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47화 (47/189)

47화

맞닿은 피부 너머로 요동치는 심장의 고동이 느껴졌다. 에르잔의 커다란 몸집만큼이나 심장도 커다랗고 힘이 좋은지, 넓은 가슴에 짚은 손바닥 너머로 쿵쿵거리며 맥동하는 것이 전해져 왔다.

‘에르잔의 심장은, 굉장히 빨리 뛰는구나…….’

제 심장이 이 속도로 뛰었다면 진작 터져 버렸을 것이다. 사비나는 양다리를 에르잔의 허리에 감고 매달렸다. 넓은 가슴과는 달리 늘씬한 허리는 놀라울 정도로 탄탄했다. 꼭 무슨 고목나무에 다리를 감고 있는 기분이 들어, 사비나는 눈을 깜박이며 저를 안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다시금 확인했다.

밤하늘을 비추던 푸른 눈동자에, 지금은 자신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에르잔의 눈동자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저주의 화신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양 뺨을 붉히고, 눈가에 물기 어린 얼굴로 가쁘게 숨을 내쉬며 저를 안는 남자를 바라보는, 욕정 어린 평범한 여자. 그게 제 모습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자 사비나는 가볍게 전율했다.

“에, 에르잔…….”

“예, 사비나 아가씨.”

“좋아요…….”

사비나의 입술을 타고 떨리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늘 안개처럼 연기처럼 덧없이 흩어지던 음성이 이번만은 꼭 밤이슬처럼 촉촉하게 그의 귓전을 적셔왔다.

에르잔은 미소 지으며 그녀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답지 않게 거친 손길로 엉덩이를 부여잡았다.

“아!”

“기분이 좋으십니까?”

사비나가 에르잔의 허리에 다리를 감고 있었던 까닭에, 에르잔이 그녀의 엉덩이를 부여잡자 서로의 성기가 밀착했다. 에르잔의 커다란 손에 힘줄이 불거질 때마다 흉포한 성기가 사비나의 음부에서부터 배꼽까지 마찰하며 꺼떡거렸다. 짙은 욕망을 감출 생각이 없는 아랫도리로부터 그녀의 주의를 돌리려는 듯, 에르잔이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마치 달래듯이 상냥하게 입술을 핥고 빨고는, 하아. 단 숨을 흘렸다가 혀를 밀어 넣어 가볍게 혀끝을 마찰하고는 서로의 입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젖은 숨결이 서로의 코끝과 입술을 간지럽혔다. 뜨겁고 축축했으며 또한 달콤했다. 이것이 에르잔의 숨. 에르잔의 호흡. 에르잔의 입술과 혀.

사비나는 몇 번이나 눈을 깜박여 고인 눈물을 털어내며, 에르잔의 모습을 살폈다. 에르잔이 그녀의 표정을 살피며 성감대를 찾아 자극했듯이, 사비나는 그의 표정을 통해 자신이 그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찾으려 했다.

어깨에 매달릴 때는 살짝 미간이 좁아지며 자신을 절제하듯이 허리를 당기던 에르잔이, 사비나가 손을 올려 턱 밑을 간질여 주면 꿀꺽, 침을 삼키며 고개를 앞으로 내민다. 단단한 가슴을 더듬으면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이 들어가고, 더 손을 내려 복근을 쓰다듬으면 두 사람의 아랫배에 딱 달라붙은 성기가 꿈틀거리며 부피를 키워 댄다. 사비나가 손끝으로 둥그런 귀두 끝을 문지르자, 에르잔이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크읏, 사비나, 아가씨……!”

말랑말랑한 표피 너머로 머리를 내민 굳은 살덩이가 그녀의 손끝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부르르 진동하며 말간 액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비나는 그것이 신기하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다.

“에르잔, 참지 않아도 괜찮아요.”

“안 됩니다, 아직…….”

안쪽은 풀지도 않았는데, 사비나의 음부는 이미 애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모르는 푸른 눈동자를 마주한 것만으로 아래가 욱신거리며, 빨리 넣어 달라고 벌벌 떨며 보채고 있었다. 이제 막 성욕을 알게 된 청년은 미간을 좁히고 이를 악물며 욕구를 자제하려 했지만, 사비나는 에르잔의 몸을 더듬고 성기를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흥분감에 뺨이 달아오르고 숨이 가빠 온다.

욕망에 잠식되었을 때는 알지 못했던, 그저 쾌락에 빠져 무참하게 범해지기만 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야릇한 감정이 별처럼 반짝였다.

