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늪 속의 불-24화 (24/189)

24화

“아! 아아……!”

분명 괴로울 만큼 압박감이 심한데도, 이상하게 그녀의 안은 마치 그가 더 깊은 곳까지 찔러 주었으면 한다는 듯이 애액을 내뿜으며 속살을 조여댔다. 높은 신음과 함께 허리가 공중에 뜨더니, 이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사비나 아가씨, 그러다가 허리를 다치십니다.”

“핫, 너무, 에르잔, 너무 깊……흐앙!”

사비나가 허리를 쿵쿵 바닥에 찧다가 혹 어디 다칠까 걱정되었던 에르잔은 그녀의 엉덩이를 움켜쥐고 몸을 살짝 들어 올렸다. 안을 찌르는 각도가 바뀌자 다급한 소리가 새며 늘씬한 허리가 둥글게 휘었다.

“크흣……!”

에르잔은 신음을 삼켰다. 세 번째가 되었으니 이제는 익숙해졌을 줄 알았는데, 고작해야 겨우 섹스가 무엇인지 알기 시작한 청년에게는 여전히 감당하기 어려운 자극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이성을 잃고 제멋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이 행위는 그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비나의 욕구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기에.

“하아. 사비나, 아가씨…….”

꽈악 조여 대는 속살로부터 벗어나듯 몸을 뒤로 뺀 남자의 허리가 다시 앞으로 당겨졌다. 푹, 소리가 나면서 단단한 살덩이가 안으로 삼켜지자 연결된 부위에서 뜨끈한 체액이 튀었다.

“앗! 아……!”

에르잔은 제 허리에 감겨 든 늘씬한 다리를 슥 문지르고는, 긴장으로 단단하게 올라붙은 엉덩이를 꽉 쥐었다. 사비나가 꺅 소리를 지르며 몸을 떨었다. 그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반드시, 만족시켜 드리겠습니다.”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 기사의 사명이라면, 사모하는 여인을 만족시키는 것은 남자의 사명이라고 할까.

자각이 없음에도 목표를 발견한 청년의 푸른 눈동자가 불꽃처럼 타올라, 시야에 들어온 가녀린 여체를 삼켜 버릴 듯이 에워쌌다. 정신없이 흔들리는 가녀린 몸이 꼭 불꽃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듯이 보였다.

아니, 그것이 정말로 괴로워하는 모습일까.

마치 물에 잉크가 퍼지는 것처럼 검은 머리카락이 엉망으로 헝클어졌다. 눈물이 가득한 검은 눈동자가 에르잔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붉은 입술이, 새는 한숨이 마디마디 끊어지는 음성으로 에르잔을 부르고 있었다.

“에르잔! 아흑……!”

“아가씨……!”

에르잔은 쾌감에 덜덜 떨려오는 턱을 고정하려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는, 힘 있게 허리를 움직여 그녀의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사비나가 최고의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덫에 걸린 새처럼 파드득 몸을 떨던 사비나의 몸이, 어느 한 정점을 찔린 순간 사지가 쭉 펴지며 마치 감전된 것처럼 바르르 떨렸다.

“하, 아아……!”

쉬어버린 목에서는 더 이상 신음조차 새어 나오지 않았다. 절정의 쾌감에 만족한 듯, 사비나는 느리게 눈을 깜박이고는 까무룩 기절해 버렸다.

7. 다정한 거짓말

그것은 얼마나 오래전이었을까. 아마도 눈이 내리던 날이었을 것이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방문한 사비나는, 멀리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가만히 눈만 깜박였다.

이름을 불러서는 안 된다. 정체를 밝혀서도 안 된다. 그저 멀리서 바라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다.

그녀도, 어머니도.

하지만 어머니는 그래도 좋다고 말했다. 부부가 아니어도 두 사람은 무엇보다도 끈끈한 정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니까.

“아가. 네 새카만 머리카락과 눈동자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거란다.”

그러니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하더라도, 이 머리카락과 눈동자 색이 아버지와 사비나를 혈연으로 묶어 주는 증거가 될 거라고.

그저 흔한 검은 머리, 흔한 검은 눈동자일 뿐인데도, 어머니는 사비나의 머리색과 눈동자 색이 꼭 세상에 아버지와 그녀 단둘뿐인 것처럼 특별하게 말해 주었다.

* * *

“으음…….”

나른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몸이 무겁거나 아프지는 않았다. 꼭 따스한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느낌. 사비나는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렸다.

에르잔은 곁에 없었지만, 방 안에는 따스한 공기가 가득했다.

‘처음엔 저주뿐인 공간이었는데.’

