, 따지고 싶은 것도, 정정하고 싶은 사실도 한가득이지만 사비나가 만류한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에르잔은 우선 가만히 있기로 했다.

“바르셀다. 사비나한테 너무 날 세우지 마. 우리가 원망해야 할 건 알렉세이 형이지 사비나가 아니잖아? 사비나도 이용당했을 뿐이라고.”

“이용당했을 뿐인지, 아니면 알렉세이 형과 한패인지는 모르는 일이지.”

바르셀다는 사비나를 바라보았다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당신이 마을의 저주를 풀어 준 걸 알아요. 하지만 우리를 구해 줬다고 해서 당신들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어요.”

“알고 있어요.”

“순순히 감사하기엔 알렉세이 형에게 배신당한 충격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내가 대신 사과하기를 바라나요?”

전혀 예상치도 못한 대답에 바르셀다가 고개를 돌려 사비나를 마주 보았다.

마을을 구해 준 은인임에도, 원수인 형과 관계가 있다는 것만으로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적반하장이라는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사비나는 그런 바르셀다의 태도에 조금도 실망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그가 사비나를 의심하고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한 얼굴로 그를 바라본다.

“사과요? 대신? 당신이 뭐라고……!”

“야, 바르셀다! 사비나한테 시비 걸지 마!”

나자예프는 움직이지 않는 팔 대신 몸통으로 바르셀다를 밀어냈다. 물론 체격은 바르셀다 쪽이 훨씬 좋았으므로 밀려났다기보다는 그저 옆으로 물러선 것에 가까운 결과가 나왔지만.

나자예프가 정신 나간 짓을 하는 게 하루 이틀 일은 아니지만, 알렉세이에게 그렇게 당해놓고도 <알렉세이가 보낸 여자>를 옹호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던 바르셀다는 짜증이 난 듯 소리쳤다.

“형 진짜 저 여자한테 눈 돌아간 거 아니야?”

“돌아가긴 왜 돌아가! 내 눈 멀쩡히 박혀 있거든! 각인도 사라지고, 안 보이던 것도 회복했거든!”

“그런 의미가 아니라…… 너무 저 여자한테 단단히 빠진 거 아니냐고. 알렉세이 형이 보낸 사람을 쉽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거야.”

“야! 사비나 그만 의심해! 사비나는 우리의……!”

알렉세이의 딸이라면, 나자예프와 바르셀다에게는 조카가 된다.

아내도 자식도 없는 나자예프에게는 유일한 하나뿐인 가족인 셈이다.

그러나 사비나를 단순히 <알렉세이가 보낸 사람>으로 인지할 때도 경계하는 바르셀다에게, 그녀가 <알렉세이의 딸>이라는 것을 알렸다가는 어떤 문제가 생길지 알 수 없다.

'젠장. 내 몸이 이래서 바르셀다가 날뛰기라도 하면 말리지도 못하는데.'

물론 몸이 멀쩡했더라도 나자예프에게 바르셀다를 말릴 수 있는 힘은 없었으나 한쪽 팔이 움직이지 않는 상황은 그의 금이 간 자존심을 가까스로 이어붙여 복원하는 데 아주 편리한 변명거리가 되었다.

“사비나는 우리의…… 우리가…… 그러니까, 너와 내가…… 사랑해야 하는 존재라고!”

“형, 미쳤어?”

“나자예프. 사비나 아가씨께 무례한 소리는 하지 마라!”

“이게 왜 무례한 소리야! 에르잔 너야말로 내가 어떤 심정으로 이 말을 하고 있는지 알아?”

“알고 싶지도 않다.”

미친 사람을 보는 듯한 바르셀다의 시선과 에르잔이 보내는 싸늘한 경멸의 눈초리에 나자예프의 상처뿐인 자존심이 다시 와르르 무너졌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보고 있던 아페티트가 짝! 하고 손뼉을 울려 모두의 시선을 모으더니, 사비나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나자예프가 미친 소리를 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신경 쓰지 말고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요.”

자신은 미치지 않았다는 나자예프의 항변은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비나. 무슨 생각으로 카이라트를 살려 낸 겁니까?”

“……카밀라의 가족이잖아요.”

“당사자는 아마 자신을 기만한 오라비를 죽이고 싶어 할 텐데요.”

“그건 카밀라가 결정할 일이죠. 그리고 나는 사람이 죽어 가는 것을 두고 볼 생각은 없어요.”

“그가 당신과 저를 토굴에 가두고, 당신의 개를 인질로 잡아 협박을 하고, 다른 이들을 선동하여 위협을 해 올지라도 말입니까?”

“아직 모르는 게 많잖아요. 나도, 당신도, 그리고 카이라트도.”

사비나는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카이라트의 얼굴 위로 가볍게 손을 움직였다. 사비나에게 타인을 조종하고 싶다는 욕망은 없지만, 그가 깨어나야 대화가 이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그녀의 욕망을 움직이기라도 한 건지, 카이라트가 힘겹게 눈을 떴다.

늪 속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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