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36화 (36/189)

36화

“카이라트. 저주의 주술에 대해 알고 있나요? 당신, 주술사였어요?”

“주술사는 아닙니다. 그저 흥미가 있어 관련 책을 들여다보며 연구하던, 호기심 많은 일반인일 뿐이었죠.”

“연구 수준이 아니야. 한창 몸이 정상이었을 때는 방에 한가득 책을 쌓아 놓고, 밥도 안 먹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면서 무슨 부적 같은 것을 오만 데 다 붙여 놨더라니까? 오죽하면 신혼인 부인을 두고 별거를 했겠어.”

카밀라가 카이라트의 흉을 보며 투덜거렸다. 이곳에는 세 채의 집이 나란히 이어져 있었다.

하나는 카밀라의 집, 다른 하나는 카이라트의 집이지만 본래 카이라트는 그곳에 머무는 일이 그다지 없었다. 집에는 제 부인만을 남겨 두고, 카이라트는 나머지 다른 한 채. 그가 주술에 대해 연구하던 연구실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한다.

“죽이는 저주는 있는데 왜 살리는 저주는 없을까. 불로불사의 주술은 없을까 고민하던 끝에 도달한 답이, 모든 주술을 섞는 것이었습니다.”

물감의 모든 색을 섞으면 혼탁한 검은 색이 나오는 것처럼.

주술을 모두 섞어 버리면, 이제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어떤 엄청난 주술이 나오지 않을까.

카이라트는 어쩌면 그것이 불로불사의 주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니, 분명 그걸 거라고 확신했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불로불사라는 허황된 개념에 집착하여 연구에 몰두하던 사람은 한, 둘이 아니었으니까.

“모든 색을 섞어도 검은색이 나오지만, 반대되는 색을 섞어도 비슷한 잿빛이 나오지요. 빨간색과 녹색을 섞고, 주황색과 파란색을 섞는 것처럼.”

분노가 모든 것을 때려 부수고 찢어 버리는 것이라면 욕망은 모든 것을 탐욕스럽게 빨아들이는 것이다.

또한 증오가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이라면 체념은 시체처럼 잠드는 것과도 같다.

반대되는 두 가지의 주술을 섞으면 어떻게 될까. 불로든 불사든, 혹은 그에 준하는 어떤 것이든 굉장한 힘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카이라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에 그쳤을 뿐이었죠. 저는 주술사가 아니고, 이 마을에 주술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카이라트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이런 외따로이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굉장한 주술을 발견했다며 연구 자료를 대도시에 들고 가서 주술사를 찾아봐야 비웃음만 살 뿐이다. 주술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카이라트가 떠올린 가정을 내로라하는 주술사들이 과연 몰랐을까, 하는 염려도 있었다.

그래서 카이라트는 궁금증을 품은 채로도, 도시로 나가 그것을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하고 포기했다.

“그럼 이 마을에 저주를 건 것은 누구라는 거예요?”

“20년 전…… 아니, 19년 전이겠군요. 연구 자료를 도둑맞았습니다.”

산골 마을이라고는 해도 이 마을은 제법 크다. 집이 띄엄띄엄 떨어져 있는 데다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꽤 거리가 벌어져 있어 동쪽과 서쪽, 남쪽과 북쪽은 서로 소통할 일이 별로 없어 보이지만, 어차피 외따로이 떨어진 마을이라 폐쇄적인 만큼 도둑이 들 걱정은 없었다.

그래서 카이라트는 연구실의 문단속을 따로 하지 않았다.

“연구실에 도둑이 들고, 그리고 4년 후에, 군인들이 이 마을에 쳐들어왔습니다. 사람들을 죽이고, 연못과 우물에 빠뜨리고, 집을 불태웠지요.”

카이라트가 연구하던 불로불사의 주술 자료를 도둑맞은 것과, 15년 전에 군인들이 쳐들어와 마을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잡아 죽인 것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있을 확률은 희박하다.