에르잔이 청소를 하고, 그녀와 함께 이 방에서 식사를 하고, 한 침대에서 몸을 섞게 되고부터.

이 방에는 무겁고 끈적하며 음습한 저주 대신, 깃털처럼 보드랍고 편안한 온기가 깃들게 되었다.

‘나에겐 어울리지 않아.’

사비나는 밝은 공간이 부담스러웠다. 태양 아래 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누군가와 얼굴을 마주 보고 대화하는 것에도, 가까이서 몸을 접촉하는 것에도 면역이 없었다.

그러나 에르잔은, 저주의 화신인 그녀를 조금도 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보듬어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저주에 물들거나 오염되지 않는 강한 남자였다.

“사비나 아가씨. 일어나셨습니까? 아침 식사를 가져오겠습니다.”

방 안에서 사비나의 기척이 느껴지는 것을 감지했는지, 문을 열고 들어온 에르잔이 상냥하게 웃으며 물었다.

훤칠한 키에 커다란 몸집 탓에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문을 지날 수 없음에도 에르잔은 다니는 것이 불편하다는 티를 내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황궁 기사라면 무척 명예로운 직책일 텐데, 이런 시골에서 여자 하나의 시중을 드는 일에 전혀 자존심을 상해하거나 귀찮아하지 않는다.

‘에르잔은 인내심이 굉장히 강한가 봐. 그리고 상냥하고…….’

죽음의 화신조차 물들일 수 없는 존재란 마치 태양과도 같다. 사비나는 에르잔의 모습이 눈부신 듯 천천히 눈을 깜박이고는 시선을 피했다.

“에르잔. 정말로 당신은 돌아가지 않을 건가요?”

“사비나 아가씨께서 돌아가실 때, 함께 귀환하겠습니다.”

“얼마나 걸릴지 몰라요. 나도 아직 이 마을에 깃든 저주가 어떤 것인지 전혀 모르니까.”

“아가씨를 모시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임무. 기사인 에르잔이 가장 중시하는 것. 그가 그녀의 곁에 남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합리적인 이유.

임무라는 말을 꺼낸 이상, 사비나에게는 에르잔을 설득할 근거가 없었다. 그가 원해서 하는 일이니 미안하다는 말조차 꺼내는 것이 실례일 터였다. 머쓱해진 사비나는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잠옷을 매만졌다.

정사를 치른 후 깨끗이 씻기고 새 옷을 입혀주었는지, 사비나는 하얀 천에 푸른색과 금색 실로 눈꽃무늬가 수놓인 루바하를 입고 있었다.

“에르잔. 이 옷, 로스카엔 신부님께 빌려 온 거라고 했잖아요.”

“의복이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다른 것을 준비하겠습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원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이렇게 몇 벌이나 되는 옷을 빌려 입었는데, 고맙다는 말은 전해야 하잖아요.”

로스카옌은 사비나에게 마을 사람들과 가급적 마주치지 않을 것을 권했다. 두 사람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일 거라면서.

하지만 어제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이 마을 사람들은 다들 크든 작든 저주에 오염되어 있을 가능성이 컸다. 카림처럼 어머니가 죽은 연못을 떠나지 못하거나, 어제 만난 여자처럼 다리가 불편하거나 얼굴이 짓물러 일상생활이 어려운 사람도 있지 않을까.

무턱대고 집집을 돌아다니며 저주를 흡수할 수는 없으니, 뭐라도 구실을 만들어 찾아가야 한다. 사비나가 입고 있는 옷은 아주 좋은 구실이었다.

“옷 주인이 누군지는 저도 직접 얼굴을 본 것이 아니지만, 위치는 알고 있습니다. 광장에서 교회로 가는 길목에 세 채의 오두막이 있었거든요. 아마도 그 세 집 가운데 한 곳일 겁니다.”

“그래요? 그럼 바로 가 보도록 해요.”

“사비나 아가씨. 아침 식사를 먼저 하셔야 합니다.”

충직하면서도 온화한 호위기사는 사비나가 끼니를 거르는 것을 절대 묵과할 수 없다는 듯이 문 앞을 가로막았다.

“끼니를 거르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에르잔. 나는 사실 보통 사람이랑 달라요. 나한테는 음식 섭취가 필수가 아니라서…….”

“식사하는 것이 괴로우십니까?”

“네?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그렇다면 제가 만든 것을 드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에르잔은 사비나가 먹을 요리를 직접 만들었다. 매번 테이블 다리가 휘청거릴 만큼 많은 요리가 올라왔던 것을 기억한다. 그것을 만드는 데 얼마만큼의 노고가 들어갔을지 요리를 하지 않는 사비나는 알 수 없지만,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만든 사람의 성의를 받아들이라는 걸까?’