“에르잔, 좋아요…….”

“아가씨……!”

혀를 깨물 기세로 신음을 참고 있던 에르잔이, 결국 버티지 못하고 그녀의 입구에 귀두를 들이밀었다. 빠듯하게 안을 넓혀 오며 파고드는 단단한 그것을 사비나는 하아, 깊게 숨을 내쉬며 받아들였다.

에르잔에게 안겨 있는 자세 때문일까. 평소보다 삽입이 깊었다. 아랫배가 꽉 차고 숨이 막힐 만큼 깊이 꿰뚫린 감각에 등골이 오싹하고 발가락이 절로 곱아들었다.

사비나가 긴장하는 것을 알아차린 듯, 에르잔은 움직이지 않고 그녀의 몸을 꼭 끌어안았다. 말랑말랑한 가슴이 탄탄한 가슴에 마주 비벼지며 뭉그러질 때마다 사비나의 신음이 높아지며 그녀의 속살이 촘촘하게 에르잔의 것을 감싸왔다. 마치 하나가 될 기세로 들러붙은 속살은, 에르잔의 것을 쭉 짜낼 기세로 꽉 조여들었다.

“?, 아가씨……!”

에르잔은 지나친 압박감을 참지 못하고 그녀의 엉덩이를 감싸 몸을 들어 올렸다가, 다시 사비나의 안으로 파고들었다. 쫀쫀하게 달라붙던 속살과 단단한 성기가 마찰할 때마다 물이 끓는 것처럼 거품 섞인 애액이 흘러내렸다.

“에르잔, 좋아요……”

“사비나, 헉, 아가씨……. 기분, 좋으십니까?”

“좋아, 에르잔…… 좋아요……!”

에르잔이 좋아요.

당신이 좋아요.

사비나는 마디마디 끊어지는 신음을 토해 내며 에르잔의 이름을 불렀다.

사비나는 에르잔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곁에서는 공훈을 세우지도 못하고, 명예를 드높이지도 못하고, 기사도조차 지키지 못한다. 아무리 에르잔이 성실하고 헌신적인 성품이라고 한들,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를 주군이라는 이유로 안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일 리 없다.

그렇기에 사비나는 에르잔에게 말할 수 없었다.

에르잔이 좋다고. 에르잔이 그녀를 바라보는 것이 좋다고. 그가 그녀의 몸을 만져 줄 때마다 기쁘다고, 연약한 그녀를 배려하려 노력하면서도 결국 욕정을 감추지 못하고 갈급하게 파고드는 모습을 볼 때마다 희열이 차오른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러니 사비나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한 가지.

그녀에게 봉사하는 행위에서, 부디 에르잔도 쾌감을 얻기를.

아래서 퍽 쳐올릴 때마다 짜릿하고 뜨거운 것이 이성을 찍어누르는 듯했지만, 사비나는 이성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에르잔을 기분 좋게 해 주고 싶었다.

“에르잔, 더…….”

“더, 말씀이십니까……?”

“응. 괜찮……으니까, 참지 말고, 계속해요…….”

교합 부위에 진득하게 들러붙은 체액이 허벅지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이 정도로 에르잔이 만족할 리 없다. 사비나는 아랫배를 문질렀다. 제 안에서 아직도 난폭하게 날뛰는 커다란 성기의 움직임이 느껴졌다.

“앗, 아아…… 에르잔…….”

제 안을 꽉 채울 기세로 파고든 에르잔의 성기가 꿈틀거릴 때마다, 사비나는 알 수 없는 격정이 일어나 몸서리쳤다. 그저 성감대를 자극하여 육체적인 쾌락을 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하도 부대낀 탓에 밑이 얼얼했고 허벅지마저 아려 왔다. 그런데도 사비나는 멈추지 않고 에르잔의 목 뒤로 팔을 두른 채 허리를 움찔거렸다. 땀 때문에 반드르르한 남자의 피부에서는 평소의 청량한 향기와는 다른 야성적인 냄새가 났다.

그 냄새에 사비나는 흥분한 듯 거친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어 에르잔과 눈을 마주했다. 눈을 깜박여 눈물을 털어 내고, 군침이 흐르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숨을 할딱거렸다. 마주한 푸른 눈동자에 제 모습이 비쳤다. 제 검은 눈동자에도 에르잔의 모습이 비치고 있을까.

“좋아, 흐, 에르잔…… 좋아……아……!”