대략 4, 5년 정도의 시간 차이가 있는 데다가, 찾아온 것은 주술사가 아니라 군인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사실을 하나로 이을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분노와 욕망.

증오와 체념.

카이라트가 섞어 보고자 했던, 네 가지 저주를 봉인한 「핵」이 마을의 네 어귀에 존재하고, 그 핵의 존재로 인해 이 마을의 시간이 멈춰 버렸다는 것.

“확실히…… 시간을 멈추면 늙지 않으니까, 적어도 「불로」는 확실하겠네요.”

“완전한 불사는 아닙니다. 마을의 시간이 멈춘 후, 이런 곳에서 살 수 없다며 자살한 이들도 있었으니까.”

하지만 물리적인 죽음이 아니라면, 수명에는 제한이 없을지도 모른다. 자연사란 노화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만약 젊은 상태인 채로 시간을 멈추는 불로의 주술을 건다면, 사고를 당하거나 병에 걸리지 않는 한 불사의 존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15년 정도로는 알 수 없지만. 한 50년쯤 시간이 흐른 후에도 자살이나 사고 이외로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면 「불사」라고 판단할 수 있겠지요.”

“……잠깐, 카이라트.”

카밀라가 카이라트의 말을 끊으며 달려들 듯이 되물었다.

“지금 그럼 그걸 실험해 보려고 15년 내내 누워 있었던 거야? 너 미쳤어?”

분노, 욕망, 증오, 체념.

네 개의 저주를 섞음으로 인하여 마을의 시간은 멈추었다.

그러나 마을 사람 모두가 불로의 몸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마을 사람들을 학살한 군인들이 떠난 후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저주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죽어 갔다. 죽지 않더라도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게 된 이들도 많았다. 카밀라는 얼굴이 일그러지며 다리를 절게 되었으니까.

“이 마을에 일어난 재앙이 내 연구 자료 때문인지 알아야 했어.”

“뭘 「알아야 했어」야? 네 개의 저주의 핵이면 벌써 답은 나왔네! 어떤 미친 인간이 네 연구 자료를 들고 튀었고, 대도시든 외국이든 어딘가로 나가 주술사에게 빌붙어 제안을 했고, 주술사가 「실험」차 우리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는 거 아니야!”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카밀라가 카이라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침대 생활을 오래 하여 근육에 힘이 하나도 없었던 카이라트는 카밀라가 당기는 대로 흔들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카밀라! 그만해요!”

“그걸 알면서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어? 네가 우리 마을을 이 꼴로 만든 거였어? 그런데 왜 말을 안 했어, 왜 15년 동안 숨도 쉬기 힘들어하고 거울도 못 보면서 울던 나를 지켜보기만 했어, 이 개자식아! 너한테는 나도 실험 대상일 뿐이지?”

분노한 카밀라는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카이라트를 걷어찼다.

카밀라는 15년 동안, 부인도 잃고 앞을 보지 못하는 제 오라비를 돌봐 주었다. 저주로 얼굴 반쪽이 무너져 내려 숨도 쉬기 힘들고, 거울도 보지 못하고, 다리를 절면서도 그래도 제 가족이 전부 죽은 것은 아니라서, 오라비 하나라도 살아 함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을을 이 꼴로 만든 원인이 카이라트에게 있었다.

“죽어! 젠장, 불사인지 나발인지 더는 실험당할 생각 없으니까 죽어 버리라고, 이 미치광이야!”

“카밀라, 그만! 에르잔, 카밀라를 말려 주세요!”

내내 벽 쪽에 정물처럼 서 있던 에르잔이 사비나의 한마디에 다가와 카밀라를 쓱 들어 올렸다. 허공에 떠올려진 채로도 카밀라는 발길질을 멈추지 않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15년 동안…… 가족이라고, 하나뿐인 오빠라고 믿었는데…… 아아악!”

