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8. 정염과 욕망의 악마
사비나는 낯선 남자가 얼굴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이 당황스러운 한편, 그가 제 몸에 손을 대고 있는데도 전혀 저주에 물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피처럼 붉은 머리카락에, 황금색 눈동자를 지닌 남자. 흰색의 짧은 카프탄(Caftan)17)을 입고 있는 남자는, 이 어두운 창고에 갇혀 있던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눈부신 색채를 담고 있었다. 무채색의 돌벽을 휘감고 있던 새빨간 장미처럼 이질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이 남자도 에르잔과 같은 체질이라 자신을 만져도 괜찮은 걸까? 아니면 나자예프처럼 저주의 주술을 다른 누군가에게로 옮기고 있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누구……세요?”
“아페티트.”
욕망, 이라고 덧붙이면서 붉은 머리칼의 남자가 눈을 가늘게 하고 웃었다.
“당신이 이곳에 찾아오길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의 갈증을 채워 주려.”
갈증이라니 무슨, 이라는 항변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남자의 얼굴이 가까워졌다고 생각한 순간, 입이 틀어막혔다. 겹친 입술의 따뜻함이나 부드러움을 느낄 새도 없이, 사비나의 눈앞이 까맣게 흐려졌다.
“보이지 않으면, 들리지 않으면, 마주하지 않으면 욕망하는 법도 없으리라고, 로스카옌 신부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둠 속에서 남자, 아페티트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 들렸다. 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던 사비나는 또다시 남자에게 손목을 잡혀 버렸다.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차단해도 근본적인 갈망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나를 이렇게 만든 저주의 근원을 찾고 싶다는.”
어둠 속에서는 그저 단 하나의 인영이 떠오르고, 정적 속에서는 그저 단 한 사람의 목소리가 떠올랐다고 아페티트는 말했다.
“숲에 계셨지요? 당신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스멀거리는 저주의 기운이 그녀의 몸을 휘감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순간 알아차렸죠. 아, 로스카옌이 나를 이곳에 가둔 것은 당신을 만나게 하기 위함이었노라고.”
마치 취한 것처럼 흥얼거리는 남자의 목소리는 노랫소리와도 같았다.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을 파악하기엔 정신이 너무 몽롱했다.
“당신도, 저주에 걸린…… 건가요?”
“후훗.”
남자는 가볍게 웃었다. 저주의 주술에 걸려 고통스러워하던 다른 이들과는 달리, 남자의 목소리는 무척 평온했다. 아니, 평온하지만, 그 기묘한 평온 안에는 숨길 수 없는 욕망이 들끓고 있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잠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고, 시간이 흘러도 나이를 먹지 않습니다. 사람이라면 그럴 수 없지요.”
“그건 이 마을의 시간이 멈춰, 서…….”
“어둠 속에서 단 하나만큼 미친 듯이 갈망하며 기도하는 인간이 세상천지 어디에 있을까요?”
볼에 다시금 따스한 것이 와 닿았다. 저주의 주술에 씌면 사람의 피부는 녹아내리거나 흉하게 일그러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남자의 피부는 매끈했다. 사비나의 것과 마찬가지로.
“더 강한 것, 더 깊은 것을 끝없이 갈망하게 되는 탐욕의 화신. 그래요. 내게는 그런 정의가 어울리겠군요.”
“탐욕의 화신……?”
“나는, 악마입니다.”
그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목에 섬뜩한 충격이 달렸다.
날카로운 것이 그녀의 피부를 뚫고 파고들었다. 아페티트가 사비나의 목을 깨문 것이다.
“아!”
“그래요. 이 목소리. 이 소리를 듣고 싶었습니다……!”
사비나에게 달려든 아페티트는 그녀를 깔아 누르듯이 구속하고 목을 물어뜯었다. 날붙이에 베이는 통증과는 다른, 마치 산 채로 짐승에게 뜯어 먹히는 듯한 공포감이 엄습했다.
마치 전설 속의 흡혈귀가 인간의 피를 탐하는 것과 같이, 아페티트는 사비나의 목을 깨물고, 그녀의 피와 함께 흘러나오는 저주의 기운을 들이마셨다.
“헉, 안 돼요!”
“이것이구나. 나를 저주하고, 욕망의 화신으로 만든 이 힘이, 당신을 이렇게…….”
점점 더 집요하게 달라붙어 오는 아페티트를 밀어내려 했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제 힘이 흡수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약하게 발버둥 치는 사비나의 몰을 끌어안고, 아페티트는 그녀의 피를 빨아 마신 뒤 잇자국이 난 목을 혀로 훑었다.
“흣……!”
아릿한 충격 위로 간지러움과 묘한 감각이 모였다가 흩어졌다. 까맣게 흐려졌던 시야가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는지, 눈앞에 붉은 머리카락이 넘실거리는 것이 보였다.
피를 머금은 새빨간 구름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그것의 정체를 인지한 순간, 사비나의 몸이 경직되었다. 사비나는 비명처럼 남자의 이름을 불렀다.
“아, 아페티트!”
“그래요, 아페티트. 탐욕의 악마는 인간의 몸을 먹어치우고 정신마저 먹어 치운 뒤, 이보다 강한 저주를 삼키기만을 열망하게 되었지요.”
악마란 사실 굶주린 짐승에 가깝지 않습니까, 라고 덧붙이며 그가 사비나에게 입을 맞춰 왔다. 가볍게 맞닿은 입술은 말랑했으며 휘감기는 혀는 촉촉했다. 그러나 사비나가 알고 있는 입술은, 입맞춤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에르잔……!’