에르잔이 그녀에게 무엇이든 해 주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라는 것을 전혀 짐작도 못 하고 있었던 사비나는 적당히 결론을 내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먹을게요.”

오늘 아침도 진수성찬이었다.

물론 사비나는 맛만 보았고, 그 많은 요리를 전부 처리하는 것은 에르잔의 몫이었다.

* * *

“사비나, 안녕? 오늘도 예쁘네.”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하고 나온 두 사람을 문턱에서 멈춰 세운 것은 어제도 보았던 얼굴이었다.

훤칠한 키에 뒤로 묶은 검은 머리, 청록색 눈. 흰 로브에 검은 장갑.

로스카옌 신부가 마주치지 말라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던 이 마을의 불한당.

“……나자예프.”

사비나는 무심코 이름을 불렀다가, 얼른 입을 가렸다. 의식해서 부른 것이 아니라 괜찮은 건지, 나자예프가 씩 웃었다. 에르잔이 어제 도낏자루를 부숴 버렸기 때문인지 오늘은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이름으로 불러 주는 거니? 기분 좋네. 그럼 이제 우리는 오늘부터 1일인 게 되나?”

“네 장례식 개시 1일이 되겠군.”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지껄이며 다가오는 나자예프의 앞을 에르잔이 막아섰다. 나자예프보다도 머리 반 개는 더 높을 듯한 거구의 기사는, 갑주를 입고 있지 않음에도 철갑을 두른 무장보다도 더욱 위압감이 넘쳐흘렀다.

“이러지 마. 연인의 달콤한 한때를 방해하는 눈치 없는 남자는 여자한테 인기가 없다고?”

“그래. 나는 눈치가 없고 네놈은 목숨이 없게 될 거다.”

“이봐, 진정! 진정하라니까!”

에르잔에게 멱살을 잡힐 뻔했던 나자예프는 허겁지겁 목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농담이 통하질 않는다니까, 라면서 불평하는 모양새가 묘하게 여유가 있었다.

‘이 마을의 사람들은 모두 저주에 걸려 괴로워하던 게 아니었나?’

사비나는 에르잔의 등 뒤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확실히 카림이나 어제 치료해준 여자와는 달랐다. 이런 저주가 가득한 마을에서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활보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

저주에 아주 익숙하거나, 저주에 영향을 받지 않거나.

“나자예프.”

이번에는 똑똑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몸이 아프거나 기분이 나빠져 얼굴을 찌푸렸을 텐데, 나자예프는 도리어 상쾌하게 미소 지었다.

“사비나는 목소리도 예쁘네. 신음소리도 예쁠지 궁금한걸.”

“나자예프. 당신, 뭘 하러 온 거예요?”

“그야 물론 사비나에게 뜨거운 숲속 데이트를 제안하러 왔지. 서로의 몸을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려면 밤은 너무 짧을 것 같아 아침 일찍 찾아왔어.”

“에르잔. 저 사람이 더 이상 이상한 소리 하지 못하게 해 주세요.”

“예, 사비나 아가씨.”

주저 없이 나자예프의 머리통을 움켜쥔 에르잔이 손끝에 힘을 주어 들어 올리자, 나자예프가 기겁해서 소리쳤다.

“아니, 잠깐만! 농담이야, 농담! 물론 사심을 듬뿍 담았지만!”

“변명은 저승에 가서 해라.”

“기다려! 마을의 저주를 풀러 온 거 아냐?”

그 말에 나자예프를 내동댕이치려던 에르잔의 팔이 우뚝 멈췄다. 사비나의 눈도 동그랗게 떠졌다.

“나자예프,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아요?”

“일단 이걸 놓고 이야기하자. 응?”

나자예프가 제 머리를 움켜쥔 에르잔의 팔을 집게손가락으로 가리키자, 사비나가 에르잔에게 눈짓했다. 에르잔은 얌전히 나자예프를 내려놓았다.

“후우. 무식하기 움켜쥐는 바람에 나의 감각적인 스타일링이 다 망가졌잖아…….”

“나자예프. 마을의 저주를 푸는 방법을 알려 주세요.”

“방법은 나도 몰라. ……아니, 잠깐만! 던지지 마! 나 아직 말 안 끝났다고!”

바로 목덜미를 부여잡으려는 에르잔의 손을 피해 엉거주춤하게 몸을 굽힌 나자예프가 사비나를 향해 물었다.

“하지만 이 마을에 대해서는 빠삭하지! 내가 갖고 있는 정보가 필요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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