일그러진 얼굴을 사비나에게 들켰을 때보다도 더, 비참한 절규가 작은 오두막 안을 꽉 채웠다.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울부짖는 카밀라를 달래는 것은 무리다. 사비나는 우선 카이라트의 상태를 살폈다.

“카이라트, 정신이 들어요? 말을 할 수 있겠어요?”

“……쿨럭!”

카밀라에게 사정없이 걷어차이긴 했지만 어디가 부러지거나 한 것은 아닌지, 카이라트는 작게 기침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비나. 당신에게 부탁드릴 것이 있습니다.”

“듣지 마! 사비나, 저 자식 죽여 버려! 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 마을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포기를 못 하고……!”

“제 연구는 네 개의 저주를 섞는 것이었습니다. 연결하여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고.”

주술 연구에 미친 실험광의 헛소리로는 들리지 않았다. 사비나는 카밀라의 절규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 카이라트의 목소리를 들으려 귀를 기울였다.

“네 개의 핵을 만나게 하면, 연결이 아니라 하나로 묶으면, 저주는 풀릴지도 모릅니다.”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 당신이 말한 검은색처럼, 모든 저주를 묶으면 이보다 강력한 죽음의 저주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고요.”

“압니다. 하지만…… 연못과 우물을 정화한 당신이라면…….”

카이라트는 사비나에게, 저주의 주술에 잠식되어 죽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일을 부탁하고 있다. 네 명의 저주의 핵을 한 자리에 불러 그들의 저주를 섞으라는, 목숨이 열 개가 있어도 위험한 일을 시키고 있다.

그녀가 불사자라는 것을 알고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카밀라의 절규처럼, 카이라트가 미쳐서 하는 헛소리인 걸까.

‘만약 네 개의 저주를 섞었을 때 만들어지는 것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라면……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 있을지도 몰라.’

가능성은 낮았다. 사비나가 생각하기에 분노도 욕망도 증오도 체념도 긍정적인 감정이라 보기는 어려웠다. 네 가지의 저주를 섞으면 보다 강력한 죽음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 마치 자신처럼.

“카이라트. 당신이 오해한 것 같은데, 나는 연못도 우물도 「정화」하지 않았어요. 정화술사가 아니거든요.”

“…….”

“나는 모든 저주를 빨아들이는 주술사예요. 특히 죽음의 저주에게 사랑받는.”

에르잔과 카밀라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자, 카이라트가 헉 숨을 들이켰다.

제 정체를 밝힐 생각은 없었다. 죽음의 화신이라니, 그런 껄끄러운 존재임을 드러내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을까. 더욱이 에르잔과 카밀라처럼, 자신을 평범하게 대해 주는 상대가 있는 상황에서.

하지만 카이라트에게는 알릴 필요가 있었다.

이 마을의 저주가 카이라트의 연구 자료에서 기인한 거라면, 그를 통해서 해결책도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네 개의 저주를 섞어도 생명의 힘은 발현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제가 전부 빨아들이면, 적어도 「핵」이었던 네 사람은 고통에서 해방될 테니.

“카밀라. 조금 진정하고 방법을 생각해 봐요.”

“진정?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사비나, 너는 외부인이라 몰라! 이 마을에 있었던 끔찍한 일을 겪었다면, 지금 당장 저 자식을 처죽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고!”

“카밀라…….”

카이라트는 여전히 일어나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진 채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맞은 자리가 아픈 것일까. 하지만 저주로 인한 부상이 아니라면 사비나가 낫게 해 줄 수 없다.

그리고 카밀라가 카이라트를 죽일 듯이 때린 이유에도 십분 공감하고 있으므로, 사비나는 카이라트를 내버려 두고 오두막을 나왔다.

“에르잔. 카밀라를 로스카옌 신부님께 데려다주세요. 카밀라에게는 진정할 공간이 필요해요.”

“예, 사비나 아가씨.”

“이거 놔! 저 자식 죽여 버려야 한다고! 아악!”

카밀라는 눈을 까뒤집고 비명을 지르다가, 제풀에 지쳐 까무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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