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사비나는 네나뷔스테의 뒤에서 달려들어 양어깨를 끌어안았다. 팔의 움직임이 제한된 틈을 타 나자예프는 네나뷔스테의 우도를 빼앗으려 했지만, 네나뷔스테는 오히려 제 어깨를 속박하는 사비나의 무게를 역이용하여 상체를 굽혀 온몸의 힘을 싣듯이 우도를 휘둘렀다.
“으아악!”
네나뷔스테가 이렇게 빨리 반격해 올 줄은 몰랐는지, 나자예프는 바닥에 미끄러지듯 주저앉다가 나무에 뒷머리를 찧었다.
퍽!
그의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꽂은 우도가 멈추었다.
처음 나자예프에게 던질 때만 하더라도 나무껍질에 그저 고정될 정도로만 박혔던 우도가, 이번에는 거의 나무를 쪼갤 기세로 깊이 들어가 있었다.
나무 깊숙이 박힌 만큼 마찰이 심해 내리긋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얕게 그었더라면, 아니면 네나뷔스테의 힘이 조금만 더 셌더라면, 나자예프의 머리통은 분명 두 갈래로 쪼개졌을 것이다.
“주, 죽을 뻔했네…….”
죽다 살아났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쉰 것도 잠시, 나자예프는 곧바로 네나뷔스테의 발목을 걷어차 넘어뜨렸다.
“아읏!”
“사비나! 괜찮아?”
앞으로 고꾸라뜨릴 셈이었는데, 네나뷔스테가 순간적으로 몸을 비트는 바람에 사비나가 그녀의 아래 깔려 버렸다. 신음하는 사비나를 구하려 나자예프가 일어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네나뷔스테는 두 다리를 굴려 남자의 낭심을 인정사정없이 걷어찼다.
“끄……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하얗게 굳어 버린 나자예프가 옆으로 쓰러졌다.
말이 씨가 된다고 누가 그랬던가. 미끼가 되겠다던 나자예프는 정말로 제 분신을 미끼로 바치고 말았다. 저주는 피해도 분신을 걷어차인 충격은 피할 수 없었던 나자예프는 눈을 까뒤집고 쓰러진 채 일어서지 못했다.
애벌레처럼 꿈틀대는 나자예프의 머리를 퍽 후려친 네나뷔스테는, 나무에 박힌 우도를 빼내려 칼자루를 움켜쥐었다.
너무 단단히 박혔는지, 네나뷔스테가 안간힘을 써도 우도는 뽑히지 않았다.
“……이런 젠장.”
주춤거리며 일어나는 사비나를 제압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는지, 네나뷔스테는 몸통으로 들이받아 그녀를 깔아 눕혔다.
“아윽!”
힘이나 체격 차이도 있지만, 사비나는 네나뷔스테만큼 재빠르지 못했다. 사비나의 위에 올라탄 네나뷔스테는 그녀의 후드를 벗기고는, 양손으로 가느다란 목을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저리 꺼져! 제발 우리를 내버려 두라고!”
“흐윽……!”
숨이 막힌 사비나가 괴로운 얼굴로 비척거리자, 순간적으로 네나뷔스테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증오로 불타오르던 그녀의 자줏빛 눈동자가 흔들리는 순간을 사비나는 똑똑히 보았다.
그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의 눈빛이었다.
「남쪽에는 네나뷔스테와 그 동생들밖에 살지 않습니다.」
「다른 이들은 모두 죽었나요?」
「네나뷔스테가 죽였지요.」
마을의 남쪽에는 네나뷔스테와 그녀의 동생들밖에 살지 않는다. 로스카옌 사제는 그녀가 남은 이들 모두를 죽였다고 말했다. 나자예프도 그 말에 동의했다.
하지만 사비나는 동의할 수 없었다.
만난 것은 단 한 번. 이번이 겨우 두 번째지만, 죽음의 화신인 그녀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네나뷔스테는 아직 한 번도,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단지 우물에서 빠져나왔을 때, 잠시 저주의 효력이 약해져서 주저하던 모습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증오심에 불타올라, 사비나를 향해 망설임 없이 우도를 휘둘렀을 때 그녀의 눈은 분명 살기를 띠고 있었다.
그러나 「살인을 결심한 인간」의 눈과 「살인을 저지른 인간」의 눈은, 분명히 다르다.
그날, 네나뷔스테는 제 가족을 지키기 위해 사비나를 죽이기로 마음먹고 주저 없이 칼을 휘둘렀지만, 한 번도 사람을 해쳐 본 적이 없는 자의 몸짓이었다.
