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사람을 조종할 수 있나?」
달조차 뜨지 않은 깊은 밤, 알렉세이는 약속도 없이 아페티트를 찾아왔다.
원체 조용하고 타인에게 관심이 없는 알렉세이가 저를 찾아왔다는 사실보다도, 아페티트는 그가 자신을 찾아와 제일 먼저 건넨 말에 놀라워했다.
「네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알렉세이.」
「글은 읽지 못해도 말은 알아들을 수 있는 거로 아는데. 아니면 지능이 떨어지나?」
야밤에 들이닥친 주제에 신랄하게 비꼬는 말부터 내뱉는 알렉세이를 보고 아페티트의 입이 쩍 벌어졌다.
그건 저를 비난하는 말을 들어 기분 나쁜 사람의 반응이 아니었다.
알렉세이가 타인에게 이런 독설을 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던 아페티트는 황금색의 눈동자를 데구르르 굴렸다.
「알렉세이, 너는 엄청 얌전하고 교양있는 줄 알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봐?」
「상대의 수준에 맞출 뿐이야.」
「허…….」
귀족도 아니고, 기이한 취미를 가진 아페티트는 애초에 알렉세이가 존중해야 하는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그저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방문한 것뿐이다.
그다지 교류도 없던 상대를 다짜고짜 찾아온 것만으로도 이미 무례한 행동에 속하는데, 비꼬는 말을 하는 건 원하는 바를 얻어 내기에 적절한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아페티트는 대놓고 욕을 하면서도 거만하게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알렉세이에게 화를 내지도, 그를 내쫓지도 않았다.
알렉세이가 질문한 내용이 제 흥미를 심하게 자극한 까닭이었다.
「알렉세이, 내 취미는 어떻게 알았어?」
「그 정도는 보면 알아.」
「너희 집은 여기서 상당히 떨어져 있잖아. 밖에도 잘 나오지 않으면서, 어떻게 본 거야?」
「눈에 보이는 것만 믿을 만큼 머저리는 아니거든.」
삽시간에 마을 사람 대다수를 머저리 취급하는 발언에 아페티트는 낄낄 웃었다.
짐승의 사체에 줄을 묶고 철심을 박아 인형처럼 조종하는 것은 아페티트의 비밀스러운 취미였다.
사체를 숨긴다고 숨겼지만 흔적은 완전히 지울 수 없었다.
게다가 이런 마을에서 누구 하나가 수상한 행동을 하는 것이 전혀 눈에 띄지 않을 리도 없었다.
어른 중에 몇 사람이 눈치챘다는 것은 알아도, 그들 가운데 누구도 아페티트에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섣불리 지적했다간 몰래 숨어서 하던 일들을 대놓고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다.
그저 그 이상하고 끔찍한 취미가 짐승의 사체를 이용하는 데서 더 나가지 않도록 감시할 뿐이었다.
「어른들만 아는 줄 알았는데. 알렉세이까지 알 정도면 사실 꽤 여기저기 알려진 거 아닐까 모르겠네.」
「말을 빙빙 돌리는 건 이해를 못 해서인가? 아니면 어휘력이 떨어져서?」
부탁하는 입장이면서 자신에게 그런 폭언을 하는 알렉세이가 아페티트는 신기하기도 하고,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무엇보다 시체를 조종하는 취미를 가졌다는 것을 알면 누구라도 눈살을 찌푸리며 멀리하기 마련인데, 방법을 구하며 제게 다가오는 이는 알렉세이가 처음이었다.
늘 혼자서만 몰두하던 취미 생활에 대해 떠들 기회를 잡은 아페티트는 사소한 것을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사람은 너무 무거워서 줄이 버티지 못해. 큰 개만 하더라도 철심을 박아 넣으면 어떻게든 뼈대는 유지가 되는데, 금방 살이 썩어서 문드러지거든.」
「시체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을 조종하는 건 불가능한가 보지?」
「이상한 걸 묻네. 알렉세이. 조종하고 싶은 사람이 있어?」
아페티트의 질문에 알렉세이는 소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페티트의 입매가 부드럽게 휘었다.
알렉세이가 조용하고 사람을 멀리하는 게 단순히 낯을 가려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자신과 동등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은 은연중에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남을 조종하고 싶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아페티트는 낄낄 웃었다.
「알렉세이도 참 황당한 생각을 하네. 살아 있는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말이야, 그건 이미 악마가 아닐까?」
「시체를 조종하는 것도 충분히 악마 같다고 생각하는데.」
「거기까지는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잖아. 게다가 완벽하지도 않고.」
「완벽하게 되고 싶나?」
알렉세이의 질문에 내내 웃는 얼굴이던 아페티트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시체를 조종하는 방법을 물으러 왔기에 제게 무슨 부탁을 하려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알렉세이의 목적은 ‘부탁’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알렉세이. 나한테 원하는 게 뭐야?」
「네게 바라는 건 없어. 다만 네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고 싶을 뿐이다.」
「그렇게 사람을 평가하듯이 훑어보면, 기분이 나빠서라도 협력하기 싫어지지 않겠어?」
「기분이 상했다고 포기할 수 있는 제안은 아니지.」
그랬다.
