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에르잔은 사비나의 호위를 맡게 되었을 때, 그녀를 소중히 여기겠노라 다짐했다. 그녀가 일상적인 정보에 무지하고 콘바야젠 백작으로부터 안 좋은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을 때는 귀하게 대접하고 싶었다.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는 사비나가 상처 입지 않도록 제가 그녀의 방패가 되고 싶었다. 단단한 알껍데기가 되고 싶었다. 둥지를 둘러싼 나무가 되고 싶었고, 아늑한 동굴이 되어 주고 싶었다.
사비나가 울지 않도록, 슬퍼하지 않도록, 다치지 않도록.
새끼 새를 보듬는 것처럼 그렇게 애지중지 여기겠다고 다짐했던 시절이 분명 에르잔에게도 있었다.
“흣, 에르잔! 아윽!”
흐트러진 치마를 걷어붙이고, 단단한 손바닥이 보들보들한 허벅지 사이를 더듬었다. 손끝에 걸리는 천의 질감은 없었다. 사비나가 속옷을 입고 있지 않은 것을 깨닫고 에르잔은 뜨거운 숨을 몰아쉬었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너무 크게 울려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에르잔은 그녀의 여린 피부를 상처 입히지 않으려면 조심스럽게 손을 움직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릿속의 생각과는 달리 손이 멋대로 움직였다.
보들보들한 비부를 문지르는 길고 단단한 손가락의 감촉에 사비나가 고개를 흔들었다. 사락거리는 긴 머리카락이 흔들리며 에르잔의 팔과 어깨를 간지럽혔다.
“아, 아, 에르잔…….”
눅진눅진한 살을 주무르자 뜨겁게 젖은 액체가 주륵, 흘러내렸다. 에르잔은 문득 그것을 핥아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서 있는 장소는 침대가 아니라 숲속이었다. 자신이 사비나를 지탱해 줘야 하는 상황만 아니었더라면, 그는 분명 무릎을 꿇고 그녀의 다리 사이에 얼굴을 처박았을 것이다.
“아가씨의 이곳도…… 저 때문에 이렇게 된 거지요?”
금방이라도 발기한 성기를 쑤셔 넣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에르잔은 뜨겁게 젖어 드는 그녀의 비부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처음엔 미끈한 액이 덧발라지며 질척한 소리를 내더니, 이내 찰박이는 물소리로 바뀌었다.
“흐, 윽……! 그래요…… 에르잔, 때문이야…….”
사비나가 울먹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자 알 수 없는 만족감이 꽉 차올랐다.
그녀를 기쁘게 하고 있다는 사실에 에르잔의 가슴이 심하게 울렸다. 울컥이며 토해 낸 뜨거운 한숨은 야생의 본능만이 남은 거친 짐승의 숨소리를 닮아 있었다.
“사비나 아가씨의, 이곳…… 굉장히, 뜨겁습니다…….”
“으응, 좋아. 더, 더 만져 줘요…….”
문질러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사비나가 왼쪽 다리를 들어 에르잔의 허벅지에 감아왔다. 꽉 다물려 있던 밀부에 약간의 틈이 생기자, 내내 막혀 있던 마개가 뽑힌 것처럼 애액이 흘러넘쳤다.
흙과 마른 풀의 냄새. 메마른 나무껍질과 나뭇잎의 냄새 사이에서 새큼한 향기가 꽃처럼 피어났다. 사비나의 향기다.
에르잔은 눈을 감고 사비나의 목과 어깨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녹을 듯이 달콤한 살내음을 맡을 때마다 에르잔은 본능적으로 허리를 움찔거렸다. 아직 벗지 않은 바지 한쪽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라,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에르잔, 이거…….”
“아직, 안 됩니다. 조금 더…….”
뜨겁게 맥박치는 제 것을 사비나의 허벅지에 문지르면서도, 에르잔은 허리띠를 풀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안으로 파고들던 손가락을 두 개로 늘렸다.
“아, 아읏! 깊어……!”