“네나뷔스테. 누가 당신을 돕고 있죠?”
목을 조르는 힘이 약간 느슨해진 틈을 타, 간신히 숨을 내쉬며 사비나가 물었다.
“뭐……?”
“누가 당신에게 시켰나요? 아니면, 당신도 이용당하는 건가요?”
“닥쳐! 네 말은 안 듣는다고 했지!”
이번에는 진짜로 살기등등한 눈으로, 네나뷔스테가 사비나의 목을 졸랐다. 엄지로 목을 꽉 압박하자 눈앞이 새까매지며 머릿속이 어지럽게 흩어졌다.
“사비나 아가씨!”
네 개의 관을 베기 위해 뛰어가던 에르잔이 급박하게 돌변한 상황에 당황하여 뛰어오자, 사비나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안 돼요, 에르잔!”
목이 졸려 제대로 소리가 나오지 않아, 비음이 섞여 발음은 제대로 들리지도 않는 높다란 신음에 가까웠음에도 에르잔은 사비나의 말을 알아들었다.
사비나가 에르잔에게 내린 명령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네 개의 관을 부수고 남쪽 구역을 벗어날 것. 다른 하나는 네나뷔스테 혹은 저주의 대상에 접촉하지 말 것.
그것이 에르잔이 사비나를 돕는 일이라고, 그녀는 당부했다.
하지만 지금 사비나가 네나뷔스테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 응당 제 주군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에르, 잔, 안 돼……!”
연기처럼 희미하게 흐려지는 목소리가 에르잔의 발목을 붙잡았다.
명령과 본능 사이에서 갈등하던 에르잔이 잠시 주춤하던 사이, 겨우 정신을 차린 나자예프가 네나뷔스테에게 달려들었다.
“이 여자가 진짜, 누구 혼삿길을 막으려고!”
“이런 미친, 나자예프! 내 위에서 비켜!”
“나도 마음에 없는 여자를 덮칠 생각따윈 없거든? 그래도 사비나에겐 내 사랑과 목숨이 걸려 있…… 으악! 물지 마!”
네나뷔스테가 나자예프의 손을 콱 깨물었다. 아예 손가락을 끊어 버릴 기세로 이를 악무는 네나뷔스테의 눈빛을 마주한 나자예프는, 물린 손가락을 그녀의 입속에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커헉!”
빼내려고 당기면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도, 물고 있던 것이 목구멍으로 들어오면 물던 것을 놓고 뒤로 피하는 것이 짐승의 본능이다. 인간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모양이다.
장갑은 넝마가 되고 손등에선 피가 철철 흐르지만, 어쨌든 반지와 손가락은 사수했다. 나자예프는 오른손을 뒤로 숨기여 왼쪽 팔꿈치로 네나뷔스테의 명치를 찍어 눌렀다.
두 남녀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 공격 반경으로부터 벗어난 사비나는 긁힌 목소리로 에르잔을 향해 지시를 내렸다.
“에르잔, 빨리!”
“……알겠습니다!”
네나뷔스테가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본래는 평범한 마을 여자일 뿐이다. 사비나 혼자서는 감당하기 버겁겠지만 나자예프가 함께 있으니 분명 괜찮으리라. 에르잔은 나자예프의 밑에서 온몸을 버둥거리는 네나뷔스테를 끔찍한 것을 보듯 쳐다보았다가, 다시 몸을 돌려 관이 늘어선 장소로 향했다.
커다란 발이 땅을 딛고, 공중으로 떠오른 것과 동시에 검집에서 은빛 검이 뽑혀 나왔다.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은 낡은 쇠사슬로 칭칭 감긴 낡은 판자를 한 번에 베어 내었다.
안에 있을 사람이 다치지 않도록 지붕 부분만 베어낼 셈이었는데, 관의 네 면이 쩍 벌어졌다. 칭칭 감겨 있던 쇠사슬이 판자를 관의 형태로 지탱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는지, 절그럭거리며 쇠사슬이 풀림과 동시에 낡은 판자가 네 방향으로 쓰러지고, 안에서 비쩍 마른 어린아이가 나타났다.
카림이 제대로 먹지 못해 비쩍 마른 상태였다면, 관 안에 있던 아이의 상태는 카림보다도 더 심각했다.
두 눈은 퀭하고, 팔다리는 뼈마디가 두드러질 만큼 앙상한데 배만 불룩했다.
거의 숨만 붙어 있는 기아나 마찬가지인 아이의 모습에 에르잔은 당황했다.
