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143화 (143/189)

143화

26. 둘이서, 하나

“사비나 아가씨. 저…… 한 가지 여쭈어도 괜찮겠습니까?”

“궁금한 게 뭔가요?”

“제가 로스카옌 신부님으로부터 그 목걸이를 건네받기 전까지, 저는 이 숲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숲이 저를 밀어내서…… 표현이 이상하지만, 밀어낸다고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목걸이를 벗은 로스카옌을 곧바로 튕겨 낸 것으로 보아, 마을 북쪽에 있는 이 숲은 <외부인>을 거부하는 것 같았다. 목걸이를 하면 자신이 외부인인 것을 감출 수 있는 듯해 보였지만.

사비나에게 목걸이를 건네준 지금은, 에르잔은 아무런 주술도구도 보유하지 않고 있는데 숲에서 튕겨 나가지 않는다.

“에르잔. 이 숲에 들어올 때, 무슨 생각 했어요?”

“그야 사비나 아가씨를…….”

카밀라가 느낀 불안감. 새벽이 되기 전에 떠났음에도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사비나. 로스카옌이나 나자예프조차 보이지 않는 것이 수상해서 그녀를 찾아 북쪽으로 가고자 했다.

그런데 서쪽으로 가기 위해 경유했을 때와는 달리, 북쪽 숲은 에르잔을 밀어냈다.

마치 강력한 보호막이 생긴 것처럼, 그의 진입을 거부했다.

“사비나 아가씨께 어떤 문제가 생겨서, 그래서 저주가 이상하게 변질되어…… 저를 밀어내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사하길 바랐죠?”

“물론입니다.”

“그래서 못 들어온 걸 거예요.”

“예?”

사비나는 에르잔의 손을 붙잡았다. 저주받은 대상을 모두 황금빛으로 태워 버리는 정화의 힘은, 유독 사비나에게만은 통하지 않는다.

“에르잔. 한 번에 두 가지 일 잘 못 하죠?”

“한 번에 두 가지…… 말씀이십니까?”

에르잔은 머릿속으로 동시에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떠올렸다.

가령 요리하면서 청소를 한다면 더러운 손으로 음식을 손질하는 셈이니 위생상 좋지 않다. 그렇다고 매번 손을 깨끗이 씻은 뒤 재료를 다듬는 건 도리어 번거롭다.

목욕물을 데우면서 천막을 새로 치고 조명의 배치를 옮기는 것도 그렇다. 잘못하면 천막에 불이 옮겨붙을지도 모르고, 천막이 기울기라도 했다간 기껏 데워놓은 목욕물에 젖어 물과 천막 모두 쓸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에르잔이 생각하기에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건 한 가지 일만 잘하는 것만 못했다.

“한 번에 두 가지 일을 하는 건 효율상 좋지 않습니다. 먼저 한 가지를 완벽히 끝내고 그다음을 시작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빨리 일을 끝마치고, 실수가 남지 않는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그럴 거예요.”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에르잔의 정화능력은 체질이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없다고 말했지요?”

에르잔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검은 꽃을 정화했을 때부터, 네나뷔스테의 양팔와 자니베크의 등에 화상을 입히고, 바르셀다가 갇혀 있던 첨탑의 벽화와 바닥에 불길을 일으켰을 때도 그러했다.

정화의 능력을 발동하고, 발동하지 않고는 제어가 가능하지만 한번 발동한 능력은 멈출 수 없다. 정화할 대상을 선택하는 것도 불가능하며, 저주만을 떼어 내고 생명에는 해를 끼치지 않는 것 또한 불가능하다.

그래서 에르잔은 제 능력이 사비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사실 에르잔은 처음부터 당신 능력을 조절할 수 있었을 거예요.”

“예? 하지만 저는 이제까지 계속…….”

“에르잔은 내 호위기사고, 나를 지키겠다고 말했지요?”

“물론입니다.”

“나를 상처 입히지 않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이느라, 다른 곳에까지는 신경이 미치지 못한 거예요.”

검은 꽃을 태워 없애고, 네나뷔스테의 양팔을 불태우는 것만 보더라도 에르잔이 제 능력을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하지만 사비나는 그보다 앞서, 에르잔이 처음 이 마을에 도착해 두 사람이 머무는 오두막을 청소했을 때를 떠올렸다.

벽에 분명 거무죽죽한 저주가 들러붙어 있었는데, 에르잔이 닦아 내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벽은 불타오르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벽이 불타거나 무너지면 더 이상 내가 그곳에 머물 수 없으니까, 본능적으로 조절한 거예요.”

“하지만 사비나 아가씨께서 검은 꽃을 정화해 보라 하셨을 때는 완전히 태워 버렸는데…….”

“에르잔. 그 꽃을 쥐었을 때 무슨 생각을 했어요?”

“청소한다는 생각을…… 아.”

더러운 것을 청소한다고 생각했다.

에르잔은 저주가 깃든 꽃을 들고, 저주와 꽃을 분리하지 않고 그것을 모두 <더러운 것>으로 인식했다.

그리고 사비나가 다니는 길에 <더러운 것>을 놔두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태워 없애 버렸다.