“더 들어갈 수 있습니다. 제게 맡기십시오.”
욕구를 해소하고 싶다는 마음과, 사비나를 기쁘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녀의 안에 저를 밀어 넣어 쾌감 속을 함께 오르내리고 싶다는 갈망. 차라리 두 사람의 몸이 녹아 하나로 들러붙어 하나가 되어 버렸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까지.
그녀를 소중히 여기겠다고 맹세하던 기사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본능에 사로잡힌 짐승이 마치 첫 사냥을 하는 것처럼 그녀를 탐했다. 긴 손가락으로 음부를 거칠게 쑤셔 대며, 에르잔은 사비나의 목덜미를 핥았다. 가느다란 머리카락이 땀과 체액에 젖어 들러붙는 것조차 사랑스러웠다.
하아. 하아.
두 남녀의 뜨거운 숨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흣, 아! 에르, 잔, 너무…… 흐앙!”
에르잔의 손끝이 민감한 정점을 찔러 주자, 사비나의 비명 소리가 높아지며 붉은 여성기가 남자의 손가락을 꽉 조였다. 마치 짐승이 입안에 들어온 먹이를 씹어 삼키듯 잘근잘근 깨무는 것 같다고 할까. 이빨 없는 짐승이 잇몸만으로 먹이를 먹어치운다면 이런 느낌이 들지 않을까 싶을 만큼 격렬한 반응에 에르잔의 몸이 흥분으로 떨려 왔다.
“아, 아, 아! 좋아, 에르잔, 아!”
에르잔의 품속에서 몸부림치던 사비나는 날카로운 쾌감이 제 안을 확 긁어내는 듯한 시원함에 전율했다.
꽈악. 뜨거운 속살이 경련하며 에르잔의 손가락을 조였다. 어찌나 강하게 조여 대는지, 손목까지 흥건하게 젖었음에도 손가락을 빼내는 것이 힘이 들었다.
“사비나, 아가씨…….”
“으응…….”
빼내는 것이 아쉽다는 듯이 조여 대던 입구는 에르잔의 손가락이 빠져나가자 다시금 입을 벌리며 군침을 흘려 댔다. 에르잔은 허리띠를 풀고, 바지 앞섶만을 풀어헤친 후 곧바로 그녀의 비부에 제 것을 문질렀다.
“흐윽……!”
눈먼 짐승이 흉포한 몸을 비비적대며 제가 들어갈 입구를 찾아 지분거렸다. 힘줄이 잔뜩 불거진 두툼한 몸체는 그녀의 애액으로 젖어 번들거렸고, 뭉툭한 귀두는 말랑말랑한 입구에 맞닿은 순간 예고도 없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아, 아아!”
한 번 절정에 달했음에도, 에르잔의 것이 워낙 커다란 탓에 갑작스러운 삽입은 무리가 있었다. 사비나는 에르잔의 어깨를 할퀴며 바들바들 떨었다. 에르잔은 옷을 벗지 않은 까닭에 그의 어깨에 손톱자국을 내는 대신 툭, 툭 실밥이 걸려 뜯어지는 소리만이 이어졌다.
“흣, 에르잔, 너무, 커요…….”
“어릴 때부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 소리…….”
에르잔이 들어온 잔소리는 대체로 몸집이 너무 크다는 뜻이었으나 지금의 상황이라고 딱히 다르지는 않았다. 한쪽 다리를 에르잔의 허벅지에 감고, 다른 쪽은 까치발을 떠서 불안정하게 매달려 있던 사비나를 한 팔로 안아 올린 남자가 허리를 흔들자, 자지러지는 비명과 함께 여자의 양다리가 남자의 허리에 감겨 왔다.
“아, 아! 그마안……!”
삽입이 너무 깊은 건지, 절정이 너무 강한 건지, 사비나는 울먹이면서도 에르잔의 옷자락을 놓지 않았다. 그녀의 가느다란 흐느낌이 에르잔의 귓가에 실처럼 감겨들었다.