알렉세이는 확실히 아페티트의 구미가 당기는 제안을 건넸다.
짐승의 사체에 줄을 엮고 철심을 박아 어설프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리고 나아가, 죽은 사람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까지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면.
그건 이미 악마를 넘어, 신의 영역에 발을 들이는 것이 아닐까?
「알렉세이. 그런 엄청난 방법을 알고 있다면 왜 네가 스스로 하지 않고 굳이 나한테 제안하는 건데?」
「위험부담을 내가 질 필요는 없으니까.」
「위험부담?」
「실험을 할 거거든. 비밀을 지키면서도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몰두할 수 있는 녀석이 필요해.」
「그러니까…… 지금 내 몸으로 실험을 하겠다는 뜻이야?」
알렉세이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은편에 서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붉은 눈동자가 자신을 향해 있지 않다는 것을 눈치챈 아페티트는 입을 가리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이런 황당한 제안은 처음이다.
그리고 이렇게 매력적인 제안도 처음이었다.
「알렉세이. 네 실험에 응하면, 내가 진짜 네크로맨서가 될 수 있어?」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있지.」
「위험부담이 있다며. 실패하면 내가 죽는 거 아니야?」
「그럴 거다.」
알렉세이는 담담하게 수긍했다.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천만한 실험을, 그것도 평범한 사람을 네크로맨서로 만든다는 황당한 실험을 하겠다면서 그 위험성을 숨기지도 않는 것은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제정신이 아닌 것은 아페티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비밀을 지킬 거라고 생각해?」
「너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이 늘어나면, 희소성이 떨어지지 않겠나?」
「중간에 발을 빼지 않을 거라고는 또 어떻게 확신하는데?」
「처음 내가 네게 폭언을 건넸을 때, 나를 내쫓지 않았지 않나.」
정확한 지적이었다.
아페티트는 이야기에 나오는 네크로맨서처럼 자신이 정말로 시체를 조종하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도 팔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른들이 산 아래 마을에서 사 오는 서책 가운데 흑마술이나 저주술에 관한 자료는 없었고, 카이라트가 독학으로 연구하는 주술은 그림 하나 없이 글자만 빼곡하게 적혀 있어 아페티트가 읽을 수가 없었다.
물어보고자 해도 그가 연구하는 것은 불로불사의 주술이라, 아페티트가 원하는 내용과는 전혀 궤를 달리했다.
카이라트만큼 박식하면서, 자신과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알렉세이는 아페티트에게 구원자와도 같은 존재였다.
「좋아. 할게.」
「다른 질문은 없나?」
「인간과 계약을 하는 건 악마가 된 다음이라도 충분하지 않아?」
「책은 못 읽어도 들은 이야기는 있는 모양이군.」
「로스카옌이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는 걸 엿들었지. 바로 옆집이잖아.」
아페티트가 생긋 웃었다.
시체를 조종하는 기이한 취미를 가진 자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산뜻한 미소였다.
그는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로 알렉세이에게 다가갔다.
비슷한 키라고 생각했는데, 눈높이는 알렉세이 쪽이 약간 더 높았다.
「알렉세이.」
「말해라.」
「너 나를 찾아와서부터 이제까지,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지 않은 거 알아?」
아페티트는 계속 알렉세이를 바라보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이야기했는데, 알렉세이는 아페티트와 한 번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름조차 부르지 않았다.
「왜. 자존심이 상하나?」
「아니. 네가 나자예프 못지않은 겁쟁이라는 게 신기해서.」
아페티트의 말에 알렉세이의 눈이 커졌다.
붉은 눈동자가 처음으로 아페티트를 마주했다.
아페티트는 씩 웃더니, 알렉세이의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고통과 불쾌감으로 일그러진 알렉세이의 표정이 똑똑히 보였다.
「악마는 계약한 인간의 영혼을 받는다는데, 난 네 영혼 같은 건 필요 없어.」
「아직 일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 많군.」
「네가 사랑하는 여자를 받을 거야.」
「…….」
「네게 가장 소중한 것을 부숴 버릴 거야. 악마란 그런 존재잖아?」
아페티트.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알렉세이의 입술이 분명 그의 이름을 부르는 모양으로 움직이는 것을 아페티트는 놓치지 않았다.
「안 됐군.」
「뭐가?」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던 것은 이미 망가졌어.」
「그럴 리가.」
아페티트가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 알렉세이의 창백한 피부에 붉은 손자국이 문신처럼 새겨졌다.
「소중히 여기는 게 망가졌으면, 나한테 이런 제안을 할 리가 없지.」
「…….」
「잘 부탁해, 알렉세이. 나의 계약자.」
인간을 악마로 만들려는 자와 악마가 되고자 하는 인간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지고 협력했다.
그러니 그 둘이 발을 디디고 있는 평화로운 마을이 지옥으로 돌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늪 속의 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