네나뷔스테가 사비나에게 달려들기에, 사비나를 구하려면 네나뷔스테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증오의 저주에 휘감겨 가시 돋친 괴물로 변해 버린 자니베크가 사비나의 몸에 상처를 내기에, 그녀를 구하려면 저 날카로운 바늘 같은 가시들을 다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가씨를 지키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해서…….”

“그래서 전부 태워 버린 거예요. 네나뷔스테와 자니베크가 공격능력을 상실했을 때 불꽃이 사그라든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

“하지만…….”

“동쪽 첨탑의 바르셀다를 구하러 갈 때, 나를 나자예프와 함께 가두고 지하로 내려갔지요?”

첨탑 주위를 돌면서 저주받은 나뭇잎과 꽃, 잔가지 등을 잔뜩 주워서 정화의 불을 붙였다.

그 정화의 불은 첨탑의 벽화와 지하의 사방에 남아 있던 실지렁이 같은 저주까지 태워 없애 가며 바르셀다의 진로를 막았다.

하지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벽화는 지워지지 않았다.

지하가 불에 타서 무너지는 일 또한 없었다.

에르잔의 정화의 불꽃은 저주받은 것만을 태우고, 저주받지 않은 것은 태우지 못한다.

그러나 시간을 멈추게 한 저주는 분명 이 마을 전체에 뻗어 있을 텐데, 에르잔은 어째서 특정한 <저주받은 것>만을 태워 없앴을까?

“건물이 무너지면, 마을이 불에 타면, 아가씨가 위험해질 거라고…… 무의식중에 그렇게 생각한 걸까요?”

“당신은 나를 지키는 것밖에 생각 안 하잖아요. 이렇게.”

사비나가 맞잡은 손을 잡아끌자, 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에르잔의 옷도 여기저기 찢어진 부분이 있었고 사비나의 옷도 넝마나 마찬가지였기에 두 남녀가 가까워지자 자연히 살갗이 맞닿았다.

“에르잔의 정화의 능력이 정말로 대상을 구분할 수 없다면, 나는 한참 전부터 불타고 있었을 거예요.”

사비나는 에르잔이 자신의 저주에 물들지 않는 것을 확신했을 때, 에르잔의 정화 체질은 그녀의 죽음의 저주보다 더 강력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에르잔의 정화 체질이 사비나의 죽음의 저주보다 더 강력하다면, 그녀는 어째서 에르잔에게 정화되지 않는 것일까?

처음에는 그녀가 죽음의 화신이라는 것을 몰라서, 라고 하더라도. 그 앞에서 몇 번이나 저주를 흡수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내가 분노의 핵을 빨아들일 때 에르잔은, 엄청 끔찍한 것을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 그건…….”

수백, 수천 개의 시커먼 실지렁이가 사비나의 코와 입, 귀로 파고드는 광경을 보고 태연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에르잔은 당장에라도 그 저주를 잡아채서 불태워 없애 버리고, 사비나를 구해 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제 벌레가 아니라 저주가 형태화된 것으로, 에르잔이 불태워 없애 버리면 <분노의 핵>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지켜만 보았다.

“내가 흡수하기 전의 저주는 <없애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몸에 흡수해 버린 저주는 건드릴 생각을 하지 않았죠.”

“제힘은 저주와 그 대상을 분리하지 못한다고, 믿고 있었기에…….”

“나를 불태우고 싶지 않아서 내내 억제하고 있었던 거예요, 당신은.”

사비나가 저주를 흡수한다는 것을 알고 나서도, 속이 보이지 않는 시커먼 연못에 깃든 저주를 흡수하는 광경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에르잔은 사비나를 <더럽다>거나 <불길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가 죽음의 화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조차도, 이제까지 사비나가 겪어왔을 무수한 고통만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했다.

“그렇다면 그것도 설마……?”

에르잔의 눈이 커졌다. 무언가를 떠올린 듯한 표정에 사비나가 그를 올려다보자, 에르잔은 얼른 고개를 털었다.

확신이 서지 않아 사비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에르잔 자신이 <저주만을 정화했다>라고 믿게 할 만한 사건이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무슨 실인지 머리카락인지 모를 것에 묶여 발버둥 치는 시궁쥐를 구해 주려고 했을 때.

다른 한 번은 창밖의 떡갈나무 잎을 손끝으로 문질렀을 때.

<사비나를 지키는 임무>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에 정화의 힘을 사용했을 때.

에르잔은 생명체 그 자체에는 아무런 손상도 입히지 않고, 저주만을 골라서 불태울 수 있었다.

“사비나 아가씨. 그렇다면 이제…… 아가씨께서 품고 계신 저주만을 제가 정화하는 것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그렇겠지만, 그러면 안 돼요. 아버지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까.”

저주의 힘을 잃어버리면 사비나는 평범한 인간이 된다. 아버지가 병사들을 몰고 오면 대항할 수단이 없어진다. 이용가치가 없어진 사비나는 어떻게 될까. 죽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이 마을이 파괴되는 것만은 불 보듯 뻔했다.

“사비나 아가씨. 무엇을 계획하고 계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 마을에 다시 저주를 걸 거예요.”

“사비나 아가씨! 대체 무슨……!”

기절초풍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면서, 사비나는 에르잔과 함께 숲을 빠져나왔다.

멀리 광장에 사람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이번에는 <욕망>의 저주를요.”

늪 속의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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