아페티트에게는 온기가 없었다. 다정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상냥한 척 말하고 있지만 그 목소리에는 감정이 없다. 모든 것을 저주에 집어삼켜져 단 하나의 욕망만을 남기고 무너져 내린 것처럼.
“이런, 흣, 이러지 마세요. 이런 건…….”
“자아, 눈을 감으세요. 나의 저주는 당신을 만들고, 당신의 저주는 나를 욕망의 화신으로 만들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만들어 놓고 떨어져 있었던 것이, 이제야 겨우 다시 만나 하나가 될 뿐인 것을.”
어깨를 감싸오며 다시금 키스하는 아페티트의 붉은 머리카락이 사비나의 뺨에 와 닿았다. 사비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아페티트도 눈을 감지 않았다. 저주를 빨아들이는 검은 눈동자에, 그것을 탐내듯이 번뜩이는 황금빛 눈동자가 비쳤다.
애정이 아니다. 성욕도 아니다. 오로지 탐욕만이 깃든 그것은 입맞춤이라기보다는 「식사」에 가까웠다.
저주를 흡수하고, 먹어치우기 위한.
“흣…… 이거 놔요!”
“이런.”
사비나가 남자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저항하자, 남자는 곤란한 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핥듯이 입술을 탐하던 붉은 혀가 멀어졌다.
붉은 머리카락, 붉은 입술, 붉은 혀.
그 와중에 눈동자만이 황금빛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황금빛은 저런 색이 아니었다. 사비나가 알고 있는 황금빛은 더욱 밝고 선명하며, 어둠을 밝히는 햇살처럼 따스한 것이었다.
저런, 온도 없는 무기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드럽게 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에 안 드셨습니까?”
“마음에 들고 안 들고를 말하는 게 아니라…….”
“달콤하지 않았습니까? 저의 ‘저주’는.”
움찔 굳어 버린 사비나의 얼굴을 보고, 아페티트가 입가에 기묘한 웃음을 띠웠다.
“저주의 화신은 저주의 화신을 알아보지요. 저는 무척 마음에 들었거든요. 당신의 저주가.”
저주의 주술에 씌어 괴로워하던 이들과는 달리, 아페티트는 평온해 보였다. 마치 사비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설마 이 남자도 사비나처럼 저주가 따르는 몸인 것일까. 매끄러운 피부와 안정된 눈빛에서 그녀는 기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이 사람은 대체 뭐지?’
이런 산골 마을, 저주가 깃든 마을에서 자신과 같은 존재, ‘동류’를 만날 줄이야. 사비나는 당황했다.
“흐음. 예상 밖이네요. 제가 차일 줄은 몰랐습니다.”
“네?”
“입맛에 맞지 않았던 거지요?”
아페티트는 아쉬운 듯이 입맛을 다시며 몸을 일으켰다. 그제야 사비나는 제가 누워 있던 것임을 알았다.
‘넘어졌다는 느낌도 없었는데.’
주춤거리며 몸을 일으킨 사비나는 아페티트에게 물렸던 목을 쓰다듬었다.
어떻게 해도 죽을 수 없었던 그녀의 몸은, 짐승과도 같은 악마의 이빨에 목이 물어 뜯겼음에도 금세 상처가 아물었다. 아직 전부 수복이 되지는 않은 것인지 조금 따끔거리긴 하지만 더 이상 피는 묻어나오지 않았다.
사비나는 흐트러진 옷깃을 여미고 한 손으로 물린 목을 감싼 채로 뒷걸음질 쳤다.
“그렇게 경계하실 것 없습니다. 악마는 예의를 아는 존재거든요.”
“그게 무슨…….”
“당신이 거부한다면 억지로 탐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이 마을에 둘 뿐인 저주의 화신…… 나의 ‘짝’이 아닙니까.”
친하게 지내죠, 라고 덧붙이며 미소 짓는 남자의 기묘할 만큼 자연스러운 호의에, 사비나는 등골이 쭈뼛거리는 것을 느꼈다.
‘이 사람, 대체 뭐지?’
이제까지 사비나가 만났던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저주의 제물을 제외하면 더더욱 적었다. 이 마을에 와서 만난 사람의 숫자가 그녀가 이제까지 살면서 만났던 사람의 숫자에 필적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좁은 세계에서도, 아페티트는 명확하게 이질적인 존재였다.
저주에 씌어 있으면서도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사비나의 몸에 닿아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강한 저주를 탐하며, 그녀의 저주를 빨아 마셨다.
그러고는 그녀에게 거부당하자, 마치 고백을 거절당한 남자처럼 아쉬운 얼굴로 물러난다.
아무리 일상에 대한 지식과 상식이 부족한 사비나라도 알 수 있었다. 저 남자는, 아페티트는, 정상이 아니다.
“……그렇게 노골적인 시선으로 바라보시면 아무리 저라도 부끄럽습니다만.”
“시, 실례했어요!”
입가에 묘한 웃음을 띠우며 어깨를 으쓱하는 모습을 보고, 등골이 서늘했던 사비나는 얼른 몸을 돌려 창고를 빠져나왔다. 그녀가 빠져나오자마자 끼익, 하고는 저절로 문이 닫혔다.
아니, 어쩌면 바람이 닫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사비나는 어쩐지 저 돌로 만들어진 창고 자체에 강한 주술이 걸려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흡수할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저주의 주술은 아닌 것 같지만 말이다.
참고
17) 팔루카프탄「Полукафтан」. 카프탄은 본래 터키, 아랍 등 지중해 동부 지방 나라들의 중류층 이상의 사람들에 의해서 착용되었던 로브풍의 상의를 말한다. 팔루카프탄은 일종의 반(半)카프탄으로, 단이 짧은 카프탄을 일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