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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속의 불-66화 (66/189)

66화

풀어헤친 옷이 아래로 흘러 떨어지는 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알몸이 된 사비나가 에르잔에게 기대자, 그는 허리를 안고 있던 팔을 들을 등줄기를 따라 천천히 쓰다듬으며 그녀의 목 언저리에 얼굴을 묻었다.

“응, 에르잔…….”

“사비나 아가씨…….”

서로를 부르는 소리에 따끈한 한숨이 섞였다. 닿을 때마다 팔딱팔딱. 맥이 뛰는 것이 느껴져 사비나는 간지러운 듯 몸을 비틀었다.

마치 제 심장이 가슴 속이 아니라, 아주 잘게 부서져 온몸에 흩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기분 좋아…….’

에르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의 입술과 혀의 감촉을 느끼던 사비나의 머릿속에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에르잔도 기분 좋을까?’

에르잔이 만져 주고, 핥아 주고 빨아 주면 사비나는 쾌감을 느끼지만, 에르잔도 그녀와 같은 감각을 느끼는지는 알 수 없다. 사비나는 에르잔의 목깃을 잡아당겨 그의 어깨가 드러나도록 했다.

마치 커다란 짐승을 쓰다듬듯 뒷덜미에서부터 목을 지나 등줄기까지 만져 주자, 에르잔의 몸이 움찔 떨려왔다.

‘좋아하는 거야, 싫어하는 거야?’

움찔거리는 것만으로는 상대가 무엇을 어떻게 느끼는지 알 수 없었던 사비나는 갑자기 호기심이 동했다. 정성스럽게 가슴을 감싸 쥐고 애무하려는 에르잔의 어깨를 잡아 제지하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에르잔의 푸른 눈동자는 밤이 내린 어둠 속에서도 참으로 맑았다.

“사비나 아가씨?”

“얌전히 있으세요.”

“예?”

섹스를 원하는 게 아니었나. 의아해하는 에르잔의 벌어진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사비나는 에르잔의 허리띠를 풀고 바지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아, 아가씨!”

이미 잔뜩 부풀어 오른 성기가 그녀의 손길이 닿자마자 족쇄가 풀린 맹수처럼 튀어 올랐다. 사비나는 그것을 움켜쥐고, 에르잔의 옷섶을 이로 물어 끌어당겨, 드러난 피부에 혀를 기게 했다.

“흣, 아가씨……!”

사비나가 몸을 더듬고 그의 성기를 감싸 쥘 때마다, 에르잔의 입에서 마디마디 끊어진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비나를 기분 좋게 해 줘야 하는데, 그녀에게 봉사해야 하는데, 그녀가 제 몸을 만져 줄 때마다 전신이 바짝 긴장했다가 풀어지기를 반복해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아, 아가씨. 이러시면 안 됩니다……!”

“왜요? 내가 만지는 게 싫어요? 기분 나빠요?”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에르잔. 입 다물어요.”

사비나는 에르잔의 입을 제 것으로 틀어막고 뜨겁게 맥박치는 그의 성기를 아래에서 위로 훑었다. 한 손에는 다 쥘 수도 없는 굵고 긴 성기를 감싸, 다른 손으로 귀두 끝을 간질여 주자 에르잔의 숨이 거칠어졌다. 어쩌지도 못하고 뜨거워져 가는 저 자신을 다잡으려 해도, 사비나의 손가락이 민감한 부분을 슥 문질러 주자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사, 사비나 아가씨…….”

“쉿. 느끼게 해 줘요.”

사비나는 에르잔의 입가를 핥고는 그의 가슴에 제 가슴을 문질렀다. 탄탄한 남자의 가슴 위에 뭉그러지는 보드라운 살덩이의 감촉에 에르잔이 뜨거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신음 소리를 내지 않으려 이를 악문 탓일까. 턱까지 도드라진 힘줄을 입술로 더듬으며 사비나는 손의 움직임을 빠르게 했다. 에르잔이 신음을 참으려 하면 할수록,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맥동했다.

불규칙하게 내뱉는 숨결은 델 듯이 뜨거웠다.

그의 성기가 꺼떡거리며 말간 액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며 사비나는 안도했다.

‘에르잔도 좋아하는 거…… 맞지?’

죽음의 화신이니 저주를 흡수하는 존재니, 듣기만 해도 께름칙한 기분이 드는 여자와 몸을 섞는 것은 에르잔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기사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비나가 밀어내도, 에르잔은 그녀의 곁에 있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충의에 신뢰를 돌려주지 못한다고 했는데도, 그래도 상관없다고,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 말에 위안을 얻는 자신을 가증스럽다고 생각하면서도, 사비나는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에르잔이 확실히 느끼고 있는지. 그녀가 기분 좋은 만큼, 에르잔도 기분이 좋을지 알아야 했다.

몸을 맞대는 일이 싫고 소름 끼치는데 억지로 따르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으니까.

“크윽……!”

에르잔의 손이 사비나의 허리를 꽉 부여잡았다가, 서둘러 손에 힘을 빼고 아래로 내려 엉덩이를 붙잡았다. 아마도 허리를 세게 붙잡으면 아플 테니 살이 많은 엉덩이 쪽을 붙잡은 것이리라. 그 배려가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야릇한 성취감이 들었다.

문득문득 손에 강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을 제어하기 어려울 정도로 에르잔이 흥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어서.

‘에르잔도 느끼고 있구나. 다행이야.’

에르잔은 늘 사비나에게 정성스럽게 봉사했다. 제가 만지고 싶은 대로 더듬고 핥고 빠는 것이 아니라, 사비나가 원하는 쾌감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성이 없을 때는 에르잔이 어떻게 자신을 대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비나가 기억하는 한 에르잔은 언제나 그녀가 기뻐하는 장소를 찾아 최고의 쾌감을 주는 일에만 열중했다.