로스카옌 사제가 분명 말하지 않았던가. 네나뷔스테는 자신의 동생들을 지키고 있다고. 나자예프도 네 개의 관을 가리켜 「그녀의 보물」이라고 지칭했다.
그러나 네나뷔스테가 남쪽 구역을 폐허로 만들어 가면서까지 지켜 낸 동생의 모습은 보호가 아니라 학대를 받은 아이의 모습이었다.
“아이베크!”
네나뷔스테가 비명처럼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몸을 뒤집어 일어났다. 어찌나 반항이 격렬했는지 나자예프는 네나뷔스테의 발에 턱을 얻어맞고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사지 멀쩡하고 체격 좋은 남자가 저렇게 간단히 네나뷔스테를 놓칠 줄이야. 에르잔은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네나뷔스테를 피해 바로 옆의 관도 부숴 버렸다.
와지직!
이번에는 부서지는 소리가 좀 더 컸다. 처음 부쉈던 관은 감겨 있던 쇠사슬이 풀리면서 네 귀의 판자가 지탱할 힘을 잃고 쓰러진 거였다면, 이번에는 마치 허물어지듯이 판자가 조각조각 갈라지며 내려앉았다.
“안 돼! 자니베크!”
네나뷔스테의 비명과 동시에 에르잔이 무너진 판자 조각을 해쳐 냈다. 처음 관에 들어가 있던 아이처럼 병약한 상태라면 이 정도의 충격에도 심한 상처를 입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에르잔이 판자와 사슬을 전부 해쳐 낸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확히는, 관이 있던 자리 바로 아래에 어두운 구멍이 나 있었다.
구멍의 모양은 꼭 열 살 남짓의 어린아이가 들어갈 만큼의 크기였다. 얼마나 깊은지 눈으로는 끝이 보이지도 않았다. 마치 땅속으로 굴을 파고 달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어두운 구멍 속을 들여다보던 에르잔은 네나뷔스테가 뛰어오는 것을 눈치채고 얼른 몸을 피했다. 그러나 이번에 네나뷔스테는 에르잔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세 번째 관.
그녀의 여동생인 줄디즈가 있는 관을 부둥켜안고 비명을 질렀다.
“그만해! 그만하란 말이야!”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접근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으면서, 사실은 학대를 하고 있었던 겁니까?”
“아니야! 아니라고!”
네나뷔스테의 자주색 눈동자에서 꼭 연기처럼 이상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아이베크의 처참한 모습. 그리고 자니베크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난 커다란 구멍을 목도한 네나뷔스테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녀의 양쪽 눈동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누가…… 누가 내 동생을 이렇게 만들었어!”
“이보세요, 아이들을 감금한 건 당신입니다!”
“자니베크를 어디에 숨겼어! 빨리 말해, 죽여 버릴 거야!”
네나뷔스테는 줄디즈가 갇혀 있던 관의 쇠사슬을 움켜쥐었다. 그녀의 손등에 힘줄이 불거지더니 우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녹슨 쇠사슬이 끊어졌다. 붉은 녹이 가득한 쇠사슬을 움켜쥔 여자의 손이 부르르 떨리더니, 기이한 비명을 내지르며 에르잔을 향해 그것을 휘둘렀다.
챙!
채찍처럼 휘두른 녹슨 사슬을 검으로 받아 낸 에르잔은 그것을 끊어 버리는 대신, 검날에 휘감아 땅에 처박았다. 있는 힘껏 쇠사슬을 쥐고 있던 네나뷔스테는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검에서 손을 놓고, 에르잔은 세 번째 관으로 뛰어가 주먹을 내질러 관을 부숴 버렸다. 갇혀 있던 아이의 체격으로 보아 위쪽은 빈자리라는 계산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른 관보다도 상당히 두꺼워 보였던 판자가 양쪽으로 쪼개지며, 푸석푸석한 백금발에 얼룩덜룩한 눈물 자국이 가득한 소녀의 얼굴이 얼핏 비쳤다.
“줄디즈!!”
마치 사냥꾼으로부터 새끼를 지키려는 짐승처럼, 이성을 잃은 네나뷔스테가 에르잔을 향해 달려들었다. 에르잔이 그녀를 제압하기 위해 팔을 붙잡아 뒤로 꺾는 순간, 그녀의 양팔이 황금빛으로 불타올랐다.
“꺄아아악!”
“에르잔, 안 돼요!”
네나뷔스테의 비명 사이로 사비나의 외침이 파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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