“그만, 하길 바라십니까……?”
정중한 질문과는 달리 에르잔의 목소리는 굶주린 짐승의 그것처럼 야만스러웠다. 옷을 입고 있음에도 숨길 수 없는 수컷의 냄새가 콧속으로 훅 파고들었다. 사비나는 에르잔의 가슴을 살며시 밀어냈다. 그녀의 엉덩이와 등을 에르잔이 지지해 주고 있었기에 상체의 간격이 벌어져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아, 여기, 당신이…… 에르잔이, 있어…….”
사비나는 아랫배를 문지르며 작게 감탄했다. 커다란 성기가 안쪽을 푹, 찔러올 때마다 아랫배가 불룩 튀어나오면서 몸의 안쪽이 짜릿한 감각으로 꽉 차올랐다. 사비나의 손이 더 아래로 내려갔다. 연결된 성기에서 거품이 인 체액이 흘러 떨어지는 것을 손끝으로 훔치고, 자신 안으로 미처 다 파고들지 못한 기둥을 움켜쥐었다.
“아가씨, 읏……!”
에르잔은 긁힌 신음을 내면서도 허릿짓을 멈추지 않았다. 달뜬 숨을 내뱉으며 사비나는 손을 움직였다. 제 안을 누비던 남자의 성기가 속살과 손바닥을 한 번에 문질러 주는 감각은 이제껏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것이었다.
마찰로 인해 빨갛게 부어오른 살갗에 다시금 철썩, 땀에 젖은 단단한 허벅지가 맞닿았다. 그가 사납게 파고들 때마다 체액이 튀는 소리가 꼭 파도 소리처럼 귓전을 때렸다. 질 속을 가득 채운 성기가 빠져나갔다가 다시 밀려들 때마다 들리는 음탕한 소리에 숨이 막혀 와, 사비나는 입을 벌리고 할딱거렸다.
“하아, 하응, 하……!”
아래를 짓치는 난폭한 움직임에 하염없이 흔들리면서, 사비나는 또다시 제가 거짓으로 그를 속였음을 깨달았다.
구원의 밧줄이 허상일까 두려워 붙잡을 수가 없다고?
천만에. 그건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사비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그곳에 있는 것이 진짜인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고, 끊임없이 확인했다.
밧줄을 붙잡고 늪을 빠져나가는 것보다, 그 밧줄이 진짜인지를 확인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듯이.
네나뷔스테의 증오의 핵을 흡수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사비나에게 있던 욕망이었을까.
자신에게 닿아도 괜찮은 남자를 만났다는 경이로움은 어느새 그에게 닿고 싶다는 열망으로 변했다. 사비나는 에르잔에게 닿고 싶었다. 그와 살을 맞대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확인하지 않고는 참을 수가 없었다.
“에르잔, 에르잔……!”
당신은 내게 닿아도 괜찮은 거죠?
나를 안고 있는 것은 정말로 당신인 거죠?
나를 안으면서, 당신도 기쁨을 느끼고 있나요?
내가 지금 느끼는 이 기분을, 당신도 느끼고 있나요?
수십, 수백 개의 질문이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소리가 되어 나오지 못하고 흩어졌다. 단순히 쾌감에 사로잡혀 목소리를 내지 못해서는 아니다.
사비나가 질문했을 때, 에르잔이 그녀가 원하는 대답을 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나오려는 말을 틀어막았다.
“에르잔, 키스, 해 줘요……!”
군침이 흐르는 입술 위로 뜨거운 입술이 억눌리며 커다란 혀가 밀려 들어왔다. 사비나는 그의 혀를 목구멍까지 빨아들이며 비음을 내질렀다.
마치 에르잔이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에 질문을 할 수 없었던 거라고 변명하듯이.
여름이라도 산의 밤은 서늘하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도 칼처럼 파고드는 스산한 바람이 두 사람이 있는 자리만을 비켜 갔다.
마치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늪처럼, 강렬한 쾌감이 사비나와 에르잔을 동시에 삼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