그때는 사비나도 제 욕망에 휘둘려 쾌락에만 몰두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페티트에게 저주를 빼앗긴 영향인지, 아니면 네나뷔스테와 바르셀다의 저주의 핵을 흡수하면서 그녀의 체질에도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인지, 이전처럼 이성을 잃지 않게 되었다.

분명히 욕망은 샘솟는데, 이전에 느끼던, 자신을 어찌할 수 없는 뜨거운 성욕과는 다른 욕망이 가슴 속을 따뜻하게 채워 가는 것 같았다.

“에르잔. 기분, 좋아요……?”

“……허억, 아가씨……!”

“에르잔 몸이, 굉장히 뜨거워요. 심장도…… 굉장히 빠르게 뛰고. 이곳도…….”

“아가씨, 아……! 그만……!”

사비나가 양손으로 기둥을 감싸 아래에서 위로 쭉 훑어 올려 귀두 끝을 엄지의 배로 누르자, 에르잔이 참지 못하고 정액을 토해 냈다.

꿀럭. 점성이 있는 비릿한 액체가 사비나의 배와 가슴까지 튀었다.

그녀의 안에 정을 토해 낼 때는 뜨겁게 느껴졌는데, 뜻밖에도 피부에 닿은 에르잔의 정액은 그다지 뜨겁지 않았다.

사비나는 그것이 신기한지 에르잔의 성기를 쥐고 있던 손을 올려 가슴 사이로 흘러내리는 에르잔의 정액을 손끝으로 훔쳤다.

“여기까지 다 젖었네요…….”

“죄, 죄송합니다!”

절정 후의 몽롱한 느낌에 잠길 새도 없이, 에르잔이 다급하게 사과하며 사비나의 몸을 들어 올려 침대에 눕혔다.

“다, 닦을 것을…….”

“가지 마세요.”

“사비나 아가씨. 하지만…….”

“에르잔만 기분 좋으면, 끝인가요?”

“예? 아, 아니……!”

에르잔이 사비나와 섹스할 때 쾌감을 느끼는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어 일을 벌인 건 사비나였다. 자신을 애무하는 손길을 밀어내고 그를 절정까지 부추겨놓고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적반하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의 말에 눈 둘 곳을 모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에르잔이 귀엽게 느껴져, 사비나는 에르잔의 팔을 잡아끌었다.

“에르잔. 나도 기분 좋게 해 줘요.”

“사비나 아가씨…….”

“당신에게 닿고 싶어요.”

살갗이 스치는 것만으로 상대의 피부가 썩어 들어가는 사비나에게 접촉은 두려운 것이었다. 저를 만져도 죽지 않는 유일한 존재인 아버지는 잔혹한 명령만을 내린 탓에 아버지와의 접촉은 불쾌했다.

그런데 에르잔이 만지는 것은 조금도 기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에르잔과 살을 맞댈 때 사비나는 처음으로 자신에게 <몸>이 있음을 실감했다.

“에르잔은 커서, 으응…… 이렇게 양팔로 안아도, 등을 다 감쌀 수가 없어.”

“그, 죄송합니다…….”

사과할 일이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 반사적으로 사죄부터 하는 에르잔이 귀여워, 사비나는 그의 턱 끝에 입을 맞추었다.

에르잔의 등에 양팔을 두르고, 그의 턱에 입을 맞추려면 고개를 위로 들어올려야 한다.

그리고 다리를 벌려 그의 허리에 감으면 엉덩이 위쪽의 깊게 파인 부분에 사비나의 발목뼈가 닿는다.

‘이게 에르잔의 등이야. 그리고 이게 내 팔이고, 에르잔의 허리에 둘려 있는 게 내 다리고…….’

사람에게 팔다리고 있고 손가락, 발가락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건만. 에르잔을 만질 때 사비나는 비로소 제게 수족이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피부의 감각세포가 활성화되어, 촉감과 온도를 느낀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 알게 되었다.

사비나는 에르잔에게 닿는 것이 좋았다.

그와 피부를 맞대는 것이 행복했다.

에르잔의 몸뿐만 아니라, 사비나 자신의 몸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움직이는지 그가 만져 주어야 알 수 있으니까.

“에르잔, 더 만져 줘요.”

“……예, 사비나 아가씨.”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던 것도 잠시, 사비나가 은근하게 보채며 몸을 비틀자 에르잔은 평소의 성실한 그로 돌아와 정성스럽게 사비나의 몸을 애무했다.

“앗, 으응……!'

에르잔이 제 허벅지를 움켜쥘 때는, 안쪽은 손가락의 자취를 따라 말랑하게 뭉그러지는데 바깥쪽은 비교적 탄력 있게 버티는 것을 느끼며 사비나는 제 허벅지의 안쪽과 바깥쪽 근육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강이를 지나 무릎 안쪽을 살살 문질러 주면 발가락이 오므라들고, 겨드랑이를 핥으면 쇄골부터 목까지 찌릿찌릿한 감각이 이어진다.

가슴을 움켜쥘 때, 가슴 밑을 핥아 줄 때, 젖꼭지를 손끝으로 굴릴 때와 입술로 빨아 줄 때의 느낌이 전부 달랐다.

“좋아, 에르잔…… 더……!”

제 몸이 이렇게 다양한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쾌감과는 다른 욕구가 불길처럼 일어났다. 사비나는 마치 호기심 가득한 아이처럼 에르잔의 몸에 제 살갗을 비비며 칭얼거렸다.

그와 닿을 때마다 제 몸이 새로 만들어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사비나는 에르잔의 이름을 부르며 그에게 엉겨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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