사비나는 에르잔이 느끼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를 기쁘게 해 주고 싶었다. 사나울 만치 본능만이 질주하던 움직임이 일순간 멈추었다.

“아, 아아……!”

마치 물이 꽉 차오른 풍선이 터지듯, 그녀의 안에 뜨거운 사내의 정이 쏟아졌다. 그것이 뜨겁게 느껴질 리도 없건만, 마침내 원하는 바를 달성했다는 쾌감에 사비나는 전신을 바르르 떨며 소리를 질렀다.

***

“사비나 아가씨. 걸으실 수 있겠습니까?”

“나는 괜찮아요.”

동이 터오는 새벽하늘 아래서 에르잔은 사비나의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적당히 정리해 주고, 그녀의 옷가지에 달라붙은 풀잎을 떼어 주었다.

밤이 어둡다는 사실에 안주해 뒷일을 생각지 않고 몰두해 버렸다. 아무리 흙먼지를 털어 내도 정갈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옷차림에 에르잔은 민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호위기사로서 본분도 다하지 못하고 주군을 상처 입혀 돌아온 주제에, 반성은커녕 밤새 숲속에서 제 욕망을 추구하는 일에 빠져 버리다니. 에르잔은 반성의 말을 입 밖으로 내는 것조차 부끄러워 입안을 깨물고 시선을 내리깔았다.

에르잔은 로스카옌 사제의 방으로 통하는 교회의 뒷문을 열고, 사비나를 정중하게 이끌었다. 물론 복도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사비나 아가씨께서는 이만 쉬십시오.”

“에르잔은요?”

“잠시 들를 곳이 있습니다.”

들를 곳이라니? 사비나가 고개를 갸웃하자, 에르잔은 민망한 듯이 고개를 떨구며 제 허리춤을 문질렀다. 기사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검이, 없었다.

‘아, 맞아. 어제…….’

네나뷔스테의 쇠사슬을 막아 내느라 바닥에 꽂아 버리고, 힘으로 관을 때려 부쉈다. 네나뷔스테가 사비나를 바닥에 꽂힌 장검 쪽으로 밀쳐 목이 베이는 바람에, 공황상태에 빠진 에르잔은 제 검을 챙기는 것조차 잊고 사비나를 안고 교회로 달려온 것이다.

“남쪽 광장에 검을 놓고 왔습니다. 되찾아 오겠습니다.”

“기다려요, 에르잔. 남쪽은 아직 위험해요. 네나뷔스테의 저주를 전부 흡수했는지 확신이 들지 않아서…….”

“그러니 제가 혼자서 다녀오겠습니다. 사비나 아가씨께서는 제가 돌아올 때까지, 교회 안을 벗어나지 마셨으면 합니다.”

네나뷔스테의 저주가 풀렸든, 풀리지 않았든, 이 이상 사비나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는 없었다. 네나뷔스테가 사비나에게 달려들지만 않는다면, 설령 그녀가 아직 저주에 씐 채라고 하더라도 에르잔은 그녀를 피해 검을 수거하고 달아날 수 있었다.

그러니 혼자서 움직이는 편이 안전하다.

“저는 어제, 바로 남쪽 구역을 벗어나라는 아가씨의 명령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아가씨께서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에르잔. 그건 당신 탓이 아니에요.”

“그러니 부탁드립니다. 이번에야말로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에르잔은 사비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당황한 사비나는 에르잔을 일으키려다가, 그를 일으켜 세우는 것은 제 손이 아니라 명령임을 깨닫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알았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조심해야 해요, 에르잔.”

“쉬십시오, 사비나 아가씨.”

사비나로부터 허락의 대답이 떨어지자, 에르잔은 자리에서 일어나 꾸벅 인사하고는 휙 몸을 돌려 남쪽으로 멀어졌다.

‘에르잔. 혼자서 괜찮을까?’

사비나는 걱정이 되었지만, 에르잔이 저렇게 부탁하는데 몰래 뒤를 쫓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밤새 숲속에서 에르잔과 함께하느라 자리를 비웠으니, 도중에 로스카옌 사제가 그녀의 상태를 보러 들렀다면 갑자기 사라진 사실에 놀랐을지도 모른다.

로스카옌 사제를 만나 간밤에 자리를 비운 사실을 사과하고, 이젠 괜찮다는 말을 전하는 것이 먼저였다.

그렇게 결심한 사비나가 문을 닫고 돌아섰을 때, 그녀를 향해 검은 그림자가 휙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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